사냥(14)
“글쎄…….”
“정치경찰실 조직 구성은 잘 모르지마는, 방첩국, 지금 국장 없지요?”
“……없지.”
“그리고 주 감찰국장은 ‘방첩국장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여기 와 있고.”
“…….”
“이 짓거리, 그 애새끼 주도로 일어난 일이라는 건 누가 봐도 뻔한 일 아니오?”
“구 중장, 말씀 삼가게. 나더러 겁쟁이라 욕해도 좋지만 목숨은 하나야.”
“먼저 간 고태용이만 목숨 내놓고 일한 건 아니오. 나도 내 부하들도 다들 하나뿐인 목숨 내놓고 일해요. 말 한마디 잘못해서 목숨 날아가는 건 무서워하지 않소.”
구종환은 이를 악물듯 입을 다물었다가, 덧붙였다.
“제국정보사령부가 그 정도도 무서워할 호락호락한 곳도 아니고.”
“내가 뭐 아우님 자존심이나 긁으러 왔겠는가. 원만히 풀려고 온 게지.”
“푼다는 게 ‘원만한 통합’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요.”
“어허, 참.”
“방첩국, 뭐 예전 야별초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군에서 정보 쪽에 발 좀 담가 본 사람들로 급조하지 않았소. 그런 조직에 내부에서 뽑아낸 사람이 아니라 감찰국장이 직접 ‘국장대리’를 달고 눌러앉았단 건 주도권을 내어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고.”
구종환의 말대로다. 주견하는 소년에서 벗어나고 나서는 무서운 속도로 업무 역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정치경찰실의 규모도 그에 발맞춰 점점 늘어나는데, 주견하는 빈틈없이 그 늘어나는 부분도 장악해냈다.
“그런 방첩국을 데리고 여기, 제국정보사령부에 왔다면…… 주견하는 장기적으로는 자기네 조직에 정보사를 병합할 생각 아니겠소.”
나제홍은 타는 목을 축이듯 물을 들이켰다.
스스로 변명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대답을 해준다.
“이번 일은 태사 각하께서 승인하신 일이야. 주견하 국장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네가 우려하는 일이 일어날 때까지 내버려 두진 않으실 걸세.”
나제홍이 태사까지 들먹이고 나서야 구종환은 조용해졌다. 주견하는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쳤지만, 미리안은 두려우니까.
그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위기감은 이해하네.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좋든 싫든 조직을 방어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걸 왜 모르겠나. 하지만 이쪽 입장도 이해해주게. 이건 고태용이 하나 죽은 걸로 끝날 문제가 아니야.”
구종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은 사람이 안 된 것과는 별개로, 장성씩이나 돼서 대체 왜 그런 일을 벌였는가 원망이 밀려온다.
“정치경찰실과 제국정보사령부의 합작 사업은 국가의 명운을 가를 사업이야. 여기엔 외무성과 다른 군사령부까지 얽혀 있어. 이번엔 자네가 좀…… 꾹 참아주면 안 되겠나?”
***
주견하가 ‘방첩국장 대리’로 방첩국 직원들을 이끌고 제국정보사령부를 방문하기 얼마 전.
“투글룩도 아직까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진 못하고 있어.”
리안의 말에 견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다가 리안은 훗, 하고 웃더니 손가락을 들어 견하의 미간을 문질렀다.
그 손짓을 따라 미간뿐만 아니라 표정도 자연스레 풀린다.
“주름 생겨.”
“제 미간 주름보다 더 심각한 일이에요.”
“그건 맞아. 하지만 그 일과 이 일이 한꺼번에 관리할 수 없는 건 아니야.”
리안이 손가락을 뗐다. 견하는 리안의 손가락이 머물던 자리를 문지르며, 다시금 화제를 다이온 문제로 돌렸다.
“게레센제가 궁지에 몰린 나머지 다 같이 죽자고 덤비면 막을 방법이 없다…… 라.”
“물론 대처는 할 수 있겠지. 지난번처럼…… 희생을 치러서라도 말이야.”
죄수들을 제물로 바쳐서 대량의 파멸인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하지만 그 방법은, 결함이 있어요.”
“그래. ‘일이 터지고 나서’의 대처법이라는 거지.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이 터지기 전에 예방하는 것.”
어려운 일이다. 두 사람은 거기까지 말하진 않았지만 그 점에는 확실히 공감했다.
상대는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힘을 마구 휘두를지도 모르는데, 이쪽에서 대항할 수단은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뿐이다.
물론 견하와 리안 모두, ‘수단이 한정되어 있으니 포기하자’라는 말을 꺼낼 성격이 아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게 두 사람의 성격이다.
“할 수 있는 한 철저히 대비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리고 가능한 게레센제가 구사할 모든 방안을 예측해둬야지.”
“그 모든 예측과 대비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필요한 건…… 속도겠죠.”
그렇다. 이 싸움은 속도전이다.
게레센제가 구사할 수 있는 수단이 막강하다면, 도저히 그 수단을 구사할 수 없을 지경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그러려면 게레센제가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보다 앞서야 한다.
아니, 게레센제의 예측보다도 앞서야 한다.
“……바이다르 칸.”
견하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리안은 그 이름의 주인을 떠올렸다.
너무나도 약해서 부러져버릴 것만 같았던 소년.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찾아왔던 소년.
그러나 이제 그녀는, 그녀가 이끄는 고려는 보호를 빙자해 바이다르를 이용하려 한다.
그냥 이용당하는 것도 아니다. 바이다르는…… 그 아버지의 몰락에 이용될 것이다.
“지금쯤이면 울제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죠?”
“그쪽에서 활동하던 고태용이 죽었다는 소식은 들어갔을 테니.”
“그렇다면 울제이보다도 빨리 움직여야겠네요.”
리안은 말없이 끄덕였다.
견하는 아주 잠깐 망설였다가, 고태용의 죽음을 들은 직후부터 생각해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일을 진행하려면 권한이 더 필요해요.”
“어떤 권한이지?”
리안의 두뇌 회전은 빠르다. 곧장 견하의 의도 몇 가지를 추리해낸다.
“감찰국이 제국정보사령부에 직접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요.”
“안 돼. 급이 안 맞아.”
정보사령부는 전쟁성 직할이다. 대령 따위가 이끄는 감찰국이 ‘합작’도 아니고 ‘감독’하러 들어가는 건, 아무리 리안이 견하의 편의를 봐주더라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견하가 뭐라 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리안은 이미 사안의 긴급성을 이해하고 있다.
“나제홍은 예비역이긴 하지만 중장이지. 구종환 중장보다 선배기도 하니 문제없어. 정치경찰실은 태사 직할이니 조직의 급으로도 무난하고. 그러니 정치경찰실 이름으로 실행하도록. 너도 감찰국장 말고 다른…… 임시 직함이라도 하나 달고.”
어디까지나 형식의 문제지만, 이번 일은 이런 형식을 따져야만 할 만큼 민감한 부분이다.
정치경찰실의 전신인 야별초와 제국정보사령부의 알력은 리안의 집권 전부터 있었던 것이니만큼,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견하는 그 정도면 문제없다는 듯, 조용히 웃음 지었다.
“생각해둔 게 있긴 한데, 조금 일찍 꺼내야겠네요.”
***
그렇게 해서 꺼낸 게 ‘방첩국’ 조직과 ‘국장 대리’라는 직함이다.
언젠가 견하가 정치경찰실장의 자리에 오르는 날, 확립하게 될 하부 조직 중 하나다.
물론 나제홍을 실장으로 내세우면서, 그가 데려온 옛 부하들로 조직의 기반 정도는 다져두었었다. 다만 이렇게 일찍 체계를 잡아나가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을 뿐.
향후 사상국, 친위국 등도 신설하여, 감찰국, 방첩국까지 네 개의 하부 조직이 정치경찰실을 떠받치는 구조를 만들려 했는데…… 이러다 보면 다른 조직들도 생각보다 이르게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다.
“실장 자리에 오를 일정을 앞당겨야겠군.”
최근엔 인재를 많이 확보했다. 이익서의 활약으로 원종인 등 제1대학교 출신 인재들뿐만 아니라, 각 대학에 퍼진 학생 조직을 통해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자들도 끌어들이는 중이다.
특히 지난번 회합은 감찰국이 얼마나 엘리트 조직화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소년과의 유지나도 착실히 각지의 중고등학교에 조직을 확대해왔다.
중학교에서는 선배들을 따라 감찰국 조직에 들어오길 희망하는 아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1고등학교 졸업생은 보통은 제1대학교에 진학하는 쪽으로 진로를 잡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런 인재들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유지나는 탐욕스러울 정도로 포섭에 포섭을 거듭해왔다.
여기에 더해, 견하는 특별한 주문을 했다.
제22고등학교. 약간 더 신경 써줄 것.
그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견하가 부모를 잃으면서 끝났기에, 상처를 미묘하게 건드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견하는 그보다는 추억에 좀 더 무게를 두기로 했다.
덕분에 제22고등학교 출신 중에서도 상당한 인재가 선발되어 감찰국에 들어왔다.
“이 기세로 늘어난다면 조직 개편 시기는 점점 더 빨리 다가오겠지.”
자신이 정치경찰실장이 된다면 부하들에게도 그 격에 맞는 직책을 배분해주어야 한다.
먼저 가장 공이 많은 유지나에게 감찰국장을.
이익서의 과묵함과 책임감을 생각해본다면 청년과 과장에서 친위국장으로 옮기는 게 좋겠지.
한재연도…… 슬슬 길이 들었으니 사상국장을 맡기는 게 어떨까 싶다.
문제는 방첩국인데…… 이건 좀 고민해봐야 할 문제 같다. 이미 영입한 인재뿐만 아니라 외부의 인재도 계속 탐색해나가야겠지.
생각 같아선 효윤을 친위국장으로 두고 싶지만 그건 어렵다. 효윤은 중장이지만 자신은 대령이니까. 격, 리안과 함께한 세월, 이 모든 것이 너무 차이가 난다.
게다라 효윤은 효윤 나름대로, 다른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배영훈이 있었지.”
어떨까.
확실히 회사원같이 충실한 인물이지만, 그 충심은 리안을 향해 있지 견하를 향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확실히 통제할 수 있고, 충심을 자신 쪽으로 돌릴 수 있다면, 배영훈을 방첩국장으로 옮겨놓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러자면 중령인 배영훈을 대령으로 진급시키고…… 마침 리안은 견하에게 준장 진급을 준비하라고 귀띔해주었다.
“20대 초반에 준장이라.”
당연히 이는 대원수의 측근인 리안과 격을 맞추기 위함이다. 효윤이 대령과 중장을 거친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돼지 목의 진주, 애송이들의 소꿉놀이라 비아냥거릴지도 모르지만, 견하는 그 말에 절대로 얼굴 붉히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실력은 자신의 전투력과, 끌어모은 조직의 힘으로 결정된다.
주먹을 치켜들면 대부분의 인간은 입을 닥치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진심으로 복종하기도 한다.
물론 주먹 앞에서도 기개를 보이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자들은 치켜든 주먹으로 머리를 내려치면 그뿐이다.
즉, 중요한 것은 주먹이 강한가 하는 점이다.
“국장님.”
방첩국 직원 두 명이 그를 부른다. 둘 다 20대 후반으로 나이는 견하보다 많지만, 예우는 깍듯하다.
견하는 상념에서 깨어나 시킨 일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해보겠다는 듯 턱짓했다.
“말씀하신 대로 정보사령부는 고태용 소장의 죽음을 전후로 몇 가지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