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93화 (393/541)

사냥(12)

그저 사제처럼 보이는, 그러나 교종청의 정치와 외교 분야에 종사하고 있을 중년의 사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교종청의 첩보기관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전하의 장막 속에 감춰진 실험까지 알 순 없죠.”

실험이 있다는 건 아는군. 하지만 벨리사리오스는 비아냥거리지 않았다. 저 ‘실험’ 운운하는 것도 자신을 떠보는 말일지도 모르니까.

다만 혹시 모르니…… 귀국하면 교종청의 첩자나 매수된 자들을 색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저 어느 정도 진척은 있었겠거니 짐작할 따름입니다.”

벨리사리오스도 부드러운 미소를 돌려주었다.

황자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낼 생각이 없음을 알게 되자, 사제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로마에서 일어난 일, 전하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까?”

미소를 전혀 거두지 않은 채로, 벨리사리오스는 대답한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제의 질문은 벨리사리오스가 배후가 아닌가 추궁하는 것이다. 벨리사리오스의 대답은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화는 팽팽하게 당긴 실 위에서 오간다.

언제 이 실이 끊어질까.

사제는 다른 실을 걸어보기로 한다.

어쨌든 교종청에서 초대한 손님이다. 벨리사리오스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지만 이쪽은 그렇지 않다. 그와 협상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교종청 입장에서는 때론, 불편한 사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전하께서 가져가신 ‘그것’ 말이죠.”

이제야 신종에게서 ‘악마’라는 이름을 떼어놓는 건가.

벨리사리오스의 얼굴이 진지해진다.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듯 상체를 조금 숙인다.

“할 수만 있다면 역사를 다시 쓰고 싶을 정도입니다.”

“어떤 역사 말입니까?”

“다른…… ‘신격’이 존재했고, 섬겨 왔다는 인간의 역사.”

‘다른 신격’에 대해 말할 때, 사제는 정말 깊이 갈등한 듯하다. 다른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한 것이리라. 우상이나 악마로 둘러대면 벨리사리오스는 그런 기만적인 대화에 더는 응해주지 않을 테니.

벨리사리오스는 사제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리곤 중얼거리듯 말을 뱉었다.

“배교자 황제는 어쩌면 가장 진실에 근접했던 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그것’을 찾아내 로마시 지하에 묻어두었던 남자.

그는 점차 크리스트교화 되어가던 로마 제국을, 다시금 전통 종교의 시대로 되돌리려 했던 황제이기도 하다.

마치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듯한 행적 때문에, 교회는 그에게 ‘배교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로마시 지하에 있던 그것은 존재 자체로도 교종청을 불편하게 했지만, ‘배교자’가 옳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기에 불안감이 더 컸으리라.

“배교자가 오래 살았다면, 신앙의 판도도 달라지지 않았겠습니까.”

벨리사리오스는 도발하듯 그렇게 말을 던져본다. 사제는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그의 죽음도 주의 뜻, 그 후 우리 주의 가르침이 온 유럽에 퍼져나간 역사도 주의 뜻. ‘만약’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이들이야말로 시간을 초월한 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원인과 결과라는 흐름보다, 신의 뜻이라는 완결된 형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 없이, 그 모든 현상이 신의 뜻 그 자체. 그러니 물을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으며 번민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의외로 사제는 말을 덧붙인다. 벨리사리오스는 하려던 답을 멈추고 그의 말을 듣는다.

“인간의 빈약한 인식에 기반해 ‘만약’을 가정해보자면, 그런 세상에서도 저는 주의 뜻을 지켜나가지 않았을지.”

마치 지하에서 핍박받던 초기 교회처럼, 이라고 사제는 말을 끝맺었다.

“‘베드로의 검’이 되어서 말입니까?”

벨리사리오스가 던진 반문에 사제는 흠칫한다. 그 반응에 벨리사리오스는 만족했다.

설마 여기까지 알아냈으리라곤 생각 못 했겠지.

“오래된 음모론이죠. 율리아누스 황제의 등을 찌른 병사가 페르시아군이 아니라 로마군이고…… 크리스트교인이었다는 이야기.”

페르시아군과의 교전 중에 율리아누스 황제는 부상을 당했는데,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난전이었기에 누가 율리아누스에게 치명상을 입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당대부터 범인을 두고 이런저런 추측이 돌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크리스트교 신자인 로마 병사가 범인이라는 설이다.

크리스트교의 로마 제국 정복을 가로막은 마지막 버팀목, 율리아누스에게 반감을 품은 어느 신자가 난전을 틈타 황제를 암살했다는 것이다.

“신의 뜻이라는 것은 종종 인간의 손을 빌려서 나타나는 법입니까?”

벨리사리오스의 이 말은 질문이지만 질문이 아니다.

결국 사람이 일을 저질러 놓고, 그것을 신의 뜻으로 포장하는 게 아니냐는 추궁에 가깝다.

하지만 사제는 황자와 신학 논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지, 그 화제를 비스듬히 피했다.

“‘베드로의 검’이 그렇게나 오래전에 탄생한 조직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그런 행동이 여러 기원 중 하나인 건 맞습니다.”

“……의외군요. ‘베드로의 검’의 존재도, 율리아누스의 죽음에 관한 진실도 부정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실은 후자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죠.”

어쨌든 사제의 말을 종합해보자면 크리스트교는 고대부터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둠 속에서 활약해온 자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로마 교종청 아래 일원화된 조직으로 편성되면서 지금의 ‘베드로의 검’이 되었다.

“예. 전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율리아누스 황제는 당시에 이미 진실에 가장 근접했던 자였습니다.”

그렇게 순순히 인정할 줄은 몰랐기에, 이번엔 벨리사리오스가 흠칫 놀랐다.

“신앙의 길은 고뇌의 길이기도 하지요. 모든 것이 주의 안배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존재하는 의미는 뭔가 속앓이를 합니다.”

“율리아누스의 괴물은 특히 더 그랬겠군요.”

“그런 것들을 세상에서 없애, 혹시 모를 거짓 신앙의 전파를 막는 것. 그것이 우리 주의 뜻이라 믿으며 살아왔습니다만, 이 지하에 있던 그것마저도 주의 뜻인가…… 생각하면 혼란스러울 뿐이었죠.”

“그래서, 제가 그걸 가져가는 걸 지켜본 겁니까?”

“정확하게는 누가 가져가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당시의 방침이었습니다. 교종청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고, 그 이상의 실험은 위험하다고 여겼으니까요.”

사고가 터지면 여기 로마시가 희생양이 될 수도 있고, 크리스트교 신앙에 큰 위협이 될 만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교종청은 그렇게 판단했다.

“마침 제가 그것을 가져갔군요.”

“예. 이런 말씀을 드리면 불쾌하게 여기시겠지만, 교종청은 콘스탄티누폴리에 뭔가 일이 터지면 그 데이터를 수집할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벨리사리오스는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실컷 교종청을 이용했을 테니까.

지금도 어떻게 교종청을 이용할까, 하는 계산으로 머리가 꽉 차 있다.

“콘스탄티누폴리와 동방 제국에선 몇 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죠. 그렇기에 우리 교종청은 슬슬 전하를 초빙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마침 ‘그 일’이 터진 겁니다.”

몽골의 수도 칸발리크를 뒤덮었던, 혁세주와 파멸인에 의한 대재해.

‘다른 신격’이 일으킬 수 있는 인류 멸망의 가능성.

그것이 전 세계인의 눈앞에 드러나자, 교종청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혼란을 겪었던 듯하다.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베드로의 검’을 통해 어둠 속에서 처리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얼마 전에는 로마시에까지 파멸인이 출현하지 않았던가.

“교종청 내부에서 더는 이 상황을 방관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의 초빙을 서두른 것은 이 때문입니다.”

“파멸인 출현의 배후에 제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 아니라면 협력을 구하기 위해서군요.”

“정확하십니다.”

벨리사리오스의 마음속에 웃음이, 그것도 박장대소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얼굴을 붉히며 ‘분노’를 위장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계승권에서 멀다고 해도 나는 로마의 포르피로옌니토스. 교종청의 권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그따위로 대할 사람이 아니오.”

“그 점에 대해선 깊이 사죄드립니다. 하오나 전하, 이 사안은 우리에겐 크리스트교권의 운명과 인류의 존망이 달린 문제입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해, 라.”

그렇게 곱씹듯 말하곤, 벨리사리오스는 물었다.

“정확히 내가 어떤 ‘이해’를 보여주길 바랍니까?”

“전하께서 ‘그것’을 연구하신 결과를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벨리사리오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파멸인이나 혁세주 문제의 실마리가 거기에 있으리라 보시는군.”

“아닙니까?”

다 알면서 저렇게 던져오는 질문이 참으로 거슬린다. 하지만 벨리사리오스는 굳이 그걸 걸고넘어지진 않기로 한다.

“그 대가로 교종청이 나에게 지불할 수 있는 건 뭡니까?”

“‘이탈리아 문제’의 통제권을 전하께 드리죠.”

이번 대답만큼은 벨리사리오스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침을 삼키며 목울대가 움직이는 걸 막지 못했다.

“독립을 주장하는 시위의 배후에는 교종청이 있었군.”

“뭘 새삼스레. 전하께서도 그 운동을 지원하시지 않았습니까?”

“슬쩍 등을 밀어주는 정도였습니다만, 뭐, 그랬다면 이쪽의 움직임은 다 파악하고 계셨겠군요.”

“예, 성하께서도.”

성하(聖下). 이건 교종도 개입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탈리아 독립은 교종청 전체의 움직일 수 없는 방침이라는 말이다.

어째서입니까, 라는 질문은 너무 멍청해 보이기에, 벨리사리오스는 질문을 바꿨다.

“이제 보나파르트 가문의 비호는 질린 겁니까?”

“신성 제국의 황제권을 벗어난 교종청의 독립적인 지위는, 나폴레옹 1세 때부터 논의되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1세를 거스를 순 없었겠죠.”

“예. 그는 강했죠. 그의 적은 약했고, 친구는 또 어찌나 강하던지. 에스파냐는 너무 멀고, 로마 제국이 나폴레옹 1세를 강력히 지지했죠.”

하지만 이미 옛날 일이다. 나폴레옹 1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넘었다. 이제는 종교 개혁의 광풍도 지나갔고 교종청의 성격도 바뀐 지 오래다.

새삼스레 이탈리아 땅에 신의 왕국을 건설할 이유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군요.”

사제와 황자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한쪽은 이야기해주어야 할지 재보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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