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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92화 (392/541)

사냥(11)

내후년, 1933년부터 진행될 예정이었던 다이온 장악 계획.

-고태용은 이것도 급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물론 계획이 짜인 대로만 돌아가는 법은 없다. 고태용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라 내다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은, 계획했던 것보다 빠를 수도 있다는 뜻이지.

급하게 움직여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리안이 눈을 감고, 팔을 견하의 목덜미에 두른다. 견하도 눈을 감으며 서서히 머리를 숙였다.

촉촉하면서도 따뜻한 입술.

그 감각을 음미하면서도, 견하의 생각은 이 휴가를 마치자마자 할 일을 향해 뻗어간다.

슬슬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낭키아스에 손을 뻗는 것.

그리고 동시에, 다른 우려가 떠오른다.

리안은 ‘게레센제의 신수덕 내통 혐의’를 캐다가 고태용이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견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견하와 태용이 짰던 계획, 거기에 반감을 품은 누군가의 소행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계획의 내용이 누군가에게 새어 나갔을 수도 있다. 가장 의심스러운 건 역시…… 고태용이 몸담고 있던 제국정보사령부.

시기는 확실히 이르지만, 언젠가 해야 할 일이기는 했다.

감찰국이, 정확하게는 정치경찰실이 제국정보사령부를 장악해야 한다.

일원화된 원칙, 일원화된 목표, 일원화된 체계가 필요하다.

리안의 제국, 자신의 제국을 위하여.

***

올라온 보고에, 정말 오랜만에 울제이는 씩 웃었다.

미리안도, 주견하도 고깝기는 해도 능력만큼은 뛰어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최선을 다해 효율적으로 움직여줄 것이다.

제발 그렇게 움직여주길 바란다.

고려의 고태용을 죽인 진범이 누구인가, 그걸 추리해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울제이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도 ‘이 시점에 울제이가?’라는 의구심이 그런 추리를 가로막겠지.

자신은 의외성으로, 바로 그 사고의 틈을 찌른 것이다.

이 위장 상태를 이어가기 위해 참모들에게 ‘대원철도주식회사의 사업에 적극 협력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여기에 보험을 하나 더 들어두자.

“고려의 안세규에게 접촉한다.”

안세규는 고려와 몽골의 동군연합에 반대한다. 그가 이끄는 고려국민당은 공식적으로는 황실과 정부의 확장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지만, 속내까지도 그런지는 불투명하다.

아니, 최근 고려 내부에서 연합정권이 깨진 것을 보면, 여전히 안세규는 동군연합, 더 나아가 고려가 다이온에 가담하는 걸 반대한다고 보아야겠지.

그런 안세규에게, 고려를 다이온에서 배제하려는 울제이의 시도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충분히 거래해볼 만한 상대라 여기지 않을까.

이 정도로 보험을 들어뒀다면 이젠 실행만이 남았다.

마침내, 때는 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자신은 결코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게레센제의 몽골과 루우 테무르의 고려 사이의 대립이 아무리 급박하게 흘러간다 해도, 자신은 필요한 말만을 신중하게 옮길 것이다.

그 첫 단계로,

“응천으로 진군한다.”

참모들 앞에서 울제이는 선언했다. 물론 이 ‘진군’은 어디까지나 비유다. 키타이와 낭키아스 사이에 이전의 ‘회수대치’처럼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선언이 담은 진정한 뜻은, 낭키아스 내부의 ‘울제이파’를 움직여 칸 바이다르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

고려와 몽골 사이에, 루우 테무르와 게레센제 사이에 의심과 갈등의 불꽃이 튀는 바로 이 순간에,

울제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

안세규의 반응은, 냉소였다.

주견하의 폭로로 자신과 고려국민당이 곤란해지긴 했다. 하지만 세규는 대응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반박하지 않았다.

“대응하지 않을 겁니까?”

그림자 사내의 물음에 세규는 새삼스레 뭘 묻느냐는 태도로 양손을 펼쳐 보였다.

“상대가 기대한 대로의 대응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아예 대응하지 않는 거 아니다. 미승휴 시대에 이미 민국정부 인사들을 살해하면서 갖은 ‘모함’을 했던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인사들이 뒤로는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조카가 백부를 본받아 또 거짓말을 늘어놓는가’, 그 정도 반격만으로도 대응은 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과거 제국정부가 민국정부를 상대로 저질렀던 온갖 테러와 암살, 납치, 고문 사례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 주견하의 수작은 대부분 상쇄된다.

국민 중에는 미승휴 정권을 여전히 증오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또한 아무리 미리안이 언론을 장악하고 검열을 서슴지 않는다 해도, 고려의 주요 정당 중 하나인 고려국민당의 목소리까지 완전히 틀어막을 순 없다.

“게다가, 진정한 반격은 적이 기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마침 세규 앞에는 울제이에게서 온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세규는 그 제안을 검토해볼 가치도 없다는 듯, 태워버렸다.

그림자 사내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린다.

“울제이 칸의 제안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다들 그러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네.”

주견하는 자신의 폭로에 세규가 허둥대다 실수를 저지르길 바란다. 선거 전에 민심을 많이 잃으면 잃을수록 좋고, 각종 불법적인 공작의 꼬리를 스스로 드러내면 더욱 좋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울제이는 세규가 제국입헌당과의 연합정권을 끊고, 사방에서 공격당하는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세규에게 울제이의 ‘동맹’ 제안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일 테니, 거부하지 못하리라 여기겠지.

울제이는 상황을 과격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오히려 이 점을 통해 세규는, 울제이가 자신을 이용해 뭘 노리는지를 추리해낸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길을 택한다.”

세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견하와 만난다. 미리안과 만난다. 노선을 전환하고 목표에서 물러난다. 한 걸음으로 충분치 않다면 두 걸음, 열 걸음, 백 걸음이라도 물러난다. 언젠가 나아갈 천 보, 만 보를 위해.”

***

분명 한바탕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상대가 먼저 평화를 제의해왔다.

견하는 드물게 당황하며, 세규를 안으로 맞아들였다.

“전에 했던 약속은 아직도 유효한가?”

대학가에서, 양측 학생운동의 충돌을 방지하자던 약속. 그 대가로 세규는 미리안 정부의 다이온 정책을 지지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딱히 약속이 파기된 기억은 없습니다만.”

“그래, 자네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나도 다이온 정책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유지하도록 하지.”

견하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세규의 말이 이어졌다.

“울제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네.”

“울제이 칸이……?”

“협력을 제안해왔지. 나는 지금 여기서 자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여 제안을 거부하는 중이고.”

“그들이 고려국민당에 협력을 제안했다면 의도는 뭐였을까요?”

“다이온에 어떤 격변을 일으킬 심산이었겠지. 그리고 나는 그동안 자네나 태사 각하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맡고.”

울제이가 움직인다?

안세규를 통해 자신의 시선을 끌려 했다?

하필이면 고태용이 죽고, 몽골과 고려 사이에 긴장이 감도는 이 시점에?

리안은 제삼자의 개입 가능성을 이야기했었다.

울제이의 소행일까? 이 모든 혼란을 일으키고 그 틈을 타서 고려를 떨쳐내고 자신이 카간의 자리에 오를 생각이었을까?

“자네도 이미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세규의 말에 견하는 이런저런 추측을 내려놓고, 다시 그에게 집중했다.

“신속하게 응천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군.”

안세규도 그 정도 전략은 떠올릴 수 있겠지. 그렇다. 울제이도 그렇고, 자신이 고태용과 짠 계획에서도 ‘응천 궁정의 장악’, 또는 ‘바이다르의 신병 확보’는 중요했다.

“내가 협력하지 않기로 한 걸 눈치채면 주춤할지도 모르지만, 그전까지 울제이 칸은 필요한 일은 해둘 걸세. 자네가 늦지 않았다면 좋겠군.”

그렇게 말한 뒤 인사도 없이 나가려는 안세규의 등에 대고 견하는 물었다.

“이 일로 안 총재께선 많은 걸 얻으시겠군요.”

“글쎄. 딱히 크게 유리해진 건 아닐세. 일단은 자네가 만든 포위망에서 벗어났지. 자네가 얼마나 총명하든, 감찰국의 세력이 얼마나 크든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니까.”

안세규가 견하의 집무실을 나가자, 견하는 의자 팔걸이를 으스러질 듯 움켜쥐었다. 정말로 힘을 주었다간 부서질지도 모르고, 그건 또 그것대로 추태였기에 적당히 힘 조절을 했지만……. 그러다 보니 끓어오르는 분노가 진정되지 않는다.

이를 악물어 노성을 참는다.

안세규의 말대로다. 사냥감은 사냥꾼의 영역에서 무사히 도망쳐 나갔다. 사냥은 실패했다.

“낭키아스…….”

우흥섭 및 장해진 대장과 연락을 취하고, 아마 직접 바다를 건너 응천에서 행동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제국정보사령부 쪽 일도 신경 써야 한다. 울제이가 고태용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정보사령부 쪽에서의 정보 유출을 염려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

즉각,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수행하다 보면 안세규를 잡을 여력은 없어진다.

게다가 안세규는…… 오히려 루우의 동군연합 사업에 협조함으로써 고려국민당을 향한 모든 폭풍을 피하고 지지세를 늘려나갈 심산이다.

상대가 맞부딪쳐 올 경우는 철저히 대비해뒀으면서, 굽혀 올 경우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방비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전적으로 견하의 실책이다.

판을 뒤집어서 억지로 안세규와 고려국민당을 몰아붙이는 방법도 이제는 쓸 수 없다.

분노를 표출할…… 다른 방법을 찾는다.

견하는 지나를 호출했다.

안세규가 나가고 나서 분위기가 이미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지나는 재빨리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국내, 그다음이 해외다.”

지나는 끄덕였다.

“제국정보사령부를 장악한다. 전에 말했던 것처럼 느긋한 계획은 더는 쓸 수 없게 됐다. 아무리 급하게 움직여도 늦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나는 드물게 각 잡힌 태도로, 발뒤꿈치를 부딪쳤다.

상관 주견하의 분노 발산 방법.

그것은 지금 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다.

***

“교종청에서는 이미 전하의 ‘악마’ 입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준비된 무대였죠. 오늘은 그 감상평입니까?”

결코 만만치 않은 두 사내의 대화다. 내용은 팽팽하기 짝이 없지만, 그 내용을 다루는 두 사람의 태도에는 여유가 넘쳐흐른다. 허세지만, 그 허세가 다할 일은 없다.

“그나저나 교종청에서는 ‘악마’라고 부르는군요, 그것을.”

“교종청에서 달리 그것을 무어라 부르겠습니까.”

하긴. 다른 곳에서 쓰는 ‘신종’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신’은 하나뿐이다. ‘신’이 하나의 생물종에 불과하다는 발상도, 거짓되었다고는 해도 어쨌든 ‘다른 신’이 존재한다는 발상도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

그러니 아주 고전적인 표현, ‘악마’를 쓴다.

도대체 왜 악마를 죽이지 않고 그런 식으로 보관해뒀는지를 추궁하면 재미있는 반응을 볼 수 있겠지만, 벨리사리오스는 굳이 그러진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그 ‘악마’를 가져간 후에 원하는 결과는 얻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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