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4)
“하지만 기존 종교들이 가만히 있진 않았을 텐데?”
리안이 의문을 표한다. 그렇다. 종교 입장에선 신도를 빼앗기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다.
순교와 박해는 그런 것에 비하면 간지러울 뿐이다.
오히려 순교는 신앙이 얼마나 두터운지 증명한다는 면에서, 은근히 권장된다.
신앙이 옅어져 사라지는 것……. 그야말로 손쓸 도리도 없이 한 종교를 사라지게 만든다.
“예. 당연히 새로이 나타난 ‘사이비 종교’의 모임으로 신도들이 빠져나간다는 걸 알아차린 기존 종교들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거짓에 속지 마라. 우리의 신앙을 지켜라. 고난이 지나가는 동안 더더욱.
지금 삶을 충실히 살고, 미래의 구원을 믿으며 기다려라.
“하지만, 그거야말로 혁세주교의 노림수였죠.”
다른 종교들이 혁세주교에 강하게 대항하면 할수록, 그래서 영혼의 구원을 믿고 바라면 바랄수록, 혁세주는 더욱 이 세상에 끌리게 된다.
“사랑하는 이의 구원을 바라는 것뿐만 아니라, 증오하는 이를 저주하는 것마저 그런 효과를 냅니다.”
누군가에게 ‘지옥으로 떨어지라’ 저주하는 것.
그것은 그에게 ‘지옥에 떨어질 영혼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므로.
“어떤 식으로 대응하든 종교들의 대책은 효과가 없었겠군.”
“그렇습니다. 종교로는 혁세주교에, 그 배후의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 저항할 도리가 없었죠.”
“유일한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리안은 말꼬리를 흐렸다. 불가능한 방법이니까.
투글룩은 자신이 전부터 생각해왔던 그 공상에 리안 역시 도달했음을 알고, 조금 감탄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대단하지 않았다면 저 나이에 저 자리를 지키지 못했겠지만.
“……받아들이는 것뿐이겠죠. 영혼 없음을. 구원도 없음을.”
이 삶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임을. 선한 이를 위한 영원한 보상도, 악한 이를 맞이할 영원한 벌도 없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
악한 이가 끝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다 죽어도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선한 이가 끝까지 고생만 하다 죽어도 그 어떤 상도 받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의 절대적 진리임을 인정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신에게 매달리지 않고, 혹시 모를 구원의 가능성을, 영혼의 부여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오로지 유한한 인간으로서 지상에 우뚝 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 어떠한 동요도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자는 그 의지만으로도 이단을 뛰어넘은 초인이다.
그런 초인이 최소한 도시 단위로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양성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양성기관이 먼저 사라지든지, 사회가 먼저 붕괴하든지 둘 중 하나겠죠.”
비참한 삶, 그 끝에 있을 마지막 희망의 불꽃마저 꺼뜨린다면, 그때는 누구도 참지 않는다.
사회의 하부구조는 혁명으로 단숨에 무너져내릴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아편이라 말한다.
리안도 그 점에 동의한다.
아편 공급이 중단되는 순간 격통이 비참한 사람들의 두뇌를 강타할 것이다.
고통은 광기와 분노로 터져 나오겠지.
어떤 정치인이 그걸 억누를 수 있으랴.
역사 속 정치인들이 종교 수장을 겸하려 하거나, 종교를 지배하려 하거나, 최소한 종교와 협력하려 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정치적 합리, 이성만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삶의 고난을 견디도록 할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 있다면 이미 권력을 쥔 정치가이거나, 반역자로 사라진 사람일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이야 인위적으로 모든 인민을 그런 경지로 끌어올리려 하는 나라지만, 그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어요.”
피로를 호소하듯, 리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도 기품은 잃지 않는다.
하지만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투글룩은 하직 인사를 올릴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리안이 피곤을 드러내는 건, 대응책이 마땅치 않아서다.
동명에서, 칸발리크에서, 지금 로마 시내에서 그러하듯, 괴물들이 나타나면 그제야 맞서 싸울 수 있을 뿐.
‘예방’은 할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리안은 화제를 돌린다.
“다시 게레센제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아까 장군은 ‘군사 작전상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투글룩은 혁세주교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다시 한번 게레센제의 ‘발악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정리해왔다.
“혁세주교가 소탕된 지금, 잔당도 몽골…… 아니 다이온 국경 내에 남긴 어려울 텐데, 어떻게 가능하리라 보시나요?”
혁세주교가 없어도 그들이 남긴 자료가 있다, 그렇게 대답하려다 투글룩은 말을 멈춘다. 하마터면 멍청한 대답을 할 뻔했다.
미리안이 묻는 건 지식과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칸발리크 사태의 해결에서 이미 추측할 수 있듯, 게레센제도 혁세주를 불러오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수단, 그리고
그 수단을 실행하기 위한 조직이다.
혁세주를 불러오기 위한 ‘충분할 정도의 신앙 조직’이 지금 게레센제에게 있는가?
“혁세주교 조직을 활용할 수 없다면 기존 종교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기존 종교를……?”
“예. 효율성은 떨어지겠습니다만, 로마시에서 지금 시도되는 방법이 그런 게 아닐지.”
파멸인이 나타나곤 한다는 로마의 밤.
그건 로마가 가톨릭 신앙의 총본산이기에 가능했던 건가, 하고 리안은 되짚어 본다.
“칸발리크에서 그 정도의 종교 동원이 가능할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혁세주를 물러나게 하는 방법을 함께 쓴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칸발리크 사태의 해결책.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혁세주를 물러나게 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혁세주를 ‘한 번 더’ 불러내는 방법이었다.
중복소환. 존재의 반복을 견딜 수 없었던 혁세주가 제풀에 튕겨 나간 것에 가깝다.
그러기 위해서 리안은, 그녀의 책임 아래 있는 주견하는 법무성과 협력하여…… 죄수들을 강제로 파멸인으로 만들었다.
투글룩은 리안의 눈 아래 지는 그늘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별다른 감정 없는 어조로, 리안의 생각을 보조하듯 설명을 늘어놓았다.
“……게레센제에겐 충분한 죄수가 있을 겁니다. 파멸인의 시체도 아직 많이 남았겠죠.”
파멸인이야 칸발리크 사태 때 넘치도록 죽였으니, 냉동 보관 시설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여전히 많이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시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신종의 씨앗’을 불러내고 그걸 통해 파멸인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죄수야 뭐, 붙잡힌 혁세주교인도 있을 테고 포로들도 많을 것이다. 알타이 자유 공화국 출신이든, 한족 반란군 출신이든.
준비 자체는 어렵지 않다.
“어떤 작전을 생각 중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각하?”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새어나갈 염려가 적다 해도 투글룩에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를테면 각하의 군대가 몽골-고려 국경을 돌파해 칸발리크로 진입하는 경우, 전면전이 아닌 이상 이미 몽골 내에서 호응하는 세력이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전면전은 애초에 가정할 수 없다. 다이온의 두 주축 간 전쟁이 벌어졌다는 건 이미 다이온 자체가 해체되었다는 의미니까.
몽골 내에서 호응하는 세력은 볼로드일 수도 있고, 몽골의 제국입헌당일 수도 있다. 어쨌든 빠른 정국 장악을 위해 지금도 ‘대원철도주식회사’의 사업은 확장 중이다.
“칸발리크 시내는 이미 혼란에 휩쓸린 상황. 게레센제 지지파와 새로운 카간 지지파로 나뉘어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때 게레센제는 최후의 협박을 합니다. 만약 고려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면, 칸발리크와 함께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듯, 리안은 턱짓했다.
“따라서 이 경우 문제는 시간, 그리고 게레센제의 의지입니다.”
얼마나 빨리 고려군이 칸발리크로 진입할 수 있는가. 얼마나 빨리 몽골 내 호응 세력이 칸발리크를 장악할 수 있는가. 안팎의 압력이 얼마나 빨리 게레센제를 굴복시킬 수 있는가.
게레센제의 카간 자리에 대한 집착은 얼마나 강한가. 대체 얼마만큼의 압박을 가해야 게레센제는 순순히 카간위를 내놓고 물러날 것인가.
“솔직히 나는 게레센제가 정말로 극단적인 발악을 할 확률은 반반이라고 봅니다.”
견하의 우려를 진지하게 듣긴 했지만, 리안은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진 않으리라 보았다.
게레센제가 정말로 자신의 권좌를 지키려고 자국민, 그것도 수도의 시민들을 희생시킬 만큼 지독한 사람인가?
그런 행위가 비판받는 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악랄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발악은, 말 그대로 ‘최후’에 하는 일이다.
상황이 ‘최후’라고 불릴 지경까지 오게 되면, 판세를 뒤집기는 불가능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발악하는 건 기적을 바라는 과대망상증이나, 자기 혼자 죽을 순 없다는 철저한 악의의 발현이겠지.
“카간 자리를 무력으로 위협만 해도 물러날 거라 가정하고 있죠. 협상에 나선다 해도 낭키아스 영지의 유지, 혹은 선대 카간으로서 칸발리크 황궁에 구금되는 것…… 정도를 조건으로 내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미리안도 받아들일 만하다. 피는 아예 흐르지 않거나 최소한만 흐른다. 모든 사태는 원만하게 흘러가리라.
“하지만…… 역시 ‘만에 하나’를 무시할 순 없겠죠.”
“예. 사람은 겉보기와는 다른 법이니까요.”
게레센제는 시레문에 비하면 결단력이나 지도력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평생 꿈꿔 온 카간 자리가 위협받는 순간, 그가 어떤 얼굴을 드러낼지는 알 수 없다.
적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습이 튀어나올지도.
“……그 대책을 마련해주셨으면 좋겠군요.”
혁세주 소환 그 자체를 예방할 대책.
투글룩은 대화의 흐름으로 이미 자신에게 어떤 부탁이 들어올지 알아챘다. 그랬기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답했다.
“발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야, 다른 변수 없이 게레센제가 굴복하겠지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