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3)
생각 없이 아무 대답이나 내놓기보다는, 일단 앞뒤 상황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다.
고려가 어떤 식으로 칸발리크 사태를 받아들이고, 이후 어떻게 대비해왔는지 모르는 자신은 그 우려가 얼마나 타당한지 알 수 없다. 그런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면 리안 쪽에서도 불가피하게 추가 설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런 ‘형식’을 먼저 꺼냈으니, 지켜야 한다.
“칸발리크 사태가 있기 얼마 전, 동명시 지하철 복구공사 중에 파멸인 몇 개체가 발견되었죠.”
투글룩의 눈이 커졌다. 반쯤은 일부러 보여주는 반응이고, 또 반쯤은 진심으로 놀란 것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동명역 지하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시기상으로는 칸발리크 사태의 ‘전조’라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런가. 사태 전부터 고려에서 ‘예행연습’을 했던 건가.
고려인들로서는 칸발리크에서 일어났던 일이 동명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등골이 서늘했겠지.
어쩌면 안도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안도만 할 순 없고, 대책을 세워야 했을 터.
그러나 무슨 수로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천상의 괴물’을 상대한단 말인가? 애초에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이제 이단, 그들이 다루는 세상의 원리, 그 변용은 군사 분야에서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니다.
국가, 아니 인류 문명 그 자체의 존속을 위해 더 많은 비밀을 확보해야만 한다.
미리안의 말은 바로 그런 목적 위에 서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 그녀의 말이 이해되는 것 같다.
“칸발리크 사태를 일으킨 자들이 다시 고려로 들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투글룩의 고려어는 썩 유창하지 않다. 그래서 투글룩은 미리안의 찌푸린 미간이 투글룩의 말을 애써 해석해보려는 노력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안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건 이미 대비하고 있어요. 특히 몽골 카간이 조직한 ‘신원경제자원연구회’의 활동은 특히 예의주시하고 있죠.”
갑자기 튀어나온 두 이름.
몽골 카간, 게레센제.
신원경제자원연구회.
그 둘의 이름이 나온 건 무슨 의도일까. 그런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리안의 말이 먼저 투글룩의 귀에 닿았다.
“앞선 질문의 범위가 너무 넓었는지도 모르겠군.”
갈피를 잡지 못한 투글룩은 그 말에 답하지 못했다.
리안의 말이 곧장 이어졌다.
“장군은, 장군이 속했던 곳에선 칸발리크 사태의 원인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은데.”
목이 타들어 간다.
대답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다만 이 대답이,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연구기관과 몽골의 기밀을 유출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될 뿐이다.
투글룩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리안이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황제 폐하는 돌아가신 시레문 카간의 유일한 자식이시지.”
그 말을 듣고 나자, 자신 또한 계속 목구멍 안쪽에 눌러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루우 테무르께서 카간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겁니까?”
시레문이 루우를 고려 황제의 자리에 오르도록 보내준 것은, 훗날 그녀를 몽골 카간 자리에 올리려는 큰 뜻이었다…… 고 투글룩은 믿는다.
루우는 그것이 자신만의 원대한 계획이라고 생각하지만, 시레문도 그녀가 고려 황제가 되면 얼마나 큰 기반을 보유하게 되는지는 알고 있었으리라.
따라서 투글룩에게는 루우 테무르가 카간이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
여성이긴 하지만 정통성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미 먼 옛날 고려 출신의 장수 이성계가 티무르와 ‘모계 혈통에 따른 계승’도 인정하기로 합의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티무르는 사마르칸트에서 바그다드에 이르기까지 ‘칸’으로 군림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투글룩은 ‘게레센제는 카간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다.
허나 카간은 당위만으로 오르는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까지 가려면 실질적인 힘이 필요하다.
루우가 고려의 황제가 되었다 해도, 실권은 여전히 미리안이 쥐고 있다.
그러므로 루우가 몽골의 카간이 될 가능성 역시, 전적으로 미리안의 뜻에 달렸다.
리안은 투글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녀 또한 결심해야 한다.
이미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그런 뜻을 비쳤다. 외교석상에서도 몇 번이고 ‘다이온의 이상’을 외치며 그런 암시를 던졌다.
허나 아직 자기 주변 사람들 외의 다른 이들에게 분명하게 말한 적은 없다.
그렇게 단언하는 데에 어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말이 약속이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은 자기 몸과 마음마저 결정한다.
몸은 무의식중에 뱉은 말을 따라 움직일 것이며, 마음도 뱉은 말이 가리키는 쪽을 더 선호할 테니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는 유연함을 좀먹는다.
그러나 리안이 결심에 이르기까지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게레센제는 폐위될 겁니다.”
그 대답을 들으며 투글룩은 두 눈을 감았다.
주견하에게서 측근들이 게레센제 폐위 이야기를 들으며 시대의 격변을 예감할 때, 투글룩 또한 그 격류를 통감한다.
동시에 투글룩은 리안이 ‘우려하는 바’에 대해서 말할 때, 왜 게레센제와 그가 만든 조직을 언급했는지 알아차렸다.
“게레센제 카간의 저항을 걱정하고 계시는군요.”
“카간이 칸발리크 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했었다는 건 장군도 알고 계시겠죠.”
투글룩은 끄덕였다.
해결책을 안다는 것은 곧,
“그렇다면 게레센제는 어떻게 해서 괴물들을 불러들이는지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태사께서 하신 추측이 틀리진 않을 겁니다.”
다만…… 이라며 투글룩은 말꼬리를 끌었다. 덧붙일 이야기는 자신이 판단하기엔 어려운 문제였으니까.
“게레센제 카간이 궁지에 몰린 순간, 그런 일을 정말로 실행할지는 알 수 없겠습니다.”
그건 투글룩의 분야를 벗어나는 일이다.
거기엔 정치적인 계산, 게레센제라는 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투글룩은 게레센제를 몽골의 카간이자 보르지긴 가문의 수장으로서 어떠하다고 평가할 수만 있다. 개인으로서는 어떤지 말하기 어렵다.
정치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건 미리안 같은 사람의 영역이다.
“다만 ‘할 수 있느냐’에 관해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미리안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투글룩의 얼굴만 계속 바라본다. 투글룩이 한 말의 진정성을 따져보는 걸까, 아니면 다음 질문을 정리하는 걸까.
얼마간 어색한 침묵이 지나가고서야 리안은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서명해주실 수 있는지?”
“원리를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면 군사 작전상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물으시는 겁니까?”
“둘 모두를 포함해서,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두고 싶군요.”
리안은 이미 투글룩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더욱 그 정도를 끌어올린다.
민감한 정치적, 군사적 영역이니만큼, 섬세한 작전이 필요한 상황.
최대한 많은 정보를 들어두고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번에는 투글룩이 침묵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하다.
“그럼…… 혁세주교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사태가 일어나기 전, 칸발리크 일대에 은밀하게 퍼져 있던 종교.
“이단, 그리고 그 초능력의 원리는 성리학으로 ‘설명’되지만, 성리학은 여러 설명 중 하나일 뿐입니다. 현대의 이단 연구는 그보다는 앞서 있지요.”
수백 년 전 사람의 이론보다 앞서 있지 않다면, 수백 년간 인간사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의미도, 진전도 있었다.
“성리학으로 이단이 처음 설명되던 당시에는 이단의 초능력, 영혼이나 신을 논하기 어려운 문제…… 정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다소 성급하다는 감은 있어도 잠재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죠.”
영혼은 없다.
신은 외계의 괴물에 불과하다.
“더 많은 실증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방향 자체가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에도 간략하게 듣긴 했지만, 여전히 리안에겐 충격적인 설명이다.
그녀도 특별히 어떤 종교에 심취해 있진 않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사람의 명복을 빌어준다든가, 다음 생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길…… 하고 빌어주곤 한다.
3년 전, 리안은 항전열사릉 앞에서 백부를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았던가.
무의식중에, 인간의 문명 자체에 뿌리 박혀 있는 무언가를 부정하는 진실.
다만 리안은 충격적인 진실의 ‘영향’과 ‘의미’까지 생각이 단숨에 뻗어 나간다는 점이,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다.
“인간은 참 신기한 생명체군. 영혼도 뭣도 없다는 우리 중에서 이단 같은 것까지 나오니 말이에요.”
“그 이단도 신종의 영향을 받은 것이긴 합니다만, 그런데도 신의 영향을 받아 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종의 신비함이긴 하죠.”
신종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단이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에 착안한 무리가 있었다.
투글룩은 ‘토칸’의 존재와 기원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몽골의 이단 연구기관 중에서 ‘유출된 정보’가 범 알타이 인민동맹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어렴풋이 짐작은 한다.
그 결과, 그들은 ‘혁세주교’라는 종교를 기획할 수 있었다.
“구원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일부 ‘과학적인 진실’을 섞어서 만든, 꽤나 잘 짜인 종교였습니다.”
몽골 정부에서 정말 오랜만에 ‘종교 탄압’에 나서고 있기에, 그 과정에서 많은 자료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물론 그중 ‘민감한 자료들’은 게레센제 정권의 창고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겠지만, 칸발리크 사태의 전후 사정을 파악하기엔 공개된 자료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는가, 신자 하나하나를 어떻게 광신으로 몰고 갈 수 있는가. 그런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더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생각보다 오래된 종교는 아니군요.”
“네. 기껏해야 5년 정도 되었을까요? 철저하게 칸발리크 테러를 위한 종교로 기획되었다 보니, 그 짧은 기간만으로도 세를 불려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공황.
아무리 대공황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해도, 절망에 빠지는 사람들이 나오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들이 절망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바로 그 절박한 틈새를, 혁세주교가 파고들었다.
기존 종교들은 어째서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지켜주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 종교들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 종교들이 말하는 신은 거짓이다. 진정한 세상의 주인은 따로 있다.
그 종교들이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 세상조차 거짓이다.
진정한 세상은 저 너머에 있다.
하지만 열차에 오르려면 표가 필요하듯, 진정한 세상으로 가는 구원을 받으려면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우리는 영혼 없는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기에, 먼저 영혼을 얻어야 한다.
영혼 있는 존재가 되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런 신앙이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