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축(14)
동방에 시레문이 있다면, 서방에는 유스티니아노스 5세가 있다.
세계대전과 그 결과를 집필하는 역사학자들이 좋아하는 표현이었다.
둘 다 오래된 황실이 배출한 걸물이었고, 두 제국은 세계의 지배자를 자처했으며, 지난 세계대전으로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가 이후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치 대칭이라도 이루는 듯한 두 지도자의 행적은 많은 역사가의 학구열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왜 두 사람의 행적이 비슷한지, 차이는 무엇인지를 탐구해왔다.
특히 유스티니아노스 5세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 이름의 라틴어 발음인 유스티니아누스를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로마 제국의 서쪽 절반을 회복하겠다며 영토를 크게 확장해 중흥기를 이끌었던 대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연상시켰으니까.
유스티니아노스 5세도 전쟁 전의 영토를 수복하는 것을 넘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까지 아우르는 넓은 영토를 다시금 식민지로 삼는 데 성공했다.
로마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대황제의 재림, 제국의 영광을 재건한 황제인 셈이다.
그 존경심이 얼마나 각별한지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몽골이 새로 얻은 영토 대부분을, 황족을 칸으로 봉해 간접적으로 다스려야 했던 데 반해, 로마는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고 있다.
그런 통치를 위해 황제 자신은 절대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며, 총리 이하 정부가 강력한 통치력을 보유하도록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이런 황제의 태도는 로마 제국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도 ‘입헌군주정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며 칭송했다.
어떤 이는 시레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유스티니아노스 5세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라고도 말했다.
권력에서 한 걸음 비켜나 있으니, 체제 변혁을 바라는 자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줄어들 테니까.
전후 로마 제국이 식민지에 펼치는 무시무시한 종교 탄압과 그로 인한 갈등을 생각하면 유스티니아노스의 판단은 현명하다고 할 수 있었다.
황제라는 상징을 노리는 자들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위해 원로원 의원이나 총리 이하 각료를 노리는 눈길이 더 많을 것이다.
이렇듯 지혜로운 ‘군림하는 자’이자 전시체제에서 용장으로서의 면모를 뽐냈던 황제도, 이제는 자리에 눕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막내, 8남 벨리사리오스는 황제의 침실에 들어서고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아들아, 이리로.”
천장만 보고 있던 노인은 어떻게 아들의 기척을 느꼈는지, 힘없는 목소리로 벨리사리오스를 불렀다.
벨리사리오스는 성큼성큼 걸어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늙은 아우구스투스는 쭈글쭈글한 손으로 아들의 손을 마주 잡았다가, 다시 얼굴을 어루만졌다.
성인이 된 아들이라 해도 그에게는 늘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둥이니까.
“그래, 요즘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니.”
황제는 장남에게 황위를 물려줘야 할 때가 왔음을 느끼기에 그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이야 벨리사리오스는 황제의 아들이지만, 맏형이 황제가 되면 자신만의 저택으로 나가는 게 관례다.
벨리사리오스는 그 저택에 무슨 무슨 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왕이나 공으로 불리며 살아가겠지만, 그간 배운 것으로 학자든 뭐든 본업을 구해야 했다. 대중이 원하는 ‘황실의 모습’을 연출하는 건 대부분 맏형의 가족들이 맡을 테니.
연금이야 나오겠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엔 부족할 것이다. 억지로 황궁에 붙어 있으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벨리사리오스 본인이 그런 눈칫밥은 얻어먹으려 하지 않으리라.
아버지는 막둥이에게 해주지 못할 것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역사예요, 아버지. 석박사 과정을 밟고, 몇 년 뒤엔 대학에서 중세 초기 제국사를 가르치게 될 거예요. 그게 안 되면 저술 활동을 할 거고요. 저는 황족이니까 학자들이 잘 알지 못할 황실 생활에 기초해서 더 생동감 넘치는 역사를 쓰겠죠.”
벨리사리오스가 역사에 관심을 두고 공부한 건 사실이지만, 나머지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본격적인 학자의 길을 걸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야심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노인은 여전히 힘이 없었지만, 아들의 말에 남은 힘을 쥐어짜 웃어주었다.
“안나 콤니니 같구나. 그래도 너무 적나라하게 쓰진 말거라. 당장은 기억이 안 난다만, 나도 남들 앞에서 부끄러운 게 한둘쯤 있지 않겠니. 네 형들도 그렇고.”
“아버지가 보신 대로 제가 안나 콤니니 같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프로코피우스가 되진 않을 거라고 약속드릴게요.”
안나 콤니니는 알렉시오스 1세 황제의 딸로, 아버지의 치세와 1차 십자군에 대한 기록을 남긴 여류 역사학자다.
어쨌든 그녀도 황족이었으므로 책을 쓸 때는 아버지와 제국에 관한 서술 태도가 우호적인 방향으로 기울었다.
반면 프로코피우스는 자신이 모신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그 일가에 대한 험담을 『비사(祕史)』라는 책에 잔뜩 남겨 둔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유스티니아노스 5세 앞에서 프로코피우스라니!
늙은 아버지는 아들의 재치에 기침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막내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혹시라도 웃음이 기침으로, 기침이 발작으로 이어질까 봐.
다행히 유스티니아노스 5세의 호흡은 차분하게 잦아들었다.
벨리사리오스는 허공을 헤매는 아버지의 두 눈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유스티니아노스 5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농담처럼 이야기했다마는, 참 부끄러움이 많은 삶이었다. 치세였고.”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지. 아버지만큼 훌륭하게 나라를 지켜낸 황제가 얼마나 된다고…….”
벨리사리오스의 말은 단순히 아버지니까 하는 위로가 아니었다. 실제로 유스티니아노스 5세는 이미 ‘중흥의 대황제’라는 칭송을 받는다.
어쨌든 콘스탄티누폴리를 지켜내고,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지 않았는가.
“결과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란다, 벨리사리오스.”
노인은 삶이 꺼져가는 이 순간, 마지막 불길처럼 타오르는 삶의 지혜를 막내아들에게 전하려 한다.
“나는 너무 많은 짐을 다음 세대에 떠넘겼어. 네 맏형이 가장 어려운 시대를 맞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너에게도 힘든 시간이 될까 걱정이란다.”
로마 제국이 식민지에 가하는 종교 탄압.
아라비아 칼리프국을 아예 말려 죽이겠다는 육해공 봉쇄 정책.
후대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 악영향은 로마인의 지배를 받는 모든 민족에게도 남겠지만, 로마인들의 의식 그 자체에도 상처를 입힐 것이다.
“로마인이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다른 민족과 문화를 수용하고 함께 사는 로마인이 아니라, 로마인으로, 정교회의 백성으로 철저히 동화될 것을 강요하는 폭군들이 될지도 몰라.”
이는 세계대전이 남긴 상처이기도 했다. 오늘날 로마에서는 이교도에 대한 관용을 말하는 자는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다.
벌건 대낮에도 그런 말을 했다간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벨리사리오스가 신실한 인간을 연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의 추종자들은 벨리사리오스를 따르는 게 ‘신을 섬기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지, 정교회를 버린 것은 아니다.
“전쟁은 끝났다, 아들아. 하지만 정말로 전쟁을 끝내려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전쟁부터 끝내야 한단다.”
그래야 증오는 연쇄되지 않고, 하나의 전쟁이 다른 전쟁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구나.”
유스티니아노스 5세 역시 이슬람을 증오한다. 몇 번이고 나라를 멸망시킬뻔했고, 수많은 로마인을 괴롭힌 악마들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정치인들이, 군인들이, 시민들이 복수의 이름으로 벌인 악행에 동조했다.
“나는…… 마땅히 증오를 수그러지게 해야 했어. 그게 황제의 역할인데…… 아들아, 나는 그 역할을 입헌군주제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회피해왔단다.”
전쟁의 이름 아래 국가원수로서 지도력을 발휘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을 내걸기 불명예스러운 문제 앞에선 고개를 돌려버렸다.
‘짐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짐은 입헌군주로서 정부의 결정을 존중하노라’라는 핑계를 대며.
사적인 복수심, 이교도 사회가 철저히 망가져 가는 데서 오는 쾌감도 한몫했다.
그 결과가 오늘 로마 사회가 안은 상처들이지 않은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도 있는 황제의 행보.
설령 모든 로마 시민의 원성을 사더라도, 고대의 지도자들처럼 ‘원로원 최종권고’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황제는 옳은 것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다.
그게 황제가 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늙은 황제는 생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이런 반성조차 하지 않고 뻔뻔한 생을 마치는 자들도 넘치는 걸 생각하면, 유스티니아노스 5세는 분명 위대한 인간이라 할 수 있지만…….
연민에 찬 표정으로 아버지를 내려다보던 벨리사리오스는, 이불을 황제의 턱 끝까지 올려주었다. 그러고도 한참,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침전 밖으로 나섰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그저 고민만이 커졌다.
자신이 로마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통치권을 마침내 내려놓게 될 날, 저 노인처럼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
황궁 복도에서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벨리사리오스의 뒤로, 부하 요르요스가 따라붙었다.
“전하, 준비 끝났습니다.”
“언론도?”
“언제든지 전하의 목소리를 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네와 내가 이런 식으로 침투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군.”
그 말에 요르요스가 씩 웃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엔 침투가 아닙니다. 교종청과 로마시 시민들의 요구로 떠나는 ‘자원봉사’죠.”
마음속 무거운 짐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벨리사리오스는 그 말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자원봉사지. 잊지 말아야겠군.”
벨리사리오스가 부황 유스티니아노스 5세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것.
그것은 바로 벨리사리오스의 로마시 방문이었다.
도시에 내려진 계엄령과 봉쇄로 생활고를 겪는 시민들을 위해, 구호물자를 잔뜩 싣고 출발할 예정이었다.
물론 파멸인 축출을 위해 강력한 이단 전력인 벨리사리오스와 군인들의 파병도 겸해서.
신성 제국은 반대했던 것 같지만, 어째서인지 교종청이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이번 방문이 성사되었다.
“아마 그들도 꿍꿍이가 있겠지.”
“예. 전에 우리가 거기서 가져온 것…… 에 대한 질문도 할 겸.”
“한 번은 마주쳐야 한다는 말이군.”
만나기 싫더라도 말이다. 벨리사리오스는 어쩌면 교종을 직접 알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라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긴 어렵겠군.”
“예, 아무래도…….”
로마시의 괴물들을 처치하며 맹활약, 혼란을 가라앉히고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 독립운동’ 세력과도 접촉, 향후 활동을 위한 기반으로 삼는다……. 그런 계획이 모두 어그러진다.
“무슨 요구를 해올지 모르니 대비해둬야겠네.”
계획을 바꾼다.
고려 황제 왕서라, 루우 테무르의 사례를 참고해볼 생각이었지만, 접어야겠다.
뜻하지 않은 제안, 곤혹스러운 요구가 들어올 때 어떻게 대처할지, 그걸 최우선으로 생각해둬야겠다.
벨리사리오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침전.
지금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 앞에서 했다면, 아버지는 자신의 야심을 눈치채셨을까.
그런 상념에 잠겨 있다, 벨리사리오스는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향했다.
끝내 아들의 야심을 모르게 하는 것이, 아들로서 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하며.
아버지는 자신의 계획을 모르기에 그나마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며.
그리고 벨리사리오스는 결심했다.
앞으로 다시는, 방금처럼 뒤를 돌아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