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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78화 (378/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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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온 건지 짐작도 되지 않는 파멸인이 로마 시내에 대거 출현.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내고 격퇴되었다고 한다.

칸발리크 테러의 경험은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를 기점으로 전 세계 주요국들에 공유되었고, 몇몇 대도시들은 그에 대비책을 세워두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피해가 크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설명과 사진에 의존한 훈련으로는 막상 파멸인이라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괴물의 소문을 듣고 각오를 다지는 것과 괴물을 눈앞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게다가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에 악영향을 끼치는 괴물이라면 더더욱.

다행인 점은 군과 경찰이 빠르게 혼란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어쨌든 누군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각오했던 모양이다.

-이론 수업이 아주 쓸모가 없진 않았나 보군.

“신성 제국 측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지? 아니 그 전에…….”

정치경찰실, 그리고 감찰국은 국내 문제에 대응하는 조직이다. 해외 첩보는 그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감찰국장인 견하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다는 건, 알 사람은 다들 안다는 뜻.

“태사부에서는?”

“즉각 국무회의를 소집하셨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듣지.”

지나와 함께 차에 올라 태사부로 향한다. 지나의 보고는 계속된다.

“국무회의를 소집하셨다는 건, 각하께선 그만큼 중요한 일로 판단하셨다는 거겠지.”

“‘로마시’의 일이니까요. 최근엔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고 하고요.”

로마시의 분위기.

깊어가는 여름만큼이나 로마 시민들의 열기도 더해져만 갔다.

“……설마하니, 이탈리아 독립이라니.”

누군지는 몰라도 그런 화두를 꺼낼 줄이야.

민족주의의 목소리는 세계대전 전부터 높아져 왔다. 태평천국의 한족이 그러했고, 불교 왕조의 통치를 받던 페르시아와 그 주변 민족들도 그러했다.

물론 그들의 민족주의는 시대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태평천국은 온 사방에 전쟁의 불길을 퍼트렸다가 지금은 전범 민족이 되어 이웃 민족들의 관리를 받는다.

서아시아나 중동의 민족주의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물결과 합류, 혹은 휩쓸려 버렸다가, 세계대전에서의 패전과 함께 몰락했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이 바라트에 의해 수립된 공산국가들이다.

고려나 신성 제국, 로마 제국 같은 열강들이야 당연히 승전국이었기에, 민족주의가 비대해지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번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당장 아즈텍만 해도, 민족 문제에 대처를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지.”

“외부 세력의 개입도 있었지만……. 그것도 연방 정부가 빌미를 주지 않았어야 하는 일이겠죠?”

견하는 말없이 끄덕였다. 신수덕이 기갑사나 파멸인 등 몇 가지 위험한 기술들을 유출하긴 했지만, 애초에 ‘철혈의 꽃’이라는 무대를 제공한 건 아즈텍 연방이다.

연방 정부가 과감한 개혁에 착수했다면, 철혈의 꽃도 그런 광범위한 봉기를 일으킬 역량을 키우지는 못했겠지.

“전에 아즈텍에도 가보고, 거기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눠봤는데……. 그 사람들 나름의 사정도 이해는 하지만, 개혁 노력이 한참 부족했던 건 사실이야.”

내전도 불사할 생각이었겠지. 아마 그들 모두를 쓰러뜨리고 언제나처럼 승리할 거란 자신감이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지나치게 믿었다.

“철혈의 꽃이 신수덕과 손잡은 건 치사하다, 끔찍한 신무기를 도입한 건 비열하다, 그렇게 소리쳐 봤자 상대가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서 다시 싸워주진 않아. 그렇게 되기 전에 역량을 길러 뒀어야지.”

“우리는 태사 각하께서 제대로 개혁을 추진하고 계셔서 다행이에요.”

견하도 그 말에 동의했다.

“가깝든 멀든, 언젠간 우리도 같은 문제에 부딪힐 거야.”

“한족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오를 거라고 보세요?”

“당장 그 봉기를 진압한 건 어디까지나 임시조치에 불과해. 한족이라는 민족 정체성이 완전히 고려나 몽골에 동화되기 전까진 계속 위험 요소로 남겠지.”

견하가 리안의 「대타협 계획」에 찬성하면서도, 한족을 키타이와 낭키아스의 두 민족으로 분열시키려는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향후 수십 년 동안, 어떻게든 한족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여전히 위험 요소는 남을 거야. 다이온 연방 체제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 그때는 고려와 몽골, 그 외 기타 민족들 간 갈등도 있으리라 봐야겠지.”

몽골과 고려의 동군연합이 수립되면 몽골인들이 ‘지배 민족’의 위치를 독점하려 들 것이다.

고려인들도 그건 마찬가지고.

“그 갈등이 한족 문제가 좀 해결되고 나서 떠오르면 좋겠지만, 아마 한족 문제와 함께 안고 가야 할 거야.”

어쨌든 고려가 이런 고민을 하듯이, 다른 열강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합스부르크의 황위를 강탈하고, 그렇게 프랑스가 게르마니아와 알레마니아, 이탈리아를 강제로 병합한 체제가 현 신성 제국이다.

이렇게 병합된 지역들은 프랑스인들이 주도하는 제국에서 독립하려 한다. 당연한 흐름이다. 그간 승전국의 기세로 억누르고 있었을 뿐.

게르마니아의 독립운동 세력은 프로이센의 지원을 받고, 알레마니아는 마자르에 자리 잡은 합스부르크의 지원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지만, 확실치는 않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견하는 섬뜩한 예감에 입을 살짝 벌렸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지나가 의문에 찬 눈길을 견하에게 보냈지만, 견하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꺼내기엔 지나치게 민감한 문제였다.

지금 조각을 맞추어선 안 된다.

조각이 맞아떨어지고, 전체적인 그림이 보인다면…… 견하조차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음모의 윤곽이 보이고 말 테니까.

***

국무회의를 마무리 짓고 어전에 들어선 재상은, 먼저 어좌에 앉은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오른쪽, 그러니까 황제의 왼쪽 아래에 자리한 측근의 얼굴을 본다.

그 곁에는 효윤도 있어야겠지만, 지금 그녀는 따로 임무를 받고 해외에 나가 있다.

견하의 뒤로는 유지나가 보인다. 그녀도 올해 대학생이 되었던가.

리안이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보고하기도 전에, 황제가 입을 열었다.

“감찰국장의 견해를 먼저.”

리안은 살짝 놀랐지만, 견하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끄덕였다.

견하는 황궁으로 오면서 생각했던 바를 말했다.

“……벨리사리오스가 로마 사태의 배후에?”

“어디까지나 추측이에요. ‘독립운동은 이후 동포 국가와의 통합을 목표로 한다’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면 제 추측은 아무 소용이 없죠.”

엄격하게 따지면 견하의 추측은 음모론, 혹은 편집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게르마니아의 독립운동은 프로이센의 지원을 받으며, 독립 후 프로이센과의 통합을 목표로 한다.

알레마니아의 독립운동은 마자르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원을 받으며, 독립 후 합스부르크 황실의 복귀를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로마시에서 벌어진, 이탈리아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의 배후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즉, 로마 제국이 시위의 배후에 있다?”

“이탈리아 독립운동이 독립 후 로마 제국과의 통합을 목표로 한다, 면 말이죠.”

리안의 눈길은 다시 황제 쪽으로 향했다.

황제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견하의 추측이 설레발이 아니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전에,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 때, 벨리사리오스 황자가 주 국장에게 동맹을 제의했다지.”

“그랬지.”

두 사람의 동맹은 개인적인 일. 아무리 확대되어 봤자 태사와 황자 간 과거의 인연으로 맺은, 친교 목적의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거물급들의 친교이니 개인 차원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곧, 국가 간의 일이 되겠군.”

리안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한 어전 안에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무슨 생각으로 동맹을 제안했나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어요.”

“우호를 드러내서 우리의 발을 묶어두고, 우리가 바라트와 관계를 회복할 때 동조해서 바라트의 발도 묶어두고, 로마는 유럽 문제에 집중하겠다…… 그런 계산이었어.”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에서 로마가 고려와 바라트의 손을 들어준 덕분에 고려는 다이온 문제에, 바라트는 서아시아와 버마, 자국 개혁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

어떤 문제에 집중한다는 건, 한동안 그 문제에서 발을 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고려는 몇 년간 다이온 문제에만 매달려야 하고, 바라트는 버마 사태를 무사히 수습하면서 체제 개혁에 힘써야 한다.

즉, 괜한 적을 만들 순 없다는 말.

“우리는 표면적으로나마 로마의 편을 들어줘야겠지.”

“표면적이라고 해도, 그런 선언 자체로 다른 나라들의 압박이 될 거예요.”

로마뿐만 아니라 다이온-고려, 바라트와 적대하는 길을 누가 걸으려 하겠는가.

“유럽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시점도 참 절묘해.”

태사는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한다.

“유럽의 주요 열강 대부분은 지금 아즈텍 내전에 개입하고 있지.”

대륙 동부에 세워진 ‘신 연방’.

유럽의 의용군이 속속 도착해 그들을 지원하는 가운데, 한때 최강국이었던 나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내전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아즈텍 문제에 개입하지 않은 유럽 국가는 로마 제국과 그 영향권 주변에 있는 나라들 정도다.

늪으로 빠져든다는 말은, 이젠 개입한 유럽 열강들도 발을 빼기 힘들어졌다는 뜻.

“그 틈을 노린 이탈리아 독립 선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군.”

루우의 감상에, 리안도 국무회의에서 나온 말을 전한다.

“로마시에서 벌어진 시위의 구호를 생각하면 딱 맞아 떨어지는군.”

“구호? 어떻기에?”

“왜 이탈리아 젊은이가 프랑스인들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 왜 조국도 아닌 것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 그런 구호라던데.”

지중해를 통한 이슬람 제국의 침략이 임박했던 세계대전 시절에야 신성 제국의 깃발 아래, 신앙이니 유럽 문명이니 하는 공통점이라도 찾아서 뭉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성 제국이 직접 위협받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제국을 주도하는 프랑스인들의 이익을 위해 먼 아즈텍 대륙까지 가야 하는가.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만약 로마가 배후에서 이탈리아를 노리고 있었다면, 이보다 더 적절한 기회는 없단 말이지.”

그렇지만 어째서인가. 왜 이 시점에, 신성 제국과 로마 제국의 우호에 기반한 유럽의 균형을 무시하고 확장에 나서는가.

모든 균형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전쟁까지 도발할 수 있는 위험한 수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견하는 그런 의문에 바닥을 내려다봤다.

“이건 과연, 로마 제국이 직접 주도하는 사업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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