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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77화 (377/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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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용 역시 의아한 얼굴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음…… 저는 솔직히 안세규나 구 민국정부의 비리를 캐내시길 기대했는데 말이죠.”

칸발리크와 개봉을 오가는 신 노선의 열차 안. 부유층을 위한 특급 열차의 시범운행을 살펴본다는 구실로 세 사람은 아예 식당칸 하나를 차지했다. 덕분에 누가 와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염려는 없다.

“몽골군 전술에 장비라…….”

효윤과 주갑이 가져온 사진을 만지작거리던 고태용은, 문득 눈을 들어 태주갑을 쏘아보았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겠군. 중령, 자네는 안세규와 범 알타이 인민동맹 사이의 거래에 대해 아는 게 없나?”

효윤은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시선을 보내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안세규 혼자 범 알타이 인민동맹과 그런 거래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안세규가 의탁할 수 있는 무력 집단이 필요했다. 민국정부 휘하 몇몇 요원들이 아니라, 고려의 정규군에 소속된 자들 말이다.

그것이 옛 극북방위군. 현 서부군이다.

태주갑도 극북방위군 시절부터 조유관 밑에서 일했던 사람이니, 당연히 이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을 터.

침묵이 길어진다.

효윤은 그 침묵이 무척 불편했지만 고태용은 재촉하지도, 윽박지르지도 않고 태주갑의 대답을 기다린다.

실로 숨 막힐 정도의 인내심이다.

저런 성품이 아니라면 제국정보사령부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가지도 못했겠지.

“……저는 그저 최효윤 중장 각하를 힘껏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이번에도 그렇고, 지난번 칸발리크 사태 때도 그러했다. 중령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음을 호소했다.

자기변호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고태용의 꿈틀거리는 눈썹은 의심이 전혀 가시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둘러대면서 조유관의 혐의를 감출 생각인가……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다.

“나는 맡은 직분상 의심에 의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네, 중령. 물론 이번에 발견한 수상한 정황이 몽골이나 신원연구회의 소행일 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저쪽에서 그런 조잡한 수작을 부렸을까 싶단 말이야. 그보다는,”

고태용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할 때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자네나 자네의 옛 상관이 우리의 주의를 돌리려고 꾸민 연막작전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네.”

효윤의 눈길이 고태용에게로 향했다. 말 없는 탄원. 그녀에겐 칸발리크 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다.

하지만 고태용의 눈은 차갑다.

“아무래도 중장 각하께 실례를 범해야겠습니다. 아끼시는 부하겠지만, 저희 제국정보사령부에서 잠시 맡도록 하죠. 이런 상황에서 원철의 사업에 관여하도록 내버려 두는 건 제 의무를 방기하는 셈이니까요.”

열차의 속도가 느려진다. 다시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완전히 멈추어 선다.

식당칸 앞뒤 문에서 각각 두 명씩, 고태용의 부하들이 들어왔다.

고태용의 부하들은 효윤 일행이 앉은 자리 근처까지 왔다.

금방이라도 태주갑을 연행해갈 것 같았던 그 사내들은 고태용 앞에 멈춰 서서 경례를 올렸다.

그들 중 하나가 자그마한 종잇조각을 내민다.

전보였다.

고태용은 슬쩍 그것을 펼쳐보더니, 실실 웃음을 흘렸다.

“운이 좋군, 중령. 실례가 많았습니다, 중장 각하.”

고태용은 의아한 얼굴이 된 효윤과 주갑을 향해 쪽지를 내미는 한편, 손을 흔들어 부하들을 물렸다.

“본국에서 ‘잘 이야기가 됐다’는 군요.”

전보는 주견하에게서 온 것이었다.

***

동명에서는 주견하가 한창 조유관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외무장관은 감찰국장 앞에 불려 나왔다. 지그시 눈을 감고 위엄을 지켜보지만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어쩔 수 없다.

그도 많은 전장을 헤쳐나온 군인이고, 수없이 많은 살의와 맞닥뜨려 왔다고 자부한다.

주견하가 얼마나 무서운지, 집요한지, 잔혹한지. 도저히 그 나이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계속 들어왔다. 그렇기에 충분히 각오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르다.

‘반역 혐의’를 앞세워서 조여 들어오는 압박감은, 전장의 광기 어린 긴박감과는 완전히 다르다.

모공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듯한 주견하의 시선은 사람의 피를 말린다.

상석을 내어주고, 친절한 어조로 안부를 묻고 있지만, 속으로는 교수대로 오늘 보낼지 내일 보낼지 가늠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잡담은 여기까지 할까요?”

부드러운 권유였지만 실상은 이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잘 새겨들으라는 충고다.

“우리 정치경찰실, 감찰국에서는 장관님이 왜 안세규에게 암살당할 뻔했는지 굳이 여쭙지 않았습니다. 배려를 해드린 거죠. 그런데 상황이 변했습니다.”

더는 배려를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도대체 왜 안세규는 범 알타이 인민동맹을 지원했으며, 조 장관님은 어디까지 그 일에 개입하셨는가, 이제 저희가 좀 알아야겠습니다.”

조유관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리며 올라간다.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는가.

더는 감출 수 없는 일이다. 안세규의 도박은 위험했고, 위험한 만큼 언젠가는 이렇게 들통이 날 일이었다.

“안세규는 황제 폐하의 몽골 황위 계승, 고려와 몽골의 동군연합에 반대해왔네. 최근엔 자네가 결국 그의 노선을 바꾸게끔 한 것 같지만, 아마 마음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반대하고 있을 걸세.”

견하는 끄덕인다. 연장자의 말을 경청하는 듯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조유관은 거기서 다음 말을 재촉하는 신경질적인 심문관을 보았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 및 그들이 건설한 알타이 자유 공화국이 몽골의 군주제를 폐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 황제 폐하께서 ‘계승해야 할 황위 자체’가 없어지지. 안세규는 그걸 노렸네.”

“그래서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 인적, 물적 지원을 했다? 자신의 입김이 미치는 서부군을 통해?”

이번엔 조유관이 말없이 끄덕였다.

“하지만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겠죠. 칸발리크에 그 참극이 벌어지고, 우리 황제 폐하의 부황마저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견하는 자기 말을 되짚어본다.

아니, 그건 안세규의 계산 안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몽골 제정이 무너지면 그의 목표는 달성된다.

그 과정에서 시레문이 폐위되든, 포로가 되든, 죽든 상관없는 것이다.

다른 뭔가가 더 있다.

“주 국장 자네가 말한 것도 한 요인이겠네만, 우리 고려가 빠른 개입을 결정한 것도 이 음모가 서둘러 종결된 이유일세. 대원수 각하께서 움직이기로 하셨는데 일개 대장 따위가 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으니 말일세. 또…….”

“또?”

되묻는 견하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진다.

저 맹금 같은 몸짓, 다른 사람 같으면 시건방지다고 호통을 쳤겠지만 지금은 부리에 찢기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동맹이었네.”

“믿을 수가 없다?”

존댓말은 이제 어디론가 집어치우고 말이 짧아져만 간다. 상석에 앉은 조유관에게 무릎을 가까이 대는 모습은 제삼자가 본다면 마치 간청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조유관에겐 허튼소리 한마디라도 나오면 목을 부러뜨려버리겠다는 몸짓처럼 느껴진다.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범 알타이 인민동맹은 원래 천손민족협회, 신수덕 잔당 등과 협력하고 있었네.”

“호오.”

그렇게 된 거였군, 하며 견하는 몸을 뒤로 뺐다.

조유관은 그제야 막힌 숨통이 트인 듯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조유관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견하는 그의 말을 되짚어본다.

“대체 어디서 기갑사를 가져왔나 했더니.”

아즈텍의 사례처럼, 이것도 신수덕이 출처인가.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찾아낸 기쁨은 잠시 미루고, 견하는 다시 취조를 시작했다.

“성향 문제였을까요?”

“알타이 자유 공화국은 말만 자유고 공화였지, 실상은 천손민족협회의 몽골판이었으니까. 오래가지 못할 협력 관계긴 했네. 안세규가 그 사업을 접은 건 그래서였을 거야.”

“안세규는 분명 황제 폐하의 옹립에 있어선 볼로드 측과도 협력 관계였을 텐데? 둘 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건가…….”

“나도 그 무렵엔 더는 안세규의 요청에 협력하지 못하겠다는 확신이 섰네.”

“암요, 암요. 그건 잘 알죠. 목숨까지 잃을 뻔하시지 않았습니까.”

주견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조유관은 그 얼굴을 보며 침을 삼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입술도 핥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초조함을 드러내고 싶진 않다.

“저는 이해합니다.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 당연히 그걸 만회할 기회는 주어져야죠.”

조유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엄 있게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듣기에도 비굴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나오고 만다.

“……고맙네.”

“그래서 말인데 그 만회, 감찰국 일에 장관님께서 좀 협력해주시는 방식으로 해보시면 어떨지?”

“어떤…… 일인가?”

“안세규 사냥.”

***

조각을 다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빈 곳이 남았다.

괜히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몇 조각이나 더 채워 넣어야 할까.

아니, 나는 그 조각이 뭔지 알고 있다. 아는데 떠올리지 못하는 거다. 견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가와 이마를 문질렀다.

조유관은 일단 돌려보냈다. 그는 목줄을 잘 채운 개가 되었다.

안세규 사냥, 이라고 말은 했지만 당장 그럴 일은 없다. 안세규는 허동주처럼, 확실히 주살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잡아야 한다. 조유관은 그날을 대비하게끔 해둔다.

그보다도 오늘은 성과가 크다.

안세규는 범 알타이 인민동맹, 볼로드 내각 양쪽과 손을 잡은 것처럼,

범 알타이 인민동맹도 고려민국 임시정부, 천손민족협회 양쪽과 손을 잡았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이들 모두 동맹의 다각화를 꾀했다. 개인 간 관계라면 떳떳하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동맹 문제에 있어선 최대한 거래처를 늘려두는 게 안전한 분산 투자가 된다. 보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볼로드 내각은 우리, 그러니까 주견하 자신 및 루우 테무르, 미리안 등과도 일단은 협력하는 관계다. 리안이야 언젠간 볼로드를 실각시킬 생각이지만.

그렇다면…… 천손민족협회, 신수덕 등이 이끄는 그 잔당은? 어디에 보험을 들어두었지?

기억을 되살려보자.

신수덕의 산동 탈출.

그걸 도운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세력은…… 낭키아스의 게레센제 칸이 아니었던가?

견하는 다시 펜을 들어 고태용에게 보낼 전보를 수정했다.

잘 해결되었다는 말 뒤에, ‘낭키아스와 신수덕의 관계를 조사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렇게 하면 효윤과 협력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지 않을까.

지나를 불러 전보를 보내려던 그때.

견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지나가 그의 집무실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농담이라도 걸어보려던 견하의 입은, 지나의 표정을 보자마자 멈췄다.

“선배! 그, 급보가……!”

말해보라며 짧게 턱짓했다.

“로마에서, 아니 로마 제국 말고 로마시에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파멸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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