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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73화 (37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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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리안의 얼굴에는 다시금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한숨 쉴 필요는 없어. 일정 부분 손해는 감수해야겠지만, 얻은 것도 있으니까.”

견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효윤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 반응 차이가 재미있다는 듯 리안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번 일로 류성일과 안세규 사이에 꽤 강력한 연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 확인한 정도가 아니라, 온 천하에 두 사람의 관계를 명백히 드러냈다고 봐야 해.”

견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즉각 이의를 제기한다.

“증거만 없었을 뿐, 두 사람 사이에 제휴가 오갔음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잖아요. 그걸 재확인했다고 해서 우리에게 큰 이득이 된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우리끼리 짐작만 하는 것과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야.”

그건 그렇지만, 이라며 견하는 말을 삼킨다. 안세규가 잠시라도 우위를 점하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그의 성격으로는 늘 ‘압도적 승리’가 아니면 만족을 못 할 테니까.

“많은 눈이 안세규와 류성일의 행보를 지켜볼 거야. 그 두 사람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은 두 사람이 동맹이라는 점에 주목해서 해석하겠지.”

그건 생각 외로 안, 류 두 사람의 행동을 제약할 것이다.

류성일은 무슨 짓을 해도 ‘안세규와 일을 꾸민다’, ‘고려국민당과 내통해 당권을 잡으려 한다’, ‘태사에게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식의 꼬리표가 붙겠지.

안세규도 마찬가지다. ‘연합정권이니 뭐니 하더니 뒤로는 류성일을 통해 제국입헌당의 와해를 시도했다’는 식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권에서의 이야기다.

“대중은 다르잖아요.”

견하의 지적대로, 대중은 그런 암투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들은 안세규가 한 제안 자체, 그 제안이 일으킬 변화의 꿈에 부풀어 떠들어댈 것이다.

“그자들이 노리는 건 내년 총선거겠죠. 거기서 승리하기만 한다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보다는, 대세를 따르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테니까.”

안세규의 제안은 ‘자유’를 바라는 고려인들의 마음에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들은 미리안이 ‘겉으로만’ 물러난다고 했을 뿐, 실상은 당과 최고회의에 자신의 꼭두각시를 앉혀두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들을 했을 테니.

안세규는 그 걱정을 불식시킬 제안을 한 셈이다.

류성일은 ‘고려민국 임시정부의 처분을 두고 선대 태사 미승휴과 갈등을 빚다 밀려났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퍼져 있다.

원로 정치인이기도 한 그가 제국입헌당의 당수가 된다면 미리안의 꼭두각시가 되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안세규야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내무장관직에서 물러나는 등 좋은 이미지로 고려국민당 출신 의원들이 당선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고려국민당 출신 의원들이 다수의 의석을 확보하고, 그들과 손잡은 류성일이 당수가 된다면…… 미리안을 태사 자리에서 밀어낼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제국최고회의 의장에 안세규를 올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 지경까지 가면 안세규와 류성일의 과거를 추궁하는 것은 불가능해져 버린다.

미리안이 태사 자리를 지킨다 해도 둘은 입법부의 수장이며 여당의 총수인데 제2의 내전이라도 치르지 않는 이상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어쩌면 둘은 아예 자신들이 했던 일을 정당화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 모든 흉계는 고려민국 임시정부가 마침내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입법부를 차지하게 된 ‘역사적 흐름’의 일부였노라고.

그런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면, 과연 그들의 행위를 ‘반역’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것이 승자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고.

“이 경우엔 언니가 선대 태사 각하의 조카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하겠어요.”

요즘 들어 효윤의 안목이 매우 날카로워졌다. 그녀의 지적에 리안도 끄덕였다.

“아무리 민주주의니, 삼권분립이니 주장해도 내가 독재자 미승휴의 조카라는 점은 변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미승휴가 저질렀던 배신 때문에.

리안은 다당제와 총선거를 도입하고, 황실을 재건하고, 이제는 당수 및 제국최고회의 의장에서 물러나면서 어느 정도는 백부를 비판하는 편에 서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누리는 권력은 백부가 십수 년간 정착시킨 체제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그 권력과 체제에 변화를 주려면, 기존 체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논리적 바탕부터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미승휴 체제의 문제점을 사람들 앞에서 지적하고, 이 개혁이 꼭 필요하다며 설득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미승휴를 옹호해야 했다.

“내가 권력을 잡은 게 백부님의 조카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미리안의 권력은 미승휴로부터 왔다.

“그 정권의 의의나 정당성의 뿌리 자체는 흔들 수 없는 거야.”

모든 걸 뒤엎은 혁명이 아니니까. 이전 시대의 한계를 인정하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개혁이니까.

미리안은 자신이 옳다고 믿든 그렇지 않든 간에 미승휴 정권에 대해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변명이 그녀가 받게 될 모든 비판의 뿌리가 된다. 이는 그녀가 원래 받아야 했을 신뢰 대부분을 깎아 먹는 원인이기도 하다.

“추잡한 변명이라는 건 알아. 어쩔 수 없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게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야.”

리안이 미승휴의 조카로 태어났고, 미승휴의 권력을 계승하기로 마음먹은 한 그녀를 평생 따라다닐 짐.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녀의 그런 사정은 ‘알 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미리안이 그렇게 힘든 게, 고뇌하는 게 뭐 어쨌다고?

당연한 반응이다. 미리안을 사적으로 안타깝게 여기는 건 그녀의 측근들뿐.

측근들의 감상을 온 국민이 함께 느끼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일을 두고 ‘천한 것들이 무식하다’며 불평해봤자, 어린아이의 생떼에 지나지 않는다.

지혜롭다는 말은 못 들어도, 최소한 어리석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눈앞에 주어진 현실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주어진 조건은 무엇인가.”

“누나는 획기적인 개혁안을 발표하셨죠.”

하지만, 이라며 견하는 잠깐 뜸을 들였다.

“누나의 말 말고는 아무런 보장도 없는 선언에 불과해요.”

“그렇기에 민중은 ‘안전장치’를 필요로 하겠지.”

그 안전장치 역할을 안세규가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시점이야. 보일 듯 말 듯 한 틈을 아주 멋지게 찔렸어.”

그녀가 짓는 미소는 냉소도 자조도 아니다. 순수한 칭찬, 이 정도는 해낼 줄 알았다는 기대감의 충족에 가까웠다.

하지만 견하는 리안의 기분에 동조해주는 것보다도 대책의 논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안세규의 제안을 받아들이실 건지, 아니면 거절하실 건지.”

“거절한다.”

견하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리안은 그렇게 단언했다.

마치 이미 준비해두고 있었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빠르게 튀어나온 대답에 견하가 잠시 말을 잃은 사이, 리안의 대답이 계속 이어졌다.

“주도권은 분명 안 장관이 잡았어. 받아들이면 예상한 대로 통합 여당의 당수로는 류성일, 제국최고회의 의장으로는 안세규가 자리하면서 우리의 패배는 확정된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서 리안의 정권이 단번에 몰락하진 않는다. 하지만 리안이 앞으로 국정을 운영할 때 지금 같은 추진력은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다이온 문제 개입부터 영향을 받겠지.

“거절하면 국민들의 의심은 더욱 깊어질 거야. 역시 미승휴의 조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정점에 오를 수 있었던 여자. 당연히 민주주의니 개혁이니 하는 것들은 가면,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리안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둘 다 손해라면, 보다 손해를 적게 입는 쪽을 골라야겠지. 그리고 그건 반격의 기반을 다질 선택이어야 하고.”

“거절하는 쪽이, 반격의 기반이 된다……?”

“맞아.”

어째서 그러한가 묻는 듯한 견하와 효윤의 표정에, 리안은 활짝 웃어 보였다.

그 작은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작은 꽃다발을 선물로 받은 소녀의 미소라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안세규의 제안을 무척 위협적으로 판단했지. 그건 안, 류 두 사람의 손발이 착착 맞는 경우를 전제로 해. 그런데 정말 그 전제가 옳을까?”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우리와 안세규 말고, 류성일도 그렇게 생각할까?”

***

류성일은 카라코룸에서 안세규가 정계에 던진 제안을 곧바로 들을 수 있었다.

라디오나 전보 덕분이었지만, 그게 없는 전근대였다 해도 류성일의 정보 수집 속도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온갖 정보망을, 말 그대로 그물처럼 동명에 던져두었으니까.

“대담하긴 하군.”

누군가…… 분명 태사 측일 사람이, 류성일과 안세규의 뒤를 캐고 있다.

언젠가 그들의 제휴, 그들이 꾸몄던 음모는 태양 아래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정체를 까발린다, 라.”

쫓기던 적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반격해온다. 쫓던 자는 당황하는 바람에 일단 멈춰서 방어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하고 다시 추격해오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간은 벌 수 있지.”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다른 무엇보다도, 류성일을 회유할 시간을.

“이번 제안으로 태사도 어떤 선택을 하든 손해를 볼 수밖에 없지만, 나 역시 행동에 제약이 가해진다.”

안세규는 전에 자신에게 ‘동맹의 회복’을 제안한 데 이어, 이런 강수를 둔 것이다.

류성일은 안세규와의 비밀동맹이 세상에 드러난 이상, 안세규의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다.

비서가 집무실 문을 두드린다.

비서는 안세규가 보낸 전보를 건네주었다.

류성일은 이 전보의 도착 시간이, 자신이 동명의 사정을 파악한 시점보다 늦다는 사실에 묘한 만족감을 느끼며, 내용을 확인했다.

“‘카라코룸에서 제국입헌당의 지역당을 조직할 것을 제안’…… 핫!”

나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군. 그런 생각이 들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뜻대로 움직여줄 것 같은가.

“확신까진 아닐지도 모르지. 안 장관으로선 명운을 건 도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박은, 도박사를 배신하기에 도박이다.

“개처럼 내칠 필요까진 없겠지만, 뜻대로 움직여주진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낼 필요는 있겠군.”

그런 메시지는 꽤 간단한 방식으로 보낼 수 있었다.

류성일은 동명의 움직임에도, 안세규의 제안에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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