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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은 동자도 없이 그저 무기질적인 흰색의 표면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침입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내려다봄을 확신했다.
강인하고 지혜로우며, 위엄 있는 그 모습. 그림책이나 사진에서 본 신상과도 같았다.
다만 피에 젖어 있는 게 다를 뿐.
더욱 구체적인 공포가, 그들의 척추를 움켜쥐었다.
총구가 일제히 허공을 향한다.
확실히 정예는 정예였다. 그들 모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소리를 지르거나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정도의 침착함은 유지했다.
“전하께서 짐작하신 대로, 아직 살아 있었군요.”
부관의 경악과 감탄이 뒤섞인 말에, 벨리사리오스는 동의했다.
“……그렇군.”
“그나저나 저걸 어떻게 본국까지 운반할지가 문제입니다. 어떻게 잡을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벨리사리오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사람과 비슷하거나 조금 컸다면 모를까, 머리 위의 신은 적어도 3층 높이의 건물 정도는 되어 보였다. 저대로 운반하는 건 어려웠다.
무사히 신을 포획한다 해도, 그들에겐 다시 몰래 국경을 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것은 어떻게 여기까지 운반됐던가.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신을 여기로 옮겼다는 말인가.
크리스트교가 아닌, 그리스-로마인들의 전통 종교를 부활시키고자 했던 율리아누스 황제.
그 시절에는 이미 ‘사람처럼’ 행동하는 신화 속 신들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언행을 보이는 유일신 쪽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 상황을 되돌리려면 정교한 교리, 화려한 제전이나 장엄한 신전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바로 신 그 자체를 직접 민중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율리아누스의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세계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페르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적군의 손이 아니라 아군의 배신으로.
크리스트교 신자인 병사가 율리아누스의 계획에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그들의 주님이 하늘에 계신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바티카누스 언덕 지하에 이교도의 신 중 하나가 있는 건 확실하니까.
어떤 역사학자는 율리아누스가 그때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제국이 거대한 혼란에 휘말렸으리라 말하지만, 벨리사리오스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율리아누스가 오래 살았다면, 제국인들은 ‘종교를 이유로 분열한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크리스트교 이전처럼 다양한 사고와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그저 서로를 자신과 조금 다른 이웃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을 것이다.
벨리사리오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죽은 자는 죽은 자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죽은 자가 남긴 유산을, 산 자인 자신이 어떻게 물려받을까 하는 것.
“토막 내서 가져간다든가……. 이를테면 머리만 남기거나 몸통 정도만 남겨도 운반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습…….”
부관이 딱 거기까지 말했을 때, 벨리사리오스는 부관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부관의 목을 벨 듯 휘두른 검은 부관의 얼굴 앞에서 딱 멈췄다.
그 검격은 부관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부관을 향한 저 신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신종은 방금 막 창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멈춰 있다. 벨리사리오스의 검격이 멀리 떨어진 대상을 베어내듯, 신종의 창도 그러한 모양이었다.
그 두 개의 공격이 눈앞에서 부딪친 충격에 부관은 뒤로 두어 걸음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방금 자네 말에 반응한 것 같군.”
훼손시킨다는 말을 공격 의사로 받아들인 걸까.
부관의 놀란 표정이 서서히 긴장감으로 바뀌어 간다. 부관을 비롯한 이단들이 각자의 무기를 소환해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신종 개체는 자세를 바로 하고 그들을 내려다본다.
확실치는 않다. 눈동자가 없는 밋밋한 하얀 눈이 시선을 어디로 보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벨리사리오스가 가장 먼저 도약했다.
도약한 힘 그대로 돔 형 천장에 거꾸로 붙어, 질주.
돔의 꼭대기에 이르러 몸을 뒤집으며 낙하, 신종의 머리에 검격을 꽂아 넣는다.
넣으려, 했다.
바로 선 자세 그대로, 신종은
날개를 펼쳤다.
다섯 쌍, 열 장의 날개.
날개의 거대한 깃털들 같았던 것이 모두 다시 날개가 되어, 날개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식으로 변이.
그 기괴한 형상을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열과 빛이 신종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벨리사리오스는 그대로 벽까지 밀려나 처박혔다. 숨이 턱 막힌다. 곧 기침과 함께 숨이 트였지만 입가에 질질 흐르는 침까지 막을 순 없었다.
황자의 체통을 염려할 처지도 못 되었다. 이단들은 어찌어찌 무사했지만, 일반인 병사들이 문제였다.
대부분이 쓰러졌다. 몇몇은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지만 죽은 건 아니다. 대부분은 기절. 하지만 어떤 병사들은 벽까지 밀려나 그대로 뭉개져 핏자국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또 어떤 자들은…… 발작 중이다.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는다. 전투복이 안쪽에서부터 피로 젖어 드는 게 선명하게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참혹했지만, 참혹한 광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안구를 밀어내고 눈구멍 안쪽에서 하얀 손가락이, 손이, 팔이, 혹은 다리나 턱 같은 것들이 튀어나온다. 귓구멍에서도, 목구멍에서도.
혹은 모든 모공에서도 뭔가가 튀어나와, 아까 전 신종의 날개처럼 증식한다.
파멸인이 되어간다.
“시간을 끌수록 우리가 불리해!”
벨리사리오스는 제정신을 차려가는 이단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도 그 말을 들으며 다시금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저 신종에겐 사람을 ‘파멸시키는’ 힘이 있다. 당장 파멸인으로 변한 자들을 없애야 하는 건 당연하고, 아직 그렇게 되지 않은 병사들도 변이가 시작된다면 죽여야 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간다. 그 사이 저 신종이 또 무슨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변이하지 않은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빨리 저 신종을 무력화시켜야만 한다.
“다들 파멸인이 된 병사들을 편하게 해줘라! 신종은 내가 맡는다!”
부관이 뭐라 만류하기도 전에 벨리사리오스는 다시 일어서서 뛰었다.
이번에는 도약하지 않고, 원을 그리며 신종의 주변을 돌았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거리를 두자, 부하들의 비참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찬 얼굴로, 전우였던 것을 베는 이단 부하들도.
이것이 신의 분노인가.
아니, 라고 즉답이 떠올라, 벨리사리오스는 놀랐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신종에게 이 정도의 힘이 있다면, 격벽을 부수고 나오는 것쯤이야, 돔 천장을 부수고 교종청 광장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쯤이야 간단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격벽을 안에서 밖으로 밀어낸 그 공격은, 탈출을 위한 공격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 애초에…… 저것이 여기를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절박한가?
신이 거체를 움직인다. 몸을 돌린다.
그 움직임은 명백히, 벨리사리오스 자신을 추적하고 있었다.
어떠한 장식도 없이 막대에 날을 붙인, 정말 투박한 창의 형태를 한 신의 무기. 저것은 포세이돈의 창일까, 롱기누스의 창일까.
신종은 창을 어깨 뒤로 당기고, 내지른다.
창 자체는 그대로 신종의 손아귀에 있지만, 내뿜어져 나오는 열과 빛은 그대로 벨리사리오스에게 쇄도.
저걸 맞으면 아까처럼 벽에 처박힐 게 뻔했기에, 이번에는 벨리사리오스도 신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검격을 준비했다.
벨리사리오스가 검을 휘두르는 궤적에 따라 허공을 가르는 빛이, 그대로 신의 창격에 부딪쳤다.
벨리사리오스는 성공적으로 신의 공격을 받아냈지만,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벽으로 뛰어올라 달린다.
나선을 그리며 돔 형 천장 꼭대기까지 다시 한번 올라간다.
-격벽의 일그러진 형태로 보아 안에서 밖으로 공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나 격벽을 파괴할 정도의 공격은 없었다. 위력이 부족했다 해도 여러 번 공격을 반복했다면 충분히 부수고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격벽은 이 신의 공격 대상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신종의 공격은 격벽을 내리며 도망가던 어떤 인간을 향한 것이 아니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앞뒤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신은 자신이 여기 갇혔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는다. 애초에 분노도 없을 것이다. 갇혔다느니 포획되었다느니 하는 것도 인간의 생각일 뿐, 이 신에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신종이 반응하는 것은 오직 인간이라는 생명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인간이 사라지자, 이 신종은 이 장소에 그저 머물렀다.
어쩌면, 어쩌면.
사람이 신의 형상과 힘에 공포를 느끼듯, 신은 인간이라는 이질적인 생명에 혐오를 느끼는 게 아닐까. 영혼으로 신체가 구성된 신의 관점에서 지구상의 생명은 그저…… 피와 고기를 뭉쳐 만든, 생명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기괴한 현상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도박을 해보자.
이것은 신의 ‘운반’ 문제까지도 한꺼번에 해결해줄 방법이었다.
돔 천장 꼭대기에서 벨리사리오스는 한껏 몸을 움츠렸다가, 도약했다.
거꾸로 붙은 상태였기에 ‘아래를 향해 뛰어오른다’는 모순된 표현이 가능한 동작.
신이 인간을 올려다본다.
벨리사리오스는 그 순간, 검의 소환을 해제했다.
맨손이 되었다.
그때 신은 경악으로 눈과 입이 벌어졌었다고, 수년 뒤의 벨리사리오스는 기억한다.
신은 세상을 닮는다. 세상에 대응한다. 그것은 교류든 공격이든 방어든 마찬가지다.
신은 이단들의 강력한 공격에 대응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신이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인다면? 적대도 우호도, 공격도 방어도 아닌 행동을 한다면?
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벨리사리오스가 착지한 곳은 신의 머리가 아닌 등. 왼쪽 날개들이 튀어나온 곳이다.
손톱을, 손가락을 날갯죽지에 박아넣는다.
입을 크게 벌려, 날개를 물어뜯었다.
신의 덩치를 생각하면 긁힌 상처 정도였지만, 어떻게 사람의 턱 힘으로 그 정도 상처라도 낼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벨리사리오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신의 날개를 물어뜯고, 먹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신의 등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계속해서 날개를 먹었다.
신성모독적 카니발리즘.
이윽고 왼쪽 날개의 뿌리 부분이, 날개의 나머지 부분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먹히는 바람에 꺾이고, 찢어져 떨어졌다.
신종 역시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꽤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에 벨리사리오스도 충격을 받았을 법하지만, 그는 떨어지는 중에도 계속 남은 날개 뿌리를 뜯어 먹었다.
신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벨리사리오스의 턱은 오른쪽 날개 뿌리로 향했다.
부하들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황자의 그 야만스러운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벨리사리오스가 오른쪽 날개 뿌리와 나머지 부분들을, 직접 이와 손톱으로 뜯어냈다.
뜯겨나간 날개의 나머지 부분들은,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