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70화 (370/541)

각축(3)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신상의 등에는 다섯 쌍의 날개가 돋아, 신상이 앉은 옥좌를 감싸고 있다. 어쩌면 고대에는 여기서 커다란 화로를 켜고 제의를 진행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꽤 장엄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신성모독의 현장이다.

벨리사리오스는 도약했다.

신상의 콧등에 두 발을 딛고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그는 중얼거렸다.

“오늘 그대의 신성을 약탈하니 나에게 넘겨라…….”

이마 한가운데에, 검을 찔러넣었다.

우르릉, 하고 육중한 바위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벨리사리오스는 피식 웃었다. 추리 소설에서 ‘저택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소리 같지 않은가. 너무도 싸구려처럼 느껴졌다. 이게 연극이나 영화였다면 벨리사리오스는 아마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역시 이단의 힘이 열쇠인가.”

벨리사리오스는 아래로 내려왔다. 신상의 발치에 어두컴컴한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그 안으로는 더욱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 계단 역시 신전과 함께 세월을 지나온 듯했다.

“여기서부턴 바짝 긴장하도록.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벨리사리오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른 유적들처럼 파멸인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교종청에서 오래 관리했다면 그들이 배치한 방어시설이 알파 팀의 앞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 특히 후자에 대한 정보는 없다시피 했다.

조금 더 들어가자 명백히 근대의 산물인, 전기가 들어오는 조명이 보였다.

“이제 좀 살 것 같군요. 사람의 흔적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아니라 요즘 사람의 흔적이요.”

“그래. 그 말은 이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어쨌든 이들은 불청객이었으니까.

잡담 몇 마디를 끝내고 알파 팀은 더욱 깊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인의 발자취는 더욱 짙어졌다. 벽과 바닥, 천장이 명백히 현대적인 밋밋한 통로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상하군요.”

바로 전에 말을 꺼냈던 남자가, 이번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건 누가 봐도 사람이 만든 시설이긴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느낌이 전혀 들질 않습니다.”

“그렇군.”

짧은 한마디였지만 벨리사리오스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방해물이 없으니 좋다고 앞으로 나아갈 일이 아니었다. 이건 뭔가 좋지 않다.

사람의 흔적은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기 있던 사람들이 ‘떠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들의 목표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식은땀이 촉촉하게 등에 배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알파 팀의 긴장이 무색하게, 그들은 합류 지점에서 무사히 베타 팀을 만날 수 있었다.

거리로 따지면 도시의 절반을 가로지른 긴 행군이었지만,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은 채 합류 지점까지 온 것이다.

그래도 공기 자체를 짓누르는 무게감은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그들은 평소보다 더욱 반갑게 전우들과 인사를 나눴다.

베타 팀을 이끌던 부관도 벨리사리오스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상합니다. 조명이나 환기가 작동하는 걸로 봐선 전기는 들어오는 게 확실한데, 최소 수년은 사람이 활동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수년 전에 철수한 걸까?”

그들이 얻은 첩보가 낡은 것이라, 목표물이 이미 이 안에 없는 건 아닐까. 벨리사리오스는 그런 우려를 담아 부관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예 목표물을 다른 장소로 옮겨버렸다면 이 시설에 여전히 전기가 들어오는 걸 설명하기 힘듭니다. 물론 우리 같은 사람들을 낚을 목적으로 배치된 미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미끼치곤 너무 거창하지.”

“예. 그러니까 목표물은 이 안에 있을 겁니다. 시설이 어쨌든 파괴되지 않은 것도 ‘언젠가는 돌아올’ 계획이어서일지도 모르고요.”

“그럼 교종청에서 무슨 다짐을 했든, 지금 중요한 건 ‘왜 떠났는가’가 되겠군.”

벨리사리오스와 부관 모두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마주 보았다.

흔하지는 않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다. 이런 유적, 혹은 유적을 개조한 시설에서 파멸인 같은 괴물의 ‘통제 불능’ 사태가 발생하는 일 말이다.

당연히 거기엔 막대한 희생자가 뒤따른다.

몇 개의 격벽 너머에는 파멸인이 우글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잡으러 가는 것이 ‘신종’임을 생각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사정인지 보고 가기라도 해야겠지. 우리가 여기에 침입한 건 아직 교종청이나 신성 제국에서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언젠가는 확실히 알아챌 걸세. 이번에 빈손으로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

벨리사리오스 자신도 이번 작전에 목숨을 걸었다. 여덟 번째 황자인 자신이 뭔가 입지라도 다지려면 성과가 꼭 필요했다.

“……여차하면 자네들은 탈출하게. 나는 여기서 죽으나 빈손으로 탈출하나 마찬가지니까.”

부관은 한숨을 내쉬곤 벨리사리오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황자는 이제 자신들의 전우다. 버리고 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무언의 다짐이었다.

종종 있는 일이다. 딱히 야심이라곤 없는 사내들이, 누군가의 화려하게 빛나는 야심에 이끌려 주변으로 모여드는 일. 그리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의리나 충심 비슷한 뭔가를 발휘한다.

이제 다시 한 부대가 된 로마인들은 전진했다.

우려는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공간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넓어졌고, 그에 따라 격벽도 커졌다. 두 개는 신전의 숨겨진 문을 열 때처럼 이단의 힘으로 열고 나아갔지만, 세 번째 격벽 앞에선 모두가 말을 잃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찌그러져 있군요.”

“그것도 이쪽을 향해서 말이지.”

즉, 안에서 뭔가가 탈출하려고 격벽을 두들긴 것이다. 부서지진 않았지만 격벽의 두께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힘이다.

그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존재가 저 안에 있다.

벨리사리오스의 검이 저 일그러진 문을 가르면 금방 열고 들어갈 수 있겠지만, 들어간 후에 ‘살아서’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제군, 우리가 오늘 여기서 꺼내려는 건 ‘신’이다.”

부관이나 이 작전의 목표를 알고 있던 몇몇을 제외하고, 병사들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이 된다. 상식을 벗어난 신성모독은 아무리 신앙심이 깊다 해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법이니까.

“신이라고 해도 유일하신 우리 주님을 뜻하는 건 아니다. 다들 들어본…… 제우스나 유피테르 같은, 고대인들이 믿던 다신교의 신이다. 혹은 악마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정말로 상관없었다. 크리스트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교의 여러 신들을 자기네 신앙 체계의 악마로 만들어오지 않았던가.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로마인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우리의 국경 밖에 있고, 따라서 우리가 택할 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신성 제국과 전면 전쟁을 벌여서 로마시를 탈환하든지.

아니면 지금처럼, 몰래 정예 부대를 침투시켜 유산만 탈환해오든지.

전자를 택할 수 없으니 후자를 택할밖에.

“우리는 이 신을 다시 로마의 영토로 복귀시킬 것이다. 이는 단순히 조상의 유산을 돌려받는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군사 기술적 진보’를 이룰 것이다.”

더 높은 이상이 있지만, 당장 병사들에게 이해시키기엔 이 정도 변명이면 적당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 명분에 동의했다.

다들 젊은이들이라 군인으로 참전한 자는 없었지만, 어린 시절에 이슬람 군대의 점령지에서 나고 자라 그 패악질을 목격했던 이는 많았다. 콘스탄티누폴리를 비롯한 수도권까지 피난 와서 굶주림과 공포에 벌벌 떨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이도 있었다.

벨리사리오스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니 살아 있는 황족 전원이 그러했다. 국가의 상층부터 하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전쟁의 고통을 겪었다. 바로 그 점이 벨리사리오스가 병사들과 더욱 잘 지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더욱 강한, 국방력.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마음.

그래서 병사들은 한숨 섞인 웃음과 함께 이렇게 농담을 뱉었다.

“저 안에 든 게 뭐가 됐든, 지난 몇 년 사이에 아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병사들이 돌입 준비를 하고, 벨리사리오스는 격벽의 정문에 섰다.

검을 들고 자세를 취한다.

일격. 그걸로 저 방해물을 파괴하고, 병사들이 제압사격과 함께 돌입한다.

벨리사리오스는 검을 뒤로 빼며 팔에 힘을 주었다.

왼쪽 뒤에서 오른쪽 앞으로, 아래에서 위로 그어 올리며 날리는 검격.

그 검격 한 번에 두꺼운 격벽은 사람 서넛이 들어갈 넓이로 찢어졌다.

마치 짐승의 발톱으로 할퀸 듯이.

오히려 안에 있는 것이 짐승에 더 가깝겠지만.

병사들은 제압사격을 한 번 퍼붓고, 숙련된 부대답게 차례로 안쪽으로 진입했다. 침착하게 좌우로 퍼져서 내부 상황을 파악하고 ‘무언가’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곳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그러면서도 무슨 상황이 벌어지든 대응 가능하도록 일정한 대형을 유지.

벨리사리오스도 격벽 안으로 들어갔다.

격벽의 크기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간이었다. 지도로는 면적을 알 수 있을 뿐 높이나 깊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래로는 푹 파였고, 위로는 돔 형태다. 전체적으로는 아마 구형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하로 파고드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위로도 저 높이면 교종청 바로 밑바닥에 닿아 있는 건 아닐까.

여기까지 이어진 긴 통로처럼, 격벽 안쪽에도 조명은 들어오고 있었다. 크게 파손되어 어둑한 구석이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잘 보였다.

그때,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원래 전등 수명이 몇 년은 되나?”

“무슨 소리야…….”

다른 누군가가 대답하다 말고 입을 다문다. 그도 섬뜩한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격벽 바깥의 조명이야 교종청에서 주기적으로 관리한다고 쳐도, 이 격벽 안쪽에도 조명이 유지되는 건 어쩐 일인가. 아무리 전기가 공급된다 해도, 전구에는 수명이 있다. 최신 전등이라면 몰라도 몇 년 전의 것이라면…….

벽과 천장 곳곳에 묻어 있는 핏자국이 그들의 등줄기를 더욱 선득하게 했다.

핏자국은 말라붙지 않았다.

누군가, 격벽 안쪽의 상태를 몇 년 전 참극이 일어난 그때 그 상태로 유지했다. 아니 어쩌면 두 팀이 들어온 통로까지도.

그렇다면 우리는 지하 유적 안에 발을 들인 순간 누군가의 의도에 걸려든 걸까? 그런 의문이 모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군인들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가 그들의 고개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위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동물적 예감이 그들의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스 신상 같은 하얀 것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 크기라면 처음 들어왔을 때 눈에 띌 법한데, 마치 지금 막 나타났다는 듯 허공에 뜬 채로 그들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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