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축(2)
벨리사리오스가 1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던 시절의 일이다.
작전의 내용 자체는 단순했다.
로마로 침투한다. 바티카누스 언덕 지하에 묻힌 신종을 포획, 제국의 국경까지 무사히 운반한다.
그것이 작전의 골자였다.
“로마인들이 로마에 침투한다니 뭔가 국가전복 음모라도 꾸미는 것 같지 않나.”
흔들리는 트럭 안. 국경을 넘자마자 흘리듯 중얼거린 누군가의 말이 모두를 웃게 한다. 경박함은 찾아볼 수 없는, 노련한 군인들의 웃음이다.
누군가 그 농담을 받아 바로 옆에 앉은 벨리사리오스에게 건넸다.
“전하는 로마에 입성하는 두 번째 벨리사리우스시군요.”
그 말에 황자는 씩 웃었다. 자신의 이름은 그 위대한 장군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발음한 것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대황제 시절,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잃어버린 서방 영토를 재건하기 위해 분투한 벨리사리우스의 이름은 초등학교만 졸업했다면 누구나 안다.
황제 부부는 분명 그 위인을 본받으라며 이름 지어주었을 테고, 황자 자신도 그 사람처럼 자라려 노력해왔다.
“처한 상황은 그분보다 나쁘지. 어떤가. 그대들은 그분의 병사들보다 백 배쯤 더 잘 싸워야 할 텐데, 할 수 있나?”
병사들 사이로 킬킬거림이 번져간다.
몇 달 전만 해도 벨리사리오스는 이들에게 ‘적당히 모시고 다니다가 잊어버릴 사람’이었다. 황족이 군 경력 한 줄을 채우기 위해 얼마간 군 생활을 ‘체험’하다가 적당히 높은 계급을 받고 궁전으로 돌아가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벨리사리오스는 달랐다.
그의 ‘체험 기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병사들이 그를 보는 눈빛이 점차 변해갔다.
벨리사리오스는 마치…… ‘임페라토르’가 ‘최고 사령관’이라는 의미로 쓰이던 시대처럼 행동했다. 제국을 이끌 엘리트는 당연히 군인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때 그 사람들처럼.
그 의미가 퇴색된 시대, 군에 살짝 발끝을 담가보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면서도…… 벨리사리오스는 자신의 엘리트적인 면모를 숨기는 데 능했다. 병사들 속에 완전히 녹아들진 못했지만, 모두가 그의 겸손함은 느낄 수 있었다. 병사들은 그를 ‘좀 점잖은 친구’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훗날 그들은 일종의 ‘사병’이 되어, 벨리사리오스가 콘스탄티누폴리 정계에서 활약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준다.
로마 침투 작전은 병사들과 벨리사리오스 사이에 벽이 거의 다 허물어졌을 바로 그 무렵에 시작됐다.
“조금 서글픈 생각도 듭니다.”
“어째서 그런가.”
“뭐 제가 특별히 역사의식이 투철하고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로마 제국’이잖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국경을 건너서야 ‘발상지 로마’를 찾을 수 있다니 말이죠.”
이탈리아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눈 두 제국의 국경선. 티무르가 오스만 튀르크를 비롯한 주요 이슬람 세력들을 멸한 직후의 시기를 로마 제국은 ‘불사조의 시대’라 부른다. 그 세력 공백을 틈타 로마 제국은 수백 년간 ‘대수복 전쟁’을 벌여 이탈리아 남부를 장악했다.
그러나 지금의 국경선 너머, 발상지 로마를 되찾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신성 제국에서 자기들이 ‘서로마의 후예’라고 떠들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나쁘긴 합니다.”
너도나도 그렇긴 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벨리사리오스는 쓰게 웃었다.
그 게르만 제국이 ‘신성’과 ‘제국’ 사이에 은근슬쩍 ‘로마’를 끼워 넣은 역사는 꽤 오래됐다. 어떨 때는 ‘로마’를 빼기도 하고 아예 ‘제국’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동방의 진정한 로마 제국이 건재할 때는 눈치라도 보면서 공식 외교문서에선 ‘로마’라는 단어는 뺐지만, 멸망 직전까지 몰렸을 무렵엔 전혀 눈치 보지 않고 ‘로마’를 칭하는 식으로.
“공식적으로 로마를 참칭하는 결례는 피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나.”
“뭐, 그렇기야 합니다만, 그쪽 사람들 만나보면 말하는 품이 은근히 그런 냄새를 풍긴단 말이죠. 그게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벨리사리오스는 침묵을 지켰지만, 병사의 그 말 자체엔 동의했다.
누군가 벨리사리오스의 기분을 대변하듯 말한다.
“맞아, 자기네가 ‘로마시(市)’를 가졌으니 진짜 로마라고 거들먹거리지.”
“우리 콘스탄티누폴리도 ‘제2 로마시’잖아.”
“그거야 콘스탄티누스 1세가 멋대로 자기 근거지를 옮긴 거니까 가짜 로마라고 지껄이더라니까?”
“특히 프랑스 새끼들이 그러더라고.”
“미친놈들…….”
황자 앞이라 심한 욕설은 자제들 하고 있었지만, 그 분노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금 신성 제국을 지배하는 보나파르트 황실은, 합스부르크로부터 어좌를 강탈하다시피 했기에 초기엔 많이 불안정했다. 사방이 적이었다.
아마 그대로 전쟁을 계속했다면 나폴레옹 1세가 아무리 전쟁의 천재였다 해도, 신성 제국은 말라 죽었을 것이다. 프랑스와 게르만은 다시 분리되었겠지.
바로 그때, 로마 제국은 나폴레옹 1세를 지원했다. 그렇게 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세력 균형’을 만들 수 있으리란 계산으로.
그 당시에 나폴레옹 1세와 맺은 협약 중 하나가 바로, 신성 제국의 국호는 영원히 ‘로마’를 포함하지 않겠다는 것.
하지만 황실 간, 또는 정치권에서의 협약이 국민 개개인의 인식까지 영향을 끼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성 ‘로마’ 제국은, 그 지배자인 게르만들은 아주 오랫동안 자신들이 ‘서부의 로마 제국’을 재건했다고 생각해왔기에 더욱 그랬다.
나폴레옹 1세가 붕어한 지 백 년 가까이 된 지금도 그러하다.
벨리사리오스는 병사들이 신성 제국에 품은 반감이 민간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지, 그렇다면 그게 향후 유럽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본다.
두 나라 국민이 품은 생각은, 이대로는 분명 상충한다.
이 상태는 시간이 지나면 원만하게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날이 갈수록 심해져 결국 두 나라의 외교마저 파탄에 이르게 할 것인가.
딱히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벨리사리오스의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단편적인 생각만 오가고 있을 때, 트럭이 멈췄다.
길 좌우로는 숲. 시간은 막 자정을 넘겼다.
트럭은 신성 제국령으로 로마인 인부들이나 로마 쪽에서 수입된 자재를 실어 나르는 차량으로 위장하고 있었기에, 벨리사리오스 및 그와 함께하는 부대는 여기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트럭은 이대로 ‘위장된 목적지’로 향하지만, 벨리사리오스는 ‘로마시’로 향해야 하니까.
병사들은 서둘러 자재 아래 이중 바닥에 들어 있는 무기들을 꺼냈다. 숙련된 자들인 만큼 그 과정은 신속했다. 각자 무기들을 챙기고 다시 평범한 자재 트럭으로 위장한다.
만약 지금이 전시거나 두 제국 사이가 조금이라도 나빴다면 이런 침투는 시도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대전도 끝난 지 오래고 양국의 사이도 우호적인 상황에서, 국경 경비대는 일말의 경계심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로마인들을 들여보내 줬다.
트럭은 떠났다. 인부의 작업복을 벗고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군인들은 벨리사리오스와 장교들의 지시에 따라 길도 없는 숲 안으로 숨어들었다.
야음만을 틈타 행해진 강행군이었지만, 그들은 꽤 빠르게 로마시로 접근할 수 있었다.
“로마 시내로 직접 들어가진 않는다.”
벨리사리오스의 부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대의 지휘관을 맡은 남자가, 지도를 펼치며 빠른 어조로 설명했다.
지도는 시가지가 아니라, 시가지 아래 거대한 지하 시설들을 그려놓았다.
“일단 부대를 나눈다.”
부관은 벨리사리오스와 시선을 교차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 전하께서 이끄시는 부대를 알파, 내가 이끄는 부대를 베타로 명명한다. 알파는 먼저 도시 서쪽 외곽의 작은 유적으로 향한다. 현 시간부로 여기를 ‘곰 굴’이라 부른다. 유적 내부는 꽤 거대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긴 곡선 형태다. 여길 따라서 바티카누스 언덕 아래의 합류 지점까지 침투한다.”
남자는 동료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다짐이라도 받듯 바라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꽤 넓다. 방향에 주의하면서 최대한 빨리 목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 정도 규모의 시설이면…… 대체 교종청 아래엔 뭐가 있는 겁니까? 우리의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건 합류 후에 설명해주겠다.”
이번엔 자신이 이끌 베타 팀을 향에 말했다.
“우리는 테베레강을 따라 이동한다.”
도시의 남부, 강이 빠져나가는 곳 부근에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입구가 있었다. 부관은 그 부분을 가리켰다.
“그대로 북상, 역시 바티카누스 언덕 아래 합류 지점까지 간다.”
합류 시간과 암구호, 제때 합류하지 못했을 시의 행동 방침까지 전달한다.
물론 도시 내의 일반적인 경찰 병력이나 사설 경호 업체 정도로는 여기 있는 정예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두 팀이 제때 합류하지 못할 일은 없다.
저 지하 시설에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지 않다면.
팀을 나누어 출발하기 직전, 부관은 벨리사리오스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포획하러 가는지, 말해주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합류 후에 알려줘도 충분할 것 같군. 괜히 사기만 떨어뜨리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부관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추스르고, 베타 팀을 이끌고 떠났다. 벨리사리오스 역시 알파 팀을 이끌고 시가지를 우회해 도시 서쪽으로 접근했다.
작은 언덕. 수풀 속에 숨겨진 유적의 입구 주변엔 별다른 경비 병력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이 도시에선 흔해 빠진 고대 유적지로 위장해두었는데, 삼엄한 경계를 펼치면 오히려 수상해 보일 테니까.
벨리사리오스가 선두에 서서 유적으로 진입했다.
들어서자 펼쳐진 광경은 옛 그리스 신들을 모시던 신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하에 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이것까지도 위장이지.”
호기심 많은 관광객이 로마시 주변을 돌아다니다 이 유적을 발견한다 해도, 그의 탐험은 여기서 끝날 것이다. 사진 몇 장 찍고 돌아가 친구들에게 과장된 모험담을 들려주겠지.
하지만 여기 선조들의 땅으로 돌아온 ‘로마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첩보를 통해, 그리고 고대부터 이어져 온 지식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이 신전이 위장에 불과하며, 정말 중요한 것은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도 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지식. 그것이야말로 저 프랑크나 게르만의 후예들이 아닌 자신들이 곧 로마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벨리사리오스는 자신의 오른손에 하얀 검을 소환했다.
이 시절 그의 이단 능력은 다른 이단들과 비교해 그다지 특출날 게 없었다. 검은 마치 고대 로마 군인의 장비인 글라디우스를 길고 넓게 만든 것처럼 생겼다.
정면에는 거대한 신상이 있었다.
얼핏 제우스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