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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64화 (364/541)

영겁종말(3)

전제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어째서 신에게서 영혼을 갈구했는가가 아니라, 신의 어떤 측면을 ‘영혼’이라 부르기 시작했는가, 하고.

혁세주에 의한 정신오염이 시작되어, 인체에는 영혼 같은 것이 없음을 깨달은 인간은 가치관의 혼란을 느낀다.

나, 마르코 폴로도 그러했으니까.

물론 명백한 증거가 눈앞에 들이밀어 지는 상황에서도 크리스트교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여생을 보낸 ‘나’도 있다. 그러나 여기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영혼이 없다면…… 지금까지 당연하게 ‘있다’고 배워왔던 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죽음 다음의 생’이 있다는 전제하에 살아간다. 보다 나은 다음 생을 위해 지금 선하게 살아가자, 하고.

규칙, 법, 질서, 도덕. 그런 것들은 당연하다는 듯 죽음 이후의 상과 벌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지향한다.

혹은 그런 상과 벌을 내리는 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런 신의 뜻인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사회 자체가 영혼의 존재, 그 영혼을 굽어살피는 신을 전제하고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영혼이 없다는 깨달음, 인간은 피를 담은 고기 주머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든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마저 뒤흔들 수 있다.

인간은 혼란에 빠졌다 해서 헤매고만 다니진 않는다. 어떻게든 이전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없다면 구하면 된다’라는 결론에 이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너 또한 그런 사람인가?”

나는 칸발리크의 어느 골목에서 한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는 방금까지 막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다 이상함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나를 발견했다.

사내의 앞에는 두 소녀가 달려들 듯한 동작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그중 한쪽, 페르시아계 혈통의 금색 섞인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닌 소녀는 이 시점의 고려 황제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관찰할 수 있는 나에게도, 이 복잡한 혈통의 소녀는 기이하다.

사람으로서의 기억에서 고려는 여전히 예케 몽골의 속국에 불과했기에, 지금 같은 위상을 지닌 고려의 황제가 ‘세계의 수도’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낯설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면서 동시에 이미 관측한 것. 그 혼합된 감각은 여전히 사람에 한 다리 걸치고 있는 나에겐 버겁다.

혹은 이것이…… 무상감인가.

영원한 사람이 없듯 영원한 국가도, 영광도 없는 법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슬픔에 가슴이 저미는 건 어쩔 수 없다. 베네치아는 고국이지만, 몽골은 내 청춘을 바친 또 하나의 조국이었으니까.

남자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도 즉답을 바란 건 아니기에 멈춰 선 두 소녀를 찬찬히 관찰했다.

남자의 눈에는 자신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물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겠지. 어느 정도는 맞는 설명이다. 나는 그런 것도 할 수 있다. 혹은 그런 게 가능한 시간과 공간을 관찰할 수 있다.

“당신은…… 신입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이성의 눈을 남겨두고 있었다면 그는 나에게서 보잘것없는 서양 사내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바라고 영혼을 얻길 바라는 그의 눈은, 아마도 그간 종교들이 제시해온 구세주의 모습을 보았겠지. 적당한 나잇대의 서양인. 초라함마저도 거룩한 소박함으로 비칠 것이다.

그가 나를 신으로 보았다면 이미 신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설명을 해봤자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리라. 그의 뇌는 깊은 뜻을 품은 신의 난해한 말씀쯤으로 여기겠지.

그러므로 이것은 대화가 아니다.

신처럼 되고 싶어 하는 남자의 최후를, 그저 관찰하는 것일 뿐이다.

“저는 당신처럼 될 수 있는 겁니까?”

“그 비슷하게는 될 것이다.”

세상이 품고 있던 온갖 비밀을, 스스로 봉인이 되어 세상 구석에 밀어 넣은 자가 바로 나다. 그렇기에 나는 시간에서도 벗어났고 공간에서도 벗어났으며, 마침내 감각과 인식의 틀에서도 벗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서글픈 일이다.

파멸인을 ‘파멸’했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육신의 외적 붕괴만을 가리켜 파멸했다고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육신, 즉 뇌는 신도 되지 못하고 인간도 아닌 이 상태를 무척 슬프게 받아들인다.

나 역시 남아 있는 감정의 파편으로, 그에게 소용없는 조언을 해준다.

“피와의 직접 접촉은 위험하다. 마찬가지로 피를 동반한 살점과의 접촉도 위험하다. 신종의 씨앗을 가까이하지 말게.”

남자는 씩 웃는다.

“알고 있습니다. 모든 도약은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죠. 하지만 단순한 고깃덩이 상태를 벗어나려면 그런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인간을 벗어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짐승이 된다는 것과도 같네. 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귀하기만 한 상태가 아니야.”

신은 짐승과도 같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것도 하나의 시험이죠? 저의 믿음이 위험 앞에서 흔들리는지 아닌지……. 하지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랜 시간 바라왔던 일입니다. 거듭 다시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다잡았습니다. 이제 제가 가는 길에 망설임은 없습니다.”

순수한 미소다.

그러나 아까의 광소와 차이가 없다. 가장 순수한 순간, 자신의 올곧음을 확신한 순간 인간은 파탄에 이른다.

왜냐하면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이런저런 분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가 선하다고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믿음의 절정에서, 사람은 누가 보아도 선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이토록 믿음이 깊으니 하는 행동이 모두 선할 것이라 합리화해버린다.

그로써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게 되니 선함이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착각하게 된다.

신 앞에서 가장 낮게 웅크린 인간이야말로 가장 오만하다. 자신의 선함을 확신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악하다. 지혜의 완성에 도달했다는 사람이야말로 파멸을 향한 어리석음이 그치질 않는다.

나는 설득을 포기하고, 대신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영혼을 얻고 싶어 하는가?”

“삶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버린다면, 영원히 무(無)가 되어버린다면 그만큼 무의미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런가.”

별다른 것 없는 대답이었다. 파멸로 향해 가는 모든 사람의 대답은 이와 거의 다르지 않다.

영혼에 대한, 신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한 사람은 이번에도 찾지 못했다. 이해의 과정에는 의심이 필수적이다. 의심을 중단한 자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믿음은…… 광기의 지름길이다.

죽음 이후의 삶. 허무를 벗어나고자 하는 집착에서 비롯된, 광기.

나는 이 시점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다. 손가락을 튕기거나 손뼉을 칠 필요도 없이, 그냥 그렇게 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신종의 씨앗에게서 피가 쏟아지고, 남자는 그 피와 살점을 취한다. 곧이어 남자의 육체는 괴물로 변한다. 두 소녀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눈앞의 처참한 광경에 경악한다.

한숨을 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나는 다음 순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 소녀의 먼 조상을 본다.

사람의 기준으로는 기묘한 감각이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나는, 그런 감각에선 멀어졌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평범한 시간과 공간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 주변을 떠돌면서 살아간다.

나는 인류의 멸망을 막겠다는 객기로 그런 길을 택했지만, 인류가 아닌 나 한 사람의 생에 정말 잘한 일이었는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괴물이 되지 않고 혁세주나 신종과 같은 눈높이에 올라서려면 이 방법뿐이었지만……. 사람의 감각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벌써 후회했겠지.

그러나 이 느낌을, 아직 그렇게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1930년 칸발리크에서 본 혁세주교인들처럼, 집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겐 치러야 할 대가보다 얻을 결과물이 지나치게 커 보이는 듯하다.

소녀 황제의 먼 조상도 그러하다.

고려라는 나라를 세우는 왕건.

그는 용의 혈통을 타고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용의 형태를 한 신종을 포획해, 그 피와 살을 취한 조상으로부터 났다. 그것을 용의 혈통이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조상이 당나라의 황제의 사생아라느니, 혹은 아내를 꿈에서 맞이했느니 하는 이야기는 이 진실을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어 덧붙인 전설들일 뿐.

누가 감히 건국 군주를 ‘신종의 피와 살로 만들어진 아이’라 기록할 수 있겠는가.

왕건은 철저하게 작제건과 왕륭의 ‘왕이 될 야심’을 충족할 목적으로 제작된 아이다.

그렇기에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은 스스로 제왕(帝王)을 만들어(作) 세운(建) 자라는 이름을 칭하지 않았는가. 작제건의 아들이자 왕건의 아버지 왕륭은 초명이 용(龍)을 세운(建) 자, 라며 용건이라 불렸었다.

그들 부자가 얼마나 자신들만의 나라를 갈망했는지, 자신들의 왕조를 세우길 원했는지 그 칭호만으로도 알 수 있다.

막 걸음을 멈춘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들이 용신을 포획하던 바로 그 순간이다.

하늘은 검붉다.

바다 역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품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파도 따위는 애들 장난으로 여겨질 만큼, 사람의 이해를 벗어난 섬뜩함이 그 안에 있었다.

익히 보아 온 광경이다.

사람이라는 고깃덩이가 감히 영혼을 가지고자 했을 때 나타나는 광경.

“거란인 스물에 북국(北國)인 열넷, 신라인 스물둘, 일본인 스물하나, 당인(唐人) 스물셋. 딱 백 명입니다, 아버지.”

장대(將臺)에 올라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 중년 사내에게, 청년이 다가와 보고한다. 이들이 바로 작제건과 왕륭 부자다.

장대 아래로는 왕륭이 말한 포로들이 무릎 꿇은 채 나직이 흐느낀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순 없으리라 직감하고 있다.

포로들 주변으로는 두 부자의 사병들이 늘어서 있다. 이 사병들이 지난 몇 달간 바다를 누비며 포로들을 노략질해왔다.

병사들의 눈은 지금 하늘과 바다에 펼쳐진 광경에 동요하고 있지만, 두 다리는 땅을 굳게 디디고 서 흔들리지 않는다.

칼날로 자른 듯한 병사들의 대열에서, 그들이 얼마나 정예인지, 그들의 군율이 얼마나 엄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작제건과 왕륭 부자는 군벌이다.

“……신라는 어지러워져만 간다.”

작제건은 왕륭의 보고를 듣고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소한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 그것이 작제건의 오만과 위엄을 동시에 드러낸다.

“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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