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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47화 (347/541)

입헌혁명(3)

다소 감상에 젖어 있다가도, 리안은 해야 할 말을 그치지 않았다.

“연방헌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연방을 대표하는 의회 기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이온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려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의 국민들은 선거를 치러 본 적이 없거나, 매우 제한적인 선거만을 치러왔다는 겁니다.”

자국의 선거 경험도 없는 국민들이 연방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거를 해내긴 어려울 것이다. 선거는 단순히 표를 주고 나오는 행사가 아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사람을 모으고, 관리하고, 감시하며, 결과를 집계하는 그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거대한 움직임이다.

따라서 연방 전체를 아우르는 총선거는 민족도, 정치도, 교육도, 문화도 아직 ‘공통의 것’을 만들지 못한 다이온에겐 이른 이야기다.

“따라서 연방 전체의 선거를 시행하기 이전에, 각국이 정치적 역량을 기르며 총선거를 치러보는 등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총선거뿐만 아니라 헌법 제정 문제에도 적용됩니다. 연방 전체의 헌법을 정하려면, 먼저 구성국들이 각자의 헌법을 마련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충분한 ‘연습’을 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금 연방헌법에 대한 말을 꺼냈는데, 어느새 연설은 각국의 총선거 실시와 헌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야기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슬슬 이 연설의 진정한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 ‘연습’을 돕기 위해, 우리 고려는 임시로나마 이번 ‘동아시아 협력회의’가 연방의 의회 기능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하면 각국이 총선거와 의회 구성, 헌법 제정에 이르는 과정 동안 많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 연방헌법의 제정에 이르리라 확신합니다.”

구체적인 방안은 이러했다. 1932년 한 해 동안 각국은 최대한 선거권을 확대해서 실시한 총선거, 의회, 헌법에 대한 실험을 실시한다. 이에 대한 모델은 고려에서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이상의 결과를 올해 말에 열릴 2차 동아시아 협력회의에서 공유한다.

“각국은 서로의 입헌 성과를 두고 의견을 나누며, 연방헌법의 기초를 논의하길 희망합니다.”

미리안의 이 제안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지금 모두가 느끼는 것과 같이, 연방 구성국들의 개혁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의미였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협력회의에서 미리안이 선언한 ‘독립 보장’이, 다이온 구성국들 사이에 철저히 지켜져야 함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리안의 「대타협 계획」이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 연방헌법은 ‘독립 보장’을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연방 구성국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으로 만들 것이다.

아직 여기까지 리안의 의중을 읽어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을 완수했을 때, 모두가 미리안의 큰 뜻을 알게 되리라.

어쨌든.

이로써 리안은 ‘독립 보장 선언’을 통해 다이온 연방을 여럿으로 나누면서, 연방헌법을 통해 다이온을 ‘가치를 공유하는 하나’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패배한 자들에게도 벌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할 기회를 제공하여, 완전히 독립 의지를 꺾어놓는다.

주견하가 구상한 일원화되고 완전한 통합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의 통합책.

분열함으로써 오히려 하나가 된다는 통합책을 통해, 미리안은 주견하를 앞지르는 미래상을 제시한 것이다.

***

고려 태사 미리안이 제국최고회의에서 한 이 연설은, 먼저 고려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1932년 새해의 분위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이때, 태사는 외국에서 돌아와 고려가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음을 당당히 선언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도 가슴 뛰는 일이지만, 이 외교 승리가 국민들에게 전해준 쾌감은 실로 컸다.

내전과 대공황으로 고려인들 마음속 깊은 곳에 심긴 절망감.

그것을 리안은 오히려 ‘고려의 높아진 위상에 대한 자부심’으로 대체해버렸다. 고려는 다이온이라는 거대한 체제를 이끄는 주도국이 되었으니까.

새해에는 정말 하는 일 모두 잘 되었으면 하는 소망에, 이러한 자긍심이 덧대어지니 사람들 사이엔 잔잔한 미소가 퍼져나간다.

미리안이 전에 구상했던, ‘무력을 통한 확장이 아닌, 외교를 통한 민족 감정의 만족’은 어느 정도 성공 궤도에 올라선 듯했다.

곧이어 태사가 제국최고회의에서 했던, ‘연방헌법’ 제정의 촉구라든가, ‘다이온 연방군’의 가능성, 민족을 초월한 다이온의 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태사가 하는 일이면 다 뜻이 있을 거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고려 민족이 주도하는’을 붙여서 이해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고려 민족을 다른 이 열등한 민족들과 동일 선상에 놓으려는 시도가 아니냐며 분개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놓고 그런 분개를 표현하진 못했다. 당장 허동주가 어떤 꼴이 났는지 다들 잘 안다. 신수덕을 비롯한 잔당들은 고국에 발을 붙이지도 못하지 않나.

아무리 민주주의가 보급되어 간다 해도, 천손민족협회의 극단적 사상까지 포용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미리안은 분명히 했다. 그랬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을 품은 자들은 입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고려인들은 태사의 정책 구상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가 제국최고회의에서 했던 연설은 점차 주변국들로 퍼져나가, 조금씩 반응을 이끌어냈다.

몽골에서는 정치권보다 먼저 시민들이 반응했다.

“제헌의회를! 소집하라!”

“선거권 확대하라!”

“의회소집! 헌법제정! 총선실시!”

대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칸발리크 시민들 상당수가 거리에 나와 이런 구호들을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경찰을 투입했으련만…… 볼로드는 혀를 찼다. 아마 개봉이나 응천, 혹은 역외사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볼로드를 포함한 그들 중 누구도 이런 움직임을 함부로 제압할 순 없다.

헌법 제정과 선거의 실시를 원하는 목소리를 억누른다는 건 곧, ‘고려와는 함께 가지 않겠다’는 뜻이 되니까.

다른 나라는 몰라도, 여기 몽골에서는 경찰이 유혈진압에라도 나서면 곧바로 고려군이 총부리를 들이대며 ‘몽골 경찰을 유혈진압 할’ 것이다.

그렇다.

저 시위는 몽골 제국입헌당이 배후에서 조직화했다. 볼로드는 데렘칭이나 차파르의 존재까지 눈치채진 못했지만, 그들과의 오랜 싸움에서 얻은 경험으로 이것이 옛 몽골 범좌익의 소행임을 알아차렸다.

싸움의 방식에서, 그들의 냄새가 난다.

게다가 그 배후에는 고려 정부가 있다. 고려 정부는 부정하지만, 그 부정을 그대로 믿을 만큼 멍청한 인간은 칸발리크 정계엔 없다.

“미리안…… 대체 뭘 노리는 건가.”

몽골 정국의 혼란? 만약 볼로드나 게레센제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태사부와 황궁 앞까지 몰려온 저 시위대를 탄압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앞서 예측했던 대로 고려군이 출동할 것이다.

칸발리크에는 그 대원철도주식회사인지 뭔지의 사업이 걸려 있고, 또 거기에는 고려의 서부군이나 제국정보사령부의 이권까지 걸려 있으니 명분은 넘치고도 남는다.

시위대를 보호하고 나면, 분노한 시위대의 요구는 점점 더 거칠어질 것이다. 반대로 자신들을, 민주주의를 보호해주는 고려에 대한 호감은 높아지겠지.

그런 호감은 특히 선대 카간의 딸, 루우 테무르에 대한 호감과 이어져 더욱 크게 폭발할 것이다. 이는 곧 현 카간인 게레센제에 대한 반감으로도 이어질 테고.

자연스럽게, 카간을 게레센제에서 루우 테무르로 교체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

과정은 마음에 안 들어도 결과 자체로는 볼로드의 뜻에서 크게 어긋나진 않는다…….

“아니, 노리는 게 그것뿐인가, 미리안?”

미리안의 제안…… 을 빙자한 이 장대한 음모는 역외사국, 그중에서도 다이온의 보호가 절박한 보우슈엥이나 대예를 강하게 압박한다.

개혁이 싫다면 다이온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러고 나면 서쪽에서 몰려올 공산혁명이 무섭다.

어떻게든 개혁에 착수할 수밖에.

“그러나 이는 눈에 보이는 효과만 낳지 않아. 역외사국만 겨냥한 게 아니란 말이지…….”

자신이 남쪽에서 바라트의 물자와 인력 수송 현장을 시찰하는 동안, 미리안은 이곳에서 제국입헌당의 요인들과 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

연설은 자신, 몽골의 타이시 볼로드를 강하게 압박하기 위함이다.

고려의 제국최고회의에서 입헌의 첫 포화를 쏘아 올리자마자, 즉각 몽골의 제국입헌당이 행동에 들어갔다. 마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쿠릴타이에서 연일 볼로드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헌법 체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볼로드 타이시는 영원히 집권할 셈입니까!”

“내전이 끝났다면 이제 내전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길 때입니다. 반역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만든 상황 자체를 개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는 분열과 갈등만 반복될 뿐입니다!”

“지금 이 의사당 밖에서 개혁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볼로드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피곤한 계집 같으니.”

미리안이 볼로드에게 좋은 감정을 품지 않았듯이, 볼로드도 미리안을 좋게 볼 수는 없었다.

갑자기 몽골 정계에 나타난 제국입헌당이라는 무리. 그 본질은 지금껏 탄압해왔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이지만, 고려 제국을 등에 업고 있는 데다 혁명이 아닌 온건한 개혁 정당을 표방하니 이전처럼 탄압할 수가 없다.

볼로드도 그에 대한 대응으로, 어설프지만 황정회(皇政會)라는 정당 조직을 만들었지만 이들은 기대만큼 좋은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제국입헌당이라는 상대는 이미 ‘당’이라는 조직의 운영에 있어 한참을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이 쌓아 올린 경험도 경험이거니와, 고려에서 받는 지원과 지도는 볼로드나 황정회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받아칠 방법은…… 개혁을 받아들이는 것뿐인가.”

하지만 이미 차파르와 미리안이 이야기했듯, 개혁의 수용은 볼로드에겐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황정회의 ‘황정’은 단어 그 자체로는 게레센제를 중심으로 한 카간 체제를 의미하며, 당은 그런 황정을 수호하기 위한 집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 황정회는 선출하는 쿠릴타이, 구 귀족 체제의 유지를 위해 모인 집단이다.

멸망한 알타이 자유 공화국도 어쨌든 ‘민중’의 권력 확대를 지향했는데, 황정회를 구성하는 왕공 귀족의 후예들은 이마저도 꺼렸다. 그들이 알타이 자유 공화국과 적대한 것은 그 악을 징벌하려던 것이었다기보다는, 그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어쩌다 보니 정의로운 편에 섰을 뿐인 것이다.

알타이 자유 공화국, 그 기반이 된 범 알타이 인민동맹을 꺼린다고 해서, 범좌익 세력이 좋게 보일 리 없다.

즉 볼로드는 시레문 사후, 칸발리크의 혼란상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확대했지만, 동시에 구 체제의 유지를 바라는 귀족층에게서도 권력을 얻은 것이다.

만약 볼로드가 개혁안을 수용한다면, 아무리 볼로드가 몽골의 실세라 해도 귀족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아마 황정회에서 떨어져나와 따로 당을 창당하는 방향으로 나가겠지.

제국입헌당도 탄압하지 못하는 마당에 그런 자들까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카간께서도 이를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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