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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46화 (346/541)

입헌혁명(2)

거기서 보고는, 연설로 나아갔다.

“저는 카라코룸에서, 칸발리크에서, 개봉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의원들도 변해버린 리안의 어조와, 임시 의사당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들은 엉덩이를 의자 앞 끄트머리로 옮겼다.

“아직 고려도 몽골도, 구성국 중 누구도 ‘다이온 연방군’을 정식으로 창설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합 작전을 통해, 저는 다이온 연방군의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가능성만 보여주었다곤 해도 ‘우리’ 군은 전혀 오합지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우리’는 고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이온을 의미합니다. 이 다이온의 군대, 아직 정식으로 창설되지도 못한 다국적 군대가 전혀 손발이 맞지 않는 그런 추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리안은 의원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없다. 대답을 바라는 질문도 아니었고, 여기서 자기 생각을 불쑥 내놓을 만큼 멍청한 의원도 없다. 저 질문은 그저 하나의 수사법이니까.

“아무리 인구가 많고, 아무리 사나운 기세를 올라탔더라도,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민족을 초월한 의군(義軍)에는 당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저는 개봉에서 그것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이 토벌 전쟁을 통해 다이온은 ‘연방군’ 창설의 가능성을 세상에 선보였다. 리안만이 그 가능성을 확인한 게 아니다. 몽골도, 키타이도, 낭키아스도, 보우슈엥과 대예, 티베트와 탕구트도 그것을 확인했다. 토벌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외국들도 이를 확인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직 형태가 희미한 다이온 연방 그 자신이, 연방군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연방을 향한 회의주의는 가라앉고, 지지자들은 연방의 진정한 건설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리라.

“우리는 이 전쟁을 끝으로, 적어도 다이온 내부에서 ‘자기 민족’만이 제일이라며 다른 민족을 멸시하고, 약탈하며 갈등을 모든 일으키는 행위는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막 걸음마를 떼게 될 연방군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민족을 초월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민족이 단일 민족의 이기심에 대항해 승리를 거두었듯, 민족들이 공존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선언하면서도 리안은 한편으로 어렴풋이, 이 말은 한족을 향한 기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한족 반란의 근본적 원인은 한족의 이기심이 아니니까.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몇 차례의 독립 시위 후 침울하게 가라앉은 그 민족성에 불을 붙인 결정적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허동주, 신수덕, 그리고 천손민족협회의 고려민족 제일주의다.

허동주는 태평천국 황족을 참살하면서 한족의 패배감을 증오로 바꿨다.

천손민족협회는 내전 초기 고려 본토 내 한족들을 학살했고, 신수덕은 산동에서 훨씬 더 거창하게 일을 벌였다. 그는 고려에 ‘복종’하던 친려파까지도 학살하면서, 식민통치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마저도 날려버린 것이다.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수덕의 학살은, 다른 지역의 한족들에게 자신들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을 퍼트렸다.

그러한 불안이 대륙을 뒤덮는 봉기의 불길로 이어졌고, 간신히 제압하는 데만 일 년이 넘게 걸렸다.

다시금 한족은 패배를 배웠지만, 그게 이번엔 얼마나 오래 갈까.

오래 가야만 한다.

그러니 기만일지라도 정의를 내세워야 한다. 솔직한 불의를 내버려 두는 것은 정의의 이름으로 펼치는 기만술보다 더 나쁘니까.

“저는 동아시아 협력회의에서, 이미 ‘독립 보장 선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고려의 주권이 수호되어야 함과 같이, 다이온과 그 주변국의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고려 제국의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한족 반란의 제압을 통해, 리안의 독립 보장 선언을 통해 다이온은 구성국이 서로의 주권을 지켜주고, 그 구성 민족들이 공존할 기초를 쌓았다.

“그러나 어떤 의원님들은, 혹은 이 임시 의사당 밖, 고려의 국경 너머, 다이온의 강역 너머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고려 태사의 독립 보장 선언은 공허한 말일 뿐이라고. 인정합니다. 말은 말일 뿐입니다.”

때로는 비난을 정면에서 인정하는 게 더 강한 반박이 되곤 한다. 지금 리안의 말이 그러했다.

리안도 자신의 구상과 행보를 향해 그런 비판을 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저는 제가 개봉에서 제시한 이상이 그저 말로 끝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이상을 품은 누구라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상을 현실에 정착시킬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현실은 모든 사람이 발 딛고 사는 지면입니다. 즉, 이 지상에서 이루어진 것만이 이상을 현실에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한족 반란 토벌전에서의 승리는 그 가능성의 시작이었다.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있을 회의주의자들을 침묵시키는 건, 현실에서 이루어진 바로 이 승리입니다. 회의주의자들은 의기소침해졌겠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현실의 승리를 기반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제가 개봉에서 외쳤던 선언문도 그렇게 나아갈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아간다’……? 이 말이 의원들의 귀를 자극했다.

국가적 사기를 북돋우려 아무렇겐 내뱉는 말이 아니다. 나아간다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의장 미리안은 지금 이 연설을 통해 고려가, 다이온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려 한다.

의원들의 기대대로, 리안은 향후 수년간 다이온 연방 전역에 몰아닥칠 개혁의 바람을 부채질한다.

그 개혁의 바람은, 「대타협 계획」을 바탕으로 불어올 것이다.

「대타협 계획」은 완수된다면 수년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방향을 정하겠지. 리안의 사후에도 후계자들이 그 뜻을 이어준다면 백 년을 내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다소 흔들린다 해도, 큰 방향은 리안이 정한 대로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리안은 그 첫 단추를 끼울 것이다.

“우리 고려 제국이 지난 3년간 걸어온 길은 타국의 모범이 되었다 확신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3년간 추진해왔던 개혁의 방향이, 다이온 구성국들의 개혁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했던 실수는 예방케 하고, 우리가 했던 성공의 방식을 공유한다면 동아시아 전체의 번영은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라고 리안은 의원들을 향해 물었다. 의원들은 각자 머릿속에 미승휴가 죽었던 1929년부터 바로 작년인 1931년까지, 그 3년간을 떠올려본다.

행복한 기억, 통쾌한 기억을 지닌 이도 있다.

씁쓸한 기억, 모욕적인 기억을 지닌 이도 있다.

그런 기억 모두를 지닌 이도 있다.

어쨌든 모두가 세상은 확실히 ‘회복’을 향해 나아간다고 느꼈다.

“우리는 내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우리 고려 민족만이 제일이라 믿으며 타민족을 짓밟던 파렴치한들, 감히 고려 민족이라 자칭하는 것도 부끄러운 인간들을 몰아내고 정의를 세웠습니다. 네, 정의입니다. 어떤 이는 저의 이런 표현을 오만이라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우리는 그들보다 정의의 편에 더 가까웠습니다.”

리안도 아주 잠깐, 죽을뻔했던 고비를, 견하와의 첫 만남을, 시찰했던 전선에서 목격한 무참한 시체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황제 폐하를 다시 맞이했습니다. 제국군이 지켜낸 지역에 한정되긴 했지만, 투표를 실시했습니다. 제국최고회의를 열어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법과 질서는 이제 더는 관습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이 법들은 모든 이성적 국민의 합의로 탄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바로 세워졌기에 우리는 내년의 선거를 전 국토에서 실시할 수 있습니다.”

선거.

1933년의 총선거.

모두가 그 단어에 긴장한다. 여기 있는 누군가는 총선거 이후로도 계속 의원으로 앉아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누군가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얼굴들도 나타날 테고, 야당과 여당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선 새로운 세력균형을 위한 몇 가지 정쟁과 제휴가 반복되겠지.

미리안은 어떨까.

당당하게 제국입헌당의 승리를 이끌 수 있을까? 그녀가 지난 3년간 보인 성과, 그리고 국민의 인기와 황제의 지지를 생각하면 꽤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태사로 선출되긴 하겠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제국최고회의 의장을 겸임하려 들까? 아니면 그녀의 말처럼 둘을 분리하여 진정한 ‘개혁’에 나설까?

그런 의문에는 누구도 답해줄 수 없었다. 의원들이 잠깐 내년 총선거에 관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리안의 말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이러한 원칙을 고려의 국경 너머, 다이온 전역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관습은 민족 간 차이를 부각하고, 각자의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속에서 내려온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관습과 믿음을 버렸습니다. 이제는 각 민족이 다이온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이성적인 판단, 그것이 결국 모든 민족의 번영을 가져오리라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다이온 전역의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리안은 숨을 들이켠다. 지금부터 할 말은 앞의 말보다 충격이 클 것이다.

“저는 연방헌법을 만들자고, 그 연방헌법에 기초하여 다이온 구성국과 제민족이 공존하는 체제를 수립하자고 게레센제 카간과 몽골 정부, 다이온 구성국 각국에 제안합니다.”

의원들은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관련 자료를 전달받지도 못했고, 지금껏 고려에는 없던 개념이었으니까.

하지만 ‘헌법’이라는 비교적 익숙한 단어의 개념을 되짚고, 거기에 ‘연방’이라는 말을 덧붙여보면서 의원들은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작은 체구의 여자, 그러나 그들 중 누구보다도 거인인 자가 얼마나 원대한 계획을 품었는지 깨달았다.

경악하는 자, 찬탄하는 자, 의심하는 자, 비웃는 자, 두려워하는 자, 감격하는 자가 모두 저들 무리 속에 뒤섞였다.

리안은 이 임시 의사당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좁다고 생각했다.

의사당 건물은 아직도 공사 중인 데다, 다음 총선거 이후에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는 이 좁은 곳에서 숨이 턱 막히는 인간 무리의 감정 덩어리와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온다.

아니, 넓은 곳으로 옮긴다고 이 답답함이 사라질까.

결국 최고권력자로서 살아가는 한, 평생 외면하지 못할 답답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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