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혁명(1)
“토벌 완료. 이것으로 그 길었던 한족 반란도 끝인가.”
동명역에 내리자마자 리안을 맞아준 건, 키타이와 낭키아스, 그리고 역외사국 각지에서 올라온 보고였다.
“저항이 거셌으나 아군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라.”
보고에 올라온 짧은 한 줄이었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리안은 잠깐 눈을 감았다.
“저항이 거셌다는 건, 그들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마지막 한 사람의 목숨까지도 짜냈다는 말이겠지.”
“아군의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말은 압도적인 전력 차가 있었다는 뜻이겠죠. 그런 결의와 저항이 무의미해질 만큼.”
태사를 맞이하러 나온 감찰국장이, 어느새 리안의 곁에 와 서 있었다.
그는 태사부의 여러 보좌관이나 경호원들 틈에 조용히 섞여 있을 뿐이지만, 모두가 태사의 최측근에게 어떤 대우를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들은 주견하와 미리안이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주변을 호위하듯 감싸며 앞으로 나아갔다.
리안은 견하의 말에 눈을 떴다. 그의 목덜미에, 턱에, 입술에, 볼과 코에, 눈꺼풀과 이마에 입맞춤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 대신 끄덕임으로 대답했다.
실로 처절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비참한 전장이기도 했을 거야.”
어떻게 죽어갔을지 상상된다.
고려를 저주하고, 몽골을 저주하고, 다이온을 저주하고, 뜻을 함께하지 않는 동포들을 저주하고,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육체를 저주하고, 더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은 하늘을 저주했을까.
그리고 그 저주를 비웃기라도 하듯 폭탄이, 혹은 폭탄에 맞아서 튄 돌덩이가 그들에게 쏟아져 숨통을 끊어냈을까.
혹은,
“숭고하게 죽어간 사람도 있겠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 모두가 그걸 알면서도 최후의 전장으로 집결했다.
그 전투에서 이기고, 그 승리를 바탕으로 한족 독립 국가를 수립한다는 짜릿한 역전.
그런 상상을 품은 인간은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남은 동포들이 그 자리에서 싸우다 죽어간 자신들을 잊지 않길 바랐을 거예요.”
미래의 독립을 위한 씨앗을 뿌린다는 기분으로.
“한바탕 멋지게 살다가 간다고 생각한 인간도 있지 않을까.”
그 말은 효윤이 꺼냈다. 리안은 효윤과 견하, 둘 모두를 향해 끄덕여 보였다.
“그래, 허동주처럼.”
허동주를 죽인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니 다들 표정이 좀 더 진지해졌다.
견하가 그 상황에서 제대로 본 게 맞다면, 허동주는 도주를 단념하고 견하의 칼을 받아내겠다는 듯 가슴팍을 내놓았다. 견하는 망설임 없이 기갑사의 칼로 그 흉곽을 뭉개버렸고.
죽음도 패배도 피할 수 없는 싸움에서, 어떤 종류의 인간은 숭고해지기도 한다는 걸 견하는 알고 있다.
그 숭고가 새하얀지, 아니면 새카만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리안은 화제를 바꾸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어떻게들 죽었든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야. 실제로 미래의 독립을 열망하며 숭고하게 죽었어도, 우리는 그들이 그저 넝마가 되었다고 발표해야 해. 허동주의 시체를 내걸었던 것처럼 말이지.”
리안이 전시했던 허동주의 시체. 그것은 썩을 대로 썩어가다가 결국 불에 태워졌다. 강이나 바다에 흩뿌리지도 않고, 그냥 군용 트럭이 돌아다니면서 아무 데나 마구 뿌려댔다.
그 누구도 특정 장소에서 허동주를 추모할 수 없도록.
한족의 패배, 고려와 다이온의 승리는 한족에게 좌절과 동시에 순응을 알려주는 용도로 쓰여야만 한다.
“그들이 얼마나 용기를 보였든, 얼마나 잘 싸웠든 상관없어. 반란군은 제압되었다. 그 한 줄로 끝날 거야. 나는 압도적 승리의 영광만, 우리 고려의 국력이 우월함을 증명하는 또 다른 사례만을 제국최고회의에 보고할 테고.”
태사는 곧바로 제국최고회의로 향하진 않았다. 아무리 고려의 최고 권력자라고 해도, 지켜야만 하는 절차가 있기 마련이다.
아니, 그런 절차를 지키기에 최고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황궁에서 폐하가 기다리십니다. 알현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견하도 방금과는 달리 격식을 갖춘 어조로, 황궁으로 향할 것을 상신한다.
리안은 그 말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태사의 권위와 신하의 도리, 의장으로서 제국최고회의에 보내는 양해 모두를 구했다.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제국최고회의에서 추대한 태사. 이 태사는 단순한 신하가 아니라 국민의 뜻에서 비롯된 권위가 있음을 밝힌다.
그러나 분명 신하이기에 제국최고회의에 나서기에 앞서, 황궁을 먼저 찾는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제국최고회의 전 황제를 먼저 알현함을 의원 모두가 납득케 한다.
행위 하나에 담긴 복잡하고 미묘한 의미들.
직설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리안에겐 썩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감수하기로 한다. 이런 복잡함은 그저 허례허식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제국의 모든 세력이 미묘한 균형을 잡아가고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제국은 안정되어 가고 있다.
그 사실에 뿌듯함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걸 느끼며, 리안은 황궁으로 향했다.
***
황제와 나눌 대화는 정말 형식적인 것뿐이었다.
루우는 견하가 말했던 ‘한족 개념 분할’을 설명할 때가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리안의 보고를 듣기만 했다.
리안의 입장에서도 이 자리는 군주께 개봉회담의 성과를 아뢰는 자리였지, 자신의 「대타협 계획」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는 간결하게 끝났다.
다만,
“바이다르 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리안은 앞선 대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그렇게 툭 던졌다.
“바이다르……?”
생각 저편으로 미뤄두었던 문제라 루우는 곧장 답을 꺼내지 못했다.
리안도 당장 답을 요구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덤덤히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말했다.
“나는 친척이 없어. 아버지 쪽이든 어머니 쪽이든 먼 친척을 찾아보면 누군가 있긴 하겠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친척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겠지. 내가 그들을 모르듯이 말이야.”
“그러니까 태사 말은, 사촌 동생인 바이다르를 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물론 개인적인 궁금증에서만 그치진 않을 거야. 황제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따라, 내가 취할 행동도 달라지겠지.”
리안은 그 행동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루우도 굳이 묻지 않았다. 섣불리 물음을 던졌다가 자신과 견하가 꾸미는 책략이 리안 앞에 전부 까발려지는 건 바라지 않았으니까.
루우에게 있어 바이다르, 라…….
어렸을 때는 귀여운 사촌 동생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이 몽골의, 다이온의 카간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지 않나?
지난번 칸발리크에서 바이다르를 만났을 때, 오랜만에 사촌 동생을 만났다는 반가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 반가움보다는 ‘좋은 기회가 왔다’는 환희가 더 강했다.
숙부들과의 관계는 극심한 경쟁의식으로 뒤덮여 있지만, 바이다르는 아니다. 그 아이가 언젠가는 루우의 카간 계승에 위협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촌 누나로서 품은 마지막 애정일까.
아니면 적조차 되지 못하는 나약한 자에 대한 멸시일까.
“……모르겠어.”
루우는 리안의 앞에서 솔직히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거든.”
리안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안도했다.
루우가 카간이 되는 과정에서, 울제이는 몰라도 게레센제는 확실히 배제될 것이다. 피는 흘리지 않겠지만, 게레센제는 아마 상황(上皇)이라는 이름만 달고 유폐된 채로 생을 마감하겠지.
그 과정에서 게레센제의 아들 바이다르는 어떻게 될까.
바이다르 역시 루우에겐 위협이고 제거 대상이라면, 리안은 그 소년에게 한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
낭키아스를 포함한 다이온 구성국들의 주권을 지켜주겠다는 선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바이다르를 ‘낭키아스를 통치하는 선에서 만족하도록’ 억누를 수만 있다면, 루우가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면 희망은 있다.
자신의 「대타협 계획」을 계속 진행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든다.
“그럼, 이만 제국최고회의에도 얼굴을 내밀어볼까.”
루우는 떠나려는 리안을 보며 「대타협 계획」에 대해 뭔가 말을 꺼내 볼까 했다.
리안은 분명 제국최고회의에서 개봉회담의 성과, 한족 반란 토벌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대타협 계획」의 첫걸음을 내딛겠지.
그 둘은 「대타협 계획」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니까.
하지만 황제는 역시 입을 다무는 게 낫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리안이 어떻게 「대타협 계획」을 밀어붙이는지 지켜보도록 하자.
***
제국최고회의에서도 일단 지난 일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리안은 키타이 파견군과 낭키아스 파견군의 해외 주둔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장은 해외 주둔 제한법의 적용을 받겠지만, 향후 한족 관리 특구와 관련된 법안이 상정되면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한족 관리 특구’라는 말에 의원들이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그저 반란군으로부터 탈환한 지역이 안정될 때까지 실시하는 군정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향후 고려, 더 나아가 다이온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겠지. 즉 미래에 펼쳐질 정책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처음 해외 주둔 제한법을 의결할 때는, 고려의 영토확장을 더는 바라지 않았고, 대공황으로부터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주력해야 했던 사정이 있었습니다. 키타이 및 낭키아스 파견군을 편성한 것도 빠른 시일 내에 동아시아의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함이었지, 새로운 영토의 정복을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과연 그럴까, 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의원이 몇 명 있다. 리안도 그들이 미처 감추지 못한 표정을 읽는다. 그러나 그런 냉소에 반응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오오 그러셨군요’라는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니니까. 설령 리안 자신이 고려의 영토확장에 미친 정치가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상관없다.
그건 그것대로 ‘영토확장을 바라는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들일 테고, 또 그 지지를 동력 삼아 리안은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테니.
그렇다. 중요한 건 리안이 이 자리에서 꺼낼 정책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몽골 내전에서 한족 반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혼란 속에서, 우리 고려는 ‘고려 내부를 전쟁터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부의 안정에 힘을 쏟아야만 했습니다. 안정은 적을 물리치는 것만으로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안정을 유도해야만 찾아옵니다.”
몽골 내전이 끝난 후 그 지역의 안정을 위해 카라코룸 특구를 만든 것과 같이, 한족 반란을 제압한 뒤에는 한족 관리 특구를 만들어야만 한다, 는 게 리안의 논지였다.
“지금 우리는 다이온이라는 큰 울타리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즉 이제는 우리의 국토를 방어하듯 다이온의 강토를 방어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울타리에서 공존하게 된 민족과 나라들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을 해야 합니다. 여러 의원님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족 관리 특구법을 다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