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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44화 (344/541)

주권선과 이익선(13)

“칸발리크의 기존 정치 세력도, 동명의 정치 구도에서도 벗어난 태사만의 공간을 만들 셈인가.”

혹은, 태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 셈일지도 모르지.

카라코룸에서 그는 미래의 태사를 꿈꿀지도 모른다. 현 태사 미리안의 연인이니, 언젠가 남편이 되어, 자연스레 태사까지 올라가는 꿈.

3년 만에 평범한 소년에서 여기까지 성장한 인간이다. 그런 야심을 품고도 남는다.

“허나 정치적 목적 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천도를 감행할 순 없을 텐데.”

국민들은 결국 ‘막대한 비용을 들여 천도를 감행한 만큼의 성과’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이다.

“물론 카라코룸의 입지 조건이 나쁘진 않다.”

예케 몽골 울루스의 카간들이 수도로 삼았던 땅이다. 허투루 고르지는 않았다.

여기 와서 행정장관으로 있으니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세계를 다스리고자 했던 자들의 수도였다.

동으로는 고려, 남으로는 화하, 서로는 페르시아와 루스에 이르기까지.

사방으로 통하는 교통로 한가운데에 자리해 문물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는 처음으로 원시적인 철도가 들어설 때 다시 한번 입증되었고, 죽은 시레문 카간은 현대적 철도망 확충으로 카라코룸의 가치를 또 한 번 증명하려 했다.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미리안과 주견하가 이곳을 수도로 삼는다면 시레문의 정책을 계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물류 중심으로 만들려 하겠지.

“허, 그래서였나.”

동명에서 카라코룸으로, 칸발리크에서 카라코룸으로. 동쪽 바다로 나갈 철로의 신설과 확충.

철도성의 임병욱, 서부군과 그 배후에 있을 외무성의 조유관, 제국정보사령부의 고태용…… 이렇게들 원철의 사업에 달려드는 이유는 단순히 철도망이 확장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예정이니까. 앞으로 십수 년 뒤의 미래까지 내다본 투자군.”

류성일 자신도 카라코룸은 어디까지나 고려가 몽골 영토 한가운데에 박아놓은 거점, 알타이 자유공화국의 무리를 완전히 평정하기 위한 방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철도의 확장도 고려군이 비상시 몽골에 빠르게 개입하기 위함이라고 여겼고.

하지만 아니었다.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한 철도망 확충.

이는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다이온이라는 제국의 체제를 완전히 개편한다는 의미였다.

“남쪽의 키타이와 낭키아스도 마찬가지겠지.”

그저 한족 반란을 억누르고 군의 이동과 보급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키타이와 낭키아스도 최종적으로는 ‘카라코룸을 수도로 한’ 단일 다이온 제국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카라코룸은 그 모든 과정을 통솔하고 마침내 통합된 제국 전역의 혈관이 모이는 심장이 되리라.

“허나 그렇게만 흘러갈까?”

입지가 나쁘지는 않다고 해도 칸발리크나 동명에 비하면 여러모로 불리하다. 철도망 확충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동명과 칸발리크 모두 바다에 가깝고, 특히 동명은 요하라는 큰 강까지 끼고 있어 산업 발달에 더욱 적합하다.

물론 카라코룸도 오르혼강을 끼고 있긴 하다.

그러나 카라코룸은 너무…… 춥다. 다른 두 수도에 비해 바다에서 멀기에 더욱 그러하다.

수운의 활용은 어렵다. 게다가 지금도 조드 빈민들을 수없이 얼어 죽게 하는 추위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들어올 수많은 시민들의 체온을 유지하려면 난방 설비의 규모를 더더욱 키워야 한다.

“그런 과제들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여기에 올 이유는…….”

류성일의 눈이 다른 자료로 향했다.

「화림 계획」이 대체 ‘왜 필요한가’를 논하는 자료들.

처음에는 몽골과 고려의 정치지형을 벗어난 새로운 수도의 필요성이나, 양국 통합의 상징성을 논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논조가 다소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즈텍 내전 이후 달라졌다.

당장 서쪽에서의 위협은 크지 않다고 봐도 좋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력은 고려나 몽골을 위협할 게 못 된다. 오히려 이들은 바라트와 다이온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준다.

로마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아직까진 고려와 다이온에 우호적이다.

바라트가 위협으로 떠오를 순 있겠지만 둘 사이엔 거대한 티베트 고원과 거기서 갈라진 다른 산맥들이 가로막고 있다. 그들이 고려나 몽골의 수도를 타격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게다가 최근엔 고려와 바라트가 ‘세력권 분할’을 합의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서쪽 또는 서남쪽의 위협은 가장 먼저 염려해야 할 대상은 아니겠지.

하지만 동쪽의 사정은 다르다.

“언제 어떻게 내전이 마무리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입할 수도 없다. 몽골처럼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 관계가 밀접해 개입할 수 있는 명분도 없다. 게다가 고려는 지금 다이온 체제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자료들은 이렇게 말한다.

……향후 다이온의 수도를 동명에 둘 경우, 고려가 손쉽게 다이온의 중심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려인 모두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동시에, 다이온을 구성하는 제민족의 이익이 고려로 집중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는 제민족의 반발, 특히 식민화될 이유도, 2등 국민 취급을 받을 이유도 없는 몽골인의 반발을 살 것이다. 게다가 다이온은 역사적으로 몽골인의 주도로 건설된 국가다. 고려의 주도권 독점은 일종의 찬탈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칸발리크를 연방의 수도로 정한다면 정확히 반대되는 일이 일어난다. 고려국민들은 ‘왜 굳이 고려가 몽골의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연방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 연방을 유지해야 할 이유에 의문을 품으면 연방은 해체되고 만다.

따라서 두 도시보다 중립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다이온 예케 몽골의 정통성에서도 어긋나지 않는 도시, 카라코룸이 연방의 새 수도로 적격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온의 통일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 카라코룸으로의 천도가 필요한 이유는 다가오는 위협에 맞서 국토방위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함이다.

아즈텍 대륙의 세력은 세계대전 이래 고려의 우방이었으나, 아즈텍 대륙의 내전 이후에도 우방으로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간의 균형자적 면모에서 탈피, 적극적인 국제문제 개입과 패권 확대를 꾀할 가능성이 더 높다.

어떤 형태의 정권이 아즈텍 대륙에 들어서든, 고려는 극동에서의 이익 수호를 위해 다이온 제민족과의 연대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다이온이 극동 안보에 필요한 이유다.

만약 아즈텍 대륙의 신정권이 극동으로의 침략을 시도할 경우, 극북 지역에서의 전투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기후와 보급 등의 이유로 아즈텍 신정권은 일본 침략을 우선할 것이다.

이때 일본이 다이온과 동맹을 맺거나 다이온 연방에 가담, 우리가 일본 열도를 무대로 한 방어전에 참여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양상의 전쟁이라 할 것이다. 병력과 물자의 손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산업시설과 비전투 민간인은 온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낙관적 전망만으로는 향후 극동의 위기에 대처가 불가하다. 일본이 항전하지 않고 아즈텍 신정권에 정치적으로 굴복하기로 결정할 경우, 즉 아즈텍 신정권을 등에 업고 고려 및 다이온과 대결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일본이 다이온의 영향권 아래 편입되는 것을 우려, 주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다이온의 도움을 완강히 거부하고 단독 항전에 돌입하는 경우를 가정해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아즈텍 신정권의 침공군에 더해 일본군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이 가중된다. 후자의 경우엔 아즈텍이 패퇴한다면 가장 좋은 결과라 할 수 있고, 설령 일본이 패배하여 아즈텍 신정권에 정복당한다 해도 침략자들은 재정비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잠깐의 유예에 불과하다. 재정비를 마친 아즈텍 신정권은 다시금 고려 및 다이온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노릴 것이라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 수도의 기능이 동명 또는 칸발리크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전쟁 수행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고려 또한 세계대전 이후 대양해군 건설을 향해 힘을 쏟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목표의 완수는커녕 일본이나 아즈텍의 해군에 크게 미치지 못함 역시 사실이다.

즉 어떤 경우든 칸발리크와 동명의 앞바다를 지키기 위한 해전에 임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 해전에 패배하여 적이 상륙을 시도하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선 동명이나 칸발리크가 직접 적의 포화에 노출, 전장이 되어버린다. 두 지역을 수도로 삼은 상태라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동명을 계속 수도로 삼고 있을 경우, 동명의 주변부, 즉 고려 본토가 더 많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고려가 계속해서 다이온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고려 본토를 향한 적의 타격은 줄여야 한다.

동명과 칸발리크의 기능 전체를 옮기진 못할지라도, 천도를 통해 그 기능 일부나마 카라코룸으로 이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라코룸은 전쟁 발생 시 ‘항전 수도’로서의 기능을 하며, 설령 동명 및 칸발리크가 함락되는 사태가 발생해도 지형, 거리, 요새화를 통해 카라코룸에서 적의 공세 종말을 기다리며 저항할 수 있다.

혹은 적이 거리상으로는 가까운 북극을 관통하는 무모한 작전을 시도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계획은 산업화한 수도로서 카라코룸의 건설을 지향하는 것을 넘어, 고려인의 대규모 이주, 정착, 예상되는 모든 침공로의 요새화까지 망라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몽골 내전 당시 카라코룸 공략전을 참고할 것이며……

딱 거기까지 읽고, 류성일은 눈을 들었다.

피로가 몰려온다.

동시에 돌파구를 발견했다는 흥분도.

“주견하 국장의 노림수가 이러하다면, 나도 카라코룸이 마냥 ‘유배지’라고만 생각해선 안 되겠군.”

다소 뻔뻔하지만, 이라 덧붙이며 류성일은 의자 등받이에 온몸을 맡겼다.

주견하는 카라코룸을 유배지가 아니라 제국의 수도로 삼을 생각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변방의 행정장관이 아니라 새 수도의 초대 시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주 국장의 계획에 편승해서 살아남는다.”

자신을 여기로 ‘유배’ 보낸 미리안 태사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고태용이 그러하듯 주견하와 ‘합작’을 할 수 있다면 주견하의 보호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주 국장의 마음에 들어볼까.”

류성일은 주권선이니 이익선이니 하는 논의까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여기 카라코룸에서, 그는 다이온 연방이 아닌 대원황국으로 가는 길을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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