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선과 이익선(12)
기책이 필요한 전투는 아니었다.
깎아지른 듯 높은 산, 한족 반란군 최후의 부대는 그 위에 뭐든 끌어모아 요새를 만들었다.
쫓기고 쫓겨서 이곳까지 왔지만, 그래도 정말 최후의 역량을 모은 것인지 규모는 여전히 방대하다. 토벌군이 함부로 보병을 올려보냈다면 그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막대한 피해만 입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곳은 반란군의 마지막 산이다.
토벌군도 모두가 집결했다. 고려의 키타이 파견군과 낭키아스 파견군, 키타이군, 낭키아스군과 몽골군 모두가 이 마지막 토벌 작전에 동원되었다.
모처럼 집결한 대규모 부대이니만큼, 과감한 기동전을 구사. 산맥의 틈새로 파고들어 적의 퇴로를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산맥을 타고 또 어딘가로 도망간다는 선택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안 그래도 깎아지른 절벽을 더 깎아야 한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하군요.”
우흥섭 대장은 그렇게 감상을 말했다. 저 반란군에 대한 동정심은 없었다. 그저 이 절경을 훼손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플 뿐.
그도 세계대전을 겪은 장교다. 그에게 한족 반란군은 그저 뻔뻔한 요구를 해오는 도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적절한 무기와 훈련, 체계를 갖춘 극히 위험한 도적.
“경치도 경치지만, 항공기 폭격이든 포격이든 효과는 그렇다 쳐도 진격로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장해진의 말이다. 우흥섭은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산을 공격한다면, 병사들은 ‘등산’의 부담까지 짊어진다.
고대의 어떤 장군이 산에 진을 치자, 적은 아래에서 식수를 끊어 적이 스스로 괴멸하길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선 그렇게 시간을 들인 작전을 쓰기가 곤란하다.
비용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한족 관리 특구 설치 문제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산을 깎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너뜨린다는 각오로 화력을 퍼부으면 어떨지.”
어마어마한 산불이 날 테고, 이 주변의 자연환경은 수십 년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될 것이다. 그러면 이 지역 주민들은 원망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한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부담이 크다.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선택지밖에 없다면, 장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모할 정도의 ‘결단’이다.
훗날 두고두고 전쟁 사가들의 펜 끝에서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말이지.
두 장군뿐만 아니라 합동사령부의 장성 모두가 동의했다.
곧바로 폭격기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거대한 무언가가 낙하하며 공기를 가르자, 소름 끼치는 소리가 한족 반란군의 고막을 때렸다.
단련될 대로 단련된 반란군 병사들은 곧바로 몸을 움직여, 숨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숨었다.
미리 파 둔 굴이나, 원래 있던 동굴로 들어가는 자들도 있다.
먼 적진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굉음과 진동이, 산을 뒤덮었다.
아예 희생자를 내지 않을 순 없었다. 누군가는 몸에 붙은 불을 어쩌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다 성대마저 익어 쓰러지고, 또 누군가는 바위에 몸 일부가 깔려 꽥꽥 소리를 질러댄다. 그 병사의 곁으로 누군가 달려가 심장에 칼을 꽂아 편하게 해준다.
항복하는 자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서서히 희생자를 내다 다들 죽겠지만, 반란군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이미 각오를 굳혔다.
제공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머릿속에서 밀어내야 하는 반란군은, 더더욱 비참한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런 적의 기세를 보고 연합군 사령부의 누군가 ‘옥쇄’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우흥섭과 장해진을 비롯한 고려군 장교들이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옥같이 부서진다니!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 마시오! 저들은 옥이 아니오! 미련하게 죽어가는 비적 떼에 불과하오!”
절대로 숭고한 죽음으로 치장되지 못하게 하겠다, 그런 각오가 느껴지는 호통이었다.
반란군이 각오를 굳혔다 해서 토벌군의 각오가 무뎌지진 않는다.
죽을 각오를 했다면, 죽여 줄 뿐이다.
포격이 쏟아졌다.
다시금 바위가 무너지고, 나무가 부러지고, 불이 타오르고, 흙먼지와 쇳조각과 사람 조각이 함께 튀어 오른다.
“제대로 맞았군!”
장해진은 기쁘다는 듯 그렇게 외쳤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반란군의 탄약고라도 맞춘 것인지,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멈추지 말고 계속 포격하라. 그 많던 탄약이 다 바닥나는 바람에 본국에서 ‘함부로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추궁이 들어올 정도로 계속 쏴라!”
포격은 정말로, 산을 무너뜨릴 기세로 이어졌다.
낮에도, 밤에도 끊이지 않고 계속.
물론 폭격기를 조종하는 것도, 포를 쏘는 것도 사람의 일이라, 휴식은 필요했다.
그래서 포격이 멈춘 사이, 그간 휴식을 취하던 보병대가 움직였다.
야습이다.
하지만 야습은 산기슭에서 마주친 반란군과의 교전으로 끝나버렸다. 적도 야습을 대비는 했겠지만, 그래도 틈이 있을 테니 산속으로 어느 정도는 진입할 수 있으리라 보았는데.
토벌군 보병들은 꽤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야간이라 반란군 측에서는 피해가 얼마나 나왔는지 추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령부는 이를 좋은 신호로 받아들였다.
“식수나 식량 확보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산 아래로 구하러 내려왔던 게 아닐지.”
“식량보다는 식수 쪽 문제라면 좋겠군. 식량이야 풀이라도 뜯어 먹으면서 버티겠지만, 식수는 사흘만 공급이 안 되어도 끝장 아닌가? 움직일 수도 없을걸?”
“뭐 오줌이라도 받아 먹어가며 버틴다면 꽤 버티겠습니다만.”
“그래도 한계는 명확하네. 배탈이라도 나 봐. 폭격보다는 탈수로 죽는 인간이 더 많이 나올 테니.”
“그럼, 이번에 보급 확보가 좌절되었으니 적의 사기는 꽤 떨어졌겠군요?”
다들 그 지적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몰아붙여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적을 끝장낼 마지막 공세.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보병으로는 좀……”
토벌에 성공한다 해도 막대한 피해를 내면 본국에서도 추궁할 것이다. 여론도 나빠져 전쟁영웅이 아니라 무능한 장교로 귀국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한족들 사이에 ‘신화’를 남긴다.
비록 졌지만, 처절하게 의기를 보이다 죽어갔다고.
죽어가면서도 이민족 군대에게 막대한 피해를 남길 정도로, 용감하게 싸웠노라고.
그런 신화가 남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제2의 ‘애산’이 되게 할 수는 없소.”
몽골 측 장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애산 신화를 발작적으로 싫어했다.
몽골의 공세에 맞선 송나라 최후의 장렬한 전투.
어린 마지막 황제는 신하의 등에 업혀 바다에 빠져 죽었다 한다.
그 전투로 송나라는 완벽하게 멸망했지만, 그러나 생존자들은 대를 이어 애산 전투의 신화를 전하고 전해 마침내 한족 반란의 불길로 피워올렸다.
그 반란의 불길로 몽골은 남쪽 영토 대부분을 잃고, 칸발리크와 카라코룸까지 함락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그 악몽은 태평천국으로도 재현되어, 지금 이 한족 반란에 이르기까지 몽골인들의 기억을 짓누르고 있다.
“물론입니다. 애산이 되진 않을 겁니다. 애초에 산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까.”
그 농담에 모두가 껄껄 웃고 나서, 다시금 공격이 시작되었다.
폭격, 포격.
그리고 아껴뒀던 기갑사가 산을 오른다.
기갑사의 구동음은, 줄인다고 줄여도 시끄럽기 때문에 야습으로는 부적합했다. 그래서 이렇게 낮에, 선봉으로 세운 것이다.
순조롭게 산을 오른다. 이제 적에게 접근하면 일방적인 도륙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령부의 장교들이 미소 지은 그때,
의도치 않았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산의 밑동이 터져나간다.
“뭣…… 아군의 오폭인가?”
“아닙니다! 아군 포병은 지금 휴식 중이라고……”
“그럼 대체……!”
대부분의 기갑사는 자력으로 빠져나왔지만, 희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무너진 바위가 기갑사를 덮쳤다. 기갑사의 위력은 바위를 가를 정도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끝없이 쏟아지는 바위 밑에서 기갑사는 무참하게 찌그러지고, 마침내 그 속에 든 이단까지 비명을 지르며 터져나갔다.
그제야 연합군 사령부는 지난밤 적이 산기슭으로 내려와 뭘 했는지 눈치챘다.
“폭탄을 설치했나!”
초보적이라면 초보적인 술책. 산악로에서 적의 진격을 막기 위해 폭탄으로 바위를 무너뜨리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만이 토벌군의 눈을 가렸었다. 승리가 코앞에 있다며 방심했었다.
손실 자체는 크지 않다. 그러나 그 뒤로 얼마나 많은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는 감도 오지 않는다.
“폭격을…… 계속하라.”
“어차피 격추될 우려는 없습니다. 조종사의 피로가 문제지만 그들도 이 정도 혹사는 견디도록 훈련받았으니까요.”
“……본국에도 추가 탄약 보급을 요청합시다.”
자신들에 대한 실망, 그리고 적에 대한 분노.
토벌군 연합사령부는 보다 신중하게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말은 곧, 더욱 철저한 반란군의 죽음을 의미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남겨놓지 않겠다는 듯 폭탄이 쏟아졌다. 정말로 다 태우고 나서도, 적이 아예 전멸해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 그림자 비슷한’ 게 보이면 일단 부숴버렸다.
보병이 나아간다.
일부는 화염방사기를 짊어지고 나아가, 틈이란 틈에는 모두 불을 쏟아 넣었다. 얼핏 비명이 들린 듯도 했지만, 병사들은 피곤한 표정만 지을 뿐 묵묵히 그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마침내 반란군 최후의 사령관이 묵던 토굴에서, 파편에 맞아 죽은 지 한참은 되어 보이는 시체를 발견했을 때, 모두가 허망한 얼굴로 무기를 놓거나 주저앉았다.
전투는 끝났었다. 그것도 꽤 전에.
적에 대한 경의도, 분노도, 죽어간 전우에 대한 슬픔도, 무엇 하나 남기지 않은 그 전쟁이 드디어 그렇게 끝났다.
***
“「화림 계획」이라.”
감찰국장도 재미있는 걸 만들었군.
위험을 감수하며 아직까지도 류성일에게 협력하는 충직한 사람들이 전해준 자료들. 도대체 원래 어떤 맥락이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두서없이 전달된 그 자료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다가, 류성일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향후 고려와 몽골의 동군연합이 성립하면 수도를 카라코룸으로 옮길 생각이었다니.”
동명에서도, 칸발리크에서도 벗어난 곳.
거기서 아예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 했나 보다.
“수도가 국가 전체를 대변하지는 못하는 법이지만, 수도의 분위기는 국가의 많은 것을 좌우하지.”
수도에 집중된 인구는 그 수도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지방에서 상경한 자들도 고향의 정체성을 지키기보다는 그 새로운 분위기에 녹아든다.
인구와 함께 집중된 경제 및 산업은 그 분위기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수도에서 유행한 문화가 전국으로 퍼져나가듯, 수도의 성질은 전국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새로운 수도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워진 국가를 장악한다. 원대하고도 멋진 구상일세, 감찰국장.”
멀리 떨어진 본국에 있을 주견하가 그 혼잣말을 들을 리 만무하건만, 류성일은 말이라도 걸듯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성장, 그 교활에 대한 감탄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