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선과 이익선(11)
‘한족 반란군’이라 통칭하긴 하지만, 그들은 통일된 집단이 아니었다.
반란의 확산 범위가 대륙을 뒤덮을 듯 넓었고, 한족의 인구 때문에 그 규모가 컸을 뿐.
각 지역의 반란군이 ‘총사령관’을 추대한다는 형식적인 합의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진압군의 반격에 무너져갔다.
장비와 훈련 면에서 모두 열악했기에 더더욱 통일된 명령체계가 필요했는데도, 그들은 갖추지 못했다.
만약 그런 명령체계를 갖췄다면 활동 지역의 드넓음과 험준함, 갑작스러운 반란을 맞은 적의 혼란을 이용해 꽤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한족 동포들의 민심을 제대로 사로잡을 수만 있었다면 장기적인 저항도 가능했을 터.
“꼭 정부와 국가 체제를 갖추지 않더라도, 하나의 사령부 밑에 반란군을 묶기만 했어도 한족 주민들은 그 체제를 의지했겠지요.”
다행이라는 듯, 키타이 칸의 사령부에서 장해진 대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의지할만한 체제’의 출현을 어떻게든 방지한다는 게 우리의 작전 목표 아니었소?”
울제이는 뻔뻔한 것 아니냐는 농담을 던진다.
장해진은 껄껄 웃으며 그 농담을 받았다.
“그렇지요. 그저 저들이 그렇게 했었다면 얼마나 골치가 아팠을지를 상상해본 겁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마 골치가 아픈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역외사국의 군대는 상당히 약하다. 그건 이번 토벌전을 겪으면서 충분히 느꼈다.
따라서 한족 반란군이 제대로 된 체계만 잡혔다면, 관중에서 파촉, 형초에 이르는 지역에서 주민들의 호응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민들은 민족주의 봉기에 꽤 적극적으로 협력했소. 허나 주민들의 호응을 ‘하나로 묶어서’ 쓰질 못한다면 그저 민족 역량의 낭비일 뿐.”
울제이는 그렇게 냉소적으로 평했다.
“비록 군정이라고는 하나 ‘임시정부’라는 이름이라도 달았다면, 주민을 징발하고 이주시키는 일도 좀 더 수월했겠지요.”
“장 장군이라면 어찌하셨겠소?”
“제가 반란군의 지휘관이었다면…… 글쎄요. 지난번처럼 정면에서 회전으로 붙는 건 피했을 겁니다.”
화포도, 기갑도, 항공기도 부족한 반란군 입장에선 절대로 피해야 할 전장이다.
거기서 엄청난 병력을 소모한 것도, 반란군이 통합된 지휘체계를 만드는 데 실패한 원인이었다.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대승을 거뒀다면, 이기기 어려운 전장에서 방어전에 성공했다면 그 ‘영웅’을 중심으로 뭉치기라도 했을 터.
그러나 반란군은 대규모 회전에서 패배해버렸고, 여기서 입은 피해는 병력과 물자에 그치지 않았다.
“반란군 수장들이 서로의 지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 후 펼쳐진 작전은 모조리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었소.”
장해진은 짧게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이후 적은 관중으로 도망치긴 했습니다만, 쓸데없이 이도 저도 아닌 작전들만 세웠죠. 옛 시대의 관문들이라도 요새화시켜서 써먹었다면 못 쓸 것도 없었겠습니다만…….”
장해진의 말대로, 키타이의 영토인 화북에서 관중 일대로 들어가는 길에는 고대부터 지어진 여러 관문이 있다.
여기에 포대를 설치하는 등의 요새화 노력을 기울였다면 시간을 끄는 정도는 가능했을 것이다.
대공포도 설치했다면 진압군의 공군력에도 대항할 수 있었을 테고.
“하지만 애초에 통일된 지휘부, 임시정부도 갖추지 못했으니 모든 자원을 활용할 수도 없었죠. 그러다 보니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과 물자를 보내지도 못했고.”
의견이 분열되어 있으니 각 반란군 수장들이 알아서 자기가 생각한 요충지를 강화할 따름이었다.
이들 사이의 연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연계가 없는 대규모 군대는 그저 각개격파의 먹잇감이 된다.
장해진의 고려군, 울제이의 키타이군, 여기에 일부 탕구트군까지 합류한 연합군은 관중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당시에는 반란군의 사정이 어떠한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합군은 적이 최선의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으리라 보았다.
때문에 정면에서 요새화된 관문들을 돌파하는 작전은 포기하고, 우회 공격을 택했다.
비록 산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전장을 돌파해야 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적들은 연합군에 각개격파 당했다.
그 결과 관중 분지로 향하는 길을 차단할 모든 요충지가 진압군의 손에 들어왔다.
“그때 반란군이 보여준 판단능력은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소.”
울제이의 말에 장해진도 쓴웃음과 비웃음을 섞은 기묘한 표정을 입가에 올렸다.
반란군은 고대부터 관중 분지의 중심 도시였던 장안에서 항전을 시도했던 것이다.
“저였다면 장안을 포기하고 진령산맥을 넘어 파촉으로 후퇴했을 겁니다.”
“반란군의 판단이 완전히 나빴다곤 볼 수 없소. 거기도 고대부터 쌓아 온 성벽들이 있으니 철저히 요새화만 했다면 공략에 나선 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을 것이오.”
“제공권도 있고, 보급도 갖췄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반란군은 장해진이 말한 요소 중 어떠한 것도 갖추지 못했다.
고대의 아름다운 성벽과 고궁을 파괴하는 건 마음에 걸렸기에, 울제이는 폭격 명령을 망설였었다.
그러나 어차피 한족의 민족 역량을 파괴하는 전쟁이라는 판단이 서자마자, 울제이는 무차별 폭격을 명령했다.
아무리 역사적 의의가 크고 대체할 수 없는 문화유산이라 해도, 한족의 것인 이상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도 상관없지 않나.
울제이의 명령 하나에, 고대의 전각과 성벽은 폭탄에 불타고 허물어져 버렸다.
남은 유적들은 폭격 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만큼.
그리고 진압군이 제압한 모든 경로에서 육군이 쏟아져 나와 관중 분지를 가로질렀다. 그들은 사방에서 장안을 포위했다.
보급마저 끊겼으니 오래 버틸 리 없었다. 그렇게 장안에서 반란군의 전력 상당 부분이 소멸했다.
“그렇다면 장 장군은 전력을 온존한 채 파촉으로 퇴각하는 쪽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거군.”
“그 정도 전력을 끌어모아서 진령산맥을 차단하면, 역시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승산이 있으니까요.”
“남쪽에선 삼협을 틀어막는 건가?”
“그 역시 고대부터 유명한 험지였죠. 장강이야 현대 소형 함정이 오르내릴 수 있다 치더라도, 전쟁을 끝내려면 역시 육군이 가야 하는데, 여전히 어려운 지형이니까요.”
그 밖에도, 라면서 장해진은 의견을 덧붙였다.
“낭키아스 파견군의 우흥섭 대장을 상대하려면, 형초 지역을 빠르게 포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퇴거하진 못하더라도 뽑을만한 병력은 뽑아서, 서쪽으로 가는 거죠. 거기서 설봉산맥을 들락거리며 적을 괴롭히면 방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장안에서 항전하던 반란군이 소멸한 시점에서, 파촉 지역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남쪽도 마찬가지였다. 반란군은 형초 지역의 방어에 집착하다 우흥섭이 기갑사를 꺼내오자 패전을 거듭하고 만 것이다.
아무리 험한 지형이어도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방어 병력이 없는 험지는 그저 힘겨운 등산로일 뿐이다.
장해진은 이 역시 통합된 사령부, 혹은 군정부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전술과 전략보다 더 높은 곳, 대전략의 관점에서 판단하여 포기할 것과 취할 것을 똑바로 지정할 수만 있었어도, 저 정도로 무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엉망인 상황 속에서도 반란군 병사들이 1년 가까이 치열하게 저항해온 걸 생각하면, 제대로된 지휘계통이 확립되었다면 분명 무시무시했으리라.
“하지만 파촉으로 몰린 반란군이 얼마나 저항할 수 있었겠소.”
“글쎄요. 저는 반란군이 최상의 조건에서 파촉으로 집결하는 데 성공한다면 1년 더 저항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울제이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한편으론 장해진의 생각대로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 장군 말대로 1년을 더 끌었다면 정치적으로 꽤나 곤란해졌겠군.”
“아무래도, 여론이 나빠졌겠지요?”
“여론이 나빠지는 걸 넘어서, 아예 그냥 파촉을 한족 독립국가로 떼어주면 어떠한가, 하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었으리라 보오.”
“그런…….”
장해진은 심각한 어조로 말은 하지만, 표정을 보니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지 못한듯했다.
울제이는 딱히 누군가에게 한다는 기색 없이 설명을 덧붙였다.
“한족 독립국가가 선포되면, 옛 태평천국 영토를 지배하는 모든 나라에 위기가 닥치는 거요.”
당장 그렇게 독립한 한족 국가는 잠시 뒤에는 ‘미수복지’ 문제를 끊임없이 걸고넘어질 것이다.
나아가 미수복지의 동포들을 선동해 주변국을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넣으려 온갖 책략을 꾸미겠지.
“다른 지역의 한족들이 그들을 본받아 무장 투쟁에 나서고, 자기들도 독립 국가를 꾸리겠다고 날뛰기 시작하면 우리는 태평천국을 멸했을 때의 수고를 또 해야 했겠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의 주요 전력은 거의 소멸했고, 전쟁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흥섭의 고려군과 낭키아스군은 설봉산맥을 넘어 서쪽의 고원으로 진격. 소도시들을 장악하는 한편으로 남쪽에서 대예와 보우슈엥 군대를 끌어안았다.
그들 모두가 북진, 파촉으로 들어섰다.
장해진의 고려군과 키타이군, 탕구트군이 파촉에 들어서자, 티베트도 일부 부대를 수습해 보내왔다.
여기에 더해 게레센제도 마침내 몽골군을 보내왔다. 그리하여 한족 반란 토벌전은 다이온 연방의 4개국과 역외사국, 총 8개국이 집결한 대규모 연합군의 전쟁이 되었다.
파촉의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 마을 하나까지도 모조리 장악, 반란군의 숨통이 될만한 모든 구멍을 막았다.
반란군도 최후를 직감했는지, 그동안 만들지 못했던 통합 총사령부를 창설, 잔당 모두가 그 깃발 아래 집결했다.
“독립을 꿈꿨다면 진즉에 저렇게들 하지 그랬나…….”
우흥섭은 경멸과 연민을 동시에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저들은 끝날 것이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전쟁의 막이 이제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