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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41화 (341/541)

주권선과 이익선(10)

강태훈과 이야기를 나눌 때와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강태훈 장관도 민간인이지만, 그래도 군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이다. 하지만 조유관은 다르다.

외교와 군.

영역이 다르다.

외교는 함부로 군의 세부 전략에 관여하려 하면 안 되고, 군 역시 외교가 정한 방침에 함부로 이의를 제기해선 안 된다.

그러니, 두 손으로 술을 따르면서 꺼내는 김천열의 질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군인은 모든 방향에서의 전쟁에 대비해야겠습니다만, 그래도 ‘적을 알면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유관은 말없이 술잔을 내밀었다. 김천열은 얌전히 잔을 맞댔다.

동시에 마시고, 한동안 침묵.

“……외무성에서도 전쟁성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효율적인 외교 정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있습니다.”

조유관은 참으로 애매한 말로 답한다. 뭐, 김천열 자신도 그렇게 말했으니, 결국 각자 열심히 해석하는 수밖에.

“군은 아마, ‘말이 되는 전략’을 꾸리고 싶겠지요?”

“그렇습니다. 만사에 대비는 해야겠지만, 그래도 ‘정말 일어날 전쟁’에서 ‘고려의 가용 국력’으로 ‘가능한’ 방어전략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중간중간 힘주어 말하는 단어. 조유관도 군인이었으니만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외무성도 마찬가집니다. 전쟁성을 통한 간접적 협의보다는, 이렇게 현역 군인을 만나서 논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나온 거고요, 라 말하며 조유관은 씩 웃었다. 요즘은 수염을 그나마 보기 좋게 정리해서 입술의 저런 움직임이 잘 보인다.

“……아즈텍 내전이 마무리되면, 신정권은 어떻게 나오리라 보시는지요?”

의식은 끝났다. 이제 슬슬 본론을 입에 담을 차례다.

“어려운 이야기군요. 누가 승자가 될지도 감이 안 잡히는 데다, 요즘엔 유럽 쪽 정세와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의용군’ 파병이 활발하다 들었습니다. 규모가 도저히 의용군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도 합니다마는.”

“혹시 군에서는……?”

의용군 이야기가 나오고 있냐는 물음이다. 김천열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제가 교류하는 장교들 사이에선 아닙니다. 국가의 여력 문제를 떠나서, 유럽처럼 ‘고려군을 불러줄’ 세력이 있느냐의 문제라.”

“그렇죠. 우리가 개입할 명분은 없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을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걸까.

아니면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조유관은 그렇게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아즈텍 대륙의 내전이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외무성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주변국의 정세를 말하는 겁니다. 자세한 말씀은 드리기 어렵지만, 외무성은 그 정도로 대담한 구상은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태사 각하께선 그런 종류의 흉계는 좋아하지 않으시니까요.”

대체 무슨 말일까. 말의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각하께선 ‘동의’를 표하셨습니다.”

“잠깐, 그…… 이해가 잘 되질 않습니다. 대체 무슨 ‘흉계’가 있으며, 태사 각하께서 무슨 동의를 표하셨다는 말씀이신지?”

“아즈텍 대륙의 내전을 장기화할 대책 말입니다.”

조유관은 딱 그 말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몽골의 태사 볼로드에, 고려의 철도성까지 얽힌 일을 김천열 앞에서 주절주절 떠들고 싶진 않았다.

김천열 입장에서도 대답은 그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았다.

내전이 장기화하길 바란다. 즉, 태사부는 아즈텍 대륙의 신정권이 내전 후 위협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충분히 ‘힘을 빼놓으려는’ 것이고.

그런 시각은 외무성에서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확답을 듣지 않을 순 없다. 애매한 말만 듣고 ‘제멋대로’ 판단을 내리고 싶진 않았다.

“전쟁, 일어날 거라 보십니까?”

“바라든 바라지 않든 일어날 전쟁은 일어나겠죠. 그 전에 가능한 덩치를 키워서 상대가 우리를 엿볼 틈을 주지 않는 게 가장 좋겠습니다만.”

“전쟁 상대는 아즈텍의 신정권입니까? 아니면……”

김천열은 침을 삼켰다. ‘아니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조유관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그의 뇌에서 사고가 움직이고 있겠지.

“일본입니까?”

조유관이 눈살을 찌푸린다. 아니, 눈이 한결 날카로워져 김천열을 노려본다.

물론 조유관은 목소리를 부드럽게 유지한다. 이깟 질문 정도로 목소리가 떨릴 위인은 아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전선 돌파는 김천열의 장기다.

“‘주권선, 이익선’이라는 말이 외무성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유관이 뭐라 답하기 전에, 김천열이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덧붙였다.

“일본을 향한 ‘예방전쟁’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저야말로 김 장군이 품은 생각을 알려주시지 않으면 답을 드리기 어렵군요. 그런 질문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럼 제 솔직한 생각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군인들이 폭주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일은 막아야 한다고 봅니다.”

“군인들이 폭주한다……? 그런 자들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김천열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없다는 말씀은 드리기 어렵겠지요. 외무성 쪽에서 일본을 우리의 ‘이익선’으로 설정해두었다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오면, 누군가는 일본 기습과 상륙을…… 특히 아즈텍이 일본을 장악하기 전에 그렇게 한다는 구상을 떠올리지 않겠습니까?”

조유관은 표정을 푼다. 하지만 저 표정은 안도도 뭣도 아니다. 그 역시 군이 이런 반응을 보이리라 예측했다는 표정이다.

“어디까지나 구상으로만 존재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아즈텍 대륙과 일본 사이에선 이렇다 할 교전도 없습니다. 안 그래도 내전으로 피로해진 아즈텍 대륙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도 극히 작지요. 그러니 군에서는 ‘통상적으로’ 존재하는 전쟁 대비다, 정도로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마하려는 말이다. 김천열은 단숨에 꿰뚫어 본다. 물론 조유관도 저런 말로 무마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무마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한 절차일 뿐.

“군에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런 분위기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거나, 그런 군인들이 태사 각하의 귀를 어지럽히겠지요. 저는 그런 사태는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천열은 딱히 정치적 견해가 강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동포끼리 피를 흘린 내전. 그것은 허동주의 허무맹랑한 구상, 고려의 폭력적 확장주의를 저지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내전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단 말인가?

“막아야 하지요. 막아야 하고말고…….”

그렇게 무의미한 말을 중얼거리고 나서, 조유관은 혼자 술잔을 들이켰다.

“그렇다면 외무성 쪽에서도 ‘입단속’을 시키지요.”

***

아마도 김천열은 오늘의 대화에 큰 의미는 없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차에 오르면서, 외무성 장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김천열이 조유관을 향해 어떤 불만을 품기도 어렵다. 조유관처럼 ‘장관’인 사람이 자기 조직의 ‘입단속’을 시키겠다고 말할 정도면, 그런 태도만으로도 많은 양보를 한 셈이니까.

물론 조유관도 김천열의 입장은 충분히 공감하고, 또 어느 정도는 그 생각에 동조도 한다.

그도 허동주나 신수덕 같은 파시즘 성향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그는 과거 ‘고려민국’의 군인이었던 젊은 시절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단은 정권에 들어온 이상 자기 고집만 세울 순 없다. 아니 이미 내무성을 향해 조유관 자신의 ‘고집’을 드러낸 이상, 다른 방향에서는 적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할 수밖에.

양보라고 해야 할까, 타협이라고 해야 할까.

황제의 뜻도, 태사의 뜻도 거스르지 않으면서, 내무성이 지휘하는 경찰 병력에게서 자신을 지켜주는 ‘정치경찰실’과도 협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조유관 자신이 떳떳지 못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안세규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곤 하지만, 범 알타이 인민동맹을 몰래 지원했던 적이 있으니까.

-차라리 그 전에 안세규에게 반기를 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안세규라는 인간이 공화국과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위해 헌신해왔다는 건 자신도 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안세규는 이상과 자신의 권력을 동일시하고 있다. 아니, 이상을 위해선 권력이라는 ‘현실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걸까?

쓴웃음이 나왔다.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지 않나.

안세규에게 반대하고, 안세규를 몰락시키고, 자신이 직접 고려국민당을, 동지들을 이끌고 공화국과 민주주의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면…… ‘살아남아서’, ‘권력을 쥐어야 한다’.

그러니 주견하의, 그 AN연구소인가 뭔가 하는 집단의 계획에 협조한다.

제국입헌당에 가입하지 않고, 고려국민당이라는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양심에 위안을 준다.

“현역들도 마찬가지겠지.”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상을 품은 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내전, 숙군을 통해 일종의 ‘공포’가 심어진 탓이 클 터이다.

공을 세워서 살아남자, 는 사고를 하게 된다.

공을 세우려면 전쟁이 필요하고.

여기에 더해 ‘선출제 장교’에 대한 공포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기존의 장교들은 병사들의 ‘인기 투표’로 만들어진 가짜 장교라며 비웃는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가 우수한 성적으로 사관학교에서 ‘재교육’을 마쳤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계속 그렇게 비웃고만 있을 순 없다.

그들은 출세의 길을 마련해 준 태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 당연히 태사에겐 중용되겠지. 능력뿐만 아니라 충성심이 중요하다는 건, 김천열의 빠른 진급이 보여주지 않나.

그런 초조감이 기존 장교들의 전공에 대한 갈망을 부채질한다.

참으로 우습게도, 선출제 장교들…… 이른바 ‘신진’이라 불리는 자들 역시 병사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공을 필요로 한다.

우리도 뭔가 해낼 수 있다,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몸부림.

그래서 그들도 ‘기회’를 바라게 된다.

대립하는 인간들이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이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아니, 반대로 도저히 웃을 수가 없는 상황일까.

파시즘은 혼자 만들어가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파시즘에 편승한 무리들이 함께 만들어간다.

파시즘을 가동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굴리게 된다.

흐름을 거스를 것인가.

흐름에 편승하되, 흐름의 방향을 ‘부드럽게 돌릴’ 것인가.

전자를 택한다면 아마 황제나 태사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책, 후자를 택해야 한다.

-어떻게 ‘적절한 선’에서 조율할지.

그 적절한 선의 기준이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도 문제다. 김천열이나 조유관의 눈에는 그 선을 넘을까 말까 하는 위기 상황이지만, 아마도 주견하의 눈에는 한계까지 아직 한참 남은 안전지대로 보일 것이다.

“……나도 고민할 수밖에 없단 말이지.”

이러니 김천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모호한 약속밖에 없었다.

차는 출발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조유관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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