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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35화 (335/541)

주권선과 이익선(4)

그렇다면 게레센제가 물러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압박’해야 한다.

신수덕에게 협력했다. 신수덕은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 협력했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은 칸발리트의 비극을 일으켰다.

따라서 게레센제는 선대 카간 시레문의 죽음과, 수많은 몽골군의 죽음과, 칸발리크 시민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질 것인가.

아니면 불문에 부쳐줄 테니, 조용히 물러나 황실의 어른으로 여생을 마칠 것인가.

그렇게 협박할 재료로 써야 한다.

따라서 ‘2차’ 동아시아 협력회의 땐 마카오 이야기를 꺼내면서 에스파냐와 적절한 타협을 봐야겠지.

“한족 관리 특구는 이대로 괜찮을까요?”

“아? 음…… 그래. 이 문제는 복잡하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보고.

답답하지 짝이 없는 역외사국 지도부의 인식 수준.

역외사국의 왕실과 귀족, 고위 관리들은 여전히 근대 이전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국민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가 상당히 퍼져 있었다.

따라서 민족 감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혹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훈련된’ 고려군이나 몽골군이 한족 관리 특구를 맡을 수밖에.

“이 점에선 울제이에게 일부 양보할 수밖에 없었어.”

특히 관중의 화하 특구. 여기는 키타이군이 대규모로 투입된다.

그 외에도 울제이가 ‘원철’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주고, 원철이 놓는 철도를 사용할 때 몇 가지 배려도 해주어야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방 밖의 수행원이 방문객의 도착을 알려 왔다.

효윤도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간이 됐네요. 딱 맞춰서 왔어요.”

“그래야지. 제국정보사령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방문객은 고태용이었다.

늘 그렇듯 대원수를 향한 경례가 올라온다. 리안은 그런 장성을 향해 여유롭게 마주 경례해준다.

고태용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하지만 압도되지는 않았다는 듯 당당하게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 다 어리다고는 해도 대원수와 중장. 상급자다. 예의를 갖추되, 권력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떨기나 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

그랬다간 제국정보사령부에서 일하기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을 테니까.

“이야기는 전해 들었겠지. 개봉회담은 내일로 끝난다. 이제부턴 대원철도주식회사가 해야 할 일이 많고…… 그걸 제국정보사령부가 보조해야지.”

“예. 이미 원철 본사와 공사가 이루어질 각 지역 현장에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각 지역 현장이라는 건 키타이와 낭키아스, 그리고 세 방면의 특구를 말하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제국정보사령부도 여기에 출자를 해서 이익을 거두려는 건 좋아. 예산도 아끼고 스스로 활동 자금도 벌어들이는 셈이니까. 하지만 ‘지나쳐선’ 안 돼.”

고태용은 여기서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침조차 삼켜선 안 된다.

“예.”

태사는 이미 자신과 주견하 사이에 합작이 이루어졌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봐줄 테니’ 선은 넘지 말라는 경고다.

물론 고태용도 조심할 생각이긴 하다. 태사의 진노를 사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하지만 합작을 멈출 생각은 없다.

“울제이 칸도 원철에 투자했다. 원철은 키타이군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경호 제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그 과정에서 부속지 일부의 매입, 막사 건설 같은 일이 있을 거고……. 요는, 충돌하지 말라는 거다.”

“알겠습니다.”

당연히 충돌은 삼가야 한다.

제국정보사령부는 키타이와 대립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개입을 ‘이용’할 계획이니까.

원철의 사업은 이제 다이온 곳곳으로 뻗어 나간다.

한족 관리 특구로도, 곧 연방 가입 절차를 밟게 될 보우슈엥과 대예로도.

원철이 놓은 철도를 울제이가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울제이의 군대도 원철의 철도를 타고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

“고려가 놓은 철도망으로 ‘낭키아스의 응천 정권’과 언제든 접촉할 수 있다.”

‘접촉’이라는 말을, 울제이는 평소와는 다른 의미로 쓰고 있었다.

그냥 들으면 마치 협상을 위한 접근처럼 들리지만, 울제이는 지금 그 말을 ‘간섭’의 의미로 쓴다.

낭키아스의 어린 조카를 붙잡고, 응천 내에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세력에 힘을 빌려주고, 반대파를 몰아낸다.

쿠데타. 정변. 침탈.

울제이는 키타이와 낭키아스를 양손에 쥐고, 다시 한번 형에게 도전할 기회를 노릴 것이다.

“철도가 완성되는 날. 우리 군이 철도를 장악할 준비가 완료되는 날. 그때 천하를 쥘 승부수를 던진다!”

참모들의 결연한 표정을 보며, 울제이는 만족했다.

이번 개봉회담에서 다들 크든 작든 이익을 얻어갔다.

그것은 키타이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아릭부케고 누가 쿠빌라이인지는, 그때 판가름 나겠지.”

***

-울제이의 발악을 유도한다!

개봉, 태사 앞에서 한 남자가,

동명, 감찰국장실에서 또 한 남자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

극도의 긴장감을 요하는 사냥이 시작되었다.

울제이보다 빨라선 안 되며,

울제이보다 너무 느려서도 안 된다.

어떤 순간에는 울제이를 추월해야 하며,

또 어떤 때에는 울제이의 발광을 내버려 둬야 한다.

그러면서도 게레센제나 볼로드가 적절한 때에 절묘한 움직임을 보이길 기대해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공들여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3, 4년 안에!

대륙을 한 번에 뒤엎는 거대한 책략이, 모두의 발밑에서 꿈틀거린다.

오랫동안 첩보를 다뤄왔던 남자도 긴장에 목구멍 안이 사막처럼 말라갔다.

감정이 마모되어 간다던 청년도 압박감에 책상 위로 그저 엎어져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실패하면……?

성공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다. 고려는 한 번에 몽골과 낭키아스와 키타이를 집어삼키고, 게레센제와 울제이를 제거하고, 루우는 통합된 울루스의 카간이 되고, 태사 미리안과 제국최고회의가 다이온을 통치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면…… 다이온 내전이다.

말이 좋아서 내전이지 동아시아 전체를 유린하는 작은 세계대전이 되겠지.

그러니 반드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반격에 맞설 반격을, 배신에 맞설 배신을…… 피를 짜내듯 준비하자.

***

개봉회담이 끝나고, 볼로드는 남쪽으로 향했다.

몽골의 타이시로서, 한족 관리 특구 건설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겠다는 의도였다.

겉으로는.

실상은 바라트의 ‘지원’이 다이온 남서부에서 올라와 북동쪽으로 향하는 과정을 감독하는 것.

“딱히 감독이랄 건 없지만.”

그저 ‘묵인’해줄 뿐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러하다. 나중에 아즈텍 내전에서 호데노쇼니 인민공화국이 패배하고, 승자가 이 문제를 추궁해도 다이온은 모르는 척할 것이다.

“지금은 번거롭군.”

대원철도주식회사의 사업 확장을 ‘묵인’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는 굳이 게레센제의 신원연구회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제국 전토를 누비는 ‘규격이 통일된’ 철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바라트에서 버마를 지날 때, 버마에서 대예로 들어올 때, 대예에서 낭키아스로, 낭키아스에서 키타이, 몽골, 고려를 지날 때마다 철도를 갈아타야 한다면…….”

시간과 비용 소모가 만만치 않다.

물론 열차를 궤간에 맞추는 기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이 오지까지 보급되진 않았다.

“대예나 보우슈엥이 일단 기본적인 인프라부터 갖춰야겠지.”

어쨌든 이런 사정으로 바라트의 지원은 느릿느릿, 조금씩 동북쪽으로 움직였다.

저 물자와 사람들은 얼마 뒤에는 일본공화국 몰래 바다를 건너, 호데노쇼니 인민공화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거면 됐다.

“아즈텍 대륙의 내전이 좀 더 길어지기만 한다면.”

누군가 듣는다면 경악할 말을, 볼로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고 비웃음을 허공에 흘렸다.

“어차피 경제적 타격은 타격이다. 감당해야 할 일이지, 없던 일로 해달라고야 할 수 있나?”

아즈텍을 한 축으로 하던 경제가 무너진다면, 아즈텍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체제를 새로 만들어 비상 가동에 들어간다.

그것이 지금껏 해오던 일이기도 하고.

“문제는 정치다. 누가 아즈텍 대륙의 패권을 쥘 것인가?”

유럽을 등에 업은 ‘신 연방’인가? 호데노쇼니 인민공화국인가? 멕시카 자주국인가?

다른 요소는 생각하지 말고, 최종적으로 내전에서 승리할 확률을 전부 공평하게 3분의 1이라고 가정해보자.

외국에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을 정권이 들어설 확률이 3분의 2.

그나마 온건하게 내전을 수습할 정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3분의 1이다.

“어디에 걸어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나?”

신 연방이 승리한다 쳐도 그들은 바라트의 지원을 묵인한 다이온을 추궁할 의사도 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두 정권도 그러할 것인가?

볼로드는 그래서 계산했다.

“의사를 없애진 못해도 ‘힘’은 없앨 수 있겠지.”

차라리 다이온을 칠 힘 자체가 최대한 소진되도록 만들자는 계산이다.

상대가 무모하게 나오더라도 힘이 이미 소진되어 손쉽게 막히도록.

다이온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몇 명의 외국인들이 희생되더라도 볼로드에겐 전혀 아까운 일이 아니었다.

***

바이다르가 다시 미리안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고려로 출발하기 직전이었기에 리안은 조금 당황했지만, 귀국 시간을 미뤄서라도 바이다르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어쨌든 카간의 아들이고, 낭키아스의 칸이다. 너무 어려 영향력은 아직 미약할지 몰라도 요청을 거부하는 무례를 저지를 순 없었다.

그리고 이 소년이 또다시 자신을 만나 꺼낼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루우를 닮았어.

바이다르의 얼굴을 보고 리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점이 조금 귀엽다. 하지만 그런 호의가 나라 사이의 우호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이번 회담에서 ‘독립 보장 선언’을 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다이온 구성국들의 우호와 번영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을 따름입니다.”

미소 지으며 그렇게 겸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어쨌든 겉치레다. 리안에겐 바이다르 개인보다 바이다르가 차지한 위치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리안에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바이다르의 의도를, 리안은 금방 알아차렸다.

“저, 타이시.”

“예. 말씀하십시오.”

“그 독립 보장 선언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장해줄 방법’도 있는 건가요?”

예상대로다.

바이다르는 보호를 원한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홀로 떨어진 소년이다. 보호자를 찾을 수밖에.

이 소년도 숙부 울제이의 야심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러니 최대한 머리를 굴려봤을 것이다. 역외사국에 자신을 지켜줄 힘이 있을까? 어림도 없다. 낭키아스의 힘만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글쎄…… 자신이 좀 더 성장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지켜주겠지. 울제이를 압박할 것이다. 내전을 감수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울제이도 ‘내전을 감수할지도 모른다’는 점.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울제이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게끔, 아주 강력한 억지력이 필요하다. 바이다르는 그게 ‘고려’라는 데 생각이 미쳤을 것이다.

“제가 태사의 지위, 고려의 명예, 우리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 제국최고회의 의장으로서 국민에게 한 맹세…… 이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리죠.”

리안은 바이다르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불안과 기대가 함께 담겼다.

“고려의 대원수가 전하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다만, 일단 급할 땐 우흥섭 대장을 호출해주십시오. 그와 함께 버티고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가 반드시 전하를 구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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