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34화 (334/541)

주권선과 이익선(3)

“그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어떤가요?”

“역시나 입을 다물고 있다네. 할말은 했으니 됐다는 건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 대화하지 않겠다는 건지, 새로운 대응을 준비하는 건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지.”

애초에 견실한 외교 관계를 쌓고 싶어 하는 나라가 보일 태도가 아니다.

리안이 언젠가 손봐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라고 견하는 실감했다.

“곤란하네요. 일본의 태도가 저래서야 도대체 ‘반감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는데.”

단순한 불만 표현. 이를테면 일본과의 논의 없는 다이온 연방 결성이나 개봉회담 등의 사안에 가벼운 이의를 제기하는 거라면…… 그래도 대화로 풀어갈 방법이 있다.

나중에라도 일본의 의견을 물어보면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해나가면 되니까.

이미 관세동맹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고, 또 이 관세동맹이 대공황 이후 고려와 다이온 경제를 지탱해 왔음이 드러났기에, 일본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여지는 있다.

여기에 더해, 견하는 일본이 다이온 연방과 최소 군사적 동맹에 이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일세.”

걱정을 크게 덜게 되니까, 라고 조유관은 덧붙였다.

“우리 다이온 연방과, 일본이 독자적으로 추진한 ‘해상방위동맹’간 군사적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아즈텍 문제든 바라트 문제든 일단 주변의 위협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네.”

지금도 일단 일본공화국과는 ‘협력 관계’라 할 수 있다. 고려-다이온이 대륙 문제에 집중하는 사이, 일본은 오로지 동쪽 바다에만 신경을 집중하면 되니까.

“개인적인 희망을 말해보자면, 일본도 궁극적으로는 다이온 연방에 가입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보네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고려나 다이온 연방에만 지극히 좋은 이야기다.

외교로 양측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총량이 100이라면, 어느 한쪽이 100을 모두 가져갔을 때 다른 한쪽이 얻을 이익은 0이 된다.

따라서 상대에게도 30, 40 정도의 이익은 줄 수 있는 선에서 협상하는 게 좋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이 우리와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지를 따지기 전에, 반감이 생각보다 크진 않은지 걱정해야 할 때군요…….”

다이온의 결성과 그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단순히 일본의 불편함을 유발한 게 아니라면?

일본공화국은 아예 다이온의 결성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 한다면? 다이온의 해체를 바란다면? 다이온을 자기네 안보의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조유관은 냉엄한 현실을 선언하듯, 두 청년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유럽까지 휘말린 내전. 그 내전으로 추락한 아즈텍 대륙의 어떤 세력이든 간에, 당장은 일본공화국의 위협이 되지 못해. 빠른 시일 내에 아즈텍 대륙이 재통일되어도 한동안은 회복에 주력해야 할 테고, 이대로 내전이 장기화한다면 더 그렇네.”

그러나 고려는 빠르게 내전을 끝내고, 몽골과 키타이, 낭키아스를 끌어안으며 대공황으로 입은 타격을 완화하고, 다시금 안정과 번영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인다’.

다이온의 실상이 어떠하건 간에, 일본에 비치는 모습은 극히 ‘위협적’일 수 있다.

일본과 아무리 우호를 다지려 손을 내밀어도, 일본이 오늘처럼 모호한 침묵과 희미한 적대감만 표출한다면 두 나라의 집단 안보 체계 구축은 불가능하다.

“즉, 일본과의 타협이 애초에 파탄 날 전망밖에 없다면……?”

“……우리도 일본을 ‘적대’할 준비를 해둬야 하지 않겠나? ‘만일을 위해서’ 말일세.”

조유관은 전쟁광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외무장관으로서 어떠하냐고 묻는다면…… 지나치게 ‘군인’으로서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쁠 게 없지만, 그것이 외교적 해법보다 전쟁 쪽에 기운다는 인상이 강하다.

물론 조유관은 탁월한 전술가이면서 전략가이기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고 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안목이 있다.

“해상방위동맹과의 갈등 수위가 점점 높아져, 그들이 바다를 ‘봉쇄’하기로 한다면 어쩌겠는가?”

고려의 수도 동명, 몽골의 수도 칸발리크 모두 ‘바다’를 향한 출입구에 의존하고 있다.

“주 국장 자네가 철도성 및 원철과 함께 진행하는 메갈로폴리스 사업도 큰 타격을 입고 말 걸세.”

황해가 막힌 메갈로폴리스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화림 계획」에 따라 카라코룸 천도를 감행한다 해도, 서쪽으로 향하는 길만 뚫려 있다면 카라코룸의 이점은 반감된다.

카라코룸은 동쪽으로 바다를 향한 길이 열려 있을 때 궁극적으로 유라시아 유통망의 중심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견하가 자신의 구상과 지금의 정세를 저울질하고 있는 동안, 조유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만약 아즈텍 대륙의 정세가 생각보다 빨리 안정되고, 그 정권이 착실한 회복보다는 국내의 광기를 바깥으로 돌리는 길을 택한다면 어찌해야겠는가?”

요컨대 타국을 침략, 수탈해서 내전으로 손상된 국력을 회복시킬 밑천으로 삼으려 든다면?

그러면 내전 직후 넘쳐나는 ‘군인’들을 실업자로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가 오면 일본도 다시금 우리와 협력하려 들겠지만, 우리는 ‘하나의 깃발’ 아래 양측의 국력을 통합해서 맞서 싸워야 하네.”

그 경우엔 일본을 다이온의 우산 아래로 끌어당겨야 한다는 말이다.

일본이 다른 어떤 강국의 손아귀에 넘어가, 동명이나 칸발리크의 턱밑을 찌르는 건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그러니 적이 차지하기 전에, 우리가 차지한다. 최소한 일본을 ‘우리’로 만든다.

“그러니 주권선과 이익선 개념은 동해에도 적용되어야 하네.”

***

1932년 새해가 왔다.

미리안은 안도와 만족, 승리의 쾌감을 담아 한껏 기지개를 켰다.

-이걸로 됐다!

이번 개봉회담, 정식 명칭 동아시아 협력회의는 완전히 만족스럽다곤 할 수 없지만, 생각해 두었던 모든 의제를 꺼냈고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외무성 관료들을 불러 이를 ‘고려 외교의 승리’라 이름 붙여 본국에 전하게끔 했다.

본국의 태사부, 내각, 제국입헌당 모두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설 것이다. 이걸로 태사 미리안과 제국입헌당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겠지.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어. ‘전쟁’이 아니더라도 승리를 쥘 방법이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거야.”

“또는, 외교전도 하나의 전쟁이라는 것을요.”

효윤의 덧붙임에 리안은 키득거렸다.

“그래. 어떻게 말하든 전쟁이나 안보에 대한 우리 고려인들의 과도한 집착은 좀 가라앉힐 수 있겠지.”

시기도 적절했다.

연말과 연초.

사람들의 기분은 새해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뜬다.

대공황이 터진 이래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새해에는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 와중에 태사는 관세동맹에서 발전한 다이온을 더욱 공고한 체제로 다지고, 철도를 비롯한 여러 산업이 몽골뿐만 아니라 한족의 광대한 영역으로도 뻗어 나간다.

이른바 ‘역외사국’이 고려 태사의 입만 바라보며 자국의 안보를 의존해온다는 소식은, 일종의 승리감을 국민에게 맛보여 준다.

천하를 뒤흔들던 한족의 반란도 ‘한족 관리 특구’를 설치하며 마무리가 되어 간다.

말만 늘어놓고 보면 그야말로 태평성대.

“태평성대를 실감하진 못해도, 앞으로 태평성대가 펼쳐지리라는 희망은 품을 수 있지.”

그런 희망이, 내전의 기억도 세계대전의 기억도 흐릿한 안개 너머로 던져버리기를.

굳이 영토의 확장이나 고려 민족의 우월성 증명이 아니더라도, 주어진 영토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번영을 즐길 수 있게 되길.

리안은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 그녀를 효윤은 존경과 안쓰러움을 담아 바라본다.

리안이 짧은 휴식을 끝마치고 곧장 다음 일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내일 드디어 동아시아 협력회의가 끝나. 실질적으로는 오늘 모든 합의가 끝났지만, 내일 이 회의의 성과를 세계에 알리면서 폐회식을 할 거니까.”

그러니까 그 전에 이번 회의의 성과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제2차’ 동아시아 협력회의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가늠해본다.

“승리는 승리로 이끌어갈 수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거지, 그렇지 못하면 그냥 오늘의 안줏거리로 끝나고 말아.”

그렇기에 국정은 끊이지 않는다.

오늘의 실패는 내일 만회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오늘의 승리는 내일 거둘 승리의 발판으로 활용할 방안으로 계속 연구되어야 한다.

“일단, 티베트는 중립국으로 선포되었지.”

“공산권도 다이온도 아닌 지역으로 남겨둔다고요.”

“그래. 바라트가 다이온으로부터 위협받길 바라지 않듯이, 다이온 역시 바라트와의 평화를 바란다는 메시지는 확실히 넣었어.”

이것으로 충분히 메시지가 전해졌을 것이다.

탕구트와 보우슈엥, 대예는 ‘참관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다만 고려 황제가 받은 ‘카간과 보르지긴 황실, 몽골의 보호자’라는 위치에는 오르지 못한다.

그중에서 보우슈엥과 대예는 차후 적절한 과정을 거쳐 ‘정식 가입’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당연히 리안이 했던 ‘독립 보장 선언’의 적용도 받는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걸리는 게 하나 있지 않아?”

“음…… 글쎄요.”

효윤은 즉답하지 못한다. 그녀도 어깨너머로 정치를 배우면서 많이 성장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리안이나 견하가 아니니까.

그래서 리안은 나무라기보다는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답해주었다.

“다이온은 ‘에스파냐’와 국경을 접하게 돼.”

“아!”

“마카오는 작은 땅이지만, 그래도 유럽 국가의 영토야. 우리는 직접 국경을 접함으로써 유럽으로 향할 창구를 확보하는 셈이지.”

“그리고 에스파냐는 대서양 동맹의 일원이죠.”

리안은 끄덕였다.

신성 제국을 견제하는 세 나라인 브리튼, 에스파냐, 칼마르.

그간 로마제국에 집중됐던 대(對) 유럽 외교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신성 제국의 심기를 거슬러선 안 되겠지만, 가능하면 유럽의 다양한 세력과 제휴하는 게 좋아.”

“아즈텍 문제도 있고요.”

“음, 그렇지. 유럽이 아즈텍 내전에 개입을 시작했다면, 그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대화 창구가 필요해.”

그리고 리안은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보우슈엥의 영토를 거쳐 마카오를 통해 빠져나가는’ 경로를 추적해 볼 생각이다.

신수덕이 게레센제의 협력을 얻어 산동에서 탈출할 때, 이 경로를 활용한 것으로 생각되니까.

에스파냐의 마카오 영유권을 보장하면서 우호 관계를 맺고, 그 대가로 신수덕이 어떻게 바다로 빠져나가 아즈텍으로 향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면…… 게레센제의 목을 조를 수 있다.

루우의 몽골 황위를 향한 야망을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부드러운’ 즉위를 도와야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