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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31화 (331/541)

개봉회담(23)

울제이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 이래 우호 증진을 모색해 온 다이온과 바라트 관계 아닙니까. 이렇게 이번 회의에서 노골적으로 ‘바라트를 경계하는’ 언행들을 보이면, 그게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진 않을지.”

역외사국을 설득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였다고 해도, 그런 말을 듣는 당사자들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혁명’으로 세워진 국가다. 혁명 정신을 국시로 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가 혁명을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 취급하는 이웃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무리 당의 통제가 완벽에 가깝다고 해도, 인민들의 귀에 그런 이야기가 들어가면 당은 뭔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체면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사소한 행동이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으레 있는 병력 이동이 ‘저놈들 마침내 말을 실행으로 옮기는군’하는 식으로 비칠 수 있다는 말이다.

“아,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볼로드는 빙긋 웃으며 협의가 진행 중이니까요, 라고 덧붙였다.

“저도 다이온의 내무장관 겸 전쟁장관입니다만, 제가 모르는 ‘협의’가 다이온과 바라트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겁니까?”

“음…… 그만큼 기밀을 요하는 일이라서요. 그래도 언제쯤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답니다.”

능청스러운 볼로드의 웃음에 더 추궁하지도 못하고, 울제이는 물었다.

“무슨 협의입니까?”

“바라트가 ‘육로’를 통해 아즈텍 대륙의 동지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거죠.”

대신 다이온과 역외사국을 둘러싼 정세 변화는 묵인해달라, 는 게 몽골과 고려의 요구였다.

울제이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한 얼굴로 리안을 돌아봤다.

“키타이야 다이온 한복판에 놓인 나라니까 당장 영향을 받진 않겠지만, 고려는 아즈텍 대륙과 극북에서 마주 보고 있지 않습니까?”

요컨대 섣부른 아즈텍 내전 개입이 고려에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겠냐는 물음이었다.

리안은 그 물음에 짧게 답했다.

“감당할 만한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다. 고려 쪽에서도 이 일로 외무성과 전쟁성이 분주하지만, 그 속내를 울제이에게 모두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울제이도 그저 ‘그러냐’는 듯 끄덕였다.

이렇듯 대화가 오가는 동안, 오직 한 사람, 바이다르만이 침묵을 지키며 어른들의 눈치를 살폈다.

***

“중장으로 떠나서 대장으로 황성방위군에 복귀했구만.”

조금 늦었지만 축하하네, 라 말하며 강태훈은 김천열의 잔에 술을 따랐다. 김천열은 공손히 그 술을 받는다.

전쟁장관의 말대로, 그 축하는 다소 늦었다. 김천열의 대장 진급은 그가 몽골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류성일과 교대하듯 귀국한 이후로는 두 사람 모두 이런 자리를 마련하기엔 너무 바빴다.

김천열은 아즈텍 내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황성방위군을 중심으로 제국방위체제 개편에 참여해야 했다.

강태훈은 키타이 및 낭키아스 파견군 문제, 향후 ‘다이온 연방군’의 창설 문제, 일본공화국과의 군사적 조율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김천열은 술을 들이켜고 나서, 말한다.

“이렇게 진급이 빠르니 외려 민망할 지경입니다.”

“그래, 민망하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 됐네.”

사자 갈기 같은 구레나룻에 안 어울리게, 김천열은 강태훈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자못 걱정스러운 어조다.

“역시…… 반발이 심합니까?”

선배들보다 몇 배나 빠른 진급.

그가 소장에서 대장이 되기까지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요직을 차지해왔다.

그런데도 김천열은 그답지 않게, 반발이 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요행을 바랐던 걸까.

“당연하지 않나. 뭐 자네도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태사의 줄을 잘 잡은 덕분에’ 출세한 사나이라는 오명은 감당해야겠지.”

2년 전, 1929년 4월의 그 날.

류성일의 부름을 받고 그저 ‘상황을 살펴보러’ 갔다가, 태사의 묘한 카리스마에 눌려 그대로 친위혁명의 선봉이 되었다.

그 뒤로는 동명시 방어전, 심양시 탈환전, 삼한반도 공략전, 삼한반도 게릴라 토벌전에 참여했다.

조유관을 빼면 그만큼 내전에서 활약한 장성은 없을 것이다.

남의 나라 내전에도 끼어들어, 동몽골 전선에서의 공방전과 카라코룸 공략전에도 참여했다.

김천열의 경력은 그 자신이 돌아봐도 얼떨떨할 정도다.

어느새 그는 ‘태사의 맹장’이 되어 있었다.

강태훈은 김천열의 ‘낭패다’라는 표정을 빤히 바라보다,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반감을 품은 사람에 속하지 않네.”

“그야, 장관님이시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내 지위에 만족해서가 아니야. 자네 위치쯤 되면 얼마나 고생일지 아니까 그러는 걸세. 자네를 시기하는 작자들은 자네의 일이 아니라 계급을 시기하는 거고.”

노고를 알아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황성방위군은 생각 이상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소장일 때도 그랬지만, 대장까지 올라가니 일은 제곱에서 세제곱으로 늘어나는 것만 같다.

“우리 고려인들은 수도를 기습 직격당하는 데 대한 걱정이…… 너무 심합니다.”

“병적일 정도지.”

김천열이 감히 말하지 못한 것을, 강태훈이 입에 담는다. 김천열도 그 말에 공감하기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아즈텍 내전 이후 군의 개편만 봐도 그렇네. 아즈텍에 어떤 신정권이 들어설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들의 전면 침공을 상정하고 있지.”

“다른 지역이 얼마만큼 밀리더라도, 수도 동명만은 사수해낸다는 각오가 느껴지는 계획이죠.”

“좋게 말하자면 그렇지.”

심지어는 아즈텍 해군이 바다를 돌아 황해에서 동명을 공격한다는 가정으로 세워진 방어 계획도 있다.

“솔직히 그건 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세계대전 때 태평천국의 갓난아기 같은 공군이 바다를 건너와 평양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건 말이 되었던가?”

태평천국의 그 같은 작전 계획은 애초에 개전 전에는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알려졌다고 해도 군 수뇌부는 코웃음 쳤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이 성공한 사례가 있다. 그렇기에 말이 안 되는 일도 말이 되고야 만다. 그런 게지.”

“아니 그럼…… 전쟁성의 누군가나 합동참모본부의 누군가는 그게 ‘될 거라고’ 믿는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아무리 기술의 혁신이 있다 해도…… 김천열의 상식은 상상을 가로막는다.

“나도 웬만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싶네만, 칸발리크에서의 일은 상식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 말에, 김천열은 홀로 잔을 죽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아즈텍에선 아예 괴물들이 전선에 나타난다 들었습니다.”

“그래, 그런 시대일세. 동명시 상공에 칸발리크에서 나왔던 그놈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있는가 하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곤 강태훈은 목소리를 낮추고 몸을 기울인다. 그에 맞춰 김천열도 허리를 숙였다.

“황제 폐하나 태사부 선에서 뭔가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눈치를 보아하니 자네는 모르는 모양이군?”

“알면 이렇게 눈만 껌벅이고 있진 않죠.”

두 남자는 다시 자세를 바로 한다.

황성방위군을 중심으로 복잡 치밀하게 짜인 본토 방어 계획. 그게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역시……

“그래도 아즈텍 대륙의 신정권이 그런 공격을 감행하려면, 뭐 그런 초자연적 공격을 시도한다 해도…… 어쨌든 밑 작업은 사람이 하는 일 아닙니까.”

사람은 지면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존재다. 당연히 물리적 거리는 문제가 된다.

아즈텍 대륙의 신정권이 황해로 병력을 투입하기 전에, 일단 일본공화국의 막강한 해군을 물리쳐야 하고, 그 섬들을 점령해야 한다.

“바로 그 점이네.”

김천열은 그제야 강태훈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지.”

“무슨……?”

“아즈텍 신정권이 일본을 침략할 거라는 말.”

무심코 눈을 부릅뜰 뻔하다가, 김천열은 간신히 자신을 억눌렀다.

“어딘가에서 저들의 계획이 유출된 겁니까?”

“그럴 리가. 아직 자기네 내전도 못 끝낸 자들인데. 다만…… 일본이 지금 저렇게 온 신경을 ‘동쪽’에만 쏟고 있는 걸 보면 저들이 뭔가 낌새를 알아챈 게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는 거지.”

그렇다면 말인데, 하면서 강태훈은 말을 덧붙인다.

“혹시 ‘주권선’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나?”

“국경선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있어도…….”

“아, 요즘 나오고 있는 말이라네. 국경선이랑 비슷한 의미지. 주권이 미치는 범위라는 뜻이니까. 근데 중요한 건 주권선과 짝을 이루는 말이야. ‘이익선’.”

“이익선이요?”

“그래. 주권선의 바깥, 침해당하면 나라의 이익에 손실을 입히는 선. ‘다이온의 강역은 우리 고려의 이익선이다’라는 식으로 요즘 자주 쓰더군.”

왜 일본 이야기를 하다가 주권선과 이익선, 다이온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일까. 강태훈은 본래 이렇게 말을 두서없이 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러다 문득, 김천열은 깨달았다.

“혹시 일본공화국도 고려의 이익선 안에 있다, 그런 주장이 도는 겁니까?”

“……농담처럼 나도는 말이지만.”

말이 아예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일본이 아즈텍에게 정복당한다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옛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고려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상식의 선에서라면, 일본을 도와 서 태평양의 안보체제를 굳건히 다져 나가야 한다.

그러나 김천열은 뭔가 불길한 상상이 떠오르는 걸 억누를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여쭙는 겁니다만, 농담이라고 해도…… ‘아즈텍이 일본을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라는 식으로 지껄이는 자가 있는 건 아니죠?”

“농담으로는 나오고 있네.”

웃음과 우려가 뒤섞인 대답이었다.

김천열은 구레나룻을 잡아 뜯을 듯 손에 쥐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살피다, 강태훈은 다시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는 일단 자네 일이나 잘하고 있게.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네의 그 ‘대장’ 계급에도 사람들은 익숙해질 걸세. 게다가 자네 말고 반감을 사는 인물이 또 하나 있으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김천열은 되물었다.

“대체 그 불쌍한 사람은 누구랍니까?”

“엄밀히 말하면 군 내부의 사람은 아니지만…… 군과 관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지. 조유관 외무장관 말일세.”

“아.”

짧게 감탄사를 터트리곤 김천열은 안주로 나온 고기 한 점을 집어먹었다.

조유관과는 내전 초기 동명시 방어전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지라, 딱히 그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이후로는 맡은 전장이 다르기도 했었고.

다만 들리는 말로는, 그가 이끌던 ‘민국 정부와 가까운’ 군의 인재들, ‘극북방위군 출신’들이 기존 제국군 장교들과 대립각을 세운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사정은 좀 낫나, 싶어서 위안을 삼으려던 그때.

강태훈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주권선이니 이익선이니 하는 이야기는, 외무성 쪽에서 나오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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