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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21화 (321/541)

개봉회담(13)

“그러고 나서 사이좋게 함께 개봉으로 향하는 거지. 그래야 모양새가 좋아. 우리 두 사람이 예비회담을 하지 않고 각자 개봉으로 가기로 합의했다고 해도, 언론은 고려와 몽골 사이에 냉기류가 흐른다고 떠들어댈걸.”

그리고 그런 언론의 주절거림은 외교가에서 오가는 이야기에도 영향을 끼친다.

“지금 시점에선 다이온 구성국의 결속을 드러내야 해. 그게 좀 과장된 결속이라고 해도.”

물론 실리적인 이유도 있다.

시레문이 죽기 전, 한창 후계자 문제를 두고 다퉜을 때 울제이와 게레센제는 개봉에서 먼저 예비회담을 열었다.

그렇게 동맹으로서 어떻게 싸울지 합의하고 나서야, 칸발리크에 올라와 루우와 대립하거나 시레문을 압박했다.

“또 한 가지 문제를 들자면…… 우리가 이미 일부 몽골인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걸까?”

“반감…… 이요?”

루우와 함께 사지를 누비며 칸발리크를 구한 효윤에겐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여기 칸발리크 말고,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한 북방 말이야.”

“아, 그러고 보면…… 그 사람들한테는 언니가 ‘정복자’일 수도 있겠네요.”

“나도 너무 승리에만 취해 있었어. 그래서 ‘해방자’로 받아들여질 거라고 착각했었지.”

그러나 멸망한 알타이 자유 공화국, 거기에 진심으로 충성하던 사람들에게 리안과 고려의 모든 행동은 ‘외세의 간섭’으로 느껴질 뿐이다.

공화국이 멸망하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민족주의를 각성한 인간도 있을 테고.

“예비회담을 거부하는 건 단순히 외교적 결례 정도에서 끝나지 않아.”

“그걸 민족의 자존심이 짓밟혔다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겠군요.”

“맞아. 고려가 다이온 연방을 주도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게 우리가 멋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애매하게 강하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해. 일단은 거만하다는 인상은 어떻게든 남기지 않는 게 좋지.”

그렇기에 리안은 자신의 수행원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어디 가서 ‘고려인’임을 내세우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무례한 행동이라도 했다간…… 국제적 망신은 둘째치고 고려라는 국가 자체의 반감만 키울 우려가 있다.

“우리는 ‘겸손한 맹주’가 되어야 해.”

효윤은 그 말에 끄덕이다, 마중을 나온 볼로드의 얼굴을 보고 속삭였다.

“언니는 저 사람이 마음에 드세요?”

“솔직히 마음에 안 들어.”

“저도요. 속을 알 수가 없으니까요.”

“속을 알 수가 없는 남자는 고려에도 하나 있지. 꿀밤 한 대 먹여주고 싶을 정도야.”

효윤은 쿡, 하고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누르며 리안을 따라 걸었다.

***

볼로드가 아무리 리안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는 몽골의 태사였다.

시레문이 살아있던 시절에도 볼로드에겐 상당한 권력이 위임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레문 사후, 게레센제가 즉위하기 전의 공백기에 볼로드의 권력은 상당히 비대해졌다.

칸발리크 정계 전체가 볼로드의 지도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정책도 미래 전망도 무엇 하나 리안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그러니 언젠가는 꼭 실각시키고야 말 것이다.

그런 기분으로 리안은 몽골 제국입헌당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볼로드도 만만치 않은 기세로 자신의 자리를 방어한다.

그러니 이렇게 마주 앉아 이런저런 협상을 하는 수밖에.

언젠가 충돌할 때가 온다면 두려워 움츠리지 않을 것이다. 정면으로 맞서서 박살을 내놓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굳이 충돌할 필요가 없는데도 충돌을 자초하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판단이다.

“‘동아시아 협력회의’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회담인데, 의외로 일본의 반응이 잠잠하군요.”

따뜻한 환영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오찬.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 앞에서, 볼로드는 그렇게 말을 꺼냈다.

“일본공화국 측 양해는 이미 구했습니다. 말이 ‘동아시아 협력회의’지 실상은 다이온 내부의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라고요.”

“호오, 구체적으로 얼마나 양해를 구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대단한 건 아니에요. 일본이 태평양에서 아즈텍 대륙의 혼란상에 대처하는 동안, 우리는 일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일본의 문제에 간섭하지도 않고 다이온 문제에만 집중한다는 거죠.”

“상호 불간섭이군요.”

일본이 관전무관을 철수시키기로 했던 그 협약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즈텍 대륙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상황이 꽤 복잡해진 모양입니다.”

“이미 충분히 복잡하지 않나요?”

“동부 자유주 독립군도 내전에 뛰어들기로 했다더군요.”

“……? 그 사람들이 돈은 많아도 그럴 무력이 있던가요? 어디서 용병이라도 사 온 게 아닌 이상은.”

“사 온 것 같더군요.”

이번에는 리안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표정에 만족이라도 한 것인지 볼로드는 슬며시 미소 짓는다.

“유럽 각국이 ‘의용군’을 보내기로 했답니다.”

“……‘각국’이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들이?”

“뭐 대서양을 접한 나라들이죠. 브리튼, 그 친구들인 에스파냐와 칼마르…… 신성제국은 질 수 없다는 듯이 의용군을 보냈더군요.”

“……단기적인 안목밖에 없는 작자들 같으니…….”

그렇게 혀를 차다, 리안은 이상하다는 듯 들은 이야기를 곱씹어본다.

“‘의용군’의 규모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정도인가요? 보통은 그렇지 않을 텐데요.”

“이번은 보통의 경우가 아닌 모양입니다.”

“작정하고 아즈텍 대륙을 휘저어서 이익을 빨아먹겠다는 거군요. 이렇게 대륙 바깥의 세력이 얽히면 상황이 복잡해지긴 하겠죠.”

고려의 외교관들도 유럽의 개입 징후를 포착은 했지만, 구체적인 소식은 몽골이 좀 더 빨랐던 모양이다.

정보에 뒤처졌다는 씁쓸한 감각을 씹으며, 리안은 볼로드의 말을 일단 경청한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동부 자유주가 ‘신 연방’을 자처하며 연방 잔당을 흡수하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연방 잔당을? 도대체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동부 자유주라는 세력도 어쨌든 반란군 아닙니까? 그런 자들에게 허리 숙이고 들어가는 무리가 있다?”

“직접 무력을 동원해 연방을 멸망시킨 자들보다는 낫다는 심리겠죠.”

“애초에 그럴 거면 동부도 독립군이니 뭐 하니 봉기할 일도 아니지 않았나요? 그런 뻔뻔한 수작이 먹힌답니까?”

“‘독립’ 운운한 건 다소 극단적인 시위였다는 식으로 무마하고 넘어갈 모양입니다.”

“요컨대, 저항을 이어가고 싶은 자들과 다른 세력에 합병되고 싶지 않은 자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거군요.”

“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신 연방’이라는 국가체제를 출범하는 것이 유럽에서 제시한 ‘계약 조건’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습니다.”

리안은 손끝으로 입술을 쓸었다.

유럽 각국, 그중에서도 브리튼과 신성제국은 자기들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는 공화국을 탄생시키려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아즈텍 내전은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길 테고, 만약 브리튼과 신성제국 사이의 갈등이 격화된다면 상황은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겠지.

어느 모로 보나 도저히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정세다.

“그래서 말입니다, 태사……”

볼로드는 아직 이야기를 마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봉회담과는 별개로, 여기 고려와 몽골만의 회담에서.”

***

“동지라도 부르기에도 민망한 작자들 같으니!”

최근 호데노쇼니 인민공화국의 요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원망의 외침이었다.

그 원망의 목소리는 지상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의 힘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바라트 연방을 향한 것이었다.

“단순한 도움 요청이 아니다! 이것이 혁명의 확산이라는 세계적 흐름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 모르는 건가!”

모를 리가 있나.

바라트의 주석, 아슬란부터가 세계 혁명을 주창하는 자다.

이 아즈텍 대륙에 새로운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지면, 혁명의 이상은 한층 더 현실에 가까워진다.

겨울이 찾아오면서 포성은 잦아들었지만, 그간 이어졌던 격렬한 교전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굳이 전망해본다면, 아주 나빴다.

공장도 무역을 통해 원자재를 수입하고 완성품을 수출할 수 있어야 돌아간다.

아무리 공장이 즐비한 산업지대를 차지했더라도, 그게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도 지금은 호데노쇼니의 점령 지역에 비축된 자원으로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아즈텍 대륙의 다른 지역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무역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이 신생 공화국은 서서히 말라죽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와줄 방법이 없지 않소.”

누군가 음울한 어조로 말을 던진다.

울분에 찬 동지들의 원망은 이해하지만, 바라트 연방이 호데노쇼니를 도와줄 수단이 마땅찮은 건 사실이다.

“신 아즈텍 연방이라는 자들은 대서양 쪽 항구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소. 그들에게 우호적인 유럽 각국은 대서양의 제해권에 도전할 수 있는 함대와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

그러니 동쪽에서의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유럽에서 가끔 호데노쇼니의 이상에 동조하는 젊은 청년들이 ‘의용군’으로 와주곤 있지만, 각국 정부가 밀어주는 다른 ‘의용군’에 비하면 규모도 장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서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지요. 바라트에서 인도양을 벗어나 태평양을 가로질러 배를 보낼 수나 있을까요?”

무굴 제국 후반기의 극심한 혼란상.

뒤이은 세계대전에서의 참패. 그리고 바라트 혁명은 인도양에서의 해상 패권마저 앗아갔다.

이는 바라트가 내전에서 승리한 뒤에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해군은 그 특성상 육성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앞으로도 최소한 10년은 더 인내해야, 비로소 대양에 내놓을 만한 해군을 건설하지 않을까.

“설령 바라트가 당장 강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이를 가로막습니다.”

거리.

바라트와 호데노쇼니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다.

“페르시아 일대와 우리는 사정이 다릅니다. 적어도 거긴 걸어서라도 갈 수 있죠.”

해군력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마자파히트부터, 고려와 일본과 멕시카에 이르기까지 만만찮은 강국의 함선들이 바라트와 호데노쇼니 사이에 놓여 있다.

그들이 바라트의 배가 ‘의용군’을 싣고 통과하는 걸 바라만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적의 그…… 괴물들이나 신병기를 상대하려면 압도적인 화력이 꼭 필요하건만…….”

그리고 압도적인 화력은 더 많은 포와 포탄으로 만들어진다.

앞으로 생산력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인민공화국군의 미래는 밝지 않다.

혁명가들의 시름은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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