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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19화 (319/541)

개봉회담(11)

여기까지 이야기가 오갔을 때, 장해진은 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 장군은 이 일에 굉장히 열심이신 모양입니다?”

“칙령은 칙령이니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태사 각하의 방침도 기다리지 않고요?”

두 사람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진다.

“태사 각하께서 개봉회담에 참석하신다 해도 우리 파견군이 전면 철수하는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뭐냐, 우 장군 말씀은 우리가 이대로 토벌 후 점령지 군정에, 두 칸의 궁정에 간섭하는 일까지 다 하게 될 것이다?”

“정도의 문제지만 회피하긴 어렵겠지요. 게다가,”

안경 너머에서 우흥섭의 눈이, 의미심장한 빛을 띤다.

“본국에서 벗어나 군정청에 틀어박혀 있는 편이, 좀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음…….”

“저는 딱히 원수 계급에 야심은 없습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고, 이대로 전역해도 연금은 풍족하게 나올 겁니다. 세계대전과 내전, 한족 반란 토벌까지 담은 회고록을 내면 인세도 넉넉하겠죠. 편한 여생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런 희망찬 그림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조유관 외무장관과 강태훈 전쟁장관을 둘러싼 미묘한 알력,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폐하의 뜻과 태사 각하의 뜻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 김천열의 진급을 둘러싸고 나오는 여러 말 등등……. 골치 아픈 문제는 끝도 없을 겁니다.”

“예전 숙군 같은 규모의 참사가 일어나진 않는다고 해도, 차라리 밖으로 나와 있는 게 편하리라는 말씀이신가요?”

“차라리 파견군 사령관 자리에 앉아 있으면 폐하의 뜻에 따르는 듯하면서도 때에 따라 태사 각하께도 순종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겠죠.”

다이온에서의 혼란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고려 내부에서의 혼란은 피할 수 있다.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살피면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일단은 흘러가는 대로, 라.”

시키는 대로, 명령받은 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그게 제일 편하고 안전하긴 하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명령이 내려온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지만.

“어쩌시겠습니까, 장 장군.”

“……어쩌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우 장군 말대로 일단은 밀칙에 따르는 수밖에요. 개봉회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면서…… 우리는 우리끼리 연락을 좀 긴밀하게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흥섭은 끄덕였다. 낭키아스에 고립되지 않으려면 장해진과는 연대해야 한다. 장해진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럼, 제 쪽에서는 ‘결행의 순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제 쪽에서도 칸의 동향을.”

두 남자의 작은 동맹은 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체결되었다.

***

울제이 칸의 제안은 대사관을 통해 빠르게 각국 수뇌부에 전해졌다.

키타이의 수도 개봉에서 ‘동아시아 협력회의’를 열겠다, 각국은 대표단을 파견해주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받은 각국 수뇌부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낭키아스에서는 칸인 바이다르가 참석하기로 결정됐지만, 아직 어리기에 실질적인 준비는 그의 보좌관들이 하게 되었다.

티베트, 대예, 보우슈엥, 탕구트에서는 ‘다이온’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연일 열기를 더해갔다.

몽골에서는 타이시인 볼로드가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하기로 결정.

고려도 격을 맞추기 위해 태사 미리안이 개봉을 방문하기로 했다.

개봉을 향하는 전용 열차에 오르기 전까지, 리안은 쉴새 없이 각료들에게 여러 지침을 하달했다.

리안이 자리를 비운 동안 별다른 일만 없다면 이러한 지침만으로도 고려라는 기계는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

리안과 효윤이 개봉에 가 있는 동안에는, 내무장관 안세규가 리안의 ‘역할’을 대리한다.

그러나 리안의 ‘권위’만큼은 다시 황제에게 돌아가 루우가 대신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누가 의도한 건 아니다. 그저 현 미리안 정권의 탄생과 구조가 자연스레 그런 상황을 만들어 냈을 뿐.

루우와 견하가 본국에 남아 있는 동안, ‘자신의 간섭을 받지 않는 일’을 진행하리라는 불안이 리안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리안의 얼굴은 황제 쪽을 돌아보면서 북슬북슬한 털 옷깃에 반쯤 묻혔다. 어느새 그런 옷이 필요한 계절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황제에게 이번에 확실히 이야기를 해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포기할 생각은 없어?”

루우는 멈칫한다.

아무리 황제의 권위가 있다고 해도, 최강의 이단이라 불려도 태사 앞에 선 순간에는, 그녀도 시험받는다.

더군다나 태사의 질문은 이제껏 없었던 질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기로 한 이후, 이런 질문은 나온 적이 없는데.

루우는 ‘무엇을 포기하라는 거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되물어 볼 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고, 의뭉스러운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없어.”

몽골의 카간을, 다이온의 유일한 군주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언젠가 이렇게 정면에서 반발해야 하리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이야.

리안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다.

그래서 루우는 약간 반항하듯, 이유를 말했다.

“나는 다이온의 카간이 되어야 해. 다이온은 내 권위 아래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 이유는…… 이미 타이시에게 말했을 텐데.”

쿠빌라이 카간이 남긴 유산의 발굴.

이단 및 혁세주 연구의 진척.

그에 따라…… 세상의 안위를 확보.

여기에 더해 루우 자신이나 주견하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스스로 포기하는 것 말고는, 이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겠지.”

리안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그것은 일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안타깝다는 감정과, 자랑스러운 동생을 보는 듯한 감정을 동시에 담은 웃음이었다.

“칸발리크 시민들, 열광적으로 너를 지지하더라.”

루우나 견하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게레센제가 어떤 생각을 품든 그 사람들은 너를 카간으로 만들 거야.”

그럴 수밖에. 칸발리크를 둘러싼 세상은 한 번 멸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거나 괴물에게 죽임을 당했고, 내전의 폭풍과 경제적 몰락이 남은 사람들을 덮쳤었다.

거기서 구세주가 되었던 사람이, 바로 루우다.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황제를 영웅이라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아.”

그렇다면 내가 반대할 방법은 없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리안은 효윤에게 손짓했다. 효윤이 서류 뭉치를 넘겨준다.

리안은 그걸 받아 다시 루우에게 건넸다.

“뭐지?”

“검토해줬으면 하는 거야. 황제의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에 정면으로 반대할 순 없겠지만, 내가 ‘수정안’을 내놓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어?”

루우는 리안의 얼굴을 보다, 다시 시선을 내려 표지를 보았다.

「대타협 계획」.

무슨 의미일까.

어떤 ‘수정안’을 내놓은 걸까.

“내 의지와는 관련 없는 계획을 세워서 일을 벌인다면, 그리고 그걸 막을 수가 없다면, 내가 앞질러서 계획을 내놓고 두 사람을 움직이는 편이 낫겠지.”

루우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태사는 황제의 손을 한 번 꼭 잡았다가 놓았다.

“그럼, 다녀올게.”

***

「대타협 계획」을 다 읽고 난 루우는, 잠을 자든지 아니면 훈련으로 땀을 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침소로도, 개인 훈련실 쪽으로도 거둥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눕는다 해도 이 「대타협 계획」이 머릿속에 맴돌아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훈련실에 가도 다른 생각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지겠지.

그러니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방금 읽기를 마친 「대타협 계획」을 떠올려본다.

요약하자면, 현 ‘발해도 정책’의 전면적 확대다.

한족의 문화와 의식이 살아남을 위험성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자치권을 대폭 확대 보장해 준다.

다이온 전역에 행정단위 ‘도(道)’를 도입. 지방정부의 형태나 법제는 통일하겠지만, 민족 단위 탄압은 완전 중단. 몽골어 또는 고려어를 강요하는 등의 교육 정책도 중지한다.

‘민족대표회의’를 다이온의 중앙의회로 설정하고, 모든 정파를 참여시켜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형태로 연방을 재편성.

고려와 몽골만이 동군연합을 이루는 게 아니라, 한족 역시 동군연합의 한 축이 된다.

말하자면 ‘삼중제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타협’적 개혁을 통해, 몽골과 고려, 한족 모두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보다 공화적, 민주적인 방향으로 연방 체제를 개혁함으로써, 향후 다이온이라는 강대국이 폭주할 가능성을 예방하는 것이다.

매력적인 제안이긴 하다.

솔직히 이런 방향의 다이온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루우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래서는…… 다른 모든 정파와 충돌하겠다는 이야기잖아.”

고려국민당이나 사회민주당, 공산당에서는 지지할 정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정당들은 리안의 기반이 아니다. 리안에게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리안이 반대에 부딪혀 몰락하는 걸 지켜만 보고 있겠지.

리안의 이 계획은 분명 계획 자체로는 훌륭하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다이온은 이상적인 모습의 공동체로 거듭난다. 물론 여러 잡음도 있겠지만, 동시에 그 잡음을 해결할 방법도 마련되는 체제다.

하지만 볼로드는 이를 반대할 것이다.

한족의 ‘민족대표’랍시고 나올 사람들 중에서도 이 계획을 지지해줄 사람은 얼마 되지 않겠지. 발해도를 정착시키는 데만 해도 얼마나 많은 힘이 들었던가?

게다가…… 무엇보다도, 주견하를 위시한 그녀의 지지자들이 뜻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루우는 한재연이나 양수영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주견하는 조직의 급속한 확대를 위해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을 받아들였다.

비록 그들이 상대적인 ‘온건파’라고는 하지만, 그 온건파조차도 ‘고려민족 제일주의’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한재연이 뭔가 새로운 걸 내세우긴 했어도 그것은 허동주 사상의 ‘수정주의’에 불과하다, 루우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주견하는 그들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아니면 따로 생각이 있는 건지…… 명백히 다이온의 일원화를 추구하고 있다.

리안이 그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외로운 싸움이 될 거야, 타이시.”

어쩌면 연인과도 피 말리는 정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 몰린 리안에 대한 연민,

자신이 그런 상황으로 몰아갔다는 자책,

그러면서도 절대로 야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비웃음.

이 모든 것이 섞여, 용은 길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 일은 어떤 파국을 맞게 될까?

황제인 자신은 그 순간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가정의 가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안, 루우의 마음은 어디에도 가라앉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머리와 가슴을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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