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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16화 (316/541)

개봉회담(8)

-황제를 따라서 연구소에 좀 다녀와 줘. 황제 보좌 임무도 임무지만, 투글룩 투입 이후 연구 성과가 어느 정도 나오고 있는지도 좀 살펴봐 주고.

리안이 효윤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태사가 말한 연구소란 ‘제국특수무예연구소(帝國特殊武藝硏究所)’다. 이단과, 최근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파멸인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을 이단의 눈으로 살펴보고 와 달라는 말이다.

이단 관련 연구는 중요한 사업이기에, 어떻게든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미승휴도 허동주도 이 기관에 ‘이단’이라는 이름이 직접 들어가는 걸 원치 않아, ‘특수무예’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연구소 이름으로 자리한 것이다.

알 사람은 결국 알게 되니 궁색한 변명 같은 이름이지만.

처음 이 연구소의 이름을 들은 사람은 ‘고려의 전통 무술을 군사적으로 개량하는 목적의 연구소일까?’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먹고 추적한다면 이 연구소에 전통 무예와는 전혀 관련없는 석학들과, 어디에 쓰기에 그렇게 많이 드는지 궁금한 자금이 들락거린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거기까지 추적할 마음을 품는 선에서 고려의 권력 핵심에 자리한 사람, 또는 위험한 적대자겠지만.

“도산서원을 비롯해 제국 각지에서 긁어모은 연구 성과들을 모조리 여기에 집중시켰어.”

황제 루우는 새로 산 옷이라도 자랑하듯, 그렇게 효윤에게 말했다.

“그전에는 선대 태사나 허동주 등 파벌에 따라 각자 연구를 감춰놓고 공유하길 꺼렸더라고. 내전이 끝나고 지금 태사 체제가 확립되자 일원화할 수 있었지.”

“고려민국 임시정부에서 보유하고 있던 것도?”

“그래. 전부 내놓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도 ‘황실과 국가에’ 제공하기로 했어.”

여기에 투글룩이 몽골에서 내온 자료와 연구원들도 연구소에 가담, 제국특수무예연구소는 제3 제국의 성립 이래 최대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연구소의 그러한 성장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금부터 효윤과 루우가 참여할 이 실험이다.

두 사람은 지금 연구소 내부에 마련된 거대한 돔형 공간에 있다.

무슨 무슨 실험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양쪽으로 출입구가 나 있는데, 효윤과 루우는 반대편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막이 아플 정도의 경고음이 울린다.

실험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어느새 효윤은 박도를, 루우는 언월도를 꺼내 들었다.

반대편의 육중한 철문이 위로 올라가고, 그 너머에서 뭔가가 머뭇거리듯 들어온다.

파멸인이다.

투글룩이 이미 실험 내용을 반복해서 이야기해준 데다, 두 사람은 칸발리크에서 질리도록 싸워봤기 때문에 놀라지 않는다.

그들이 놀라는 건 다른 부분이다.

파멸인의 ‘목’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박혀 있는 기계장치.

“저거…… 억제기라고 했던가?”

“파멸인이 공격방식을 바꾸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지.”

효윤은 왼쪽으로, 루우는 오른쪽으로 돌아 느긋하게 접근한다.

파멸인의 안구들은 두 사람 모두 인식한 듯하다. 효윤 쪽으로 먼저 공격이 들어온다.

효윤이 가볍게 피하며 공격이 무산되자마자, 파멸인은 육중한 몸을 돌려 루우를 공격한다. 황제 역시 피한다.

“지금 공격 속도는 일반인 기준이군.”

“처음에는 일반인을 사냥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생각이라는 게 사람의 것과 ‘같은 개념’이라면 그렇겠지?”

루우의 말대로, 파멸인이 ‘이러저러하게 반응한다’는 건 알지만, 그 반응의 원리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니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겠지.

파멸인은 바로 다음 공격을 가한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공격방식도 후려치는 데에서 벗어나 꿰뚫으려 하거나 베려 하거나 으스러뜨리려 하는 식으로 다양해진다.

공격방식에 맞게 신체의 변형도 시시각각 이루어진다.

이윽고, 파멸인의 공격은 일반인이 대응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선다.

“2단계로.”

루우의 말에 효윤은 끄덕인 뒤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제는 파멸인의 공격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반격에도 나서보아야 한다.

그게 미리 들었던 이 실험의 2단계다.

효윤과 루우는 서로 교차하거나 동시에, 파멸인의 표면에 얕은 상처를 남긴다.

상처에 반응하는 것인지, 무수한 촉수가 소름처럼 돋았다가 가라앉는다.

이어지는 공격은 명백히 이단을 상대로 한 속도를 낸다.

그리고 그것이 파멸인이 낼 수 있는 공격 속도의 한계다.

“여기까지는 지난 실험과 같은 결과군.”

파멸인 개체는 하나, 상대는 이단 둘이다. 물론 파멸인은 신체를 변형시켜 다수의 대상을 공격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의 변칙적 공격을 감당하긴 어렵다.

“자, 3단계다.”

효윤이 그 말을 내뱉자마자 루우는 아까보다 더 대담하게 파멸인에게 접근.

덮쳐드는 촉수와 부속지들을 마구 잘라낸다. 바람과 날카로운 금속질의 섬광만이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다.

왼손으로 억제기를 움켜쥐고,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뜯어낸다.

착지.

그러나 그대로 여운을 즐길 틈은 없다.

곧바로 거리를 벌려 자세를 바로잡는다.

그녀가 있던 바닥에 파멸인의 공격이 할퀴고 지나간다.

“여기서부터 진짜로 위험하니까.”

루우의 긴장 섞인 중얼거림에 효윤도 침을 삼킨다.

이마가 촉촉해지는 것 같다. 허벅지에, 종아리에, 복근에, 어깨와 팔의 근육에 힘을 밀어 넣는다.

억제기가 제거되자마자 파멸인은 몸을 쭉 펴더니,

그 기괴한 새 울음소리를 한 번 뽑아냈다.

공격방식을 바꾼 것이다.

이단에게 가장 위협적인 방식으로.

이제부터 저 파멸인은 이단의 ‘이’를 무너뜨리는 공격을 해 올 것이다.

그리고 저런 상태의 파멸인을 대처하는 방법은-

루우는 언월도를 들어 정면으로 뻗는다.

언월도의 날이 접히듯 안으로 말려들어 가고, 날을 물고 있던 용머리 장식이 부풀어 오른다.

기계가 작동하듯 변형을 거듭한 끝에 루우의 오른손에는 포 한 문이 남았다.

그대로 용의 입에서, 일직선으로 빛과 번개를 쏘아낸다.

연구소 내부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위력은 줄였다. 칸발리크에서 이 포로 상대하던 것보다 작은 개체이기도 하고.

루우가 쏴댄 포는 파멸인의 몸 여러 곳을 터트리며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번 내리긋듯이 쏘자 두 동강이 나 쓰러진다.

빛줄기는 파멸인 너머의 벽에 그을음 자국을 그렸다.

“저 상태의 파멸인을 상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그렇게 말하며 루우는 효윤을 돌아보고 씩 웃었다. 효윤도 허탈하다는 듯 마주 웃었다.

“이단의 전투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걸까.”

“선호하는 방식만 고집해선 새로운 전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지.”

동명시 지하철에서의 전투, 칸발리크에서의 전투…… 멀리 아즈텍 대륙에서 전해져 온 새로운 전투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한 결과 대(對) 파멸인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그 연구를 맡기로 한 것이 제국특수무예연구소.

“2인 이상의 연계 공격으로 단숨에 벤다. 파멸인이 전투 방식을 바꿨을 땐 원거리 공격으로 대항한다.”

“일반 군인도 충분한 화력을 퍼부을 수 있고, 거리가 벌어져 있다면 그런 방식으로 싸울 수 있겠어.”

“음, 하지만 짐에 필적하는 화력이 나오려면 부대가 대규모든지 아니면 무기 자체의 화력이 강하든지 해야 할걸. 그런데 그건…….”

칸발리크나 동명시 지하철에서처럼 시가전 또는 좁은 공간에서 기습을 당한 경우에는 그런 조건을 만들기가 곤란하다.

일반 군인이 파멸인을 상대할 방법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하물며 경찰은 그저 참살당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지.

“실험에 몸소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중장 각하도.”

투글룩 소장이 걸어오자 두 사람은 말을 그쳤다.

루우는 심드렁한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우리가 뭔가 유용한 데이터를 줬을 것 같진 않은데. 이제는 대부분의 이단이 이런 방식으로 파멸인에 대응하고 있지 않나?”

“폐하와 중장 각하의 대응은 보다 뛰어난 이단의 전투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용합니다. 이단의 훈련에 있어 어떤 기준점을 잡고 훈련을 통해 기량을 끌어올릴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죠.”

흠, 하면서 루우는 끄덕인다.

효윤은 좀 다른 질문을 던져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실험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이단 관련 연구는 위험성을 감수하고 하는 일이라지만…….”

“예, 저희도 그 위험성은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불가피한 측면이 강해서…….”

“물론 실험에 임하는 이단들도 국가와 황실에 충성을 맹세했으니 자신의 위험은 감수하겠죠. 문제는 실험 재료로 나오는 파멸인입니다.”

이미 리안도 보고를 받았고, 루우와 효윤도 실험 전에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그래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죽인 파멸인은 이 연구소에서 ‘생산된 것’이다.

파멸인에게도 죽음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말이지만.

동명시 지하철에서 벌어졌던 파멸인과의 전투, 칸발리크 사태를 전후에 입수한 여러 ‘재료’들. 여기에 더해 투글룩이 몽골에서 빼낸 연구자료들을 토대로 ‘신종의 씨앗’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신종의 씨앗은 아까 전 파멸인처럼 억제기를 달고 있다. 좀 더 거대하고 복잡하게 생긴 것으로.

그 억제기를 통해 ‘원할 때’에만 반응을 유도, 파멸인 단 한 개체만을 생산해내도록 하고 있다.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라 말하고 싶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통제에 문제는 없겠습니까? 만약 신종의 씨앗이 폭주한 나머지……”

피범벅이 되어 버린 도산서원과 같은 사태가 일어난다거나, 칸발리크에서와 같은 비극이 일어난다면?

그런 사태가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는가?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습니다.”

투글룩은 솔직하게 ‘완전한 통제’는 보장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대신, 만일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 이 연구소 선에서 모든 걸 끝낼 준비는 된 듯하다.

연구소는 자폭해 지하에 묻어 버리고, 연구원은 고통스럽게 죽기 전에 자결할 수 있도록 약물류를 지급해 둔다.

안전문제는 더 지적해봐야 의미가 없기에, 루우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정확히 얼마나 기술이 진보한 거지?”

“아직은 진보라 말할 정도의 성과는 아닙니다. 몽골에서 거두었던 연구 성과가 여기서도 재현 가능한지 확인해보고,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나 철혈의 꽃에서 거둔 성과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추정해보는 정도입니다.”

그 두 집단에 비해 다소 뒤처졌다는 이야기다.

위험한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되는 데에는, 이로 인한 초조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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