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회담(7)
고태용이 제안한 ‘공작 계획’은 이랬다.
지금, 그러니까 1931년 하반기.
‘제1차 개봉회담’이 개최된다. 여기서 티베트를 비롯한 4개국의 다이온 연방 가입, 고려의 회원국 독립 보장, 한족 반란 토벌 문제 검토 등이 이루어진다.
1932년 상반기.
한족 반란을 완전히 제압한다. ‘한족 관리 특구’의 건설을 실행에 옮긴다.
1932년 하반기.
이상의 성과를 토대로 향후 방침을 논의하기 위한 ‘제2차 개봉회담’을 연다. 여기서 울제이에 대한 적절한 자극이 가해진다.
울제이가 준비를 마치고 행동에 나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반년이 아닐까.
물론 그보다 빠를 수도 있지만, 일단은 반년이라고 가정하고 계획을 잡아보자.
1933년 상반기.
개봉 및 응천에 심어두었던 정보망을 통해 고려는 행동을 개시한다.
울제이가 응천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파벌의 쿠데타를 사주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울제이는 가장 먼저 바이다르의 신병을 확보하려 할 테니, 고려는 울제이보다 선수를 쳐서 응천 궁정을 장악하고 바이다르의 신병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선 낭키아스 파견군 사령관인 우흥섭 대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봉을 중심으로 한 키타이, 또는 ‘화하 한족 관리 특구’에 주둔 중인 부대들은 즉각 키타이군의 움직임을 봉쇄.
그간 건설된 철도망과 전신망을 통해 서부군이 신속한 행동에 나서, 카라코룸과 칸발리크를 장악한다. 카라코룸에서는 그쪽 행정장관이, 칸발리크에서는 제국입헌당과 볼로드가 내응한다.
1933년 하반기.
울제이의 실각, 응천 쿠데타 시도 등의 상황을 정리한다.
1934년 상반기.
다이온 연방 내 주요 거점이 고려군의 손에 장악되고, 게레센제는 인질로 잡힌 바이다르로 인해 퇴위를 결정.
새로 열린 쿠릴타이는 루우 테무르의 즉위를 결의한다.
이런 예정표대로라면, 「화림 계획」에 따른 카라코룸 천도는 1935년이나 1936년으로 잡을 수 있겠군. 견하는 마음속으로 계산해본다.
나쁘지 않다.
1934년 상반기라면 견하 자신은 스물두 살. 리안도 스물다섯이다. 앞으로도 제국을 이끌어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루우도 그때는 스물한 살 정도겠지.
1936년이라면 스물넷, 스물일곱, 스물서넛쯤 될까.
새삼, 자신들이 아직 많이 어리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그런 감상은 잠깐뿐이었고, 견하는 고태용의 시간표에 동의를 표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겠군요.”
“아 그리고……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부탁인데.”
견하는 다소 긴장한다.
제국정보사령부라는 조직의 이익이 아닌, 고태용 개인적인 부탁은 대비한 게 없는데.
“‘선출제 장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나?”
“아, 예.”
겉으로는 좀 더 일반 병사에게 공정한 계급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리안에게 충성하는 군 파벌 형성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런 장교들이 정보부에 들어오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화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줄 수는 없느냐는 부탁을 하고 싶네. 솔직히, 자네는 태사 각하의 최측근 아닌가?”
주 국장의 발언을 완전히 무시하실 순 없지 않겠나, 하고 고태용은 조심스레 물어본다.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기엔 뭣했기 때문에 견하는 일단 끄덕였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워낙 완고하신 분인지라…….”
“노력해주기만 하면 되네. 합동참모본부 쪽으로 그런 장교들이 들어가는 걸 내가 어찌할 수 없듯이, 자네 위치에서도 한계가 있을 테니.”
불현듯, 견하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친다.
선출제 장교들을 ‘어디로 보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갈 장교들을 ‘내 쪽으로 보내달라’고 할 수는 있지 않을까?
고태용의 말처럼 자신은 태사의 최측근이다.
최측근 밑에, 태사 충성파 군인들을 배치한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견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얼굴 가죽 밑으로 감추며, 겸손한 태도로 끄덕였다.
***
대원철도주식회사의 설립. 그리고 그 움직임은 게레센제 카간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의도는 뻔하다.
산업 건설에 개입, 경제적으로 몽골을 장악한다.
전신 건설에 개입, 몽골 내부의 정보를 장악한다.
군사적 개입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둔다.
고려 황제 루우 테무르의 야심에 맞서기엔 게레센제의 힘이 너무 부족하다. 그렇기에 카간은 보험으로 바이다르를 낭키아스에 보내두었다.
슬픈 일이다.
아들을 정치적 도구로 쓸 수밖에 없다는 건.
그리고 그 슬픔의 크기만큼, 게레센제의 혈통에 대한 집착은 늘어만 간다.
자신이 아들의 계승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는 건 슬프지 않다. 그저 징검다리를 밟는 사람이 엉뚱한 인간이 아니기를 바랄 뿐.
“형님께서도 이렇게 루우 테무르를 사랑하셨습니까?”
어두운 허공을 향해 게레센제는 독백한다.
“제가 제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 형님도 자식을 사랑하셨다면, 저도 이제 형님이 후계자 문제에 그처럼 애매한 태도를 보이셨던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은 아마 루우 테무르에게 기울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동생을 두고 루우 테무르를 후계자로 확정하면, 시레문을 둘러싼 정국은 흔들린다.
시레문이 흔들리고 약해지면, 루우 테무르도 약해진다.
그러니 동생들에게도, 딸에게도 물려주겠다는 이야기를 쉽사리 꺼낼 순 없었겠지.
“형님과는 달리, 저는 제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도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카간의 눈이 빛난다.
“반드시 바이다르를 홍타이지(皇太子)로 세우고 말 것입니다.”
***
게레센제는 볼로드에게 나란히 걷는 것을 허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로드는 아주 약간 뒤처져서 걷는다.
아무리 자신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해도, 카간은 카간이니까.
이곳은 소규모 사열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고.
여러 사람의 눈앞에서 신하인 자신이 카간을 능멸하는 듯 비치는 건 절대로 좋지 않다. 반드시 후환이 되리라.
“그대가 꿈꾸는 다이온은, 고려인들의 지배를 받는 구조는 아니겠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기에 볼로드는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일단 예, 라고 대답한다.
“다이온의 주도국은 어디까지나 몽골, 지배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몽골인이어야 하네.”
바람이 차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개봉은 여기보다 남쪽이니까 좀 더 따뜻하겠지.
“고려에서 원철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의도는 그대도 파악하고 있을 걸세.”
“그러합니다.”
묵인하고는 있지만, 볼로드 입장에서도 탐탁지 않은 일이긴 했다.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일은 아니지. 오늘 이 사열에 그대까지 부른 건 그 때문이다.”
신원경제자원연구회(新元經濟資源硏究會)의 창설.
그 뜻을 풀이하자면 ‘새로운 원나라의 경제와 자원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단순한 연구회가 병력까지 갖춘 건 어색하지만, 어쨌든 겉으로는 평화적 목적을 위장할 필요가 있으니까.
“이 연구회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새롭게 탄생한 다이온의 경제체제를 연구, 전 국토의 자원 개발을 위한 탐색’하는 것이네.”
그 자원 탐색과 개발은 순수하게 산업 발전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
석유, 혹은 석탄액화 연료 등은 확실히 ‘군수’ 자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신원경제자원연구회는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자유롭게 조직된 민간 연구단체지. 다소 정부의 지원도 받고, 짐이 직접 부대를 지휘하게 되겠지만.”
활동 범위는 몽골 본토에 그치지 않고, 키타이와 낭키아스를 포함한다.
게다가…….
“고려에까지 파견하시면, 이는 첩자를 파견하는 일 아닙니까.”
“재상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겠지.”
고개를 돌려 볼로드를 바라보는 게레센제의 눈빛이, 차가운 바람 이상으로 날카롭다.
“다이온은 고려와의 우호 관계를 토대로 성립한다. 그 점은 짐도 잘 아네. 하지만 고려가 이빨을 드러낼 가능성을 애써 외면한다면 그자는 그야말로 혼군(昏君)이지 않겠는가. 짐도 유사시에는 그 원철이라는 집단의 영향력을 일거에 걷어낼 준비를 해 둬야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볼로드는 조아린다.
‘유사시’에는 고려에 반격을 가할 준비. 아마 저 병력은 원철이 건설한 철도와 그 부속지를 기습할 부대일 것이다.
“어떤가. 짐이 그대가 충성할만한 가치가 있는 카간인가? 아니면 그저 음모꾼에 불과한가? 후자라면 아직 부족한 셈이겠군. 좀 더 노력해봐야겠지.”
눈빛과는 다르게, 게레센제는 상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짐은 그대를 루우 테무르에게서 빼앗으려는 걸세. 내 편으로 포섭하려는 게야.”
***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네요.”
주견하와 이익서, 한재연, 유지나, 네 사람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
그들은 제국정보사령부에서 보내온 문서들을 둘러싸고 머리를 맞댄다.
“몽골 쪽에서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에요, 라는 눈빛으로 지나는 견하를 바라본다.
“……우리의 움직임에 게레센제가 충동질 당할 건 상정한 범위 내의 일이야.”
“그렇다면 이대로 지켜보려고? 볼로드는 흔들리는 것 같다는 내용도 있는데.”
재연의 의견이었다.
“볼로드도 속일 수 있다면 속여야겠지.”
“지켜보는 쪽으로 결정 나는군.”
“지켜보기만 할 뿐만 아니라, 될 수 있으면 좀 더 충동질해볼 생각이야.”
“좀 더 충동질해본다면……?”
“바이다르를 황태자로 세우는 사태가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황태자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비치는 선까지는 충동질해보고 싶은데.”
지나가 다급히 고개를 젓는다.
“그 지경까지 가면 전쟁이에요.”
“알아. 그 지경이 되기 전에 움직여야지.”
“또 가느다란 선 위에서 줄타기하실 생각이군요, 선배.”
나무라는 듯 바라보는 지나의 눈빛에, 견하는 긴장을 풀고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울제이를 초조하게 만들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어.”
“하지만 카간은 우리 고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어요. 우리가 선수 칠 움직임을 조금만 보여도 대응해 올 거라고요.”
“그것 자체는 좋은 일이야. 카간이 키타이의 움직임에는 집중을 못 한다는 의미니까.”
“그래. 그러니까 ‘시점’이 중요하지.”
절묘한 시점.
울제이가 행동에 나서지만 바이다르의 신병 확보에는 실패하는 시점.
게레센제가 울제이의 돌발 행동에 놀라 고려에 대한 긴장을 풀어버리는 찰나.
그때가 행동에 나설 순간일 것이다.
“오늘내일의 일은 아닐 거야. 적어도 3~4년은 두고 생각해야 해.”
“여유와 긴장을 동시에 갖추라니 또 무리한 방침을 내리시네요.”
“미안. 고생들 좀 해줘. 제국정보사령부에는 갈등을 피하라는 권고를 해두자. 신원…… 어쩌구 연구소에서 고려로 나온 연구원들 말이야. 동향 추적만 하고 일단은 내버려 두라고.”
잠깐 말을 그쳤다가, 견하는 눈을 빛내며 일어섰다. 몸과 머리는 고생스러울지 모르지만, 상황 자체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태사 각하나 철도성과 의논하는 건 내가 직접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