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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13화 (313/541)

개봉회담(5)

“태사부와 외무성, 철도성, 서부군에 키타이 및 낭키아스 파견군까지 참여하고 있는 일이죠. 저도 개인적으로 ‘알타이 민족 문제 연구소’라는 기관을 지원하는 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고요.”

“……‘동군연합’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건 알고 있네만.”

“본래는 시레문 카간께서 살아계실 때를 상정한 계획이 있었습니다만, 작년 칸발리크 사태로…….”

그 이후는 아시지 않습니까, 하는 표정으로 견하는 고태용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런데 게레센제 카간이 즉위할 때, 자네도 칸발리크에 있지 않았나? 거기엔 자네가 뭔가 한 일이 없는 건가?”

“게레센제는 징검다리입니다.”

놀랐다는 듯, 그리고 알겠다는 듯한 얼굴로 고태용은 끄덕였다.

“어렵게 됐구만. 하긴 시레문 카간 붕어 직후엔, 우리 폐하께서 두 숙부보다 카간 자리에 더 가깝진 못하셨지.”

“그 외에도 일단 몽골 내전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내전은 변수가 너무 많아서…… 정국을 안정시켜 놓고 나서야 동군연합 문제를 생각해 볼 틈이 날 테니까요.”

“주 국장이 말한 대로 시레문 카간이 오래 살았다면, 그 시간 동안 우리 폐하가 카간위를 잇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가능했겠지. 하지만 일단 게레센제가 카간이 된 상황에선 일이 간단치가 않아.”

고태용은 왼손 끝을 목덜미 근처에서 앞뒤로 까딱였다.

“치워버려야 할 사람이 너무 많지. 게레센제, 그 아들 바이다르, 그리고 여전히 만만찮은…… 울제이까지.”

“치워버리기 위한 계획 자체는 이미 잡혀 있습니다. 문제는 계획만 있고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 추진력을 제국정보사령부에서 빌리고 싶은 거고요.”

“빌리는 김에 계획 검토도 좀 받아보고?”

“이런 공작은 처음이라 아무래도…….”

견하는 간략하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했다.

몽골의 좌익으로 구성된 제국입헌당 몽골 지부는 확실히 이쪽 편이다.

몽골의 태사 볼로드의 태도에는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필요한 순간 이쪽 편이 되어줄 가능성이 높다.

바이다르의 응천 궁정에선 낭키아스 파견군의 우흥섭 대장을 통해 공작을 진행한다.

울제이의 개봉 궁정에선 키타이 파견군의 장해진 대장을 통해 칸을 뒤흔든다.

철도성이 주도한 대원철도주식회사는 몽골 각지로 ‘고려군 통제가 가능한’ 철도를 확대한다.

최종적으로 정국이 한 번 크게 흔들릴 때, 바이다르의 신병을 확보하고 울제이를 실각시키며, 게레센제의 퇴위를 강요한다.

거기까지 듣고 고태용은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그 생각이 어딘가에 미쳤는지, 그는 살짝 찌푸린 얼굴을 들어 견하를 바라봤다.

“이 계획…… 그걸로 끝이 아니군.”

“끝이 아니긴 합니다만, 그건 아직 계획이라 말할 수도 없는 수준이라.”

“말해주게. 폐하의 몽골 카간 즉위, 고려와 몽골이 같은 군주를 모시게 되면 그다음 목표는 뭐지? 우리도 그걸 알아야 방향을 잡고 행동에 나설 수 있어.”

보험을 만들어 두려고 하는군. 꽤 주의가 깊어. 견하는 감탄한다.

“일단은 다이온 연방 내에서 고려의 영향력을 크게 키울 겁니다. 지금 참관국인 상태로도 구성국들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만, 연방 내 종주국 자리를 공식화할 생각입니다.”

“‘종주국’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건……다이온 내부의 세력 구도에 상당한 개편이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겠군?”

설마, 몽골을 완전히 합병할 생각인가? 라고, 고태용은 질문을 던져본다.

견하는 말없이 끄덕였다.

“허.”

고태용은 그렇게 짧은 감탄사를 내뱉더니 입술을 핥는다. 긴장감이 적잖이 밀려오는 모양이다.

“다이온도?”

“언젠가는 이렇게 관세동맹에서 발전한 느슨한 연맹체가 아니라 단일한 국가가 되어야겠죠.”

“……좋아. 합작의 장기적인 목표는 그렇다 치고, 우리가 해 볼 첫 단계는 뭐지?”

“곧, ‘동아시아 협력회의’가 개봉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약칭 ‘개봉회담’. 우리 태사 각하를 비롯해서 키타이 칸, 낭키아스 칸, 볼로드 태사 등이 참석하겠죠.”

견하와 고태용 사이에 오가는 서류는 없다. 개봉회담의 공식적 취지는 어디까지나 한족 반란 진압과 다이온의 미래를 논의한다는 것이니까.

그러니 구두로만 전달한다. 이런 공작은 당사자들끼리 은밀하게, 문서를 남기지 않고 진행해야 하는 법이다.

물밑에서 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짐작하는 사람들은 있겠지. 하지만 문서화 되지 않는다면 이의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 외에도 티베트, 탕구트, 대예, 보우슈엥이 회담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그 나라들은 그냥 얼굴만 내미는 게 아니겠지?”

“한족 반란이 그들 나라에도 번져가는 문제를 논의할 겁니다. 게다가 이 나라들은 최근 공산주의의 확산도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버마 혁명에 바라트가 개입한 것 말이지.”

“‘다이온 연방군’이 이들 나라의 안정을 돕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군요.”

“다이온의 군대가 개입한다……, 라.”

두 사람은 다시 술잔을 맞부딪친다. 한 번 죽 들이켜고, 뜨거워진 식도를 진정시키려는 듯 두부와 김치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다.

“그 4개 국가도 연방에 가입시킬 생각인가?”

“아마 그런 이야기도 나올 겁니다.”

“불안에 떠는 나라들이 다이온이라는 더 큰 힘에 기대게 한다……. 앞서 나온 말을 종합해보면 당연히 다이온 군대의 주축은 우리 고려군이겠고.”

고태용은 견하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바라트 쪽은 우리 제국정보사령부의 관심에서 좀 벗어나 있어서 하는 질문인데, 혹시 세력 분할은 이미 협의된 일인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외무성 쪽에서는 이미 거기까지 일을 진행한 듯합니다.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 때도 그쪽 대표단과 논의를 했던 것 같고.”

“무대를 이미 마련해놓고 중간에 낀 불쌍한 나라들 등만 떠미는 거군. 좋아. 여기까지도 이해했네. 그럼 우리 고려는 개봉회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 예정이지?”

“표면적으로는, ‘몽골 국민이 원하지 않는 한, 고려가 몽골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합병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 선포할 겁니다. 독립 보장이죠.”

고태용의 표정이 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일그러진다.

“잠깐, 지금까지 해 온 말하고는 좀 다른 이야기인데.”

“몽골 내부에서 다이온의 주도권을 고려가 잡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내전에서 패배한 알타이 자유 공화국의 잔당이 그 중심에 있는데, 지금은 내전과는 관련이 없었던 국민들도 거기에 가담하는 것 같더군요.”

우리는 무력으로 몽골을 병탄하려는 게 아닙니다, 라고 견하는 덧붙였다.

“내전으로 많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가급적이면 몽골의 국력을 그대로 보존한 채 활용하고 싶거든요. 앞으로 한족 통치를 위해서도 ‘지배 민족’의 수는 될 수 있으면 많은 게 좋고.”

“몽골과 고려가 반목할수록 한족에게 씌워진 굴레는 헐거워질 테니.”

“애초에 지금 고려는 한족 반란 문제 이상의 군사 행동을 감당할 여력이 없습니다. 불만을 품은 몽골 민중과의 전투에서 소모되는 비용도 우리에겐 무시 못 할 무게로 다가올 겁니다.”

설령 그게 민병대 규모의 부대들을 각개격파하는 거라 해도 말이다.

전투는 전투다.

“그래, 자네 말대로 ‘몽골 국민이 원할 때’ 합병하려면 일단 반발을 최소화해야겠지.”

“칸발리크 시민들 사이에서는 황제 폐하의 인기가 높지만, 그게 꼭 고려의 지배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서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몽골 국민들도 어느 날 갑자기 ‘고려의 지배가 좋아’라고 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면…… 좋아하진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게끔 해야겠지?”

“예. 그래서 일단은 정국을 뒤흔들 겁니다.”

“흔들리는 정국 속에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반대로 안정을 향한 열망은 높아진다. 그런데 ‘게레센제나 울제이, 바이다르는 그 안정을 가져다줄 수 없다’.”

견하는 내심 감탄한다. 고태용은 단순한 군인이 아니다. 그가 다루는 정보는 고려의 군사 목적에 관련된 분야로 제한되어 있겠지만, 통찰력 자체는 상당하다.

지금 나누는 대화를 따라잡는 것만 봐도 그렇다.

평소에 이런 쪽으로도 정보를 수집하면서 생각을 거듭해왔다고 봐야겠지.

숙군에서 살아남은 기민한 남자라면 그럴만하다.

“‘몽골의 현 상태로는 혼란을 수습하기 어렵다’는 결론까지 나온다면 더욱 좋겠죠.”

“감찰국과 제국정보사령부는 바로 그 ‘물밑에서 정국 흔들기’ 공작을 펼친다는 거군.”

핫, 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웃음기를 남긴 채, 고태용은 상체를 견하 쪽으로 내밀었다.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볼까, 주 국장.”

***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은 했다.

그러나 재연은 예상을 뛰어넘는 압박감에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앉아 있는 태사 미리안은, 도저히 그 작은 체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에 비하면 황제나 견하, 그리고 지금 태사 뒤편에 서 있는 최효윤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다시 한번 상기한다.

견하가 자신이나 다른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의 목숨을 살려줄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태사가 허락해줬기 때문이라는 걸.

태사의 변덕 하나로 자신의 목은 언제든 날아갈 수 있다는 걸.

핏기가 가신 얼굴을 충분히 감상했는지, 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명하신 일 하나를 맡고 있다지?”

“……그렇, 습니다.”

긴장해서인지 목소리가 갈라진다.

리안은 그녀 앞에 놓인 서류를 대충 떠들어 본다.

“이게 그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이고…… 지금은 AN연구소의 연구소장이고?”

“예.”

“폐하의 뜻이니만큼 신하인 내가 거스를 수는 없어. 주견하 국장도 자네가 하는 일을 승인했고, 그 자신도 뭔가 아이디어를 덧붙인 모양이던데.”

제법이라는 건지, 아니면 건방지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한 소장 생각은 어떻지? 그 「계획」에 대해서 뭔가 의견이 있지 않나?”

“저는 그저…… 명령받은 대로 그럴싸한 연구 결과를 내놓는 사람일 뿐입니다. 제 의견이라고 해봤자 자문 요청에 응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런가? 그런 것 치고는 이 계획…… 허동주의 것과 많이 비슷한데? ‘알타이 민족’ 개념은 얼마 전에 진압당한 인민동맹의 것을 차용한 것 같고.”

재연은 침을 삼켰다. 어쩌면, 어쩌면 자신이 숙청당할 때가 왔을지도 모른다고 내심 각오하며.

태사가 마음을 굳힌다면 견하가 아무리 재연을 감싸고 돌아도 보호해줄 수 없다.

“단순한 사상검증 과정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나는 허동주와 직접 마주 보며 논쟁을 벌였던 사람이야.”

재연이 허동주의 저서나 연설을 통해 사상을 배우고, 내전 이후에야 독자적인 이론을 발전시켜나간 것과는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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