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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12화 (312/541)

개봉회담(4)

제국정보사령부와 감찰국의 요원들은 목표로 삼은 건물로 접근한다.

방금 전 짧은 교전과 체포 작전으로 인해 인파는 완전히 흩어져버린 상태.

인파 속에 섞여 도망친 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자들까지 모조리 찾아내긴 힘들겠지.

하지만 애초에 불순분자들과의 싸움은 섬멸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이번 작전은 그들이 열심히 모아 둔 자금이나 설비 같은 것을 박살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국가 규모 뒷배가 있는 조직이야 손상된 장비나 인원을 보충할 수 있지만, 이런 가난한 아나키스트 조직은 다르다.

오늘 한 번 타격을 입으면 그걸 복구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믿을 만한 동지를 다시 모으고, 돈을 긁어모으고…… 사상에 동조하는 ‘부자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자들이 주변 상인들을 약탈할 수밖에 없던 사정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일단 한번 밟아놓으면 납작 엎드려 숨는단 말이지.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몇 달, 정신 차리고 조직 복구 시작하는 데 몇 달…… 그러다 보면 1년이 금방이야.”

피가 끓던 이십 대도 슬슬 정착에 대한 미련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상에 모든 걸 바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람은 먹어야 사는 동물이니까.”

그렇게 하나의 불순분자 조직이 와해된다.

“하지만 그들의 어록이나 팸플릿, 각종 서적은 남지 않습니까.”

끝까지 버틴 극소수의 인간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상을 지키다 죽어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정신은 유산으로 남는다.

정신은 무섭다. 그것은 육신을 초월해,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세대에 계승된다.

분서갱유조차 사람의 기억, 불타고 남은 조각에서 경전을 복구해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막지 못했다.

허동주의 사상과 천손민족협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았다.

고태용은 씩 웃었다.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세상에 불순분자 하나 없으면 우리는 금방 실업자가 되고 말 걸, 고태용은 그렇게 덧붙였다.

“아닌가? 이런 데 소질이 있으면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으려나.”

그 말에 견하는 마주 미소를 지어준 다음, 소매 끝에서 촉수를 뽑았다. 그것들은 땅바닥에 내려앉아 뱀처럼 꿈틀거린다.

“오, 그게 소문의…….”

고태용은 감탄하는 얼굴로 견하의 무기를 가리켰다.

“듣자 하니 검의 형태로도 만들 수 있다던데.”

“오늘은 작전 특성상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겁니다. 구조가 복잡한 실내에서는 이쪽이 범용성이 좀 더 높거든요.”

견하가 두 팔을 늘어뜨리자, 기다린 옷소매 같은 촉수들이 바닥을 쓸었다.

고태용은 저게 사람을 으스러뜨리고 꿰뚫는 짐승들임을 안다. 주견하에 대한 조사는 충분히 해 뒀으니까.

자, 그럼 저 젊은 친구가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보도록 할까.

***

외따로 떨어진 건물이 목표였다면 5개 조가 다섯 방향에서 포위하고 조여 들어가면 될 뿐이다.

그러나 목표인 아나키스트 조직의 은신처는 시가 한복판의 술집 겸 하숙집에 틀어박혀 있다.

이런 경우엔 술집 주인도 가담했다고 봐야겠지. 술집은 위장이자 얼마 안 되는 자금원이고, 동시에 조직원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할 것이다.

조금 전에 낑낑대면서 인쇄 기계를 운반하던 자들이 잡히거나 죽었으니까, 본거지는 아주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난리가 났을 테지.

인쇄기를 압류한 곳은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이다. 감찰국 직원들도 반대 방향의 큰길가에서 이중 첩자를 체포했다.

간단히 심문해보니 거물인 조직의 리더는 이미 빠져나간 모양이다. 포위를 눈치채고 도주한 건 아니고, 중요한 논의가 끝나면 곧바로 자리를 떠서 종적을 감추는 게 습관인 모양이었다.

“……꽤 쓸만한 놈이군.”

만약 회유해서 자기 밑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견하는 생각했다. 하지만 저렇게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라면 그런 날은 오기 힘들겠지.

아직 안에 남아 있는 자는 행동대장 격이라고 한다. 이 자는 죽여야 하나?

제국정보사령부에 같이 일하기에 좋은 사람, 그리고 적으로 돌리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확실히 심어주려면.

아니, 아니지.

아까 고태용은 견하의 ‘지나친 점’을 지적했었다.

여기서는 살려서 잡아야겠지. 도망친 리더의 행방이라든가 다른 유용한 정보를 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런 분별력은 있는 인간이라는 걸 제국정보사령부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는 건물을 올려다본다.

“야별초 때보다 까다로울 수도 있겠군.”

야별초 청사, 지금은 정치경찰실과 감찰국이 쓰는 그 건물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옛 태사부 건물과 달리 지하로도 도망칠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몰아넣고 진압하는 게 가능했지만…….

“이렇게 건물들끼리 붙어 있으면 눈에 띄지 않게 빠져나가는 통로가 있기도 합니다.”

이익서의 의견이었다. 오랜만에 소총을 든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시가전은 늘 긴장되는 일이니까.

“좁은 건물 내부는 방어에 유리합니다. 함부로 들어섰다간 우리도 피해가 나올 수 있죠.”

“적이 옆 건물로 몰래 이동해서 뒤를 칠 수도 있나?”

“그럴 수도 있습니다. 도망칠 수도 있고.”

견하는 끄덕인 뒤 옆 건물로 향했다. 나머지 요원들도 주변 건물로 흩어진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 골목, 옆 건물의 벽, 바닥…… 수상쩍어 보이는 것을 모두, 신속하게 탐색한다.

-돌입 허가를.

무전으로 들려오는 이익서의 목소리에 바로 응답하지 않고, 제국정보사령부 쪽에 말을 걸어본다.

“정보부 3개 조의 준비는?”

-완료. 돌입 명령 대기 중.

“……적은 폭탄 제조를 위한 물자를 입수했다고 들었는데, 폭탄이 이미 완성되었을 가능성은?”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음. 하지만 대응훈련은 되어 있음.

대응훈련이 되어 있다고 해도…… 저들이 최후의 발악으로 자폭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온다면, 이쪽도 만만찮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적의 거점이 된 건물은 무척 낡은 것 같다. 자폭 시 건물이 무너지면 피해는 더 커진다.

게다가 적에게 이단 전력이라도 있다면, 돌입과 동시에 선봉은 거의 전멸당한다.

견하는 숨을 들이켜고, 말했다.

“내가 먼저 돌입한다. 신호를 기다리도록.”

견하는 옆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아마 적은 입구를 통한 진입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의표를 찌른다.

벽 앞에 선다. 이 벽 너머로 적 거점의 벽까지 떨어진 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조금만……

촉수들이 일격에 벽을 부순다. 건너편 건물의 벽은 부서지지 않았다. 적이 이 상황이 무엇인지 깨닫기 전에 돌입해야 한다.

두 번째 공격으로 건너편 벽을 뚫는다.

촉수들은 무너뜨린 벽의 파편들을, 뱀이 먹이를 으스러뜨리듯 부순다.

그대로 도약.

벽이 부서지기 시작하면서 대비는 되어 있었는지 권총 사격 몇 발이 쏟아진다. 흐물거리는 촉수들의 막으로 탄환을 막아내는 건 이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래. 폭탄을 제조하려 들 정도면 권총이야 벌써 확보했겠지.

생각보다 위험한 조직이라고 생각하며 견하는 행동에 들어갔다.

“누가 얼마나 중요한 인간인지 모르겠어…….”

함부로 죽일 수가 없네.

견하는 일단 눈앞의 두 남녀를 촉수로 후려친다. 촉수의 두께는 성인 여성의 팔 굵기 정도는 되니까 꽤 아팠을 것이다.

그들은 컥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다.

뒤에 있던 적은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도주한다.

“높은 곳에서 상대할 셈인가.”

그래 봤자 크게 유리해지진 않겠지만, 전술적으로는 옳은 판단이다.

이대로 추격해서 상대해도 큰 무리는 없겠지만, 견하는 좀 더 ‘부드러운’ 방법을 쓰고 싶었다.

왼팔의 붕대를 푼다.

금속 질감이 느껴지는 표면이 보인다.

여러 기계를 팔 모양으로 꿰맞춰 놓은 것 같은 그 모양.

틈새로 기름이 새는 것처럼, 촉수를 이루어야 할 하얀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듯도 하다.

견하는 왼팔을 그저 늘어뜨렸다.

하얀 것들은 일부는 얇은 막을 이루어, 또 일부는 그 위에서 또 다른 촉수가 되어 꿈틀거리며 퍼져나간다.

바닥을 덮고, 계단을 타고 오르며, 벽을 덮고, 천장을 지나 위층으로.

‘으아아악 뭐야!’ 같은 비명이 들려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친 듯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웅덩이에 총을 쏜다고 물이 마를까.”

난처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 견하는 천천히 위층으로 향했다.

이제 돌입하라는 명령을 내리며.

위층은,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하면 바닥 전부가 하얀 벨벳을 깔아놓은 것처럼 되어 있다.

벨벳의 부드러운 털 대신 이를 드러낸 괴물들이 들어차 있지만.

적은 틱, 틱, 하고 탄환이 다 떨어진 채 방아쇠만 당긴다.

공포로 인한 판단 마비.

이단과 싸운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도 해 본 적 없다는 얼굴들.

제압은 끝났다.

***

동명은 아직 가을이지만, 이곳 상경에는 벌써 겨울이 찾아온 듯 추위가 옷 안으로 파고든다.

“제법이더군, 감찰국장. 그 나잇대에는 자네 같은 사람이 흔치 않거든.”

첫 잔을 주고받자마자 고태용이 던진 칭찬이다.

제국정보사령부가 보유한 안전가옥에서, 주견하와 고태용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감찰국을 그 정도로 키워낸 것 하며…… 솔직히 태사 각하보다 내가 먼저 자네를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야.”

평범한 소년이었다면 기껏해야 당신 전투화나 닦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냉소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지만 견하는 쑥스러운 미소로 덮어버렸다.

“과찬이십니다. 저야 황제 폐하의 은혜와, 태사 각하의 총애에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게 된 자에 불과하죠. 그저 오늘 많은 배움을 얻은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음, 그래. 배움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 우리 쪽에 회견을 요청한 것도 역시 뭔가 얻어가고 싶은 게 있어서겠지?”

“그렇습니다.”

“이번에 일하는 모양새를 보니까, 나는 감찰국에서 요청하는 걸 흔쾌히 내줄 마음이 들었어. 너무 무리한 것만 아니면 말이야. 그리고 주 국장은……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 사람이겠지?”

견하는 씩 웃었다. 그 얼굴을 보며 고태용도 씩 웃는다.

사내애들의 장난 같은 얼굴이지만, 그 사이에는 속내를 쉬이 드러내지 않는 팽팽한 탐색전이 치러지고 있다.

그 탐색전이 말 없는 휴전으로 끝나고 나서야, 견하는 입을 열었다.

“제국정보사령부와 감찰국의…… 공식적으로는 정치경찰실의 합작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합작? 좋은 말이지. 그런데 무엇을 위한 합작인가?”

“여러 가지를 위한 합작이죠. 첫째로 우리 황제 폐하의 ‘몽골 카간 즉위’를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겠습니다.”

고태용의 얼굴에서 장난스런 싱글거림이 사라진다.

“이거, 이거, 감찰국장 나으리가 꽤 큼직한 일에 손을 대고 계셨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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