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온(12)
“하지만 여기 콘스탄티누폴리에서 칸발리크와 같은 일을 벌일 수는 없을 겁니다. 벨리사리오스가 가장 경계하는 게 그거니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조금 머리를 굴려보게. 자네도 주견하라는 자를 상당히 의식하는 것 같은데, 주견하 식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
토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렇다. 자신이 상대의 속을 꿰뚫어 보면 상대도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본다.
“주견하 식이라고 하신다면?”
“때로는 정세에 올라타고, 때로는 정세를 밀어내지. 그러니까 우리의 폭탄은 콘스탄티누폴리 상공에 띄울 필요는 없네. 어딘가…… 로마 제국의 국경을 슬쩍 밀어낼 법한 곳에 설치하면 충분하지.”
“엑스라샤펠이라든가……?”
“키예프나 런던도 좋지. 그걸 로마 제국의 소행인 양 위장하겠다는 협박 정도만 해도 충분할 걸세. 몽골에서 여기까지 도망쳐 나온 재주라면, 유럽 각국으로 자네 동지들을 보낼 여력은 충분하지 않나?”
“뭐, 그렇긴 합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지렛대를 배치해둬야지. 벨리사리오스도 지금 당장 전쟁이라는 부담을 짊어지고 싶진 않겠지. 그의 머릿속에 전쟁이 있더라도 그건 로마를 완전히 휘어잡은 이후의 일이 될 걸세.”
“그럼, 총독 각하의 ‘수단’은 무엇입니까?”
“나는 늘 비밀이 많아. 그래서 비밀을 캐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일단 내 머리는 살려두고 있지. 비밀이 떨어지는 순간이 내 최후가 될 걸세.”
전혀 농담 같지 않은 그 건조한 말이, 신수덕 나름의 농담이었다는 걸 토칸이 깨닫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전에, 벨리사리오스가 돌아왔다.
***
신수덕과 토칸이 벨리사리오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누구의 눈에도 비밀스러워 보이는 연구소였다.
“유감스럽지만 국가에서 운영하는 건 아니오. 이건 순전히 내 개인 사업으로 돈을 대고 있는 거라…… 하지만 유용한 연구 결과를 그쪽에서 받아오고는 있다오.”
“전하께서는 인망이 참 높으시군요.”
“뜻을 세우고 나서는 가장 먼저 그쪽으로 손을 뻗었을 뿐이오. 자, 들어가 봅시다.”
어떻게 보면, 신수덕에게도 토칸에게도 익숙한 분위기다.
몽골에서 ‘피실험체’였던 토칸은 말할 것도 없고, 신수덕도 허동주 밑에 있던 연구소에 몇 번이고 시찰을 나간 적이 있었다.
철혈의 꽃 산하 연구소에서도 많은 실험을 거들었고.
그들은 연구소 깊숙한 곳으로 걸어간다.
무참한 모습의 시신을 실은 이동 침대가 그들 옆을 스쳐 지나갔지만, 누구의 얼굴색도 변하지 않았다.
신수덕은 그저 실험의 과격함을 통해 여기서 진행되는 연구의 성질을 추측하고 있을 뿐.
토칸의 경우엔 이 류리크-팔레올로고스 황실도 언젠가는 쓸려나가야 할 찌꺼기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당연히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그는 늘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
“신종의 씨앗.”
벨리사리오스가 설명하듯 내뱉은 말과 함께, 붉고 역겨운 살덩어리 근처를 지난다.
“영혼의 추출.”
하얗고 미끈거리는 덩어리가 보인다.
“영혼의 접촉.”
기절, 발작, 출혈 등의 증상을 보이는 자들이 있다.
사람을 쓰는 실험은 늘 위험하다. 피실험자에게도 위험하고, 연구원들에게도 위험하다.
피실험자가 성공적으로 이단이 된 직후, 연구원들을 적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피실험자의 신분이 분명치 않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고급 인력’인 연구원들은 떨어진 곳에서 ‘하급 노동자’에게 이것저것 지시한다.
정밀을 요하는 작업은 연구원들이 직접 올 수밖에 없지만.
‘이단’을 배치해서 대응케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단 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군인을 다수 배치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죄수나 고아를 데려오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오. 웬만큼 절박하거나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늘…… 자기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한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실험을 진행하오.”
인도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믿을만한’ 결과물을 내놓으려면 그러는 수밖에.
실험의 고통을 견디고 이단이 된 자는 자신의 조직과, 벨리사리오스 황자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렇기에 이단은 기본적으로 장교다.
“가문이 신의 은혜를 입어 타고나는 게 아닌 이상, 저쪽 세상에서 추출된 영혼을 신체에 접촉한다는, 다소 거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지요.”
그것이 인위적 이단 양성의 현황이다.
“그렇소. 다른 나라들도 비슷비슷할 거요. 저기서 영혼을 ‘제련’해서 자신의 무기로 삼든지, 영혼이 육체에 그대로 주입되어 비참한 결과를 낳든지…… 결정되지. 허나 신 총독, 당신이 고안한 방식은 영혼을 직접 주입하는 것 같던데.”
“그렇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단 영혼을 주입 당해 ‘이’가 붕괴된 육신을 이용하는 방식입니다만.”
“흥미롭군. 요컨대 파멸인의 육체를 ‘정제 과정’으로 삼는다는 건가.”
“몇 가지 공정을 더해야 합니다만, 일단 ‘투약’한 사람이 사망할 때에만 발동하는 방식으로 통제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통제가 가능하다면 다른 방식의 통제도 가능은 하겠군.”
“맞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연구 성과를 지금까지 인위적으로 이단을 양성하는 과정에 적용, 그 방식의 효율화를 꾀하는 것입니다만…….”
벨리사리오스의 눈이 빛난다.
“신 총독도 알겠지만 기존의 인위적으로 양성되던 이단은 ‘선천적 이단’에 비하면 약하다는 단점이 있소.”
고려의 최효윤도 다른 이단에 비하면 확실히 강하다.
고려 황제 왕서라 - 루우 테무르의 강력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걸 개선할 수 있다면 확실히 군사력 측면에서는 낭보로군.”
“예. 그리고 감히 제 예상을 말씀드리자면, 이단의 양성 과정에서 드는 ‘인력 소모’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간편함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호오, 하고 벨리사리오스는 오늘 두 번째 감탄을 내뱉었다.
“그 예상이 사실이길 바라겠소, 신 총독.”
그들은 더 깊숙한 곳으로 내려간다.
탄광의 막장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깊이.
최첨단 설비가 가동되고 있는 것인지, 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도 오늘 신 총독에게 하나 선물을 줘야겠는데.”
신수덕의 눈에 의문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선물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고도 한참 만에, 세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토칸이 숨을 삼킨다.
신수덕이 눈을 부릅뜬다.
“신종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확인만이 가능했소. 기록을 통해, 고려 황제의 특수한 능력을 통해, 선천적 이단을 낳는 가문의 설화를 통해.”
어디까지나 세상과 세상의 경계에 걸터앉은 존재들이니까.
그들이 이쪽 세상의 숲과 하늘을 누비던 시절은 오래전에 인류의 상상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우리가 신을 포획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소?”
믿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정상적인 파멸인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가장 근접한 묘사가 될 터이다.
균형 잡힌 근육질의 인간 형상. 표면은 백색이고, 몸집은 거대하다.
그렇군, 하고 신수덕은 속으로 되뇌었다.
신종이 결국 특수한 짐승의 한 종류라면, 그래서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인간도 짐승이니 신종이 인간과 유사한 형상을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물론 그 모습은 이 세상의 ‘이’와 접촉하면서 적절한 형상을 취한 것에 불과하고, 본질은…….
“이건 세 번째 방법이오.”
벨리사리오스가 그들 쪽으로 돌아섰다.
하얀 날개가 그의 등에 나타났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무기이리라.
날개 위에는 역겨울 정도로 반짝이는 안구가 박혀 있다.
벨리사리오스의 머리 위에는 가시면류관이 하얀 표면을 반짝이고 있었고.
“신을 포획해서 직접 그 영혼을 추출하는 것 말이오.”
***
철도성 장관과 견하는 칸발리크에서 그대로 북상, 카라코룸으로 향하는 철도를 따라가다가 동쪽으로 빠졌다.
거칠고 황량한 땅 위에 간신히 길이라는 걸 알아볼 만한 길.
그 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카라코룸-동명 간 철도 공사 현장이었다.
“이 구간은 아예 새로 만드는 거라 시간과 비용이 더 들걸세. 철도가 놓일 기반부터 다져야 하니까. 하지만 개통 후에는 제 몫을 해낼 거라 예상되네.”
“그렇겠죠. 고려의 수도부터 몽골 내륙 깊숙한 주요 도시로 철도를 뻗는다는 계획은 이제껏 없었으니까요.”
경제적 효과도 효과겠지만, 여차하면 고려군의 ‘카라코룸 출동’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견하에겐 매력적인 노선이다.
“여기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고려 서북부-몽골 동부 간 노선 공사를 살펴볼 텐가? 아니면……”
“카라코룸으로 그대로 올라가 보죠. 류 장관님과도 할 이야기가……”
견하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총성이 울려 퍼졌다.
단발이 아니다. 기관총으로 긁어대는 소리다.
비명. 놀람과 공포의 비명도 있지만 부상의 비명도 섞였다.
견하는 임병욱의 멱살을 잡고 도약, 그대로 근처 둔덕 뒤에 몸을 숨겼다.
공격의 방향은 어디?
다른 곳에서도 총성이 들려온다. 협공인가?
아니, 응사다. 이쪽도 무장을 갖추고 있었나?
“서부군의 협력을 받아서 진행되는 공사일세. 곧 물리칠 거야. 하하…….”
식은땀을 흘리며, 임병욱은 공포를 몰아내려는 듯이 웃음소리를 냈다.
“서부군이라니요?”
“서부군 사령부에서도 출자를 했으니까.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공사 현장을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
견하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임병욱은 웃음을 그치고 다른 사실도 털어놓았다.
“제국정보사령부도 원철에 투자를 했다네. 그쪽은 이번 철도 공사와 함께 전신망을 확대해서 몽골 내부에 손을 뻗을 생각인 것 같더군.”
견하는 그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둔다. 그런 걸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은 임병욱을 무심코 윽박지를 뻔했지만, 일단은 삭힌다.
서부군이든 제국정보사령부든 직접 자기네 이름을 걸지는 않았을 테고, 아마 적당한 대리인의 이름을 내걸고 투자에 임했겠지.
대원철도주식회사의 사업 확장이라는 목표 앞에서는 협력해야겠지만, 견하의 시야를 벗어난 이런 행동들에 대해선 언젠가는 추궁할 필요가 있다.
견하의 손바닥 안쪽에서 하얀 촉수들이 기어 나온다.
그것들은 어떤 형체를 취할까 망설이는 듯했다. 서로 몸을 꼬다가, 검을 이룬다.
이단을 대하는 일반인이 자연스레 드러낼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 임병욱의 얼굴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제가 알고 싶은 건 투자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이 공사를 ‘지켜야 할 것’으로 판단한 이유입니다.”
칸발리크-동명 간 공사와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지 않은가. 미래의 메갈로폴리스를 꿈꾸는 그곳에 비한다면 이쪽 공사는 그 정도 효과는 바랄 수 없다고 해도…… 환영과 적대의 차이는 너무 심하다.
“초원 유목민들 사이에 반란군 잔당이 숨어들었다는 소문이 있었네. 흥안령 일대에도 소굴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