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온(10)
모두가 속이 메슥거리는 느낌을 공유한다.
“어떤 상황인지는 나눠드린 자료에 나와 있겠죠. 정확히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칸발리크 테러 때 나타난 괴물 비슷한 것들을…… 대륙해방군이 병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가 정말로 놀라야 할 부분입니다.”
칸발리크 테러를 일으킨 범 알타이 인민동맹. 이들은 시간을 들여 ‘혁세주교’를 만들고, 신실한 신도들을 양성했을 뿐만 아니라, ‘신종의 씨앗’을 퍼트리는 등 갖은 고생 끝에 혁세주를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견하는 혁세주를 물리치기 위해 ‘같은 세상의 다른 곳’에 동시에 혁세주를 존재하게끔 했다. 그러려면 다량의 ‘파멸인’을 인위적으로 밀집된 장소에 생성하여 그 일대의 환경을 ‘다른 세상’과 비슷하게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파멸인을 만들려면 죽은 파멸인의 고기를 먹여야 했고.
이를 위해 많은 ‘불령한인(不逞漢人)’들을 희생시켰다.
이상의 사례들을 떠올려보면, 아즈텍 내전에서 사용된 ‘시체를 파멸인과 유사한 괴물로 살려내는 기술’이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체가 된 상태에서만 괴물로 되살아나게끔 한 것. 이는 파멸인에 대한 통제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도, 견하도 일단 파멸인을 만들고 나면 알아서 날뛰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파멸인에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어떤 본능 비슷한 것에 의존해야만 했다.
“통제 가능한,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경악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규모 사상자가 나온 전장에서는 대규모로 ‘괴물’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괴물이 목격된 모든 전장에서는 약간 날씨가 나빠지는 것 외에 다른 이상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칸발리크에서는 혁세주를 불러왔는데.
“혁세주를 강림시키지 않고 가급적 ‘안전’하게 병기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인가.”
기술이, 리안이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졌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신수덕이 아즈텍에서 이룩한 성과다.
그리고 신수덕이 몸담은 세력이 내전에서 우위를 점했다.
리안은 각료들을 둘러본다. 혁세주와 이단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최측근들, 황제, 귀순한 투글룩 정도만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더 지켜보고,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아 봅시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
전쟁성 장관 강태훈이 의견을 꺼낸다.
“아즈텍 대륙의 정세……, 혹은 멕시카 자주국이라는 집단을 고려의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리안은 섣불리 답하지 못한다.
외무장관 조유관은, 극북방위군 사령관 때보다는 훨씬 단정히 정리하긴 했지만 여전히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의견을 덧붙인다.
“아즈텍 연방의 회생을 바라기 힘든 상황에서, 일단 내전의 승자에 가장 가까운 ‘멕시카 자주국’을 마냥 적대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조유관과 강태훈 사이에, 미묘한 시선이 오간다. 한쪽은 승자의 편에서 계속 승자의 편으로 옮겨 온 사람이다.
다른 한쪽은 패배자가 되어 북방에 유배되었다가 간신히 승자의 줄을 잡을 수 있었던 사람이다.
단순한 의견, 시각의 차이지만, 배경의 차이가 그걸 도드라지게끔 한다.
강태훈으로서는 조유관의 발언이 외무장관으로서 당연히 할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한 말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전에 미리안이 내민 군제 개혁 중, ‘장교 선출제’가 있었다.
강태훈은 조유관과 그 제도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고, 조유관도 ‘장교의 질적 저하’에 대한 우려를 표하긴 했지만…….
-조 장관의 입장이 그때와는 달라지지 않았는가.
조유관의 전역에는 안세규의 입김이 작용한 정황이 있다. 강태훈도 그 정도는 읽는다.
태사도 동의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조유관은 군복을 벗고 문민으로, 외무장관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안 장관의 의도대로만 돌아가진 않는다는 건가.
그리고 그 ‘장교 선출제’는 옛 극북방위군을 중심으로 시범 적용되고 있다 한다.
지금이야 장교로서 ‘재교육’이 한창이지만, 언젠가 그들이 ‘장교’로 군 내부로 들어오면 상황은 격변한다.
기존 ‘정통파’ 장교들이 이들을 견제하려고 해도, 군의 최종 인사권은 대원수인 태사 미리안이 쥐고 있다.
미리안이 설령 ‘3대 태사’로 선출되지 못한다 해도 그녀는 분명 제국최고회의 의장 자리쯤은 계속 가져갈 터.
대원수 계급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지.
그렇게 되면 태사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군 통수권을 제국최고회의로 옮겨버리는 식으로 법을 뜯어고칠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녀가 3대 태사가 되든 못 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선출제와 재교육을 통해 들어온 신진 장교들은, 확실히 미리안에게 충성하는 집단이 되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여전히 젊은 미리안.
젊은 장교들의 지지.
둘 다 여유롭게 나이를 먹고 세력을 쌓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장악해간다.
-어쩌면 미승휴도, 허동주도 끝내 이루지 못한 군의 완전 장악에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또 옛 극북방위군 출신 장교들은 억울하게 군복을 벗은 지휘관에게 지지를 보내겠지.
‘문민’ 조유관은 그런 분위기 속에 전쟁성 장관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군의 문민통제가 달성되는 건가.
미리안의 그런 원대한 계획 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강태훈 역시 자신이 종신 전쟁성 장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 정도는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성실하게 조유관의 의견에 답한다.
“외무장관님의 의견보다 더 전문적일 수는 없겠습니다만, 전쟁성 입장에서는 ‘만에 하나’를 챙겨두고 싶은 입장이라…….”
쿠아우테목 함락이라는 성과가 무색하게 대륙혁명전선이 멕시카 자주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혹은 멕시카 자주국이 이대로 내전에서 승리한다 해도 고려, 더 나아가 다이온 연방과 우호 관계를 계승하려 할까?
어쨌든 전쟁성 장관은 이웃 나라에서 벌어진 내전의 불똥이, 자국으로 튀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괜한 적대 행위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오해는 좋지 않지요. 전쟁성도 그 정도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강 장관님의 의견도 옳습니다만, 외무성 입장에서는 ‘멕시카 자주국을 승인, 수교하는 쪽으로 문을 열어둘 필요는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은, 하면서 조유관은 덧붙였다.
“어떤 정권이 이번 아즈텍 내전의 승자로 등장하더라도 말이죠.”
“잠깐.”
강태훈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청했다. 태사가 끄덕인다.
“만약에 말입니다. 대륙혁명전선이 승리해서 아즈텍 대륙에 공산 정권이 들어선다면요? 그때도 승인 및 수교를 검토해야 하겠습니까?”
“바라트를 간신히 평화회의에 데려올 수 있었던 마당에, 아즈텍 대륙의 정권이라고 해서 그러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물론 전 세계가 대공황으로 신음하는 지금 외교적 평화라는 안정도 중요는 합니다. 그러나…… 바라트와 페르시아 혁명에 이은 아즈텍 혁명이 성공한다? 공산권에서는 이를 세계 혁명이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즈텍에서도 성공했다.
그렇다면 바라트와 아즈텍 사이, 고려는? 다이온은?
동아시아 각국 역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민주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공산당이 우리의 황제 폐하와 고려 제3제국, 다이온 체제에 얼마나 더 충실할 수 있을지 저는 의문입니다.”
“그만.”
리안이 손을 들었다. 이런, 조금 지나쳤나.
하지만 강태훈 자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인상은 충분히 심어줬다. 혁명을 우려하며 체제에 대한 충성도 한껏 드러냈다.
“전쟁장관의 발언은 다소 ‘정치적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우국충정은 알겠지만,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강태훈은 사과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리안은 그런 강태훈을 마치 달래려는 듯, 말을 덧붙인다.
“다만 군사적인 관점에선, 굳이 아즈텍의 신정권과 수교니 뭐니 설레발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당장 아즈텍의 위기를 정면에서 느끼는 일본에 불필요한 압박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고, 유럽 열강들이 당혹을 표하면 난처해지니까요.”
일본과 아즈텍, 유럽과 아즈텍 사이가 어떻게 풀려나가는지, 그걸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모두가 눈치만 보느라 아무것도 결정 못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곤 못하겠지만.
“저렇게 괴물을 전쟁에 활용하는 것도 위험한 기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압도적 성능의 신병기는 뜻하지 않은 야심을 심어주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국가 안보를 위한 경계’ 정도는 필요합니다. 강 장관께서도 이 방침에 따라 김천열 대장과 의논을 해주길 바랍니다.”
김천열은 본국과 수도의 방비를 위해 돌아와 있다. 그와 논의한다면 나쁘지 않다.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할 수 있겠지.
강태훈은 명령을 받들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
아즈텍 연방 정통 정부의 잔당 중에는 홀로 저항하는 자들도 있지만, 발 빠르게 대륙혁명전선이나 자유주 독립군에 가담하는 자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을 통해 ‘멕시카 자주국’의 건국 선포를 둘러싼 전후 상황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바다 건너편, 강력했던 민주주의 정권의 몰락을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사파전이 삼파전이 되었을 뿐이며, 아즈텍 연방의 몰락은 예정되어 있었다고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그 원인으로 지목한 요소들은 각기 차이가 있었지만.
벨리사리오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오늘 오기로 한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윽고 안내받은 손님이 들어오자, 황자는 일어서서 환대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토칸이 처음으로 이곳에 왔을 때, 주견하가 왔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벨리사리오스의 뇌리에, 신수덕이 들어오는 광경이 강렬하게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