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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03화 (303/541)

다이온(9)

‘좋은 일’이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긴장한 사람들의 귀에 아슬란의 말이 쏟아진다.

“페르시아 혁명과 같은 폭발적 혁명은, 세계대전이 또 일어나는 정도의 격변이 아니고선 불가능하오. 바꿔 말하자면 우리가 그와 같은 혁명을 시도하면, 이번에 우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전범 국가로 전락할 거요.”

그러니 섬세하고도 점진적인 혁명의 전파가 요구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다행히도 버마 왕정의 극에 달한 부패와 억압을 견디다 못한 인민들의 시위가 날로 격해지고 있다고 하오. 우리는 버마 인민들이 혁명 정부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이를 적극 지원할 것이오.”

버마 왕정이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개혁에 착수할 가능성은 낮다. 개혁만큼 혁명의 강력한 적은 없으니 바라트 입장에서는 다행한 일이다.

“또한 나는 버마 혁명의 완수, 그리고 바라트와의 굳건한 동맹이 결성되면 그것을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소. 우리는 그간 혁명은 포위되었으며, 반혁명 분자들에 의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인식해왔지. 하지만 이제 혁명은 안정적 궤도에 올라섰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이의 제기는 언제든 받아들이겠소, 라면서 아슬란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바깥 세계는 대공황을 비롯한 구체제의 모순으로 위기에 처해 있소.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자 대응책을 마련했고, 그중에서도 고려와 그 동맹국들은 최근 ‘다이온 연방’을 결성했소. 동지들 모두 아실 거요.”

우리도 쇄신해야 하오.

앞선 그 어떤 말보다도 힘주어 말한다. 아슬란의 말은 탁자를 내리누르는 듯하다.

“우리의 혁명 동지 국가들, 즉 페르시아, 후라산, 호레즘, 카불, 사마르칸드에 버마를 포함한 혁명 공동체를 창설할 것이오. ‘세계 혁명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각 구성국의 대표들이 여기 델리에 모여 혁명의 미래에 대해 자유롭게 논하게 될 거요,”

개혁은 외양을 새롭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사상 무장이 완료된 계급에 한하여, 인민 직접 투표의 총선거를 재도입할 것이오. 이후 다른 계급의 사상 교육과 투표의 확대는 다음 세대의 몫이 될 테지만.”

지금까지 나왔던 그 어떤 말보다 더욱 놀라운 말이었다.

인민의 직접 투표에 의한 선거는 혁명 초기에만 잠깐 이루어졌다가, 내전과 함께 없어지지 않았던가.

지금은 혁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먼저이며, 인민을 교육해야 할 시기라고.

아슬란은 빙그레 웃었다.

“왜, 못 믿겠소?”

“아닙니다, 주석 동지…… 저희가 감히 주석 동지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동지들의 피부에는 아직 와 닿지 않는 모양이군. 내가 실감을 주리다. 나 아슬란은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직을 사임하는 바요. 군대도 이제 당이 아니라 인민에게 돌려줄 때가 되었소.”

이어지는 충격적 발표에 모두가 말을 잃자, 아슬란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20년이나 지났소. 갓난아이가 성인이 될 시기지. 인민에 대한 교육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소? 이젠 인민들이 자기 발로 걸음을 옮겨야지.”

***

아슬란이 델리의 주석궁에서 애써 만들어 놓은 훈훈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버마의 분위기는 흉흉하기 짝이 없다.

시위대에 대한 무력 진압 명령이 떨어지고, 거리 곳곳이 처참한 피바다가 되었다.

그와 함께 바라트군이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이 주변국에 전해졌다.

버마 왕정의 어리석은 결정이 바라트에게 개입의 명분을 준 것이다. 바라트는 시위 민중을 보호한다는 인도적 목적으로 나선 의용군이라 변명했다.

다들 제 앞가림에 바빠서 그 변명을 추궁할 국가는 없었지만.

위기감은 대예와 보우슈엥으로만 전파된 게 아니다.

한족 거주 지역을 점유하고 있는 티베트와 탕구트에도 마찬가지 위기감이 슬슬 퍼져나갔다. 낭키아스의 사례에서처럼, 키타이의 한족 반군이 국경을 넘어간 것이다.

주견하의 눈앞에는 재건 사업이 한창인 칸발리크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서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은 보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견하는 임병욱 장관 쪽으로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말을 건다.

“역시 ‘주식회사’인 만큼 이쪽에도 손을 잘 뻗었군요.”

“원철이 직접 칸발리크 재건 사업에 개입하는 건 어렵지만, 모은 자본을 투자해서 간접적인 개입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리고 대원철도주식회사의 자본을 투자받은 기업들은 대부분 고려계다. 고려계가 아니라 해도 대원철도주식회사, 그 배후에 있는 고려 철도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건 사업을 통한 경제적 이익은 다시 투자자인 원철로 돌아온다. 원철은 쌓인 자본을 다시금 다이온에 투자한다.

눈덩이를 불려 나가듯, 원철은 점차 거대해진다.

여기에 감찰국 혹은 정치경찰실도 ‘주주’로서 참여한다면…….

“장관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여기서 카라코룸을 향해 이어지는 철도망 건설은 놀라운 효과를 거두겠습니다만,”

무너진 건물들은 치워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그 비극의 현장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 도로를 재정비하고 수도와 전기 인프라를 새것으로 교체한다.

견하는 거기서 눈을 떼지 않고 질문했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그러니까 키타이와 낭키아스를 향한 사업 확장은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까요?”

“오호, 사업 확장이라. 자네 말대로라면 다이온 전역을 뒤덮는 아주 장대한 공사가 되겠구만.”

“그렇습니다.”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기반이 있는 데다 고려의 국경에 접한 것도 아니니 직접 철도를 놓기는 어렵겠지. 뭐, 몽골이나 고려에 비하면 미개발지역이 많아서 원철이 직접 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여기 칸발리크에서처럼 투자의 방식을 택하게 될 걸세.”

“이익이 막대하겠군요.”

“그렇지.”

“정치적으로도 말입니다.”

임병욱의 미소가 미묘해진다. 그는 견하의 얼굴을 살피듯 바라본다. 그제야 견하는 눈을 돌려 철도성 장관을 마주 보았다.

“키타이와 낭키아스를 장악하지 않는 한, 우리 폐하와 태사 각하께서 다이온을 굳건히 하시긴 어렵습니다.”

“……경제로도 장악하고, 여차하면 철도를 통해 고려군의 직접……”

견하는 검지를 입술 앞으로 들어 올렸다.

임병욱은 당황한 시늉을 하며 입을 다문다. 하지만 눈가의 웃음기는 지우지 못한다.

“사업, 검토해주실 수 있습니까?”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지.”

견하의 시선은 다시 공사 현장으로 향한다.

바라트가 버마 혁명에 개입했다. 대예와 보우슈엥은 이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다이온과의 제휴를 모색한다고 들었다.

우흥섭의 낭키아스 파견군 및 낭키아스군은 이미 국경을 넘어 한족 반란군을 진압하는 작전에 돌입.

장해진이 이끄는 키타이 파견군과, 울제이의 키타이군은 진즉에 관중 분지로 넘어가 탕구트군의 협조 아래 잔당 토벌에 힘을 기울인다고 한다.

관중 분지에서의 일이 끝나면 티베트의 요청에 따라 사천 분지로 진입, 한족 반군을 토벌할 것이다.

물론 견하는, 한족 토벌이 끝난 후에도 이들을 철수시킬 생각이 없다.

카라코룸과 같은 구역을 각 주둔지에도 설치할 계획이다.

원철은 뒤에서 그들을 지원해주고.

바라트의 세력 확장을 다소 과대 포장하면 티베트, 탕구트에도 위기감을 심어주기에 적절하겠지.

견하의 머릿속에 펼쳐진 지도에는, 파견군이 얻어낸 새로운 주둔 구역들의 영역과 이름이 떠올라 있다.

어차피 국경 지역에는 한동안 군정이 행해진다.

그러니 낭키아스와 보우슈엥, 대예의 국경을 묶어서 하나.

사천 분지 일대를 묶어서 하나. 티베트에겐 바라트의 개입으로부터 독립을 보장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면 된다.

관중 분지 일대를 묶어서 또 하나. 탕구트는 다이온의 옛 식구라는 역사적 배경도 있고, 4개국 관세동맹의 이익도 보장해주면 될 것이다.

이들을 차례로,

형초총독부(荊楚總督府),

파촉총독부(巴蜀總督府),

화하총독부(華夏總督府)라 이름 붙인다.

이로써 다이온의 ‘외곽’을 둘러싼 경계선이 완성된다.

바라트와의 세력권 분할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계를 더욱 단단하고 뚜렷하게 만들어 준다.

고려군을 주축으로 한 ‘다이온군’이 각 총독부에 주둔하면서, 다이온이 그 구성국들을 ‘담는’ 하나의 그릇이 되는 것이다.

이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키타이의 수도 ‘개봉’에서 회담을 제의해야 한다.

-티베트, 탕구트, 대예, 보우슈엥이 모두 참여한 대규모 회담이 되겠지. 어쩌면 그 네 나라를 고려처럼 ‘참관국’ 지위로 다이온에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몰라.

-문제는 리안 누나가 그 과정을 지켜만 보고 있진 않으리라는 점.

견하는 군 통수권자가 아니다. 리안의 입김 한 번으로도 견하의 모든 계획을 강제 종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응책은 있다.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루우 및 볼로드와 함께 준비하는, 낭키아스에서의 ‘급변 사태’.

다른 하나는…… 리안과 ‘담판’을 지을 때를 위해 대비해 마련한 패가 있다.

-두 번째 것은 카라코룸에 가서 직접 확인해봐야겠지만.

견하는 마치 대륙에 거미줄이라도 치는 것처럼, 다음 공작을 위해 카라코룸으로 향했다.

***

이러저러한 사건들이 진행되고 나서야 비로소, 동명에 쿠아우테목 함락 소식이 들어왔다.

연방 통령 네자우알 테콜로틀은 권총으로 자결. 그 외 측근들이나 정부 주요 인사 중에도 자결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마치 그 시신을 짓밟듯 들어온 쿠에츠팔린이라는 반군 지도자가 ‘멕시카 자주국’의 건국을 선포했다지.

동명특별시의 유력 인사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수뇌가 모인 태사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렇게나 빨리?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졌단 말인가……?”

처음에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린 연방 정통 정부에 경악했다.

그리고 뒤이어, 대륙해방군이 무슨 수단으로 연방 정통 정부를 무너뜨렸는지 알고 경악했다.

“기갑사 아닙니까……!”

리안의 눈이 냉혹하게 빛난다.

“이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신수덕이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도 기갑사 기술을 전했던 걸 생각하면, 당연히 철혈의 꽃이나 그 후신인 대륙해방군도 보유하고는 있겠죠. 우리가 정말 놀라야 할 건……”

리안이 손짓하자, 보좌관들이 영사기를 조작해 맞은편에 녹화된 영상을 재생한다.

“……저거죠.”

그녀의 말처럼 놀라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군인들의 시체에서 꿈틀거리며 솟아 나온, 괴물들.

그 괴물이 시체를 억지로 끌고 가는 듯 움직여, 적진으로 돌격한다.

전쟁터라는 곳이 원래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다고는 하지만, 저것이야말로 진정 짐승의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물고, 뜯는다.

먹는다.

찢는다.

흑백 무성 영상이지만 튀기는 검은 액체가 피라는 것, 고통에 찬 얼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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