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떼의 아가리(11)
“여간 어려운 게 아니겠는데요. 선배가 말씀하셨던 대로 볼로드가 바보는 아니잖아요.”
볼로드를 실각시켜도 괜찮을 시점.
말하자면 볼로드가 자신의 약점을 최대한 노출하고 있을 시점이다.
“그런 시점이 확 눈에 들어오면 모를까, 볼로드도 최대한 줄이려고 하지 않겠어요?”
찰나에 가깝게끔.
볼로드의 정적들이 그 시점을 잡지 못하게끔.
정치 판도에서 누군가를 제거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지닌 무게에 따라 크고 작은 풍파를 일으킨다.
쿠데타, 내전, 암살 등의 방식은 결과를 빠르게 알 수 있고 효과가 확실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파도를 일으킨다.
허동주의 미승휴 암살은, 미리안과 허동주의 극한 대립을 불러왔다.
미리안 암살 시도는 고려를 내전으로 빠뜨렸다.
고려 내전은 동명역 쿠데타 시도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대공황의 가속화, 그에 따른 세계 각지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지. 가능하면 온건한 방식으로 ‘물러나게끔’ 할 생각이야.”
권력을 빼앗되 재산과 생명, 명예는 유지하게 한다. 그래서 볼로드를 ‘원로’, 좀 더 대놓고 말하자면 뒷방 늙은이로 만든다.
“일단 살려두면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고 말이지.”
예를 들어 정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볼로드를 내세워 ‘온건한 중재’를 할 수도 있다.
이런 대응책을 미리 생각해두지 않고, 마구잡이로 정적을 죽여대면 언젠가는 모두의 적이 되어 홀로 처참하게 죽는다.
게다가 극단적인 방식을 쓰면, 볼로드가 ‘발악’할 가능성도 있다.
“더 이상의 내전이나 쿠데타는 감당 불가야. 허동주 때처럼 금방 끝낼 수도 없고, 그때는 파괴된 국토를 재건할 여력도 없어. 당연히 요동친 정치 판도를 수습할 방법도 없지.”
안 그래도 파탄 난 국제 정세는 아예 지옥도로 접어들 테고.
“선배가 온건한 방법을 쓰고 싶어 하신다는 건 알겠지만, 그러면 볼로드 제거 작업의 난도는 엄청나게 올라가요. 우리 감찰국 수준에서 감당할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약점을 어떻게든 노출하지 않으려는 교활한 늙은이.
그 늙은이를 칸발리크 정계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도려낸다.
그런데 그 수단은 무딘 칼날이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선배가 섭섭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감찰국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에요.”
유지나는 견하에게 확실히 호의를 품고 있지만, 절대로 아첨하지 않는다. 언제나 거의 정확한 판단을 한다.
그렇기에 견하는 지나를 신뢰하고 곁에 두는 것이다.
“이익서가 제1대학교에 편입하고, 선배가 입학한 이후로 여러 학생운동 조직에 우리 감찰국의 손길이 순조롭게 뻗어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중학교, 고등학교에서의 영향력도 날로 높아만 가죠.”
“천손민족협회의 조직 원리를 모방했으니까.”
자조적인 중얼거림에 지나는 살짝 눈썹을 찡그린다.
“그렇게만 말씀하실 건 아니에요. 그 조직보다 분명 발전한 점도 있어요. 다만…… 절대적인 숫자나 영향력 측면에서 감찰국이 무시 못 할 세력으로 성장하긴 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국내의 일이라는 거예요.”
“하긴 학생운동이 아무리 커져봤자 국제 정세에 간섭할 수는 없지.”
기껏해야 외교관들 다니는 길옆에 서서 시위하는 정도일까.
이제 막 성인이 된 몸으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물밑 협상을 하는 주견하가 특이한 경우다.
“감찰국만의 힘으로 볼로드를 칠 수는 없어요. 선배가 직접 가서 볼로드의 목을 따…… 아니 암살한다면 모를까. 그런 방법은 안 쓰신다면서요.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요.”
지나의 입에서 튀어나오려던 과격한 어휘에 견하는 키득, 웃었다.
지나가 노려본다. 견하는 웃음을 거뒀다.
“……그래서 나제홍 실장과 이야기를 나눠 볼 생각이야.”
“실장하고요?”
“응. 나제홍 실장이 전역 전에는 군 정보부 쪽에서 일했었잖아.”
“네. 그래서 정치경찰실장 직속으로 그쪽 사람들이 많이 있죠.”
“나제홍 실장이 다리가 되어준다면, 지금 군 정보부에 협력을 구해볼까 하거든.”
지나의 눈썹이 아까보다 좀 더 심하게 뒤틀린다.
“나제홍 실장, 아니 더 나아가서 군 정보부에 빚을 지지 않을까요?”
아니 아니, 하면서 지나는 견하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손가락을 견하의 코앞까지 들이댄다.
“선배 성격상 그렇게 내버려 두진 않을 테고, 어떻게든 그 빚을 탕감받을 궁리도 해뒀겠죠. ……설마 선배 언젠가 감찰국, 아니 정치경찰실에 군 정보부의 기능을 흡수할 속셈이에요?”
“…….”
견하는 눈을 돌렸다.
지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였지만, 더욱 낮추며 조언한다.
“선배 요즘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거 아세요? 선배의 전체적 방침에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천천히 가자는 거지. 몽골 정계 문제, 「계획」 문제, 다른 정파 계통의 학생운동과 경쟁 문제 등등…… 우리가 벌여 둔 일이 너무 많아요.”
주견하의 지나친 세력 확장을 경계하는 무리는 지금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견하나 감찰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핏발 선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추진 중인 사업 중 어딘가가 어긋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때는 태사 미리안이라도 견하를 감쌀 수 없을 것이다.
미리안은 죽을 것 같은 고통과 국가의 불안정 중에서 가차 없이 전자를 고를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견하를 쳐낼 것이다.
지나가 지켜본 미리안은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라도 미리안을 보고 그런 결론을 내리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지금 그 위험성을 경고 중이다.
“……군 정보부를 완전히 잠식하진 않아. 군에서 관리해야 할 정보는 있겠지. 다만 나는 정치경찰과 중첩되는 업무만 이쪽으로 흡수할 생각이야. 확실한 관할권 정리에 더 가까워.”
세계대전 이래 군이 고려 사회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막대했다.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군은 사실상 사회의 중추였다.
미승휴도, 허동주도, 류성일도 모두 군인 출신이거나 군 계급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대전의 영웅들이다.
견하의 돌아가신 아버지 역시 참전용사였다.
미리안은 대원수, 최효윤은 중장, 주견하는 대령…… 형식상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군 계급을 달아야만 한다.
정치와 권력이 돌아가는 방식에까지, 군은 자신의 흔적을 깊이 남겨두었다.
야별초가 토벌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군 정보부와의 갈등이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군사 첩보 분야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정보 장악에까지 손을 댄 군 정보부. 미승휴 정권의 안위를 수호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 감시망을 치려던 야별초.
필연적으로 두 집단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별초가 허동주냐 미리안이냐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미리안 쪽으로 확실히 노선을 정한 정보부는 ‘혁명군 사령부’에 야별초 토벌을 상신.
루우와 견하가 투입된 작전으로 야별초는 완전히 끝장났다.
그 폐허 위에 건설된 것이 지금의 정치경찰실.
야별초의 시체를 거름 삼아 성장한 게 견하의 감찰국이다.
“태사 각하께서 맞서 싸워 오신 것들 중에는, 군의 지나친 사회 장악도 있어.”
사회에서 군의 영향력을 걷어내는 건 미승휴와 허동주 같은, 전쟁 영웅들의 시대를 끝낸다는 의미이다.
보다 온건한 입헌군주정의 길을 걷기 위해선, 군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어야만 한다.
“허동주와의 싸움이 그 길 한복판에 있었지. 신수덕 토벌전도 그랬고, 동명역 쿠데타도 그렇고. 그리고 다소 군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선출제 장교를 밀어붙이는 것도 그래서고.”
“그러니 선배도 군사 정보는 군 정보부가, 국내 정치 문제는 정치경찰실이 다루는 구도로 만들겠다는 거죠?”
“외무성이 외교 관련 정보들을 전담해서 다루듯 말이지. 물론 정보라는 물건의 성격상 서로 협력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일단 분야 자체는 나누고 봐야 해.”
“그 과정에서 ‘정치경찰실의 영향력을 증대한다’는 목적도 달성하는 거구요.”
“부정하진 않을게.”
두 사람은 철도성을 나와 차를 탄다. 옛 야별초 건물, 지금은 정치경찰실이 쓰는 그곳으로 차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간다.
“좋아요. 선배 말대로 군 정보부와 협력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볼로드의 뿌리를 들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게레센제 카간을 흔드는 거지. 요컨대 이 문제는 어떻게 게레센제 카간을 흔들 것인가, 라고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아까 ‘더는 몽골, 고려에서의 동란은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맞아. 몽골과 고려에서는 안 되지. 하지만…… 지금도 한창 혼란스러워서 거기에 조금 혼란을 더한다고 해도 무방할 곳이 있어.”
“그건…….”
견하의 말을 해석하다, 지나의 눈이 조금 커진다.
“키타이나 낭키아스에서?”
“어느 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나는 다시 머리를 굴려본다. 존경하는 선배의 생각을 읽고, 해석하고, 따라잡으려 해 본다.
“지금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건, 울제이 칸과 협력하는 방식인데…… 그게 될 것 같진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태사 각하와 크게 충돌한 적이 있잖아요? 우리 황제 폐하야 저쪽 입장에서는 당연히 견제의 대상이고.”
“굳이 ‘협력’ 단계까지 갈 필요는 없어. 적당히 부추기면 되지.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부추김을 받은 울제이가 지나치게 막 나가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거야.”
“하긴 이제는 사람들이 ‘나도 내전쯤이야’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느낌이에요.”
고개를 끄덕이기엔 좀 그래서, 견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누군가 내전으로 정권을 잡으면, 다른 사람들도 본받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울제이가 날뛰면서 온 키타이와 낭키아스를 헤집고, 거기에 발맞춰 한족 독립 봉기도 미친 듯이 솟아오르고…… 울제이와 한족이 제휴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지금 키타이 파견군을 이끌고 있지만 산동에서 치안 유지에 주력하는 장해진 대장을 쓸 수도 있겠지.”
“울제이뿐만 아니라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자체에 써먹을 수 있겠죠.”
“어떻게 울제이를 부추길지, 구체적인 방법은 이제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렇게 말을 마치고 견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지나의 의문은 아직 다 해소되지 않았다.
“모든 게 선배 말대로 잘 돌아간다고 쳐도, 하나 남은 문제가 있는데요.”
“뭔데.”
견하는 지나가 뭘 물어볼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되물었다.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지나가 눈치채길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볼로드 이후의 체제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 적당한 사람을 앉혀두게 되지 않을까. 지금의 나제홍 실장처럼, 딱 그 위치에 만족할 법한 사람 말이야.”
말도 잘 듣고,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중요한 결단은 어차피 고려에서 내려줄 테니까.
“그거 그냥 둘러대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