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떼의 아가리(10)
철도성 장관 임병욱.
그 역시 미승휴 시대부터의 관료다.
전 재무장관인 여준설과 마찬가지로 성실성과 능력을 높이 살 수 있는 인물이지만, 정치적 문제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판이했다.
물론 여준설도 ‘정치의 힘’ 그 자체는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임자인 차무룡처럼, 정치에서 자유로운 경제 정책의 수립을 원했다.
임병욱은 그와는 달랐다.
세계대전 이후, 망가진 국토의 재건과 동시에 철도의 광적인 건설도 진행되었다.
임병욱은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확장해가는 철도망을 보면서 성장해 온 관료였다.
그렇다. 미승휴는 ‘철도광’이라고 불릴 정도로 철도의 건설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 경제적 효과는 탁월했다.
임병욱은 철도가 국가의 재건과 부흥에, 경제적 성장에, 세계적 위상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직접 봐왔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의 관심은 국가 경제의 부흥에서 멈추지 않았다.
철도가 이런 엄청난 일들을 해왔다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더 많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더 멀리, 더 깊게 파고들었다.
임병욱의 그런 생각이 빛을 발했던 때가 바로 1929년 고려 내전이었다.
“장관님께 그때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듣고 싶어서요.”
도대체 눈앞의 청년은 왜 갑자기 찾아와 그때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걸까.
물론 감찰국장 주견하는 언제쯤 찾아뵈어도 좋겠습니까, 하고 철도성 장관의 의향을 물어 왔었다.
철도성 장관이 감히 그걸 거절할 수가 없어서 문제지.
주견하는 아직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정말로 철도성 장관의 경험과 지식을 듣고 싶은 청년인마냥 눈을 빛내고 있다.
임병욱은 학자로서 자기 위치를 쌓아 올린 여준설이나, 내전에서 큰 공을 세운 조유관, 정권의 한 축을 형성한 안세규와는 달랐다.
그는 다른 각료들보다는 ‘권력’ 문제에서 거리가 멀었다. 그는 정권의 ‘주역’들 뒤에서 어디까지나 관료로서 행동해야 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주견하라는 청년의 속내를 잴 여유는 없었다.
듣고 싶다는 대로 이야기를 해주는 수밖에.
“전쟁성에서는 원래 주변국과의 전쟁을 상정해서, 몇 가지 ‘계획’을 수립해두고 있네. 예를 들어 몽골과의 전쟁이 벌어질 경우 수 시간 내에 주변 부대들을, 수일 내에 후방에 흩어진 부대들을 끌어모아 전선으로 올려보낼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일세.”
그리고 그 계획에서 철도성이 큰 역할을 했다.
“각 부대는 어디서 언제 열차에 탑승해,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떻게 재편되어 어떻게 싸운다…… 이런 정도의 계획은 있었네. 하지만 전쟁성과 군은 철도의 전문가는 아니지. 철도가 얼마만큼의 수송 능력이 있는가, 얼마나 빠른가 등의 지식이야 있겠지만, 실제 운용은 철도성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네.”
세계대전 이전에도 철도는 있었고, 철도를 이용한 병력 이동이라는 개념도 어렴풋하게는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전략 전술을 제대로 활용해보기도 전에 태평천국의 기습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철도를 활용한 군사교리는 세계대전이 진행되면서 점차 개선되긴 했지만, 본격적인 개념 확립은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그것도 국가의 재건과 철도의 대대적인 확충이 있고 나서야 이루어졌다.
“철도성은 전쟁성과 군의 ‘계획’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었고, 이는 말단의 철도 노동자에게까지 이르렀네. 요컨대 군은 철도성이 ‘실어다 주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지.”
그 약점 덕분에 허동주의 반란군은 내전 초기 큰 피해를 입었다. 미리안은 허동주에게 반격할 시간을 벌었고.
내전이라는 사태를 ‘기회’라고 판단한 임병욱과, 뜻을 함께한 관료들, 철도 노동자들이 함께 해낸 것이다.
“그 약점을…… 전쟁성이나 군에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까?”
주견하의 질문이다.
태사의 최측근인 그가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걸까? 임병욱은 다소 의아해했지만, 이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인지는 하고 있었던 것 같네. 허동주와 반란군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혼란을 수습했지. 그걸 보면 향후 어떻게 개선은 해야겠다, 그런 방책 정도는 있었던 것 같군. 허나 누가 나서서 개혁에 착수하진 않았었네.”
“내전 전에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병욱은 답을 고민하는 얼굴이 된다.
“글쎄. 나는 군 관계자는 아니니 정확한 답변은 안 되겠지만…… 전쟁의 발발 가능성 자체를 높게 치지 않아서가 아닐까? 우리가 겪었던 내전도, 대공황 이후 세계의 혼란상도 군이 예측해내기엔 힘들었을 테니 말일세.”
그렇다. 임병욱의 말대로, 군은 내전이 다 끝나고 나서야 비상시 군이 직접 철도의 운용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일정 부분 철도성의 협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임병욱의 답을 들은 주견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이번엔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선대 태사께서 동명과 칸발리크를 잇는 메갈로폴리스의 건설을 계획하셨던 걸 기억하시는지요?”
“알지. 다만 그 계획은…….”
고려와 몽골, 두 나라의 내전과 함께 거의 잊혀 가고 있었다.
게다가 몽골의 수도 칸발리크는 끔찍한 비극을 겪지 않았던가. 당장은 메갈로폴리스는커녕 재건에 집중해야 한다.
“그 계획, 철도성이 맡아서 한 번 다시 진행해봤으면 좋겠다…… 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임병욱의 눈이 조금 커진다. 그러나 그는 그 ‘의견’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당연히 주견하의 위쪽, 태사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가.
왜 갑자기 내전 당시 철도성의 역할에 대해, 내전 이후 전쟁성에서 장악한 철도 업무에 대해 질문을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철도성만의 일을 한 번 진행해보지 않겠느냐는, 암시였나.
“전쟁성의 계획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일이겠군.”
“그렇습니다. 몽골의 ‘재건’을 도우면서, ‘관세동맹’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명분으로 접근할 겁니다. 재무성이나 내무성에서 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일단은 인프라를 갖춘다는 구실도 있죠.”
“혹시 이 일…… 그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과도 관련이 있나?”
이번에는 주견하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다.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한다.
“역시 장관님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대외적으로 떠들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결국 우리 황제께서……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태사 최측근이 보내오는 의미심장한 말에 임병욱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두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일인데 전쟁성에서 나선다면 아무래도 침공을 의도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되겠지. ‘재건 지원’이라면서 나서려면 우리 철도성이 가장 적합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라며 말꼬리를 흐리다가, 임병욱은 덧붙였다.
“칸발리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겠군. 카라코룸, 더 나아가 몽골의 전 영역, 거기서 더 나아가 ‘다이온의 국토가 될 곳 전부’를 범위에 넣어야겠어.”
몽골 철도의 장악.
이는 몽골 경제에 대한 고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한편으로, ‘여차할 때’는 고려군의 개입을 더욱 쉽게 한다.
예를 들어 게레센제 카간이 그 자리를 고려 황제에게 넘기기를 거부하는 순간이 온다든가, 하면.
“다만 이런 논의는 우리끼리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닐 텐데. 몽골 쪽도 자기네 철도성 내버려 두고 외국의 힘을 빌리려 하진 않을 것 아닌가.”
“그 문제는 차차 몽골의 정치권과 접촉하면서 해결해나갈 겁니다. 이를테면 현 몽골 태사인 볼로드라든가, 이번 내전에서 우리 측 도움을 받은 정당들도 있으니까요.”
과연 그럴싸하다며 임병욱은 고개를 끄덕인다. 견하도 임무를 마쳤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마주 끄덕였다.
아즈텍을 노리며 아가리를 벌린 이리떼만 있는 건 아니다.
고려도 몽골을 노리며 아가리를 한껏 벌릴 것이다.
***
견하는 임병욱과 대화하며 단 한 번도 리안이나 태사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모호한 말 몇 마디,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통해 임병욱이 ‘멋대로 단정 짓도록’ 했을 뿐이다.
리안은 이 계획을 모른다.
이것은 순전히 견하의 독단이었다.
“자, 다음에 할 일은…….”
황제 루우를 통해 몽골 태사 볼로드에게 접근. 그는 루우가 몽골 카간이 되길 바라므로, 몽골에서 고려 황제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방관할 것이다.
데렘칭을 비롯한 몽골 좌익 계열의 영향력 확대. 이들은 아예 몽골 내에서 ‘제국입헌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의 감찰국 직원으로도 이름을 올려두었고.
“다만 여긴 볼로드의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해.”
견하의 혼잣말을 듣는 사람은, 밖에서 대기하다 바싹 따라붙은 유지나뿐이다.
“볼로드 정도 되는 사람이 ‘몽골 제국입헌당’의 본질이 좌익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지. ‘제국입헌당’이라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볼로드를 비롯한 보수파의 공격을 막는 방패일 뿐이야.”
“볼로드 태사는 사회주의적 개혁을 꺼린다고 들었어요.”
“그래. 결국 그게 내전까지 불러온 한 요인이었는데 말이야. 고려 덕분에 간신히 숨통 트인 주제에, 여전히 고집은 세지.”
하지만 쓸모는 있다.
그는 몽골 내에서 루우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다.
“그래도 볼로드 눈치만 보느라…… 데렘칭 씨나 그 동지들의 불만을 사는 것도 좋진 않잖아요.”
“한동안은 볼로드와 타협을 해야지. 우리가 이러저러하니 이만큼 양보해달라는 식으로…….”
하지만 언제까지고 볼로드 눈치만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볼로드는 완전히 ‘타협 불가능한’ 상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작자가 꿈꾸는 ‘다이온’은 ‘자신이 태사로 있는 다이온’일 거야. 그렇게 되면, 쓸모는커녕 위협만 되지.”
몽골과 고려의 통합 국가.
거기서 볼로드가 일인지하 만인지상, 유일한 태사로 군림하려 든다면 반드시 리안에겐 위협이 된다.
리안이야 다이온이라는 테두리 안에 몽골과 고려의 정부를 각각 따로 두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볼로드의 의향도 그럴지는 알 수가 없다.
“마침 우리 태사 각하께서도, 언젠가 볼로드를 실각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까.”
리안은 개혁을 서두르지 않다가 내전에 말려든 몽골의 기존 정권을 좋게 보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위해 지속적인 점검과 개혁이 필수적이라 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아즈텍 연방의 정통 정부에 보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이 문제의 핵심은 볼로드를 실각시킬 시점이야.”
“볼로드를 충분히 다 활용했다 싶은 순간, 그러나 아직은 위협이 되지 않았을 때, 그리고 볼로드를 대신할 체제가 준비되었을 때, 겠네요.”
그제야 견하는 정면으로 향하던 시선을 지나에게 돌려 웃음을 지어주었다.
“나는 훌륭한 부관을 뒀군. 맞아. 그 적절한 시점을 잘 잡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