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떼의 아가리(7)
그렇다. 알 수가 없다.
유럽이 자유주 독립군을 지원하고, 누구든 내전을 끝내고 아즈텍의 정권을 잡은 세력이 이를 묵과하지 않는다면,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세계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동시에 ‘민족 독립’의 열기는 유럽으로도, 아프리카나 서아시아로도 번져 나갈 테지.
어쩌면 루스계 공국들 사이에서 ‘통일’ 움직임이 일어날지도.
“하지만 그런 예측 중에서도 가장 나쁜 건, 민족 독립의 열망이 돌고 돌아 여기 동아시아까지 오는 거야.”
“그렇죠. 우리는 아직…… 한족 반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니까요.”
전보, 신문, 라디오는 세계 각국의 거리를 좁혔다. 아무리 정보를 차단하고 문필가를 탄압하고 인쇄기를 부숴도 전해질 이야기는 전해진다.
제국들은 국경으로 나뉘어 있으나, 각국의 독립운동가들, 혁명가들, 체제 전복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다.
온 세계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제국은 더욱 거대해지거나, 붕괴하는 갈림길 위에 서 있다.
리안은 여느 때보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우리 대표단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이야기를 나눠보면 가닥을 더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겠지. 그사이에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
동부의 반란은 아즈텍 연방에게는 치명타였다.
인구와 영토, 산업을 잃었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으로의 지름길도 잃었다는 면에서 그러했다.
일단 유럽 각국은 평화회의의 결정에 따라 반란 세력에 대한 무역 봉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아즈텍으로 향하던 배들은 회항하거나, 아직 연방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다른 항구로 뱃머리를 틀었다.
마찬가지로 아즈텍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배들도, 각자 판단에 따라 항해를 계속하거나 돌아갔다.
이처럼 어떤 나라에서 일어난 변란은, 그 나라와 교류하던 다른 모든 나라의 물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안 그래도 대공황으로 흉흉한 민심에 경제적 타격이 더해지니, 열강으로서는 더욱 살길을 찾으려 들 수밖에.
아즈텍 연방 정부도, 서, 북, 동쪽이 모두 막히고 남쪽, 미시시피강 하구의 몇몇 항구만이 외부와의 통로로 남은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래서는 대공황 극복은커녕, 반란 진압에 필요한 자원 확보도 어렵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면 반란 지역에 군대를 보내는 것으로 모든 게 해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아즈텍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고, 지금은 그 ‘군대’의 일부마저 반란에 가담했다.
오로지 수도 쿠아우테목을 비롯한 국토의 중앙부를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필사적인 수세.
지금으로서는 반격도 불가능하고, 오로지 지키기만 할 수 있다.
특히 미시시피강 하구 일대의 방어선에서, 정부군은 죽어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자세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구의 서쪽 일대에 남북으로 긴 참호를 파고, 급조이긴 해도 어찌어찌 요새를 짓는다.
적의 포격이 날아오고, 돌격이 뒤를 잇는다.
찢고 짓이기고 찌르고 베는 한바탕 전투가 끝나면, 병사들은 개미처럼 몰려가 시체를 치우고, 참호를 고친다. 부서진 요새를 보강한다.
그러던 중에 다시 공격이 시작되어 병사들이 먼지처럼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정부군이 무수한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이곳의 수비에 집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연방 정부는 멕시카 만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인 남쪽 해안. 그 해안을 따라 연방 정부는 여러 항구 도시를 확보해 둔 상태다.
그러나 그 도시들 만으로는 연방 정부가 필요로 하는 물동량을 충족할 수가 없었다.
배를 댈 수 있다고 해서 다 항구가 되는 게 아니다. 사람과 물자를 올리고 내릴, 그만한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그 인프라를 갖추는 데 들어갈 시간과 비용, 노력도 만만치 않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항구도 항구 그 자체가 완벽하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다.
구강 구조를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라 해도 내장이 없다면 죽는다.
사람이 섭취한 음식을 잘 소화해야 건강하듯, 항구에 내린 물자도 내륙 곳곳으로 전해져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도로와 철도, 수운 등의 인프라가 중요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게다가 인프라 역시 건설만 한다고 다가 아니다. 주요 도시 간, 지역 간 산업 관계, 여러 산업이 상호작용하며 움직이는 원리를 따라 섬세하게 설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산업이 삐걱거리고, 끝내 썩어들어간다. 혈액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신체 말단부가 썩어들어가듯.
아즈텍 연방이 대륙 북쪽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면서부터, 미시시피 강 유역에는 수도와 국가를 지탱할 여러 인프라가 축적되어 왔다.
그렇기에 정부군은 필사적으로 이 지역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보루다.
미시시피 강 유역을 빼앗기면, 아니 적의 공세가 미시시피 강 서안만이라도 장악한다면, 그걸로 연방 정부는 끝이다.
특히 대륙해방군이라는 이름의 저 역적들은 하구에 공세를 집중시키고 있었다. 여기를 확실히 틀어막은 후 연방 정부를 말려 죽일 심산이다.
연방 정부의 수비도, 자연히 하구 일대에 집중될 수밖에.
“또 시작이다, 또.”
정부군 병사 하나가 다 피우지 못한 담배를 털어버리며, 지겹다는 듯 말을 뱉었다.
이제는 전투 후 적병의 시체를 빠르게 소각하는 절차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참호 바깥, 돌격해오다가 죽은 적병의 시체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꿈틀대며 또다시 기이한 흰색 기관을 만들어내는 시체들.
총으로는 잘 죽지도 않는다.
아니면 이단이 와서 상대하든지.
“다시 포격 요청해.”
장교가 통신병을 향해 말하고, 통신병이 좌표를 전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포격이 괴물들 위로 쏟아진다.
대부분의 괴물은 터져나갔지만, 살아남은 몇몇이 그대로 참호까지 접근한다.
그런 괴물들의 몸 위로 집중 사격이 쏟아진다.
거의 다진 고기처럼 만들고 나서야 괴물은 멈췄다.
“처음 당했을 때처럼 많은 희생자를 내지는 않지만…….”
장교는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저런 괴물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정말 많은 전우들이 죽어 나갔다.
전장에서 보게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도 있었고, 생각 이상으로 괴물들이 강력했던 탓도 있다.
게다가 상부에서도 괴물들의 존재를 믿어주지 않았던 게 희생을 키웠다. 괴물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으니까.
상부에선 전선의 병사들이 환각이라도 봤다고 오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보고가 줄을 잇고, 괴물을 찍은 사진이 속속 올라오자 상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
화염 방사기를 비롯해 ‘시체를 불태우는 데 적합한’ 장비들이 대량으로 전선에 보급되었다.
백병전 직후, 참호 안이나 참호 가까운 곳에서 죽은 적병들의 시체를 재빨리 한곳으로 모아, 소각하는 전술이 확립되었다.
처음에는 다들 미숙해서 운반 도중에 시체가 괴물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일에는 거의 희생자를 내지 않고 대처한다.
병사들이 겁을 내는 일도 많이 줄었다.
충격에 무감각해진 건지, 아니면 대처법이 발견된 괴물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기 때문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허나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물자의 소모가 너무 크다.”
적들도 그 점을 예상한 듯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아무리 끔찍한 괴물이라고 해도 결국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전 발발 직후의 충격이 계속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터.
그렇기에 지금은 괴물의 ‘내구성’에 기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체를 다시 한번 짓이기는 데 들어가는 포탄은, 일반적으로 적의 공세를 제압할 때만큼은 소모된다.
괴물을 다진 고기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총알도 마찬가지다.
시체를 태우는 데 필요한 여러 장비나 인화성 물질 역시 무한하지 않다.
“반면에 적은 자기네 인력을 두 번 활용하고 있다.”
지금이야 정부군이 장비도, 훈련도, 병력도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과연 얼마나 계속될까?
뚜렷한 대책 없이 이렇게 물자만 소모한다면, 연방 정부의 미래는 뻔하다.
물론 그 대책은, 전선의 일개 장교가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조금 더 윗선, 사령부나 참모회의에서, 혹은 정부가 좋은 대책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었다.
너무 늦기 전에.
***
“태평천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국이 다른 민족을 핍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제국을 주도하는 민족이 다른 민족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AN연구소에서 열리는 세미나.
한재연은 회의장 한구석에서, 학자들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참견하진 않는다. 지금은 최대한 많은 의견을 들어둬야 하니까.
그렇게 해서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을 더욱 보강한다.
아니, 그 너머까지 보아야 한다. 연방 창설 이후, 연방은 어디로 갈 것인가까지.
“결국 피지배 민족에 대한 일방적인 핍박은, 통치 행위가 아니라 민족 간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이 ‘법적 정당성’을 얻은 형태로 말입니다.”
학자 대부분은 지금 발표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갈등을 지배 민족의 법으로 정당화하게 되면, 법 자체가 필연적으로 조악해집니다. 정상적인 통치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고,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죠. 지배 민족이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자각하는 것만큼, 피지배 민족도 자신들의 상황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허동주나 신수덕이 세계대전을 겪으며 ‘고려 민족’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 갔던 것처럼.
한족들도 몽골이나 고려, 혹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지배를 받으며 자기네 민족의식을 강화할 것이다.
“현재 키타이나 낭키아스에서도 실시하는 것처럼, 동화 정책은 지속해야 합니다. 그건 다른 어떤 반발이 있더라도 중단하면 안 됩니다. 단순히 민족 간 자연스러운 융합을 기대하면, 한족이 몽골화 혹은 고려화하는 것과 동시에, 몽골 및 고려의 한화(漢化)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재연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재연이 퍼득 놀라 돌아보니, 견하가 서 있었다.
조용히 세미나를 들으러 온 일반인인 것처럼 재연의 곁에 앉는다.
“일리 있는 의견이야.”
견하가 속삭이는 짧은 소감에 재연도 끄덕였다.
“역사가 증명해주니까.”
“하지만 일리만 있어서는 안 되지. 그러라고 AN연구소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건 아니거든. 대책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재연은 오늘의 발표 내용이 간략하게 적힌 소책자를 넘겨보며 대답했다.
“대책은 있는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들어봐야겠지만.”
두 청년 모두 입을 다물었다. 발표자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서다.
“……한편으로는 발해도에 시행된 것과 같은 수준의 자치 역시 ‘다이온’의 국토 전역에서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독립의 필요성’ 그 자체를 망각하게끔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