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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88화 (288/541)

이리떼의 아가리(6)

제6차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는 현 아즈텍 정부만을 정통으로 인정하기로 결의.

아즈텍의 다른 반란 정부에는 무역 봉쇄 등의 조치가 뒤따랐다. 하지만 직접적인 군사 지원은 직접 언급되지 않고 이후의 과제로 미뤄졌다.

“우방들이 적극적으로 논의하여 아즈텍 지원의 세부 사항을 정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의장국인 로마 측은 그런 말로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각국의 역량과 사정에 따라 아즈텍을 지원하게끔 한다는 말이다.

즉,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에서는 전체적인 방침만 정하고, 열강들끼리의 후속 논의를 거쳐 파병이나 물자 지원 등이 결정된다는 것.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자발적인 논의를 이어나갈까.

군사적인 희생을 감수하려면 뚜렷한 이익, 혹은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대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즈텍을 지원해봤자 제대로 된 이익을 거두리라는 보장도 없고, 훌륭한 대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아즈텍 정통 정부의 민주주의를 구한다는 대의가 있긴 하지만, 다른 요인들이 이 대의를 많이 희석하고 말았다.

“‘평등’을 갖추지 못한 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대륙혁명전선이 제기한 이 물음은 유럽의 지식인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과연 아즈텍의 현 체제가 유럽인의 피를 흘려가며 유지할 만큼 귀중한 것인가.

바라트가 침묵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민주주의를 깊이 공부해 온 지식인들이 지지 표명을 망설인다?

아즈텍 정부는 꽤 당황한 듯했다.

“당연하지 않나. 지식인들은 보다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 민주주의자일수록 ‘더 이상에 접근한 민주주의’를 꿈꾸기 마련이지.”

콘스탄티누폴리에서 벨리사리오스 황자는 그렇게 냉소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상이, 그들 자신이 선전하는 것처럼 ‘민주적’인가는 별개 문제다.

바라트를 비롯한 공산권의 문제를 지적하기엔 ‘자유세계’의 열강들도 약점들을 안고 있다.

그게 이번 평화회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지식인들로서는 ‘이론’을 따라서, 혹은 막 걸음마를 뗀 체제에 대한 ‘낭만적 호기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

아즈텍 대륙의 혁명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만약 대륙혁명전선이 승리를 거둔다면, 새롭게 들어설 정부는 어떤 형태를 취할까. 그것은 바라트 혁명의 연장일까. 아니면 바라트가 제시하지 못한 새로운 무언가의 등장일까.

여기에 더해 동부, ‘자유주 독립군’의 궐기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

“민족자결의 원칙…….”

동명특별시에서, 미리안 태사는 굳은 얼굴로 그 말을 중얼거렸다.

민족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

지난 세계대전 전부터 슬금슬금 기어 올라와, 여러 ‘제국’들을 위협하는 사상이다.

신 이슬람 제국이 유럽을 위협할 때, 민족주의 운동은 그 위협에 발맞춰 유럽의 제국들 내부를 뒤흔들었다.

어떤 민족주의 운동은 그 민족의 패권에 대한 갈망으로 바뀌었다. 태평천국이 그러했다.

제국들은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민족주의 운동을 주저앉혔지만…… 어디까지나 주저앉혔다 뿐이지 없어진 건 아니다.

고려도 한족 문제뿐만 아니라 극북에서도, 미약한 민족주의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다.

“아즈텍 연방에서 유럽계의 독립운동은…… 새로운 세계적 갈등의 시작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다 말고 리안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 시작은 구 태평천국 영토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야겠지. 한족 독립운동. 신수덕이 저지른 참상은…… 우리가 신수덕의 악행을 선전한 만큼 널리 퍼지고 말았어.”

왜 미리안 정권이 정당한가.

왜 허동주와 그 일파는 주살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걸 설명하기 위해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신수덕의 학살극은 세계 곳곳에 알려졌다.

상식이 있는 모두가 신수덕의 악행을 규탄했다. 그런 사상을 만들어낸 허동주를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 비난했다.

하지만 두 가지 방향으로, 리안을 비롯한 정권의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

놀랍게도 허동주와 신수덕의 대의에 공감하는 자들이 있었다.

“못돼 처먹었…… 아니, 사악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인간들이에요.”

효윤은 그렇게 감상을 말했고, 리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쁘지만 우리 민족은 예외, 라는 머저리들은 늘 있어왔지. 그런 인간들은 총알이나 포탄을 먹여주기 전에는 정신 못 차려. 개혁으로 무마되는 대상이 아니거든.”

체제 개혁을 통해 빈부 격차를 줄인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가담자를 줄여나갈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그냥 증오하고 싶어서 증오하는 것이기에 그 효과는 크지 않다.

개혁을 통해 영향력을 미미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르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순수한 민족’들을 위한 정책을 세워봤자…… 국력이 약해지는 결과만 낳을 뿐이야.”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들을 온전히 활용할 수 없게 되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그런 자들은 첫 번째 ‘민족 분리’ 요구가 충족되면, 만족하지 못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 심지어는 같은 민족끼리도 억지로 기준을 만들어내서 가르고 증오하면서 국력을 소모하지.”

공산주의자들은 차라리 자기네 이론에서 말하는 노동자 계급의 지배가 확립되면 멈추기라도 한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은 멈추는 법이 없다.

끝까지 가서…… 주변 민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살까지 다 뜯어 먹은 후에 자멸하고 만다.

“따라서 아즈텍 연방 정부가 취했어야 할 방법은 극우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뿐이었어. 그런데 그걸 하지 않았지. 그렇다고 해서 경제 개혁을 서둘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야.”

견하는 아즈텍 연방 나름의 입장이 있다고 변호했지만, 일단 일이 터진 지금에 와서는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타국의 조언은 무시해 오던 나라가, 이제 와서 도움을 요청하면 비웃음밖에 더 당하겠어?”

열강이 아즈텍 연방의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이렇게 된 게 다 신수덕의 계획일까요?”

“신수덕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순 있지만, 순수하게 그 작자만의 힘은 아니겠지. 기본적으로 조건 자체는 갖춰져 있었어. 철혈의 꽃이든, 아즈텍 연방 정부든, 양쪽에서 아주 제대로들 처신했지.”

살짝 비아냥거린 뒤, 리안은 검지 끝으로 두어 번 책상을 두드린다.

“문제는 철혈의 꽃만 신수덕에게 자극받은 게 아니라는 말이야. 이번에 아즈텍 동부에서 일어난 ‘자유주 독립군’도 신수덕의 영향을 받았겠지.”

“아즈텍 내에서는, 자신들도 ‘한족’에 가까운 처지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건가요?”

“그럴 거야. 세계대전 종전 이래 20여 년간 잘 지내왔던 한족도 저렇게 몰살을 당했다, 유럽계 국민들도 저런 처지가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거지.”

물론 그것도, 아즈텍이 전부터 민족 정책을 제대로 펼쳐왔다면 상당 부분 무마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경제적 영향력이 큰 유럽계에 대해 한편으로는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해주는 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은연중에 ‘피정복민’ 취급을 해왔다.

“경제적 주도권을 쥔 자와 사회의 주류가 달라. 이러면 반드시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공화국으로, 제국으로 나아갔지만, 아즈텍 연방에서 유럽계는 ‘혁명’이 아니라 ‘독립’이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

게다가 대륙의 주류를 믿을 수 없기에 더더욱 ‘독립’에 매달릴 수밖에.

이렇듯 신수덕의 학살극은, 영감과 경악을 동시에 대륙에 뿌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륙해방군’, ‘대륙혁명전선’과 함께 연방 정부를 협공하는 건 너무 안목이 짧은 게 아닐까요? 당장 대륙해방군이 내세운 구호를 보면, 절대로 유럽계에는 우호적이라 볼 수가 없는데요.”

“아마 ‘우리는 유럽계를 절멸하려는 게 아니다. 유럽인들은 유럽인들끼리, 원주민들은 원주민들끼리, 그렇게 분리되어 살아가자’고 내세우겠지.”

민족 간 ‘분리’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이 종종 입에 담는 목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면에 불과하고, 권력을 잡고 나면 자기네 민족에 의한 패권 확립이라는 맨얼굴을 드러낸다.

“‘자유주 독립군’도 일단은 그 ‘분리’라는 말에 편승해서, 독립을 얻어내는 걸 일차 목적으로 할 거야.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연방 정부를 공격하진 않고, 대륙해방군이 쿠아우테목에 입성할 때까지 동쪽에서 견제만 하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독립을 ‘유지’할 수가 없다.

“대륙혁명전선이야 당연히 혁명의 완수를 위해 유럽의 자본가들을 몰아내려 하겠지. 그러니 대륙혁명전선이 내전에서 이기는 건 자유주 독립군이 바라는 바가 아니야. 마찬가지로 대륙해방군도 ‘동부 재정복’의 기회를 노리겠지.”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로, 일단 쿠아우테목에 입성해 정권을 차지한 세력은 동부를 노려야만 한다.

아즈텍 연방이 대서양 전쟁 이후 계속 누려 온,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해자를 확보하기 위해.

“그럼…….”

“연방 정부, 대륙혁명전선, 대륙해방군이 치고받는 동안 자유주 독립군도 안전책을 마련해 둬야 해. 아마 ‘유럽의 동포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

바로 여기에, 아즈텍 내전의 복잡성이 있다.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는 아즈텍 연방 정부를 정통으로 인정하기로 결의했지만, 열강의 속내는 각자 다를 거야.”

“자유주 독립군을 지원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겠지. 공공연히 그러지는 못해도,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의용군’까지 막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식으로 나올지도 모르고. 다만 일이 그렇게 돌아가면 더 복잡해져.”

다시 민족자결주의가 발목을 잡는다.

“브리튼의 식민지 주민들은 이미 에이레 독립을 목격했지. 에스파냐나 신성 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아니, 신성 제국은 사정이 더 심각할 거야.”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게르마니아와 이탈리아를 병합한 것이 지금의 신성 제국이다.

자유주 독립군이 마침내 독립을 성취해낸다면, 그것은 그대로 게르만계와 이탈리아계의 독립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당장 유럽계 주민들의 구원 요청을 무시하기엔 여론이 무섭고, 그렇다고 자유주 독립군을 돕자니 제국의 붕괴가 두렵다, 는 거군요.”

“아즈텍 연방 정부에 대한 괘씸죄도 작용할 거야. 지금까지 계속 강국으로서의 책임을 거부해왔잖아? 그런데 이런 정부를 살려내봤자 책임을 지려고 하겠냐는 말이지.”

“내전을 핑계로 더욱 고립주의로 돌아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그렇다면 차라리 자국이 초강대국이 되어서 세계를 짊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작자도 있을 거야.”

“으음…….”

효윤의 신음처럼, 상황은 복잡하기만 하다. 어떤 예측을 내놓는 게 가장 그럴싸한지 알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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