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83화 (283/541)

이리떼의 아가리(1)

멍한 머리를 깨우려 눈을 몇 번이고 깜박인다.

아직 새벽도 오지 않은 한밤중이다.

“각료들이 모이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그래도 서두르셔야 할 것 같아요.”

효윤의 재촉에 리안은 몸을 움직여 옷을 걸쳤다. 머리카락은 보기 싫지 않은 정도로만 빗어 내린다.

그녀는 각료의 우두머리, 태사다. 그러니 장관들 다 모여서 기다리는 자리에 느긋하게 나타나도 상관없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다.

시급하다는 분위기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아도 눈치 빠른 각료들은 다들 마음 단단히 먹고 태사부로 오고 있겠지만.

“아즈텍이 기어코 내전……. 견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상은 했었지만 너무 빨라.”

“네.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요소가 있었다고 밖에는.”

“그 요소가 뭘까? 누군가의 개입? 혹은 우리가 아즈텍 정부를 과대평가했던 걸까?”

그 질문에는 리안과 효윤 모두 대답할 수 없었다.

말없이, 두 사람과 다른 경호원, 보좌관들은 회의장으로 향했다.

각료들은 평화회의에 참석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모여 있다.

리안이 자기 자리에 앉자 다른 이들도 자리에 앉는다.

의례적인 말들은 생략한다.

리안의 고개가 전쟁성 장관 강태훈 쪽으로 향하자마자, 강태훈은 설명을 쏟아냈다.

“전군은 비상 대기. 일본공화국 측에서 해군을 출동시키면서 ‘이는 태평양 해상을 경계하기 위함이니 고려 측에서는 오해 없기를 바란다’고 통보해왔습니다.”

“일본의 입장이 저러니 뭐라 하기도 어렵게 됐군요.”

리안은 아즈텍을 지렛대 삼아 일본의 해상방위동맹 계획을 저지하려 했었다.

하지만 아즈텍은 도저히 지렛대로 삼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 상황에 일본을 견제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공화국과 협력하며 아즈텍의 변화에 대처하는 게 현명할 터.

“우리는 극북방위군 쪽에 특히 더 신경을 쓰는 쪽으로.”

“예.”

인프라와 기후가 모두 전쟁을 하기엔 부적합한 극지방이지만, 아즈텍과 고려 양쪽이 서로의 육지를 타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당장 동원령을 준비한다든가 하면서 설레발칠 필요는 없겠죠. 그러니 일단은 상황 파악부터 똑바로 해봅시다.”

리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무장관 안세규가 정리된 보고를 올린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골 지역 봉기…… 수준이었습니다만, 테노치티틀란을 시작으로 남부, 서부 일대의 대도시까지 봉기가 확산하고, 그 도시들 사이의 연결이 이루어지면서 내전으로 발전한 듯합니다.”

보좌관들이 재빨리 각료들에게 서류를 전달한다. 종이를 넘기는 리안의 시선도 재빠르게 위아래를 훑는다.

“자칭 ‘대륙해방군’…… 모태는 ‘철혈의 꽃’인가.”

“신수덕이 얼마 전까지 그 조직에 몸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수덕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나오자, 소리 없는 술렁임이 회의장을 스친다.

그 술렁임을 무시하듯 리안은 말을 이어나갔다.

“극우파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은 좌익도 북쪽에서 행동에 나섰다…… 이건 ‘대륙혁명전선’이라는 이름이군요.”

“그렇습니다. 그 밖에도, 아즈텍 동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 모양입니다.”

“그쪽은 아직 조직화된 봉기 움직임을 보이진 않고 있죠?”

“예. 하지만…… 해묵은 민족감정이 다시금 들끓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언제든 이들도 내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큽니다.”

리안은 기억을 더듬는다. 분명히 전에 강태훈 장관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준 게 있는데.

“이 내전에는 대공황으로 심화된 경제 문제, 사회 계층 간 갈등 말고도 ‘민족 문제’가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전쟁장관께서 아즈텍 해군의 무력 시위는, 아즈텍 내부의 민족 갈등이 배경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었죠.”

안세규 역시 리안과 같은 것을 떠올린 모양이다. 그는 강태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민족 문제가 겹쳐 민족 갈등이 폭발했다면 지금 상황이 설명되긴 합니다만…… 지나치게 진행이 빠릅니다. 적어도 작년까지만 해도 이 지경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법무장관 류성일이 입을 열었다. 장관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기에, 그리고 현 정권의 공신 중 하나이자 살아있는 세계대전의 영웅이기에 모두 귀를 기울인다.

“아즈텍 정부가 이 문제에 아주 손을 놓고 있었다거나, 혹은 다른 요소가 반란군의 등을 떠밀지 않고서야 이런 급한 상황 전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아즈텍 정부는 지금까지 자기네 정부가 문제를 잘 통제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혹은 세계 제1의 강대국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허세를 부려왔다든가.”

각료 중 한 사람의 질문에 류성일은 고개를 저었다.

“때로는 그런 허세가 외교 무대에서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말로만 떠들 뿐 정작 문제에는 손도 못 대는 머저리 정부가 존재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요. 허나 법학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즈텍 정부는 이 문제에 그럭저럭 준수한 대응을 보여 왔습니다.”

아즈텍의 민주 정부.

민주적 사회에는 ‘불만에 찬 목소리’를 내뱉을 공간이 있다. 이것은 불만의 극단적 표출을 어느 정도는 방지한다.

“물론 고 여준설 장관을 잃었던 테러라든가, 각종 시위가 연이어 벌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아즈텍 정부도 완벽했던 건 아닙니다. 개혁이 더뎠던 것도 사실이지요. 허나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반드시 붕괴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저는 아즈텍의 시스템이 그럭저럭 문제를 수습하기에 적당한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해왔습니다.”

안세규가 눈을 가늘게 좁힌다.

“법무장관님 그렇다면…… 아즈텍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라면, ‘반란군의 등을 떠민 다른 요소’가 문제였다는 말씀이신가요?”

다들 안세규의 말에 담긴 의미를 눈치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류성일이 분명하게 확인해준다.

“예. 아까 내무장관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신수덕’이 있지 않았습니까?”

술렁임은 보다 노골적으로 변한다.

모두의 시선이 리안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이런 논의의 방향을 예상했다는 듯 덤덤하다.

“……신수덕 개인이 아즈텍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정세를 움직일 수 있었겠습니까.”

“신수덕이 홀로 이런 결과를 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즈텍에는 ‘철혈의 꽃’이라는, 신수덕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조직이 있었지요.”

기존 정권을 무너뜨릴 의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이념, 적절한 무력과 조직. 이 모든 것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

그것을 더욱 확대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그런 자들에게, ‘실전 경험’을 갖춘 신수덕은 실로 귀한 손님이었겠지.

“실제로 그자는 ‘기갑사’ 제작 기술을 전해주지 않았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철혈의 꽃’, 그리고 지금의 ‘대륙해방군’이라는 집단의 전력은 상당히 강해졌을 겁니다.”

기갑사 전력은 실제로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알타이 자유 공화국’이 사방이 포위된 상태에서도 꽤 오래 저항할 수 있었던 건 기갑사 전력 덕분이다.

그리고 무너졌던 것 역시, 고려에서 더욱 개량된 ‘기갑사’를 앞세웠기 때문이고.

“신수덕이 ‘철혈의 꽃’을 지원했고, 그 덕분에 철혈의 꽃이 자칭 ‘대륙해방군’이라는 거대한 반란군 무리로 거듭날 수 있었다면, 이는 우리 고려에 상당한 위협이 됩니다.”

“……신수덕은 분명 아즈텍 정통 정부 측에는 기갑사 기술을 유출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강태훈이 그렇게 류성일의 말을 받았다.

이 분석은 중요하다.

반란을 일으킨 대륙해방군이라는 집단은, 아즈텍 정통 정부에 비해 얼마나 유리한가.

대륙해방군은 아즈텍 정통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어쨌든 신수덕의 영향을 받은 대륙해방군이 아즈텍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면, 그들 정부는 고려에 우호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즈텍 북쪽에서 반란을 일으킨 ‘대륙혁명전선’에는 신수덕의 입김이 미치지 않았을까요?”

“그쪽에는 신수덕보다는 바라트 공산단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다만…… 대륙해방군이 봉기했을 때 좌익 측에서도 뭔가 행동에 나서리라는 예상은 했겠지요.”

“아즈텍에 이 정도 혼란상이 펼쳐지리라는 예상은 했다, 라.”

신수덕이 아즈텍 내전의 발발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혼란이 장기화되어 아즈텍의 국력이 추락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지원하는 특정 정권이 들어서기를 노렸다면…… 그 정권이 고려에 적대적이도록 뭔가 수를 쓰지 않았을까.

“만약 대륙해방군이 아즈텍의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후, 신수덕의 의견보다는 고려와의 우호라는 보다 현실적인 외교정책을 택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내전의 상처나 비대해진 폭력성을 외부로 표출할 가능성도 큽니다. 좋게만 바라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고려나 몽골이 내전을 겪었어도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건, 정통 정부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적 내전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반면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은 국민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 한다.

한껏 부풀어 오른 대륙해방군은 태평양이든 대서양이든, 혹은 남쪽 잉카 공화국이나 에스파냐령 브라질을 향해 진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고려만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터.

“다른 나라들의 반응은?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 쪽에서는 뭔가 말이 나온 게 없습니까?”

***

틀락스칼라 혁명 이후, 아즈텍은 인신공양이라는 풍습을 철저히 폐기했다.

대서양 전쟁 이후로는 연방에 가입한 북부 여러 부족과, 새로 합병한 유럽계 식민지인들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고자 노력해왔다.

태평양 건너편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불교. 대서양 건녀편 유럽에서 들여온 크리스트교가 자유롭게 온 국토에 퍼져나가며 이런 풍조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람이 사람을 먹던 광기’를 종식하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그 ‘야만’을 종교나 전통으로 포장하던 광기에 대한 격렬한 반동.

그 반동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을 우선하는 사상이 아즈텍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즈텍은 ‘자유세계’의 일원이 되었고, 민주주의와 민족 간 평등을 지상에 실현한 강대국으로서 이름을 드높였다.

혹은, 민주주의와 민족 간 평등을 실현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제1의 강대국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도, 대공황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아즈텍 대륙은 풍족한 대륙이고, 아즈텍은 부유한 국가이니만큼 대공황이 터지자마자 국민 전체의 의식이 무너지진 않았다. 아즈텍이 수백 년간 쌓아 올린 자유와 평등의 이상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