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80화 (280/541)

도시들의 여제(16)

루우도 효윤도 리안도, 경악으로 눈을 크게 뜬다.

간신히 루우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그것이 영혼이라면…… ‘인위적으로 양성한 이단’은?”

“정확히 설명해 드리려면, ‘이단’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 말씀드려야겠군요.”

투글룩이 다시 손을 움직이자 신종의 씨앗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이 불쌍한 영혼들과 이단이 소환하는 무기가 같다는 건 아시겠지요.”

“……우리는 영혼을 무기로 빚어서 소환하고 있었던 건가.”

“예. 인간의 육신에 직접 영혼을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안 됐던 겁니다. 일반적으로 무기로 활용합니다만, 영혼을 육신 ‘밖’에 연결해두는 간접적 방식만이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것이 이단입니다.”

“그렇다면 견하도…….”

루우는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에 힘을 준다. 그날, 소년은 강제로 육체에 영혼이 묶였다.

견하가 왜 그것들을 ‘아이들’이라 부르는지도 알 것 같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이단은…… 그들의 먼 조상 누군가가 ‘신종’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신종은 흥미를 품고 그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묶어두었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탄생시킨 이단은,”

“파멸해버린 저쪽 세상의 ‘찌꺼기’를 활용했군.”

이번에는 투글룩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다.

“말씀대로입니다. 파멸인들은 육신에 영혼을 쑤셔 넣고 이러한 ‘신종의 씨앗’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신종이 세상의 경계 위에 사는 것처럼, 이것들도 세상의 경계 위에 존재합니다. 우리 세계에선 이것들을 발견하고 영혼을, 혹은 그 일부를 추출해 다시 인간의 육신에 묶어두었습니다.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든 이단입니다.”

‘신종의 씨앗’을 죽일 때 ‘저쪽 세상’과 연결되는 것.

신종의 씨앗이 대량으로 소환되었을 때, 세상 사이의 경계가 옅어지는 것.

그리하여 이 세상을 저쪽 세상과 비슷한 환경으로 만들고, 저쪽 세상의 것을 이곳으로 더욱 많이 소환해내는 것.

수수께끼는 거의 풀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 정답은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 뿐이다.

루우의 머릿속에, 저쪽 세상으로 잠시 빨려 들어갔던 견하의 팔이 떠오른다.

주견하는 영혼을 육체 밖에 안정적으로 묶어뒀다는 보장이 없다.

견하는 그 육체에 영혼이 반쯤 쑤셔박힌 불안정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드러나는 징조들은…… 불안만 키운다.

루우는 흘끗, 리안의 얼굴을 본다.

하얗게 질려 있다.

그녀도 자신과 비슷한 추리를 하고 있겠지.

연인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세세한 것들을 알려줘서 고맙군. 허나 대략적인 추측은 게레센제 카간도 하고 있었다. 아마 칸발리크 테러를 일으킨 무리도 어느 정도 지식은 갖추었다고 봐야겠지.”

“그렇습니다.”

“그대는 게레센제 카간이 몰라야만 하는 지식이라고 했다. 아직까지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것 같군?”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그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한 준비였을 뿐입니다.”

황제와 태사는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녀들의 얼굴에서 흥미가 경악을 대신하는 것을 확인하자, 투글룩은 말을 이었다.

“저희는 이것을 ‘파멸인의 영혼’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것을 ‘신종의 씨앗’이라 부르는 이유는……”

잠깐 뜸을 들인다.

“‘혁세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머릿속에 그 거대하고 붉은 천체를 떠올린다.

“혁세주를?”

“인위적으로 이단을 만들 수 있다면, 인위적으로 신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파멸한 세상의 인류는 최후의 발악을 했다.

억지로 영혼을 삼킨 자들끼리 모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기로 했다.

다른 세상과의 경계에 씨앗을 뿌려, 다른 세상으로 이주.

실패했던 실험을 반복한다.

세상을 몇 개나 소모하든, 하나의 실험 재료로 취급하며.

“‘윤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새 생명으로 환생한다는 믿음 말이군.”

“당연히 일반적인 인간은 불가능합니다. 죽으면 그뿐. 그러나 신은 가능합니다. 씨앗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길 기다리면 됩니다.”

“신종의 방식을 응용하는 건가.”

“씨앗을 뿌리고, 다른 세상의 규칙과 원리를 바꾸어,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윤회’하는 방식으로 출현한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세상이 파멸하여, 하나의 겁(劫)이 끝났다고.

루우는 그 말을 들으며, 견하가 칸발리크 사태를 해결했던 방법을 떠올린다.

억지스러운 도박이었지만, 어쨌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주견하는 저 신종 윤회의 과정에 오류를 일으켰다. 안 그래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인위적인 신, 혁세주를 동시에 두 장소에 강림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마치, 신을 양쪽에서 붙잡아 당겨 찢어버리는 것과 같다.

찢기지 않기 위해 저쪽 세상의 ‘인위적인 신’은 물러났다.

“그런 판단을 할 정도면 의지는 있다고 봐야겠지.”

“지금으로서는…… 명백한 ‘침공 의도’를 갖고 있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더 복잡한 계산이 있을지, 아니면 그저 짐승과도 같은 본능에 불과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그 괴물도 위험하지만, 그대는 다른 위험도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군.”

“예. 저쪽 세상에서 가능했던 것은, 이쪽 세상의 인류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누군가가 혁세주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은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론적으로는.”

투글룩은 다시 손을 움직였다.

붉은 광경이 사라진다.

그들 주변은 어느새 익숙한 어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의도와 행동을 짐작할 수 있는 자들은 대응할 수 있습니다. 설령 일이 터져도, 수많은 희생을 치러서라도 수습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 루우도 효윤도 칸발리크에서 그것이 가능함을 보았다.

그러나,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본래 신종은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존재. 호의도 악의도 우리의 기준으로는 잴 수 없습니다.”

왜 씨앗을 뿌리는가. 왜 윤회하는가.

그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우리의 세상을 어떻게 취급하는가.

대체 왜…… 누군가에게는 용의 영혼을 주었으며,

또 누군가에겐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의 영혼을 주었는가.

그 짐승들은, 짐승의 ‘원형’들은 대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적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차라리 신종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이해할 수 있다. 추악한 탐욕도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니까.

이해할 수 있는 것에는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에겐 대응할 수가 없다.

그것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이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신종을 토멸한다 해도 그게 세상에 좋은 일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토멸이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토멸 시에 어떤 파문이 일지 알 수 없다는 거군.”

루우는 다시 한번 리안과 시선을 교환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 준 투글룩에게 내릴 적절한 상은 정해져 있었다.

“허동주를 주살한 이래, 고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단 관련 연구 기관을 일원화했다. 투글룩, 그대와 그대의 부하들이 고려로 귀순할 생각이라면 그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물론 몽골군에서의 계급과 대우도 그대로 유지해 줄 생각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대가 정리해 온 자료, 경험과 지식을 모두 전하도록. 성심으로 이단과 신종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라.”

투글룩은 어전에서 물러났다.

남은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 머물렀다.

“한 나라의 일도, 나라 간의 일도 골치 아픈데 인류 단위로 신경 쓸 일까지 늘어나다니.”

과로를 호소하며 리안은 의자 위에 몸을 늘어뜨렸다.

“이 분야는 짐한테 맡겨둬. 확실한 연구 성과가 있기 전까지는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긴 어렵겠지만.”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모두가 한 가지 걱정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루우의 말마따나 지금 당장은 뭔가 대책을 내놓을 수가 없었으니까.

***

동명에서 세계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콘스탄티누폴리에서는 질문자도 답변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대화가 오갔다.

“……정확한, 테러의 수단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것이 이번 테러의 악랄한 측면이겠죠. 다만 ‘이단 기술’이 테러에 응용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단 기술의 응용이라면?”

“세상의, 인간의 구성 원리를 뒤흔드는 방식 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혼란과 오해를 가중할 수 있어 저희도 말씀드리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신체 붕괴 현상, 공간 왜곡, 기상 이변 등 모든 피해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단 기술은 군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사 분야의 연구는 최소한 국가 단위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테러의 배후에 ‘국가’가 있다고 보시는지?”

“우리는…… 타국 정부를 의심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카라코룸에서 일어난 반란이 칸발리크 테러와 시기적으로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몽골 내 극단주의 반란군의 사주로 인한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그 반란군의 ‘배후’는 의심하지 않으시는지?”

“무슨 의미입니까?”

“몽골의 혼란과 국력 약화를 통해 이득을 본 나라가 있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하는 겁니다.”

몽골측 대표단도 그렇지만, 고려의 대표단도 불쾌감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로마에서 본격적으로 ‘다이온 연방’을 견제할 셈인 건가.

아니, 그 전에 일단 상당히 무례한 발언이었다. 이번 내전을 통해 영향력을 크게 키운 고려뿐만 아니라, 카간 자리를 쥐게 된 낭키아스도 용의선상에 올려놓는 말이니까.

그러나 로마 측에서는 용의자를 특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몽골 측 대표단은 차분하게 말을 받아낸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타국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호 의식에서 나온 판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런 비극을 겪게 해서 주변국이 거둘 실익이 없습니다.”

실제로 몽골 내전은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한 내륙 무역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고려에서 추진하던 4국 관세동맹에도 타격이 되었고.

“어디까지나 몽골 내부의 문제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테러에 응용되었다는 ‘이단 기술’, 그것은 몽골에서 연구되던 것입니까?”

조유관은 탁자 아래 내린 주먹에 힘을 주었다.

애초에 테러의 배후가 어디인지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로마의 관심을 끌어당긴 건 칸발리크 테러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던 ‘기술’.

‘군사적’으로도 응용 가능한 그 기술이었을 것이다.

“칸발리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콘스탄티누폴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우리는 그저 평화와 안전을 염려하며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 측 대표는 천연덕스럽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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