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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75화 (275/541)

도시들의 여제(11)

보다 우월한 인간, 이단.

우월한 자에 의한 지배.

물론 우월한 자의 지배는 열등한 인간의 군림보다 낫다. 얼핏 생각하기엔 그렇다.

그러나 지배자의 우월성이, 국가라는 공동체 구성원의 보편적 이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우월성은 도덕이 아니다.

우월한 자의 선함을 바라는 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간단한 예로, 허동주나 신수덕 같은 인간이 집권한 고려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은가.

“허동주와 신수덕의 우수성은, 비록 역적이지만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자들이 집권했다면 참혹한 한족 대학살이 벌어졌겠죠. 어쩌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견하는 평화주의자나 인권의 옹호자가 아니다.

한족에 대한 통제는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전쟁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의 감각은 이미 소년 시절의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을 넘지는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감각만큼은 날카롭게 벼려졌다.

이 감각이 없었다면 견하는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리안의 연인이자 측근으로 올라가지도 못했겠지.

벨리사리오스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되묻는다.

“정말로 ‘역적’들이 고려의 정권을 잡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 실례되는 질문인 줄은 아네. 고려의 황제 폐하나 태사의 정통성, 내전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는 일이니까. 허나 ‘자유세계’의 사람으로서 미지의 세계인 고려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기 어렵군.”

견하는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이미 벨리사리오스는 이 대화가 ‘공식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어느 정도는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눠도 괜찮겠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동주의 전쟁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을 것인가? 신수덕의 학살이 내전 없이도 일어났을 것인가? 혹시 이런 것들은 모두 내전에서 승리한 미리안 정권의 프로파간다가 아닌가?”

“실제로 그런 의문을 품는 자들이 적지 않네. 이번 평화회의에서도 고려의 정권이 자기네 정당성을 홍보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거지.”

“하지만 그런 의문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만약’은 어디까지나 ‘만약’이라는 겁니다.”

“……그렇지. 일어난 일이 아니지.”

실제로 일어난 일은 신수덕의 학살이다. 그로 인한 동아시아 각지의 한족 반란이다.

허동주의 전쟁 계획 문건은 실제로 발견되었고, 그런 가르침을 받은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의 증언도 줄을 잇는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가정’에 매달리느라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우수하다고 해서 그 통치의 결과가 반드시 우수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건가?”

“예.”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떤가? 자네의 태사 각하는 허동주보다 우월했다. 따라서 우월한 통치 결과를 내놓고 있다…… 면?”

여기서 견하의 말은 잠시 막힌다.

견하가 섣불리 반박하면, 그건 리안을 깎아내리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왕 허심탄회해지기로 한 거, 견하는 도박 같은 말을 던졌다.

“경험의 측면에서, 혹은 국가적 이상을 내세우는 면에서 우리 태사는 허동주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태사의 승리는 그런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더 많은 동맹을 모색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요컨대, 개인의 우월성은 국가 통치의 결과와는 거리가 있다?”

“전혀 없다고는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태사가 다른 인간에 비해 우월한 면이 있는 분인 건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그 우월성은 말씀하신 ‘이단이 일반인과 비교해 지닌 우월함’과는 결이 다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견하는 떠올렸다.

몇 달 전에도 그에게 비슷한 말을 했던 사람이 있다.

토칸.

그는 ‘혁세주’라는 다른 세상의 괴물을 끌어들여 이 세상을 부수려 했다.

부수고 난 이후의 세상을, 견하 같은 ‘이단’이 관리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견하는 거절했다.

“능력의 우월함을 내세워봤자 그 끝에는 파괴밖에 없다면, 그런 것은 통치도 뭣도 아닙니다.”

애초에, ‘우월한 이단’이 통치한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토칸이나 벨리사리오스 이전에는 없었을까?

이단만이 사회의 상부를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이단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류사 수천 년간 구축된 시스템을 타파하지 못한다.

이단은 단순히 그 능력을 나타내는 편의적인 구분일 뿐, 국가의 통치라는 시스템 속에서는 결국 한 명의 국민이다.

“정말로 그럴까?”

벨리사리오스는 다시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 이 시대처럼 ‘이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또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던 시대는 없네. 이전 시대의 연구가 ‘인간이 어떻게 이단의 능력을 얻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최근의 연구는 ‘이단은 다른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토칸은 이단의 힘이 ‘다른 세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루우도…… ‘신종’으로부터 비롯된 이단의 힘에 대해 이야기했었지.

“이단이 세상의 정점을 차지하는 시스템이 없었던 건, 기존의 시스템이 가로막아서가 아닐세. 애초에 이단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지. 역사상 수많은 영웅들이 이단으로 추정되지만 말 그대로 ‘추정’만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당시에는 이단에 대해 명확히 몰랐기 때문이야.

그러니 이단이었던 영웅과 왕들도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용’이라 일컬어지는 신종.

그 피를 이었다는 고려의 태조, 왕건.

그 역시도 자신이 이단인 줄 모르고, 아니 그때는 ‘이단’이라는 용어도 없었을 테니까…… 그저 ‘천명’이 주어졌다고 여기고 나라를 세웠던 걸까.

“영웅들은 자신의 힘이 ‘신의 은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신은 없고 괴물들 뿐인데.”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견하는 자신이 이런 사실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저 학생으로, 하루하루 학교에 다녀오는 게 거의 전부였던 일상.

그러나 세상은 당시의 견하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고,

이제는 그 너머의 알 수 없는 것들…… 꿈에서조차 본 적 없는 괴물들에 대해 논하고 있다.

“로마에선 학자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났네. 한쪽에서는 여전히 신의 은총을 찾고 있지. 우리가 모를 뿐, ‘진정한 유일신’은 어딘가에 있다고. 이단을 연구할수록 커져만 가는 우리의 혼란도 그분의 뜻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아니라는 거군요.”

“하나의 언어를 배울 땐 그 언어가 속한 문화권의 다른 여러 가지도 배우는 법이지. 나는 이단이기도 해서 특히 고려의 성리학에 관심을 두었네. ‘괴력난신은 논하지 않는다’는 말, 참으로 마음에 들더군.”

“다른 한편은 역시……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 쪽’입니까?”

“그 학자들은 우리 정서에 맞게 조금 다른 표현을 쓰지. ‘신도 영혼도 없다는 차가운 진실을 마주한다’고.”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니 알 것 같았다.

견하는 조금 앞질러서 말을 던져본다.

“그리고 그런 학자들을 전하께서 보호하고 계시고요?”

벨리사리오스는 씩 웃었다.

“10년쯤 전이었다면 어떻게 감싸 볼 엄두도 못 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네.”

“저는 로마가 종교 문제에 있어선 상당히 완고한 나라라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렇지. 다른 ‘자유세계’ 국가와 비교하든, 아니면 고려와 비교하든, 확실히 완고한 나라인 건 맞지. 하지만 로마 국내에만 한정해보면, 종교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진 건 사실이네.”

이교도를 학살하는 게 아니라 추방하는 정도로 부드러워진 거지만, 이라고 벨리사리오스는 덧붙인다.

은근히 이교도 탄압에 대해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었지만, 여기는 그걸 걸고넘어질 자리가 아니지.

왜 달라졌는가, 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 겁니까?”

“세계대전으로 한껏 끓어올랐다가, 서서히 식는 게 아닐까 싶군. 세계대전은…… 콘스탄티누폴리 공방전은 로마인들에게 다시금 악몽을 떠올리게 해주었지. 4차 십자군이라든가, 몇 번이고 로마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투르크인들의 거친 공세 말일세.”

“승전 이후에는 그게 이슬람에 대한 증오로 폭발했군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슬람을 비롯한 모든 이교적 성향’에 대한 증오지. 우리 로마인들에겐 세계대전은 신이 내려주신 또 하나의 시련이자 ‘성전’이었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들도 함께 자랐지.”

“다른 생각들이라고 하신다면?”

“신의 뜻으로 이 고난을 이겨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면, 당연히 ‘이런 참극을 빚어낸 신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정말로 신이 있는가’하고 회의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일세.”

“무신론적 경향이 자라났군요.”

“그 사람들은 역시 무신론 국가인 바라트의 공산주의에 쉽게 물들었지. 우리가 바라트의 성장과 공산권의 확대를 경계하는 이유기도 하고.

아,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야.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고 해서 곧바로 공산주의자가 되는 건 아니지. 그보다는, 신이 아니라 다른 데서 우리의 시련과 극복의 원인을 찾게 된 걸세.”

세계대전의 고난과 승리가 신의 뜻이 아니라면,

로마인들은 무엇 때문에 고난을 겪고, 무엇으로 승리했는가.

“우리가 ‘로마라는 국가의 인민’이기 이전에 ‘주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나약해졌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네. 국가를 위해서 싸우고자 하는 정신이 희박하기에, 신앙만 지킬 수 있다면 타협하는 못된 버릇이 들었다는 거지. 그게 얼마나 사실과 부합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중요한 건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이렇게 생각하지. ‘우리가 로마인으로 각성했기에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그들에게 종교는 부차적인 문제일세. 중요한 점은 ‘로마인’으로서의 정체성이야.”

벨리사리오스는 견하에게서 눈을 돌린다. 그 시선은 마치 건물 밖의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것 같다.

“종종 거리를 행진하는 무리가 있네. ‘파스케스’라고, 도끼 비슷한 걸 들고 다니는 무리지. 실물이 아니라 모양을 그린 깃발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 어쨌든 그건 고대 로마에서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인데, 여기서 비롯된 말이 뭔지 아는가?”

“……‘파시즘’이죠.”

“그래. 최근 십여 년간 세계 곳곳의 우익들 사이에 퍼져간 그 단어 말이야. ‘로마성(性)’의 회복, 특히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고대 로마’적 성질의 회복…… 그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당연히 우리 로마에도 있네.”

벨리사리오스의 눈이 다시 견하를 향한다.

그 눈빛에서 감정을 읽기는 어렵다.

“로마성의 회복을 위해, 그들은 우리의 발상지 ‘로마시(市)’의 수복을 외치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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