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들의 여제(8)
물론 나제홍 실장처럼, 이데올로기가 희미한 인간도 쓸모는 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쓸모는 톱니바퀴처럼 제 자리를 지키는 역할에 한정된다.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결집력을 드러내며 당의 정치투쟁에 앞장설 인간으로는 부적합한 것이다.
“그런 인간들은 대세가 옮겨가면 당적도 얼마든지 옮겨갈 인간들이야.”
이를테면 리안의 세력이 약해지고 안세규의 세력이 강해질 경우, 그들은 거리낌 없이 고려국민당원이 될 것이다.
견하가 필요로 하는 건 위기의 순간이 와도 당수인 리안을 보위하며, 끝까지 싸워 정권을 탈환해 올 친위대.
“늙은이들로는 야당에 맞설 수 없어. 그러니 우리가 한다. 늙은이들이 자기네 기반을 다지고자 할 때를 기회로 삼아, 우리는 기반 이상의 무언가가 되는 거지.”
이것은 작은 혁명이기도 하다.
견하가 감찰국을 키워온 이래, 감찰국 직원들에게 주입해 온 ‘미래에 제국입헌당을 주도할 세대’라는 이데올로기.
중, 고등학교부터 그런 식으로 성장해온 아이들이, 대학교를 거쳐 마침내 당의 젊은 엘리트들로 거듭난다.
늙은이들을 몰아내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젊은 육체와 젊은 정신으로 ‘당의 적’들과 맞선다.
그 정점에 서는 자는 주견하, 그리고 주견하가 충성을 바치는 미리안이다.
지금도 제국입헌당은 당수 미리안만 바라보는 체제지만, 이를 좀 더 효율적인 기계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리안이 허동주에 대항해 일으켰던 친위혁명의…… 제2막이다.
“‘깡패 동무’, 아니 지금은 데렘칭이라는 이름이지. 그 사람을 비롯한 몽골인들도 당과 감찰국에 받아들이고 있어. 다소 이질적인 집단이지만, 일단 이쪽에 섞여들면 든든한 전력이 되어 주겠지.”
당 조직 건설을 충분히 학습했으면서, 동시에 몽골 제국 정부와도 싸움을 거듭해 경험을 쌓은 자들이다.
그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는 있겠지만, 일단 확실한 도움은 되겠지.
당 내부에서든, 고려 제3제국 내에서든, 다이온 연방 창설에 있어서든.
“이렇게 지침을 하달한다는 건, 한동안은 여기 일은 우리한테만 맡겨두겠다는 거야?”
재연은 벌써 눈치를 채고 물어본다. 견하는 끄덕였다.
“그래. 해외 ‘유학’이야. 콘스탄티누폴리에 다녀온다.”
“무슨 일로……?”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에 참여하는 조유관 장관을 경호할 겸, 거기서 견문을 넓히고 오라는 태사 각하의 지시를 받았어.”
이번 평화회의는 특히 고려에 중요하다.
고려 내전, 몽골 내전의 경과에 대해, 국제무대에 정식으로 보고하는 자리다.
그 밖에도 4개국 관세동맹을 통한 대공황 극복 정책의 성과와, 이를 발전시킨 다이온 연방 창설 정책을 제시하고, 각국의 반응을 살핀다.
각국이 나름대로 추진해 온 대공황 타개책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다면 좋겠지.
어쩌면 그들의 정책과 이쪽의 정책 사이에 공조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해상 방위 동맹’을 창설하거나 다이온 연방을 견제하려는 일본공화국의 행보에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간 준비해 온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의 국제무대 복귀, 라는 카드를.
아즈텍 연방에서도 대표단을 보낼 텐데, 작년에 비해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을지, 혹은 좋아졌을지 살필 기회이기도 하다.
이 모든 걸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고 해도, 견하가 얻을 경험의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다녀올 가치가 있어.”
재연도 익서도 끄덕였다. 견하가 나가 있는 동안 각자 임무를 수행하는 건 익숙하다.
이대로 해산하려다, 재연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방금 나간 원동인이라는 애는 왜 포섭한 거야?”
“아 그거. 걔 눈 봤어?”
“……? 눈이 어땠는데.”
“이런 설명이 적절할지는 모르겠는데, 어쩌면 내가 태사 각하를 처음 만났을 때 저런 눈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거든.”
아직 미지의 모험을 향해 가슴 두근거리던 소년 시절.
물론 이제 막 성인이 됐지만, 그래도 그때의 느낌이 그립다.
그러나 그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
견하의 소년 시절은 1931년 대학 진학과 함께 끝난 게 아니다.
그의 소년 시절은, 부모님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날 끝났다.
삶은 견하에게 소년의 무구함을 버리고 빨리 어른으로 성장하길 강요했다.
그때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견하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소년으로서 살아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원동인이라는 저 학생…… 견하도 만약 그날 부모님을 잃지 않고 그대로 권력 투쟁의 세계로 뛰어들었다면 저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씁쓸한 웃음을 짓는 친구를 보며, 재연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다시 끄덕인다.
그의 눈에도 어느 정도 보인다.
재연도 소년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이니까.
***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의 주석, 아슬란은 가끔 혁명 시절의 꿈을 꾼다.
페르시아계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거듭 패배를 겪은 무굴 제국은, 티무르의 후예라는 자긍심이 무색하게 제후왕들의 느슨한 동맹체로 변해버렸다.
제후왕끼리의 패권 다툼, 지속적인 외국의 침략, 그에 따라 죽어 나가는 건 인민들 뿐.
인민이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한 나라는, 당연히 국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동서 육상 국경뿐만 아니라, 해안으로도 유럽의 침략자들이 슬금슬금 몰려오는 상황.
아이러니하게도 아슬란은 유럽 국가들의 ‘조차지’를 통해 유럽으로 유학길에 올라, 혁명 정신을 배워 돌아왔다.
그리고 바라트 공산당에 가입했다.
무굴 제국의 인민은 한편으로는 제국 내부의 지배층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외세에 의해 착취를 당한다.
이 지배층과 외세는 모두 자본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요약하자면 무굴 인민은 자본가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전부 문제였다.
낡아빠진 무굴의 체제. 군주정. 제후왕이라는 국내의 또 다른 권력을 인정하는 시스템.
유럽의 자본주의적 탐욕과 결탁한 제국주의.
참고 견디면 더 좋은 삶으로 환생할 수 있으리라는 헛된 신앙은, 인민에게서 저항 의지를 빼앗아갔다.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하늘과 땅을 뒤엎더라도, 피가 바다와 같이 고이게 되더라도.
망명과 귀국, 투옥과 탈옥을 밥 먹듯이 반복하며, 그는 혁명을 꿈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는 왔다.
동으로는 태평천국, 서로는 신 이슬람 제국의 공격에 완전히 패배하고 굴욕적인 화평을 맺은 무굴 제국.
이로 인해 제국은 인민을 통제할 영향력 자체를 완전히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군대마저도 황제를 거부하며 반기를 들었다.
수도 델리로 들어와 인민과 병사들의 분노를 응집, 공산당 지도하의 힘으로 조직화한 건 전적으로 아슬란의 공이었다.
아슬란은 초대 주석이 혁명을 지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은 자였다.
델리를 장악하고 황제를 폐위, 처형한 뒤에는 길고 끔찍한 내전이 이어졌다.
여전히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여러 제후왕을 토벌하여, 나라를 다시 하나의 정부 아래 두는 것. 당시 바라트 공산당의 과제였다.
내전이 승리로 끝난 뒤에 아슬란은, 유럽인들의 ‘조차지’를 회수하여 본래의 영토를 회복하는 작전을 지휘했다.
힌두, 혹은 바라트라 불리는 작은 대륙의 통일이 끝난 뒤에는, 카불과 후라산, 페르시아를 향한 혁명 전파 작전을 지휘했다.
이른바 ‘세계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초대 주석이 세상을 떠났고, 그 후계자 자리를 두고 혁명 동지들 사이의 투쟁이 벌어졌다.
-돌이켜보면, 그 투쟁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씁쓸했던 일이었다.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인 아슬란과, 공산당 총서기인 그의 라이벌 간 투쟁은…… 아슬란의 쿠데타와 총서기의 자살로 끝났다.
한때는 자유롭게 혁명의 미래를 토론하던 그들이, 어째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벌여야만 했는가.
왜 자신은 동지들을 숙청해야만 했는가.
권력을 향한 욕망과 혁명의 방향에 대한 고집이 지저분하게 뒤섞인 길이었다.
아슬란은 눈을 떴다.
혁명 시절의 꿈은 의식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고, 이제는 쉰을 넘긴 육체만이 남았다.
아슬란은 자그마한 안경을 쓰는 한편, 머리맡에 놓인 전화기에 손을 뻗었다. 전화는 곧바로 비서에게 연결된다.
“……평화회의 관련 자료를. 그리고 아침 식사도 부탁하네.”
비서가 간단한 식사와 자료를 들여오는 동안, 아슬란은 당 중앙위에서 선보일 연설의 초고를 다듬었다.
이따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무굴 황제들이 쓰던 델리의 황궁을 그대로 주석궁으로 쓰기 때문에, 침실의 천장은 높고 아름다웠다.
초대 주석이 그랬던 것처럼 아슬란도 침실을 비롯한 몇몇 방만 사용한다.
그렇지만 천장에 수 놓인 기하학적 무늬만큼은, 황궁의 사치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아슬란이 사랑하는 부분이다.
저 무늬를 보고 있노라면 생각도 차분히 정리되니까.
괜스레 감상적인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아니라 총서기가 주석이 되었다면, 그런 숙청은 안 했을까?”
비서가 들어와 서류와 식사를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아슬란은 그대로 고개를 내려 비서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비서 역시 옛 혁명 동지의 가족이다. 비서는 잠깐 눈을 굴리더니 대답했다.
“주석 동지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진즉에 연방과 사회주의는 큰 위기를 맞이했을 겁니다.”
“알아.”
아슬란은 퉁명스레 말했다. 비서의 답변은 판에 박힌 것이다. 그런 답이 나오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다.
하긴, 소탈한 대답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그럴 수 없는 사회 분위기를 만든 건 다름 아닌 자신이다.
반혁명 세력의 위기로부터 혁명을 수호한다는 이유로,
혁명 정신을 훼손하는 무리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이유로,
이제는 연방을 포위한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연방을 수호한다는 이유로.
철저한 내부 단속, 단결, 그를 위한 밀고와 처벌.
어느새 아슬란은 이념을 초월하여, 세계 각국의 독재정권에 영감을 심어주는 자가 되었다.
예를 들자면 고려의 미승휴가 그의 방식을 많이 참고했다. 물론 미승휴가 누린 권력은 아슬란에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어쨌든 초대 주석이 바란 건, 분명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혁명 동지들이 꿈꾼 세상도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초대 주석이 죽기 전까진, 아니 적어도 자신과 총서기가 투쟁하기 전까진…… 그래도 ‘야당’이라 할 만한 게 있었고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가능했다.
나는 무엇을 무너뜨렸는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비서는 그런 아슬란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한다.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하네.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가 그 기회가 될 거야.”
“어째서 그러합니까, 주석 동지?”
질문이었지만 질문이 아니었다. 비서는 그저 눈치 좋게, 아슬란 주석의 말 상대를 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의 독백이 짜증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를 통해 우리 바라트 연방은 승전국 중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승전국으로서 국제무대에 복귀하겠지.”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이다.
세계와의 교류는 지난 혁명의 성과를 보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동시에 우리의 혁명을 세계에 선전하는 기회가 된다.
“변화가 일어날 걸세. 먼 동방의 고려도 해낸 일이야. 우리라고 못 하겠는가. 초대 주석께서 바라셨던 이상을 향한 장대한 실험…… 우리는 다시 그 걸음을 옮길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