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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65화 (265/541)

도시들의 여제(1)

대서양 동맹의 유래는 나폴레옹 1세가 살아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혁명 공화국의 장군이던 나폴레옹 1세는 혁명을 위협하던 주변의 구체제 국가들을 차례로 격파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주변국은 대(對) 프랑스 동맹을 맺어 저항했다.

결과적으로 이 동맹은 나폴레옹 1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도 않았고, 패배하지도 않았다.

동방의 로마 제국이 발칸 서부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지중해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브리튼에게 쓴맛을 보여줄 생각으로, 오스트리아의 배후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에 프로이센이 동참했다. 대 프랑스 동맹의 한 축이 배반하자 동맹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보헤미아의 귀족들은 이를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할 기회라 판단하고 프랑스와 로마에 협력했다.

로마 제국의 흔들기 정책은 이른바 ‘원교근공’, 즉 멀리 있는 프랑스와 손잡고 가까이 있는 오스트리아를 친다는 흔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은근슬쩍 ‘서로마의 후계자’ 운운하는 오스트리아와 신성 제국에 대한 앙심이 깃들어 있었다.

유럽의 군주들은 나폴레옹을 포위한다고 했지만, 정작 포위된 것은 오스트리아였다. 순식간에 빈을 정복한 나폴레옹 1세는 그동안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독점해 온 ‘신성 제국’ 황위를 요구했다.

여기에는 이제 동방의 로마 제국에 밀리지 않을만한 권위가 필요하다는 계산, 프랑스를 중심으로 정복한 유럽 영토들을 통합할 이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합스부르크는 신성 제국 황위를 보나파르트에게 내놓고 물러났다.

나폴레옹 1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샤를마뉴 시대의 권위와 판도를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대 프랑스 동맹은 이대로 패배를 맞이하는 듯했다.

바로 그 시점에, 로마 제국은 ‘균형 맞추기’에 들어갔다.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남은 영지, ‘마자르 왕국’을 속국으로서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여차하면 합스부르크에게 오스트리아를 되찾아 줄 수도 있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이는 명백히 빈을 중심으로 한 신성 제국령 알레마니아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1세는 새롭게 편입한 동방 영토, 게르마니아와 알레마니아의 지배를 다지기 위해 천도를 감행했다. 이것이 샤를마뉴의 수도 ‘엑스라샤펠’ 복원 사업이다.

대 프랑스 동맹의 남은 구성국, 브리튼과 칼마르, 에스파냐는 이러한 대치 상황이 나폴레옹 1세를 격파할 기회라고 판단,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이 승기를 잡을 듯하면 로마 제국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폴레옹의 제국을 지원했고, 또 나폴레옹이 적대국들을 집어삼킬 듯 하면 동방에서 압박을 가했다.

균형은 그렇게 맞춰졌다.

보나파르트 황실은 서유럽의 완전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혁명 체제와 황위의 안정적 계승을 보장받았다.

브리튼은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에게서 해양 패권에 대한 양보를 얻어냈다.

그렇게 유럽의 대략적인 세력 구도가 자리를 잡았다.

“요컨대, 일본이 주도하는 방위동맹과 적대할 경우, 배후의 에스파냐와도 관계가 악화될 거예요. 더 나아가 에스파냐가 이 문제에 자기네 동맹인 브리튼과 칼마르를 끌어들이면 우리의 외교적 입지는 더욱 좁아지죠.”

그러니까 이 문제는, 일본이 주도하는 해상방위동맹이 확고히 자리 잡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방법은 세 가지로 좁혀볼 수 있겠습니다.”

조유관이 피곤하다는 듯, 이마의 주름을 문지르며 답한다. 그의 시선은 리안이 아니라 바닥을 향해 있다.

말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타당한 의견을 내놓고 있는지 검토하는 듯했다.

“첫째는 일본의 동맹국에 우리도 협상에 들어가, 실제로 해상방위동맹이 결성되어도 뚜렷한 반(反) 고려적 태도를 보이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겁니다.”

“그건 특히 다리다에 집중해주세요. 다리다와 그 주변 해역만큼은 일본공화국의 영향력을 줄여야 합니다. 동명에서 대양으로 나가는 마지막 활로에요.”

조유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두 번째 방안을 입에 올렸다.

“바라트와의 교섭을 조금 서두르는 게 둘째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건 조심해야 하는 게, 우리와 바라트의 접촉이 그사이에 낀 나라들에게는 ‘세력권 분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겁니다. 바라트는 라타나코신까지 가져라, 다이온은 베트남까지 갖겠다, 는 식으로.”

“그런 불안이 완전히 거짓인 건 아니지만…….”

리안은 쓰게 웃었다. 제국주의적 정복의 야망은 없지만, 바라트의 공산권은 어느 정도 선에서 저지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평화와 저지, 둘을 동시에 이루려면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녀가 택한 희생양은 버마였다.

어쨌든 그건 다른 이야기. 리안은 세 번째 방법을 재촉하듯 턱을 조금 들었다.

“세 번째 방법은, 일본이 해양방위동맹 체제를 추구한다면 우리도 ‘또다른 해양방위동맹’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마자파히트나, 봉래 같은 나라들 말이죠.”

“그들과의 동맹이 성사된다면, 일본의 동맹과는 십자가 형태로 교차하게 되겠군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동맹.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고려의 동맹.

“물론 이 안을 택하면 일본과 적대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세 번째 방법은 ‘일본을 압박하는 카드’ 정도로만 쓰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일본도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그들 나라와 협상에 들어갈 수도 있죠.”

“거기까지 간다면 그야말로 ‘태평양 대동맹’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네요.”

아즈텍과 다이온, 바라트 사이에서 또 하나의 거대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그런 사태는 역시, 달갑지 않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대륙 문제에 집중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해양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올해부터는 지금껏 소홀했던 해양 문제에 다시금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어요.”

역사적인 관점에서 봐도, 리안의 말은 옳다.

프랑스 대혁명, 뒤이은 나폴레옹 1세의 정복 전쟁과 유럽의 혼란.

아즈텍과 잉카 동맹 대 유럽 세력 사이에서 일어난 대서양 전쟁.

태평천국의 명대 식민지 재정복 사업.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럽의 ‘아시아 재정복 전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시아 각국이 독립을 지켜내고, 전쟁을 계기로 국가를 쇄신하여 근대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참혹한 전쟁이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유럽 세력에 대한 공포는 아시아 각국의 문화, 선조들로부터 구전된 이야기, 근대 역사 교육을 통해 뼛속 깊이 새겨졌다.

‘제해권 장악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 정도의 공포였다. 사실이기도 하고.

“뭐, 일종의 ‘방파제’로서 해상방위동맹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죠. 그러나, 그들이 장차 ‘다이온 연방’과 연대하지 않고 제3의 세력으로서 이권을 취하고자 한다면? 혹은 다이온 연방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아즈텍 혹은 다른 세력과 제휴한다면? 그리하여 고려 및 다이온 연방의 제해권과 영해를 위협해온다면?”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바다에서 다가올 위협이라면 더더욱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일본의 선의를 순진하게 믿고만 있을 수도 없다.

“세 방향 모두, 적극적으로 대응해봅시다.”

“그렇다면 역시…… 승부처는,”

“‘콘스탄티누폴리 평화회의’가 되겠죠. 여기서 향후 백년의 외교적 위상이 결정된다는 각오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조 장관.”

***

제1대학교의 신입생 환영회는, 동명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휴양지에서 열렸다.

모두가 수학여행이라도 떠나듯,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전 중에도 입시 공부에 매달린 사람들은 있었다. 물론 견하나 루우처럼 대학 진학이 아예 보장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 모두 고려 제3제국 내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인 대학교에 대한 낭만을 품고, 제1대학교에 들어왔다.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깊은 고찰이 있어서는 아니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언가를 기대하게끔 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생활, 새로운 배움에 대한 기대감.

여기에는 미지의 단계인 성인으로 성장한다는 느낌과, 입시에서 벗어나 ‘즐겁게 놀고 싶다’는 기분까지 뒤섞여 있다.

친구, 선배, 후배라는 용어는 여전히 쓰지만, ‘동기’나 ‘학우’같은 표현은 낯설다. 그런 낯선 단어들을 통해 서서히 ‘대학생’이 되어간다는 느낌에 젖어 든다.

이제는 정말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학과별로 방들을 배정받고, 각자 짐을 푼다.

신입생 환영회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일단은 학과별로 모여서 행사를 진행한다. 이미 어느 정도 얼굴들을 익히긴 했지만, 다시 한번 정식으로 자기소개가 이루어진다.

선배들은 조용히 미소짓거나 깔깔대는 웃음으로 후배들의 자기소개를 환영했다.

누군가는 자기가 저기 서 있던 시절이 생각나서, 또 누군가는 정말로 후배들의 풋풋함이 귀여워서 웃음지었을 것이다.

다만, 견하가 앞에 나오자 몇몇이 수군거렸다.

“쟤가 걔야?”

“리안 선배랑 사귄다는 애?”

“이미 고등학생 때 군대까지 갔다 왔다던데.”

“그게 아니라, 지금도 군인이래. 태사부에서 일한다던데. 감찰국장? 뭐 그런 거라고.”

“감찰국은 또 뭐야? 리안 선배가 남자친구 자리 하나 마련해주려고……”

“야, 야, 그쯤 해라. 미리안 선배가 자기 모교에는 관대한 사람이라고 해도, 넘어가 줄 수 없는 선이 있어.”

“내가 듣기론 정치경찰이라던데.”

“어, 그럼 좀 무서운 애 아닌가?”

“저 얼굴로 그런데 있다곤 상상이 안 되는데. 잘생겼잖아.”

“넘보는 거야?”

“설마. 리안 선배 거라며?”

“그래. 아무리 네가 연하 킬러라지만 그렇게까진 아니겠지.”

“죽어볼래?”

“……쟤, 내가 들은 소문이 사실이면 사람 죽여본 적도 있다던데.”

“진짜……?”

오싹해졌는지 대화가 끊긴다. 하지만 견하는 못 들은 척, 미소로 자기소개를 마무리했다.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도 그냥 반의 구성원 중 하나의 자리를 지켰듯이, 여기서도 신입생 한 명을 연기한다. 충분히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소문이야 어쨌든 견하의 미소에 호의를 품고, 몇몇 동기와 선배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적당히 겸손하게, 적당히 친절하게, 적당히 장난스럽게.

호감을 사면서도 얕보이지 않는 방법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고만고만한 10대, 20대와 섞여 있던 학생들과 달리 자신은 군사와 정치가 빚어내는 전쟁터에서 인간군상들을 상대해왔으니까.

이들은…… 자신이 본 참상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음, 그렇지만 너무 아저씨 같다는 소리는 안 듣게 조심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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