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투(16)
결국 장은 조르바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로마는 얼마만큼을 원하는 건가.”
“적어도 이슬람이 흥기하기 전 ‘동방 영토’만큼은 우리가 받아내야 한다는 게, 콘스탄티누폴리의 입장일세.”
조르바는 수도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건 황제와 관료, 원로원과 인민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뜻이 같다는 말이겠지.
조르바는 ‘동방 영토’라는 말도 했다.
14세기에 티무르가 오스만 일가를 멸족시키자 아나톨리아에는 권력 공백이 생겼다.
로마는 그런 아나톨리아를 수복한 이래 수백 년간, 전통처럼 저 ‘동방 영토’라는 말을 되뇌어 왔다.
동방 영토는 레반트와 이집트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 지역을 차지해 지중해 동부를 완전히 장악할 속셈이다.
수에즈 운하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유도 있지만, 종교적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이른바 5대 총대주교구 중, 이슬람에 빼앗긴 세 곳을 되찾는다.
로마에는 이번 전쟁을 이교도의 침략에 대항한 성전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총대주교구의 수복이라는 역사적 과업에 열광할 것이다.
전쟁 기간 지도력을 의심받게 된 황실과 제국 상층부에겐, 민심을 되돌릴 더없는 기회로 여겨지겠지.
“정확히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장도 신성 제국 상층부에서 지시받는 바가 있다.
로마는 어떻게 나올 것이다, 어디까지는 양보해도 좋다, 어디서부터는 양보할 수 없다.
협상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로마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둬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예상 이상으로 과격해도 다소나마 양보를 받을 수 있다. 또는, 이쪽이 예상한 것 이상의 유리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티오피아와의 협상은 이미 끝났네. 그쪽이 누비아를 비롯한 나일강 상류를, 우리가 이집트의 하류 쪽을 차지하기로 했지.”
지도 위에서만이지만, 국경선은 이미 그어졌다고 한다.
장은 끄덕였다. 아마도 로마군은 이미 동지중해 각 지역에 진주해 있을 것이다.
“이집트까지라면 우리도 로마측 입장을 지지해줄 수 있네. 다만 수에즈 운하의 사용료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할 걸세. 브리튼이 그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골치 아프니까.”
무역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비열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 자들이다. 조르바는 씩 웃었다.
“우리 입장을 계속 지지해주는 국가엔 ‘특혜’가 주어질 수도 있지.”
장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상식적인 선을 요구해와서 다행이었다.
이 정도 타협점이라면 상층부에선 무난하게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조약까지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장과 조르바는 일 문제는 제쳐두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제 평화로워진 세상에서의 자녀 교육 문제, 저축이나 건강 같은 소시민적 대화를.
그 대화의 얼마만큼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평화의 시대에 어울리는 대화를 나눴다.
두 남자는 기분이 꽤 좋아져서 식당을 나섰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장이 길 건너편의 군중 속으로 서둘러 사라지는 한 남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장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며, 조르바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지한다.
조르바는 물었다.
“‘이쪽 업계 종사자’인가?”
“그래. 브리튼 친구지.”
“우리 이야기를 듣고 가는 건가?”
“아마도. 크게 문제 될만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그 ‘국제기구’ 창설 문제에서 이것저것 간섭해오겠군.”
“짜증날 정도로 집요하게 말이지.”
장과 조르바는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국가든 개인이든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 그 이익이 눈앞에 놓인 것이든, 장기적으로 내다본 결과이든.
장과 조르바처럼 이름도 존재도 알려지지 않은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물밑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어딘가에서 투쟁한다.
‘외교관’이라는 번듯한 이름을 단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이 끝나면 잘들 좀 해볼 거라고 믿은 건 지나친 기대였을까.”
“전쟁은 그저 소나기였고, 이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인간들이 수두룩할 걸세. 뭐 그런 인간들 덕분에 우리도 먹고사는 것 아니겠나.”
조르바의 말은 옳았다. 그들도 더 많은 급료와 복지를 바라고 선택한 일 아닌가.
두 남자는 씁쓸함을 등 뒤로 털어버리고, 다음 일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상설 국제기구’라는 아이디어는 뭔가 형태를 잡아보기도 전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붉은색과 보라색의 미묘한 중간. 그 색을 배경으로 수 놓인 금빛 쌍두독수리와 월계관.
그리고 쌍두독수리가 품은 S. P. Q. R.이라는 네 글자.
제국의 국기를 나부끼며, 완전히 현대화된 로마의 함대가 지중해를 가로지른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시칠리아 남쪽의 바다.
머지않아 수평선 너머에 푸른 바탕에 금빛 사자와 붉은 용이 수 놓인 깃발이 솟아오른다.
브리튼의 함대다.
언제 포격을 주고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대치가 바다에서 펼쳐지는 동안, 신성 제국도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함대를 사르데냐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브리튼과 동맹을 맺은 에스파냐, 칼마르 쪽 국경에도 육군을 전진 배치한다.
이에 맞춰, 로마군도 이집트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북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렀다.
카르타고에서 멈춘 그 행진은, 로마가 지금 고집하고 있는 ‘동지중해 패권’을 다시 한번 역설하는 듯 보였다.
문제는 카르타고 서쪽에 있는 신성 제국의 식민지에겐, 그 움직임이 충분히 위협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성 제국은 로마의 북서쪽 국경에 군을 전진 배치했다. 이탈리아 반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두 제국 사이의 국경에도 병력을 보냈다.
브리튼이 주도하는 대서양 동맹.
신성 제국이 주도하는 대륙 동맹.
로마 제국이 주도하는 정교회 동맹.
서로를 전혀 믿지 못하는 삼자가 패전국의 영토와 다음 시대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세계대전 사이 공산혁명을 이룬 바라트가 사방으로 혁명을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이 복잡한 양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메소포타미아를 서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질러 내려가는 두 줄기 큰 강이 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다.
이 두 강을 따라 로마군이 전진한다.
페르시아까지 손길을 뻗은 공산 세력이, 더 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저지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으며, 그 목적 때문에 군의 사기는 드높았다.
목적지는 바그다드.
칼리프의 도시다.
천 수백 년간 얽힌 원한을 풀러 간다는 사실 때문에, 로마군의 발걸음은 그토록 가벼웠던 것이다.
신 이슬람 제국, 혹은 ‘다르 알 이슬람’이라 불리는 나라는 군대를 해체당하다시피 제한을 받고, 시리아 사막 서쪽의 모든 영토를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쪽의 페르시아를 비롯한 지역에서는 아랍인들과 이슬람의 지배에 회의를 품은 민족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을 되찾는다거나 불교로 돌아간다거나 하다가 결국 반란을 일으켰는데, 바라트에게서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받아들여 결국 공산권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반도 전역을 유지했으니,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로마군이 그 협약을 깨고 진군 중이라는 소식에 바그다드는 발칵 뒤집혔다.
“브리튼도 신성 제국도 약속하지 않았더냐……! 서둘러 로마 측에 항의하라고 요청하라!”
칼리프는 최대한 위엄을 지키려 노력해봤지만, 목소리에 묻어나는 다급함까지 지울 순 없었다.
그에게 돌아온 보고 역시 다급하기만 할 뿐, 무력하긴 마찬가지였다.
“외교적인 항의는 하겠으나, 무력 충돌까지 감수하긴 어렵다고 합니다! 일단은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로마 측의 요구에 따르라고……”
“비열한 이교도들……!”
칼리프는 이를 악문다. 하지만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신께 기도하는 것뿐이다.
로마군은 거침없이 진격해 들어왔다. 경비대 수준으로 전락한 이슬람군 중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항복했고, 브리튼과 신성 제국의 일부 주둔군은 지켜만 봤다.
지중해의 대립이 첨예해진 만큼, 쓸데없는 충돌을 빚지 말라는 본국의 방침이 하달된 탓이다.
로마군은 그대로 바그다드에 입성, 기도 중인 칼리프를 끌어냈다.
로마 특유의 투구를 현대적으로 개량한 철모가 햇살을 둔탁하게 반사했다. 그 사이에서 두 팔이 붙들린 채 끌려나가는 칼리프의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태평천국 황제보다는 운이 좋았다. 로마군은 그를 페르시아만을 드나드는 선박에 실어 추방하는 선에서 그쳤으니까.
칼리프는 바다를 빙 돌아 메카로 돌아가려 했으나, 메카와 메디나에서는 칼리프의 무능함과 패전 책임을 물어 그의 폐위를 선언하고 각기 칼리프를 옹립했다.
바그다드에서 쫓겨난 칼리프는 그대로 브리튼으로 망명해 거기서 생을 마쳤다.
아라비아 반도는 이후 메카와 메디나의 칼리프가 각기 정통성을 내세우며 8년간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은 끝에, 지금의 아라비아 칼리프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
브리튼과 신성 제국은 협약을 깨고 노골적인 영토 확장 야욕을 보이는 로마를 비난했다. 동시에 새 시대의 떠오르는 강대국, 아즈텍 연방에 중재를 요청했다.
“우리는 세계를 책임진다는 그런 과중한 업무는 맡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 우리의 주권과 이익을 수호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아즈텍의 어떤 의원이 했다는 말이다. 이 말이 당시 아즈텍인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브리튼도 로마도 신성 제국도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엔 부족하다.
그렇다면 그 역할은 아즈텍이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말들이 정치학자나 외교관들 사이에서 돌았지만, 아즈텍은 그런 역할을 거부했다.
물질적인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패권국’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이 전혀 없었다. 아즈텍은 우방국들의 기대를 부담스러워했다.
여기에는 허동주가 저지른 태평천국 황제 살해 사건, 그에 따른 태평천국 영토 분할 소동이 한몫했을 것이다.
아즈텍 정계는 해외 분쟁에 개입하는 데 지겨움을 느꼈다. 고려와 몽골이 태평천국 영토에 멋대로 칼질을 하자 일본이 항의했지만, 아즈텍은 잠깐 동참하다 키타이와 낭키아스를 승인해버렸다.
지중해와 중동에서의 갈등 양상이 길어지자, 힘의 균형이 어그러지고 곳곳에 빈틈이 생겼다.
브리튼 섬에서 가장 가까운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혹은 ‘에이레’라 불리는 땅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난 것도 그때였다.
브리튼과 신성 제국은 로마를 견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들끼리도 견제했다. 신성 제국이 에이레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엉망진창이다.”
아즈텍의 어떤 정치인이 질려버렸다는 듯이 내뱉은 말이다.
그 말대로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영토와 정치적 위상을 두고 다투는 추태가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