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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55화 (255/541)

침투(13)

“그러면 그런 형태의 자치국들에서 몽골인들과 고려인들은 어떤 역할을 맡지?”

“카간의 ‘상징적’인 대리인 역할을 맡지. 지금 우리가 카라코룸에 보내려는 행정장관처럼 말이야. 아, 물론 구 태평천국 영토를 전부 독립시키자는 이야기는 아니야. 해안 영토를 중심으로, 주요 산업 요충지는 그대로 남겨둬야지.”

다만 그 영토들도 식민지가 아니라 고려의 ‘발해도’처럼 본토와 대등한 자격과 의무가 부여된다.

“흠…….”

리안의 말은 옳다. 식민지를 이런 식의 자치령으로 전환하면, 지금까지 고려와 몽골의 발목을 잡아 왔던 불합리가 해소된다.

전보다 효율적인 영토 활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의아하다.

영토의 포기. 미리안은 그 개인의 자존심 때문이든, 국익을 위해서든, 여론을 신경 써서든 그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이었을 텐데.

“괜찮은 거야? 해외 영토를 포기하는 셈인데? 지금까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해왔잖아?”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식민지 유지를 고집할 필요는 없지.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영토 포기가 아니야. 영토 자체는 연방 성립과 함께 오히려 늘어나.”

물론 형식은 그렇다. 모두가 ‘다이온’이라는 틀 안으로 들어간다면, 한족 자치 왕국의 성립은 한 나라 내에서 행정구역 개편이지 영토의 상실이 아니다.

“설령 그런 불만이 있다고 해도, 다이온 연방의 성립이라는 워낙 이슈가 워낙 커서 묻혀버릴걸. 그리고 고려의 황제께서 동아시아 대부분을 지배하는 카간이 되셨다는 승리감에 불만은 완전히 상쇄될 테고.”

리안은 황제를 설득하듯, 몸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이 정책은 폐하의 카간 계승 준비, 다시 말해 게레센제의 퇴위 준비와 함께 진행될 거야.”

루우의 신경을 확 잡아끄는 말.

그런가. 본격적으로 고려까지 통합한 다이온 건설과 함께, 연방 내 민족 정책의 기초부터 다시 다지고 들어가려는 건가.

“태사의 뜻대로 하면 되지 않아?”

“폐하의 힘도 필요해. 폐하가 고려와 몽골, 한족 모두의 황제이자 카간이라고 선언해줘야 국민들도 다민족 제국의 시대가 왔음을 느낄 거야. 나 혼자서 이런 정책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기엔 부담이 너무 커.”

그렇지만 이번 한족 반란 제압은 둘도 없는 기회야, 라고 리안은 말을 이었다.

“한족들의 반항심을 한 번 크게 꺾고, 민족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수 있어. 한족들도 이번 독립 시도가 좌절되면 제국과 타협하려 하겠지. 양쪽 모두 원하는 방식으로 나라를 재구성하기는 정말 쉽지 않아.”

리안은 자신의 계획을, 「대타협 계획」이라고 불렀다.

루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과 함께, 한재연의 AN연구소에서 올린 또 다른 정책이 있었으니까.

다이온 연방 창설에는 당연히 ‘민족 문제’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한재연도 그 점을 고민했고,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

키타이와 낭키아스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몽골화 정책을 기초로,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서 내세운 ‘알타이 민족 관념’을 응용한 한족 정책을 작성했다.

특별히 한재연의 독창적 아이디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몽골인들은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자기들 문화를 한족에게 주입하려고 동분서주할 것이다.

그리고 고려인들은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 추구했던 방향의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몽골인들을 고려에 융합시키려 할 테고.

루우는 그 사실에 대해 별반 불쾌함을 느끼진 않았다. 그녀 자신이 몽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인식은 있지만, 특별히 몽골 민족에 대한 애착을 느끼진 않는다.

루우에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몽골의 카간과 고려의 황제, 두 가지 지위다. 국민의 민족 감정을 만족시켜주는 것 여부는 그 지위들을 얻기 위한 방편일 뿐.

따라서 지금 리안의 제안에 눈살을 찌푸리는 건, 한족에게 양보하라는 내용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다.

이미 있는 계획을 변경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루우는 리안의 말을 곱씹어보다, 그 「대타협 계획」의 중대한 결함 하나를 발견했다.

“한족은 많을 뿐만 아니라 널리 분포해 있어, 태사.”

그런 반론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리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티베트, 탕구트, 대예, 보우슈엥까지, 자국 영토 내에 한족을 데리고 있지.”

“그래. 안 그래도 그런 한족들까지 이번 봉기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여기서 한족 자치 왕국을 만들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겠어?”

더 논할 필요도 없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듯, 리안은 덤덤하게 답했다.

“그 나라의 한족들도 비슷한 걸 만들어달라고 하겠지. 그냥 다이온 내의 자치 왕국으로 이주하게끔 하면 되지 않나, 뭐 그런 안일한 생각을 떠올리긴 했지만…… 역시 그렇게 되진 않겠지?”

“태사는 다이온 안에 커다란 한족 수용소 몇 개를 만들고 싶은 모양이지만, 알지? 수용소에 아무리 허름한 울타리를 세워도 거기엔 돈이 들어.”

주변 국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한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그 ‘자치 왕국’으로 이주시킨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돈이다.

전에 서북부 몽골계 주민들을 카라코룸으로 이주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비용이 소모되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태사의 그 「대타협 계획」……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실현되려면 한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해. 다이온 연방에 그 나라들을 모두 가입시킬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그렇게 말해놓고 루우는 가만히 리안을 건너다본다. 리안은 양 손바닥으로 뒷머리를 받치곤 천장을 올려다본다.

다이온이 성립하더라도 그 이상의 변화는 바라지 않는다. 그게 리안의 방침이다. 그런데 안정을 위해 다이온을 거기서 또 외부로 확장한다면…… 모순이 따로 없다.

“……완벽한 정책은 없는 법이지. 일단은 한족 봉기 토벌에만 집중할까.”

국정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짓는다. 리안은 좀 더 잡담에 가까운 쪽으로 화제를 옮겼다.

“입학식까지 이제 며칠 안 남았네.”

리안은 싱긋 웃으며 루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1대학교 입학을 축하해, 황제.”

루우도 오랜만에,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선배님.”

루우의 그 대답이 떨어짐과 동시에, 두 사람은 웃음을 터트렸다.

루우는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았고, 리안은 4학년이지만 그 외모는 여전히 소녀 같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느낀다. 소녀 시절은 끝나고, 여자가 되어간다는 걸.

지금까지의 삶도 또래 소녀들을 뛰어넘는 성숙함을 요구했지만, 앞으로 이어질 삶은 더욱 어리광을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걸.

견하가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가듯이.

“견하도…… 이제 대학생이 되는군.”

“빨리 귀국해야 할 텐데. 아무리 급해도 입학식에 얼굴은 비춰야지.”

잡담이었지만, 리안의 머릿속에는 뭔가 기억이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생각하기를 미뤄두었던 것.

견하의 제1대학교 진학을 누구보다 기대하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죽고 없다.

견하의 어머니.

자신이 떠올린 기억에 놀란 건지, 아니면 이상해진 방 안의 분위기에 놀란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퍼득 고개를 들어보니, 웃음을 그친 루우의 시선이 다시 물끄러미 리안을 향하고 있었다.

“견하의 부모님, 장례식 치른 적 없지.”

“응. 복수를 끝내는 날, 치르겠다고…… 언젠가 지나가듯 이야기했었어.”

“눈물을 흘린 적도 없었을 것 같은데.”

루우의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손상되어 가는 견하의 인격에 대한 염려.

둘째는…… 견하 안에서 곪아 터질 대로 터진 상처에 대한 염려.

“견하가 나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지금 견하가 어떤 기분인지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야. 나도 눈물, 흘릴 수 없었으니까.”

***

카라코룸의 근방의 한 교도소.

그 외벽 근처에 사람들이 일렬로 선다. 외벽에는 이미 총알 자국이 많이 있다.

죄수들은 눈을 헝겊으로 대충 가렸다.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기도문을 왼다. 어떤 이는 오줌을 지리고, 또 어떤 이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다시 일으켜 세우진 않는다. 앉아서 죽든 서서 죽든 어쨌든 시체가 된다는 결말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군인들도 그들 앞에 일렬로 늘어서, 총알을 장전한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배치된 가짜 집행인을 더 두진 않았다. 그런 걸 하기엔 여유가 없으니까. 그냥 한 사람당 한 명씩 사형수를 배정할 뿐이다.

건조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장교가 집행 절차를 명령한다. 병사들은 이젠 공장 노동자처럼 장전하고, 겨냥하고, 쏜다.

총구를 거두고, 다른 병사들이 다가가 시체들을 치운다.

그러고 나면 다시 눈을 가린 죄수들이 새로 들어온다. 앞서와 같은 절차가 반복된다.

이토록 많은 ‘범 알타이 인민동맹’의 조직원들을 체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내통자. 이들은 공화국이 망해갈 무렵부터 들어와 유용한 정보들을 넘겼다. 그중에서도 범 알타이 인민동맹 간부들이 특히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

조직의 간부가 사로잡히거나 배신하면, 그 조직에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는지 이번 일이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조직원들끼리 서로를 밀고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비밀은 결국 ‘누군가는 알고 있는 것’이기 마련이니까.

둘째는 미처 파기되지 못한 서류들. 견하는 몽골군 정보부의 힘을 빌려 적의 모든 거점마다 남겨진 서류들을 끌어모았고, 분석을 의뢰했다.

많은 이들이 밤새워 매달린 끝에 중요하지 않은 일반 가담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조리 추려냈다.

재작년 야별초를 토벌할 때부터 이렇게 적의 자료를 입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견하는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철두철미한 ‘뒷마무리’가 가능한 것이다.

***

“범 알타이 인민동맹, 혹은 알타이 자유 공화국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간들은 ‘몰살’한다. 그 방침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게 차갑게 말하는 ‘대령’ 앞에서, ‘대장’ 김천열은 공손히 그 말을 경청해야 했다.

계급 이전에 실질적인 권력이 어디에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세상이다. 그리고 김천열은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것 이상으로 나서서 설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숙청당한 전우들이나, 군에서 손을 떼야 했던 조유관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이다.

게다가…….

“칸발리크에서 그 참상을 만든 자들이, 이제는 처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웃긴 노릇이지.”

김천열 역시 그렇게 냉소적으로 적들을 평했다.

자비가 필요한 자리에서 아끼는 자도 머저리지만, 자비가 불필요한 자리에서 베푸는 자도 머저리다.

특히 ‘나는 야만적인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내가 하는 짓이 저들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외친다면 더더욱.

그것도 상황을 가려서 할 말이다.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인간들도 많지만, 그러지 못할 인간도…… 슬플 정도로 많다.

저 자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 결과가 명백히 보이는 인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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