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압(14)
재연은 홀로 방 안에 누워, 루우의 말을 되새겨본다.
결함품이었던 고려 제국은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주워 모양을 갖춰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갖춘 요소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낸다.
태사 미리안에겐 정통성과 권위가 필요했고, 그 부분을 루우가 채워주었다.
루우에겐 자신을 황제 자리까지 끌어 줄 권력이 필요했고, 리안이 그 부분을 채워주었다.
황제와 태사의 만남. 이로써 제국은 입헌군주국으로서 완성된 듯하지만, 이 체제의 출범과 함께 두 사람은 서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이상 무언가를 바라기 마련이고, 바라는 게 있다는 것 자체로 누군가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태사와 황제, 두 사람이 몇몇 부분에서 의견 충돌을 보인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런 건 학교 같은 작은 집단에서도 늘상 일어나는 일이니까.
뭐, 고등학교는 끝내 졸업하지 못했지만. 재연은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며 잠깐 그런 생각을 한다.
다시 황제와 태사 이야기로 돌아가자.
정면에서 대놓고 충돌한 건 아니지만, 작년 한 해 두 사람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이 감돌았다.
황제와 황실을 복구하고 입헌군주제를 확립한 고려 제3제국. 미리안은 거기서 멈추려 한다. 허동주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이다.
몽골을 비롯해 키타이, 낭키아스를 무력 병합하고,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을 병탄하거나 지배하며 고려를 세계적 패권 국가로 발돋움시키려 했던 허동주.
미리안은 그런 허동주의 계획이 현실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광기라고 여겼다.
그리고 끝내 그와 내전까지 벌여, 승리했다.
피를 흘린 만큼 그녀는 자신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고려는 주변국 및 유럽 각국, 아즈텍 연방과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 체제를 확립한다. 그리고 그 평화 속에서 내실을 다져간다.
그런 구상일 것이다.
그러나 내전에서 미리안에게 ‘정통성’을 실어준 황제, 루우의 생각은 미리안과 달랐다.
리안이 고려 제국을 자신의 일생을 바쳐야 할 ‘목적’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루우는 자신의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 혹은 그 목적까지 가는 ‘과정’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루우가 고려에 일말의 애정도 없느냐 하면 또 그런 건 아니다. 그녀 자신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고려 황제 ‘왕서라’라는 이름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이 그녀의 또 다른 ‘목적’을 향한 갈망을 뒤덮진 못한 것이다.
루우의 ‘목적’.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몽골의 카간위다.
태어날 때부터 그 피에 흐르던 권력욕인지, 아니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해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집을 떠나 고려의 황제가 되는 과정을 거쳐, 카간 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기에 이른다.
재연은 그 시점에서, 어떤 ‘파국’이 언젠간 찾아오리라 예감했었다.
루우를 대체할 수 있는 황제 후보가 없는 상황이니 그녀의 폐위까지 가는 일은 없겠지만…… 미리안 정권이 몰락하거나 황제가 완전히 허수아비가 되는 방식으로, 서로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리라 보았다.
그런 결말을 예상했기에, 재연도 조심스럽게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에 노골적으로 재연의 생각을 삽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황제의 명령을 받고 견하의 승인을 받아 「계획」을 작성해 오면서, ‘어떤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는 계속해왔다.
미리안과 루우의 대립이 격화되면, 누구를 따를 것인가.
미리안의 승리와 통치를 인정하고 그 아래에서 평범한 국민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미리안을 거부하고, 허동주마저도 졸업한 한재연 자신의 ‘방식’을 황제 루우 아래에서 펼쳐나갈 것인지.
어떤 길을 택하든 또 한 번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숨을 건 만큼 ‘새로운 삶’ 또한 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이를테면 루우의 밑에서 제국의 새로운 사상을 이끄는 자로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허동주를 추종하던 시절의 덜 여문 사상도 아니고, 허동주나 신수덕의 과격함과도 거리를 둔, 새로운 ‘다이온’의 중심 이념을 떠받치는 사상가로.
하지만 허망하리만치, 황제와 태사는 ‘암묵적 합의’에 이른 듯하다.
황제는 몽골과의 동군연합을 그대로 추진하는 대신, 실질적인 권력의 확대에서는 한발 물러선다.
태사는 ‘다이온’의 성립 자체는 인정하되, 그 주도권은 자신이 쥔다.
아마 리안은 현 관세 동맹에서 약간 발전한 형태의 ‘연방’이라는 틀만 갖춘 상태에서, 구성국 사이의 독립성은 유지하는 체제를 그려나갈 것이다.
그것이 태사와 황제가 본 ‘타협’이다.
그 타협의 상징으로, 루우는 리안에게 ‘카라코룸’을 내어준다고 했다.
재연은 루우의 그 말에서, 자신은 가늠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있다고 짐작했다.
그 감정의 흐름을 읽어야,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자신과 수영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정치는 권력의 냉철한 강화, 박탈, 배분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하듯 정치 역시 인간의 행위이고, 인간은 감정을 지녔으며, 따라서 정치에 임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정치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 행해진다고 비난하는 자는 삼류에 지나지 않는다. 감정이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은 인간사의 엄연한 현실이다. 주어진 현실을 분석, 대처하는 것이 그 게임에 올라간 사람이 할 일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실을 부정하며 떼를 쓰는 자는 게임판 위로 올라갈 자격이 없다.
황제와 태사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
재연은 그 실마리를, 루우의 갑작스러운 ‘카간위 양보’에 있다고 보았다.
황제는 왜 갑자기 카간 자리로의 진격을 멈추었을까.
물론 거기에는 여러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게레센제에게 카간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다이온의 판도에 낭키아스를 집어넣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테지. 칸발리크 사태 해결을 위한 ‘정보’를 제공받을 속셈도 있었을 테고.
그러나 단순한 합리적 계산으로는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나머지’가 거기에 있다.
급격히 동군연합을 수립하기보다는, 일단 숙부를 앞세워 충분한 준비 기간 끝에 루우를 카간 자리에 올린다고, 견하는 이야기했었다. 그 말도 진실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진실이진 않을 것이다.
“깊이 파고들어야 해.”
긴 사색 끝에 재연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정보의 부족이야말로 가장 큰 위협이다.
황제와 태사 사이에서 어떤 타협이 오갈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적다면, 재연은 계속 오판을 내릴 것이다. 오판을 한 줄도 모르고 살다가 그 오판의 결과가 누적되어, 피할 수 없는 칼날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런 일을 막으려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파악하려면 실시간으로, 혹은 실시간에 가깝게 들어오는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 정보를 얻으려면, 황제와 태사 사이로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추가적인 변수가 있다면……”
그건 주견하.
그의 친구. 그의 상관. 그의 보호자. 후견인. 승리자. 태사의 연인. 최측근. 황제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자.
견하의 존재는 재연이 섣불리 어떤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 그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고려의 정국에서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마니까.
만약 태사와 황제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견하는 분명 태사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재연도 알 수 있다. 태사가 견하를 총애하는 만큼 견하도 태사를 사랑한다. 견하는 그걸 배신할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견하가 황제와 태사 중에 태사를 선택한다 해도, 황제에게 가혹한 사람이 될지는 미지수다.
황제를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 황제를 철저히 적대하고 짓밟겠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태사와 황제, 그 사이에 견하가 끼어들 경우 문제가 복잡해지는 원인이다.
재연이 루우를 처음 봤던 때를 떠올려본다.
그때 재연은 한족 범죄자들을 골목으로 끌고 가 처형 중이었고, 견하와 루우는 그런 재연을 말리기 위해 함께 골목으로 들어왔었다. 재연은 두 사람과 마주친 순간……
“……그 아이를 견하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했었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견하에게 하는 도발 겸 장난으로? 별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아니다.
재연은 그 순간 뭔가를 느끼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그때부터 황제가 견하에게 묘한 감정을 품고 있었을 리는 없지.”
지금도 전적으로 견하를 ‘이성’으로 대하며 호감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그렇게 발전할만한 감정의 조각 정도는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의 조각’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눈과 귀로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소한 분위기 같은 걸로 그저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재연도 지금 수영과 사귀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분명히 말할 수는 없었겠지.
“어쨌든, 거기에 틈이 있어.”
견하와 루우와 리안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그사이에 자리 잡은 틈.
그 틈에 재연과 수영이 살아남을 기회가 있다. 재연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기회가 있다.
견하와 정치적으로 완전히 결별, 정면 대결을 펼칠 수는 없다. 일단 역량의 차이가 너무 크다. 견하의 기반은 재연이 쌓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재연에겐 ‘천손민족협회 출신’이라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도 있다.
따라서 견하의 길과는 어느 정도 다른 방향의 길을 걷더라도, 재연은 살아남기 위해 ‘견하의 막하’라는 자리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다.
물론 언제까지고 견하의 뜻대로만 살 수는 없다.
산다는 건 결국 ‘자신만의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남의 생각대로만 사는 사람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다. 조언을 듣고, 또 때로는 영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전적으로 의존하기만 하는 사람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애완동물조차 그러지 않는다. 그냥 시체라고 해야겠지.
당연히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는 자신의 고집을 접고, 타인의 생각과 적절한 타협을 해가며 살아야 한다.
그런 양보와 타협을 ‘자신의 판단’으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걸 말하는 것이다.
이제 곧, 재연은 신분을 세탁한다. 과거를 지운다. 견하가 그런 조치를 취해뒀다.
한재연도 제1대학에 간다.
성인이 된다. 소년 시절은 끝난다.
그러나 소년과 성인은 단절된 두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한 명의 연속된 인생이듯이, 재연의 인생도 계속되리라.
향후 수십 년은 지속될 인생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어떤 방향을 바라볼 것인가.
“황제와 태사와 견하가 미묘한 대립 관계를 이룬다면…… 그때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중재자’로 입지를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
반드시 대립을 부채질해서 이익을 거둘 필요는 없다. 대립을 수습하고 화해를 끌어내는 과정에서도 충분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분쟁과 혼란의 격화로 거둘 이익보다 적을 진 몰라도, 그 이익 자체가 적은 건 아니다. 게다가 반발을 덜 사기에 훨씬 안전하다.
결심이 선 듯, 재연은 몸을 일으켰다.
의자를 당겨 책상 앞에 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