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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38화 (238/541)

제압(12)

볼로드는 한눈에 알아본다. 어떤 사회주의 지하조직이 발간하는 신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볼로드 같은 입장에 있으면 그 누구보다도 ‘불법 신문’에 통달하기 마련이다.

카간이 어떻게 이런 신문을 손에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법’이라는 표현과는 모순되는 것 같지만, ‘신문’은 어쨌든 대중에 널리 읽히길 바라고 인쇄되는 물건이다. 불법일수록 그 열망은 더더욱 간절하다.

그러니 원한다면 이런 신문쯤이야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인쇄 기계의 생산과 수출입에는 상당히 신경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모든 걸 통제하는 건 역시 불가능하군요.”

카간께 올리는 변명이라기보다는, 씁쓸한 혼잣말에 가깝다.

이른바 ‘혁명가’를 자처하는 불순한 무리들은 인쇄 기계를 목숨처럼 여긴다.

말단 혁명가 몇 명이 죽어도 인쇄 기계만 사수한다면, 어디서든 신문을 만들어 동지들을 교육하고 새로운 혁명가를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쇄 기계 하나를 때려 부수면, 혁명가 여럿을 잡아들이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고.

“통제 불가능하다는 그대의 말은 옳네. 정치권의 핵심 인사나 정치 경찰쯤은 되어야 이데올로기 문제가 중요하지, 동네 경찰한테는 그냥 경범죄에 불과하지 않겠나.”

위에서 좀 다그치면 분위기가 험악해지겠지만, 그것도 그때뿐.

일선 경찰들은 용돈벌이 삼아 뇌물 좀 받고 ‘수상한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해주고 만다.

순진한 대학생 혁명가들과 달리, 반쯤은 ‘주먹패’에 가까운 혁명가들을 건드는 건 부담스럽기도 하고.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세. 이런 신문은 오히려 공공연히 떠들 수 없는 이야기를 싣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고 은근히 쓸모도 있는데…… 실린 내용을 좀 읽어보겠나.”

볼로드는 공손한 몸짓으로 신문을 집어 든다.

읽는 절차 자체는 카간께 보여드리기 위한 예절 같은 것이다.

내용 자체는 볼로드도 이미 알고 있다. 그는 행정부의 수장이다.

“마냥 믿기도 어렵고, 헛소문이라 치부하기도 어렵겠습니다.”

“그렇지. 어지간히 정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내용도 실려 있으니까.”

신문 기사는 울제이와 반란군 사이에 모종의 ‘제휴’가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전말은 이러하다.

울제이는 게레센제를 몰아내고 자신이 카간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다.

그러기 위해 카라코룸을 기반으로 삼고, 제2의 아릭부케가 되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카라코룸을 기반으로 삼을 것인가?

카라코룸에 입성해 반역자들의 공화국을 끝장낸 영웅이 되는 것으로, 카라코룸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둔다.

이 과정이 문제가 된다. 울제이 칸은 다른 경쟁자들보다 먼저, 더 구체적으로는 ‘제일 먼저’ 카라코룸에 입성하려 하고, 이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 카라코룸을 지배하고 있는 반란군과 거래를 해서 항복을 받아낸 뒤, 무혈 입성하면 울제이 칸은 쉽게 카라코룸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 ‘거래’ 내용은 무엇인가? 반란 수괴들에 대한 사면, 혹은 망명 지원이 아닌가, 신문은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

칸발리크 시민들, 무수한 국민들, 그리고 선대 카간을 살해한 반역자들과 거래를 한다?

이 역시 국가에 대한 반역이자, 죽은 자기 형에 대한 패륜이다.

신문에서 비난하는 울제이의 죄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라코룸에는 반란군의 압제에 숨죽이고 있다가, 마침내 일어선 충성스러운 시민들이 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시민군을 결성, 반란군을 물리치고 도시를 탈환하는 중이다. 카간께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반란군과 결탁한 울제이가 일방적으로 시민군의 무장해제를 강요하고 있다.

이는 반란군의 잔혹한 보복에 충성스러운 시민들을 노출시키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명령이다.

혹시 울제이는 ‘게레센제 카간께 충성하는 시민’은 필요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닌가? 그런 의문으로 신문 기사는 끝을 맺는다.

“배후에는 역시 고려, 태사 미리안, 황제 루우 테무르가 있겠지.”

“신도 카라코룸 남쪽 교외에서 고려 태사와 칸이 대치 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누가 카라코룸에 먼저 입성해 도시를 장악할 것인가. 그런 이권을 두고 벌이는 다툼.

울제이가 정치적 타격을 받거나, 이런 소문을 들은 게레센제가 울제이에게 어떤 제재를 가한다면, 고려 태사 미리안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여기 실린 내용을 믿고 울제이를 제어한다. 그러면 미리안이 카라코룸에 입성하는 영웅이 된다. 따라서 향후 내전 수습 과정에서 몽골에 대한 고려의 간섭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뻔히 보이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필요는 없겠지.”

“또한 몽골 내 사회주의자들이 고려 측과 손을 잡았다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누가 이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가. 어떤 논리를 펼치며 그런 이득을 노리는가. 그걸 잘 살펴보면 고려가 배후에 있고, 사회주의자들과 제휴했음은 금방 알아낼 수 있다.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멍청이는 타이시든 카간이든 그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없다.

결론은 이렇게 순식간에 나왔지만, 둘 중 누구도 그걸로 이 대화를 끝마치려 하지 않았다.

당연히, 걸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제이가 결백하다고도 말할 수 없지 않나.”

두 사람 다 독자적인 정보망을 활용, 이미 반란 수괴 무에투켄과 울제이 사이에 거래 정황이 있음은 포착했다.

고려나 사회주의자의 수작이라고만 하기엔, 울제이가 꾸미는 음모가 사실일 가능성이 너무 높다.

아니 가능성이 높은 수준이 아니라 기정 사실이다.

“울제이 칸이 카라코룸을 얻으면 전쟁영웅이 되겠죠. 몽골 군부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거기서 그치지도 않을 겁니다. 그의 영지인 키타이는 지리적으로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한 내륙과 연결되기 쉽습니다.”

키타이와 바다에 가로막힌 낭키아스와는 사정이 다르다.

울제이가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한 공업지대, 큰형 시레문이 육성한 그 지역과 키타이를 아우르면, 게레센제의 칸발리크는 서북쪽부터 남쪽까지 포위당하는 형국이 된다.

“지금 울제이는 내무장관과 전쟁장관을 겸하고 있지.”

키타이를 몽골 제국 내부로 통합하기 위한 과정이라고는 하나, 그리고 울제이와 루우 테무르의 관계를 끊으려는 조치이긴 하나, 너무 많은 권한을 주었다.

그 위험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내전이 끝나는 대로 하나하나 도로 가져오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볼로드의 말은 획기적인 대책은 아니다. 그저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뿐.

“그다음엔 무엇을 노릴지 너무 명확하지 않나.”

“분명 신의 자리를 노리겠지요.”

타이시, 고려어로는 태사.

제국의 재상.

단 한 사람의 밑, 모든 사람의 위에 있는 자리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걸 얻으면, 다음 수순은…… 당연히 카간.

아무리 볼로드라 해도 그 말을 입에 담을 순 없으니 침묵한다. 게레센제는 너무 명백한 과정처럼 느껴져 침묵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이 질문은 정말로 재상에게 대책을 물어보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볼로드의 충성심을 떠보는 질문이기도 했다.

정말로 나라와 카간을 걱정해서 진언을 올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타이시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진언할 것인가.

게레센제는 볼로드의 대답을 듣고 분석해보기로 한다.

“키타이를 취하시지요.”

“울제이의 영지를 빼앗으라…… 그 말은, 울제이를 칸에서 폐위하라는 말인가?”

볼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실질적인 이득은 빼앗되, 그 명예까지 빼앗는 건 지나친 굴욕을 줄 염려가 있습니다. 키타이의 칸이라는 이름은 유지하도록 하시고, 키타이에 몽골 본토와 동등한 행정구역을 설치해 나가시지요.”

물론 여기에는 키타이 서부에서 일어난 한족 봉기 문제, 아직은 얌전한 한족들에게 어떻게 몽골 제국 본토의 일반 행정을 펼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실행할 가치는 있는 정책이다.

“한동안은 내무장관과 전쟁장관도 계속 겸하도록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전쟁장관 자리를 넘어서서, 실질적 군권을 쥐기 위해 참모본부를 노린다든가 하는 건 경계해야겠죠.”

현실적이고 무난한 의견이다. 갈등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면 최소화하는 길을 찾아 의견을 제시한다.

“……정지 명령을 내려야겠군. 카라코룸 공략은 미리안의 지휘에 맡겨두라고.”

“고려 태사가 이를 계기로 어떤 제안을 해올지가 걱정입니다만, 그 문제에 직접 대처하기보다는 울제이와 키타이의 영향력을 축소하면서 카간께서 지니신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키타이가 몽골 본토로 편입된다. 그러면 낭키아스를 몽골 본토로 편입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렇게 통합된 제국에 루우 테무르의 고려까지 더하고 싶은 걸까.

도대체 볼로드는, 그 과정에서 권력 확대 말고 뭘 바라는 걸까.

대화를 나눠보니 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게레센제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볼로드, 그대는 무엇을 원하나?”

볼로드는 가만히 눈을 들어 게레센제를 바라봤다.

형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는 정말로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다.

“카간. 카간께서 천자의 자리에 오르시기 전에 과연, 그저 카간이 되는 것만을 바라셨나이까?”

“……그건 무슨 물음인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게레센제는 그렇게 되묻는다.

“카간이 되시기 전에, ‘어떤 카간이 되겠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는가 하고 여쭙는 겁니다.”

당연히 있다. 어지간히 생각 없는 자가 아니고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어떤 군주가 되겠다’는 생각 정도는 한다.

막연하게, 그저 훌륭한 군주가 되겠다는 각오는 다지고 이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건 권력을 향한 열망과 동시적이거나, 혹은 아주 약간 앞선다.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를 향한 열망 자체가 반감된다.

“신 또한 그런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타이시 자리에 올라가고 싶다, 타이시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 자자손손 권세를 누리고 싶다. 그런 열망 이전에, ‘어떤 타이시가 되어 어떤 통치를 하고 어떤 이름을 역사에 남길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를 섬길까하는 것은 여기서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라고 볼로드는 덧붙였다.

“신은 몽골을 섬깁니다. 신이 선대 카간을 섬긴 것은 선대 카간이 그저 카간이거나 천자여서가 아닙니다. 시레문이라는 개인에게 호의를 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충심은 있습니다. 군주 개인에 대한 의리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신은 몽골을 섬깁니다.”

볼로드가 카간을 섬기는 건, 다름 아닌 그 카간이 ‘몽골’의 카간이기 때문이다.

“신에게 중요한 건 신의 어떤 행동이 몽골에 이익이 될 것인가, 어떤 카간이 몽골의 이익이 될 것이며, 카간을 어떻게 몽골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안내할 것인가, 그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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