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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33화 (233/541)

제압(7)

“모든 시민군과 정치단체는 무장을 해제하라. 전쟁장관 명령에 따른 군정을 실시할 것이다. 군정의 무장해제 절차에 응하라. 응하지 않을 경우 반역으로 간주하겠다.”

울제이 칸이 파견한 장교들은, 시민군 대표들을 만나 그렇게 엄포를 놓았다. 당연히 시민군은 반발했다.

“역적들이 아직 무기를 놓지 않고 있는데, 그들과 직접 얼굴 마주 보는 우리더러 무기를 놓으라뇨. 저들이 보복해오면 우리는 그냥 다 죽습니다.”

“반란군은 이미 항복했다. 내전은 끝났다. 그대들이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시 무장해제에 응하라.”

“대책은 있습니까?”

장교는 건방지다는 듯 노려보다 권총을 꺼내 시민군 측 장교를 겨눴지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을 보곤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려군 장교단이었다.

“즉시 아군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지하시오.”

“……이들은 몽골의 국민입니다. 현재 카라코룸은 몽골군의 작전지역으로, 전쟁장관 명령 하에……”

“우리는 고려 태사 각하의 명령을 받고 왔소. 여긴 태사 각하의 작전 구역이오. 태사 각하의 방침과 우리의 통제에 따라주셔야겠소.”

울제이 측 장교는 당황과 분노가 섞여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 권총을 내렸다.

“고려 태사 각하께선 전쟁장관 각하의 요청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그건 귀관이 걱정할 바가 아니지. 전쟁장관께선 원수 계급이시지만 우리 태사 각하는 대원수 계급이시오. 더군다나 칸께선 지금 옹긴에 머물고 계시지 않소? 현장지휘관의 판단이 더 우선할 것 같소만?”

울제이 측 장교는 말없이 노려본다. 그 눈빛에는 ‘그냥 원수 위에 의전용 계급 하나 더 만든 걸 달고 유세는……’이라는 말이 담겨 있다. 그래도 그는 그걸 음성으로 내뱉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고려군 장교도 굳이 추궁하지 않는다.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씹어뱉듯 그렇게 말하며 울제이 측 장교는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고려군 장교도 휘유, 하고 한숨을 내쉬며 시민군 대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우리도 태사 각하의 명령 때문에, 그리고 도리상 협력해드리고 있는 거지,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시민군…… 아니, 당신네 ‘당’에서는 대체 어쩔 생각입니까?”

“그건 저희도 잘…… 곧 고려 태사 각하와 당 중앙위가 의논을 거쳐서 향후 방침을 내놓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총성은 멎었지만, 정국은 두 사람의 얼굴만큼 어둡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민군, 고려군 및 리안의 지휘하에 있는 몽골군이, 카라코룸 남쪽에서 울제이 부대의 진격을 가로막은 것이다.

알타이 자유 공화국의 혁명 속에서 또 다른 혁명이 움튼 것처럼, 몽골 내전 속에서 또 다른 내전이 움트는 것은 아닌가…… 그런 불안감이 모두의 마음을 스산하게 했다.

***

물론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사회주의 정당들은 대표단을 꾸려 울제이의 사령부로 파견했다. 여기에는 ‘무당 동무’도 끼어 있었다.

회담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악수도, 의례적인 인사말도 오가지 않고 곧바로 서로의 입장부터 들이댄다.

“저희가 영영 무력 집단으로 남겠다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일에 순서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먼저 반란군이 무장을 해제하면 저희도 무장을 유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때까지 저희가 스스로를 지킬 수단을 인정해달라는 것뿐입니다.”

“이미 고려군이 카라코룸 내에 들어왔는데, 굳이 시민군 같은 게 필요한가? 이제 내 휘하의 군대도 카라코룸에 입성할 텐데, 반란군이 자네들을 공격하는 자살행위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자네들이 어디까지나 ‘카간의 선량한 시민’으로 남아준다면, 우리는 자네들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

울제이는 달래듯 말했다. 좌익들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이것도 명분 쌓기다. 달래볼 수 있는 데까지 달래다가 저들이 계속 무장해제를 거부하면 그걸 구실로 진압에 들어가면 된다.

울제이의 부드러운 언변에 저들이 무장해제에 응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고.

“‘군의 보복’도 우려되지만, 저희가 우려하는 건 더 큰 문제들입니다. 칸께서 반란 정부의 항복을 받아들이시면, 반란 정부를 지지하던 자본가들이 자기 기업으로 돌아올 겁니다. 저희 시민군 대부분은 그런 자본가들과 적대한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합법’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보복해올 겁니다.”

그걸 눈 뜨고 당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몽골 제국 정부가 그런 ‘반란 기업가’들을 먼저 체포해준다면, 우리도 더는 무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사회주의 정당 대표들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저희는 적어도 두 가지 안전책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반란군의 무력 보복 방지야 말할 것도 없고, 카간께서 노동조합 활동 및 사회주의 정당 활동을 합법화하겠노라 선언해주셔야 합니다. 또한 쿠릴타이에의 입법을 통해 저희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비로소 저희는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마련되었다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울제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자네들은 지금 무력으로 카간께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말인가?”

“지나친 확대해석이십니다! 저희의 총구는 지금 반란군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장을 해제하지 않겠다는 건 자네들의 그…… ‘해방구’를 내놓지 않겠다는 뜻이지. 자네들만의 구역을 유지하면서, 그 영향력을 통해 칸발리크 중앙정부와 쿠릴타이를 움직이겠다는 뜻 아닌가?”

말은 반란군의 무장이 해제되면 자신들도 무장해제에 응하겠다는 듯 말하고 있지만, 그사이 해방구의 입지를 굳히고 딴소리를 늘어놓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있는가? 울제이의 물음엔 그런 뜻이 담겼다.

“나는 솔직히 의심이 드네. 자네들이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의 지령대로 움직이는 불순분자가 아닌가, 하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건 그런 과격한 혁명 노선이 아닙니다. 고려의 사례처럼, 카간의 권위와 통치를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노조와 정당의 합법화 수준이면 저희는 만족합니다.”

나머지 개혁은 무력 투쟁이 아니라, 의회인 쿠릴타이 내에서의 평화적 정당 활동으로 이뤄나가면 된다.

“그럼 그런 조치를 무장해제에 응하고 기다려도 될 일 아닌가?”

“무장을 해제하고 있으면, 저희가 카라코룸 탈환에 세운 공이 어느새 잊히지 않겠습니까?”

“자네들의 공은 내가 카간께 확실히 상주할 걸세.”

“저희는 카간께서 깊은 인상을 받으실 위치에 있고 싶습니다.”

울제이는 피식, 쓴웃음을 흘린다.

“상호 간, 불신의 골이 너무 깊군.”

울제이는 이들이 하는 말을 믿지 못한다. 카간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일어난 의용군인 듯 말하지만, 카라코룸을 기반으로 위험한 혁명 세력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은가.

사회주의 정당 대표들도 울제이의 보장을 믿지 못한다. 겉으로는 좋은 말로 이런저런 약속을 하면서, 내전만 끝나면 싹 잊어버리려는 것은 아닌가.

아니, 잊기만 하면 다행이다. 곧바로 예전처럼 탄압에 나설 수도 있다.

울제이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이 시민군과 고려군의 유착 관계가 확인된 이상, 저들의 요구는 들어줄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루우와 미리안의 계략에 말려든다.

카라코룸 입성을 강행하는 수밖에.

자신에겐 ‘카간의 칙령’이라는 명분이 있다. 그리고 여기는 어디까지나 몽골의 국토다. 고려군의 개입은 이러한 명분으로 차단하고, 시민군이야 강경 제압하면 그만.

반란군 정부는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울제이에게 순순히 항복할 테니, 다소 고생은 하겠지만 카라코룸 탈환의 영웅은 자신이 될 것이다.

울제이는 그런 계산을 마치고, 선포했다.

“즉시 무장을 해제하게. 내가 자네들에게 줄 수 있는 관용은 무장해제에 걸리는 시간뿐일세.”

***

울제이의 강경한 반응을 전해 들은 당 중앙위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역시 카간 정권은 개혁 의지가 없는 것 아닙니까!”

“고려 태사도 어디까지나 외국인. 내정간섭이라는 오명까지 감수하며 우리를 지원하겠습니까?”

“‘미안하다’면서 물러나 버리면 우리는 끝입니다.”

혼란이 어조를 한층 격앙되게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차분히 이성을 유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직은, 그들이 우리와 함께합니다. 남쪽에서 울제이의 진입을 막고 있는 건, 고려 태사 미리안의 군대입니다.”

무당 동무의 말이었다.

누그러지긴 했지만, 반론이 들어온다.

“그게 언제까지 유지되리라고 보시오, 동무.”

“언제고 유지되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가만히 있기보다는 살길을 찾아야죠.”

“어떤……?”

“고려 태사와 직접 담판을 짓겠습니다. 우리를 지켜준다는 건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있다는 뜻이고, 우리는 그 약속을 이행해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물론…… 몇 가지 대책이나, 협상할 재료를 들고 가야겠습니다만.”

무당 동무는 좌중을 둘러본다. 그 눈빛을 읽은 중앙위의 동지 하나가 묻는다.

“동무는, 고려 태사와의 협상을 위해 전권을 위임받고 싶은 건가?”

“그렇습니다, 중앙위원 동지.”

그 중앙위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른 동지들을 보며 손을 들었다.

“표결에 부칩시다. 우리의 동지가 고려 태사와의 협상 테이블에, 판돈을 얼마나 올려놓게 할지 말입니다.”

***

“염려는 하지 말았으면 했는데. 나를 못 믿나요?”

무당 동무가 미리안의 사령부로 들어서자마자, 미리안은 웃으며 그렇게 맞이해주었다.

“각하께선 저희와의 약속을……?”

“순수하게 의리라기보다는, 제 체면도 달린 일이니까요. 시장의 장사치들도 신용을 중히 여기는데, 내가 여기서 당신네들 뒤통수를 치면 누가 나랑 협상하려 들겠습니까.”

“저희가 수십 년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워낙 많이 데여서 말입니다. 당의 중심부에 있는 동지일수록 걱정이 많습니다.”

무당 동무는 겸손하고 신중하게 말을 배열한다. 어쨌든 아쉬운 건 자신 쪽이다.

“그렇다면 제가 감히…… 각하의 복안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리안은 무당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쑥스러운 듯, 소탈한 미소를 짓는다.

“그게, 지금 이렇게 대치하는 것 말고는 전혀요. 그래서 여러분과 의논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무당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번진다. 이 아가씨의 솔직함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솔직함 뒤에, ‘너희도 대책 좀 내놓아 봐라’라는 말을 감추고 있는 게 문제지.

“저희가 생각해둔 바가 있기는 합니다만…… 태사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내가 조언해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아시다시피, 저희는 이제 무장 집단을 통한 혁명을 추구하진 않습니다. 고려에서처럼 합법적인 정당 활동을 하려 하죠.”

리안은 끄덕인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

“즉, 그런 정당에 어울리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칸발리크 내에 있는 저희 조직망을 이용해 울제이 칸에 대한 ‘정치 공세’를 펼친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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