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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32화 (232/541)

제압(6)

사회주의자들의 봉기는 빠르게 카라코룸 곳곳으로 번져갔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주변 건물에 병력을 배치하며 요새화한다. 자그마한 소년들이 지붕 위를 넘어 다니거나 골목 틈 사이로 흩어지며 전령 역할을 맡았다.

희미한 열기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시민들 사이로 번져간다.

‘무당 동무’를 비롯한 당의 주요 인재들은 이 열기를 오판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회주의 공화국에 대한 열정이 아니다. 인민들은 그저 이 지겨운 전쟁과 생활고가 끝나리라는 희망에 들떴을 뿐이다.

카간의 군대가 돌아온다.

곧 이 난리를 평정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희망에 찬 메시지를, 당에서는 제대로 읽었다. 그래서 그들도 칸발리크의 카간과 몽골 정부에 대한 지지의 메시지를 흘린다.

자유 공화국을 지겨워하는 자들에게, 신흥 사회주의 공화국을 따라달라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을 터.

동지들은 마음속에 품은 혁명의 불꽃을 감추고, 마치 숨어있던 왕당파인 양 나타나 시민들의 협력을 받았다.

시민들은 웬 청년들이 나서서 자유 공화국 정부에 맞서주겠다 하니 고마워할 따름이다. 그들로서는 공화국을 지지했던 과거를 지워버리고, 다가오는 카간의 군대 앞에 내밀 충성 증명이 필요했으니까.

“분명 이 공화국이 세워질 땐, 시레문 카간의 정치를 비판하는 연설에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인데.”

냉소와 씁쓸함을 동시에 담아, ‘무당 동무’는 시민들의 행태를 그렇게 평했다.

저런 사람들이 결국 구세주의 목을 매다는 무리일 것이다. 결국 구세주를 자처한 사람들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저들을 자신과 같은 경지로 끌어올리든지, 아니면 저들이 자신의 목을 매달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철저하게 억압하든지.

씁쓸한 평과는 반대로,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장악한 구역들은 하나둘 ‘해방구’라는 이름으로 조직화되어 갔다.

조금이라도 군생활을 해본 사람들이 지휘권을 잡고, 그렇지 못한 당원들로 어설프게나마 군대를 만든다.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 그리고 조드 빈민촌의 빈민들이 가담해 숫자를 불려 나간다.

‘해방구’의 주민들은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거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해준다. 해방구의 건물 하나하나가 요새, 막사, 식당, 병원, 사령부가 된다.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해방구는 가까운 해방구끼리 연계하여 장악 지역을 늘려나가거나, 새로운 해방구를 확보한다.

당 중앙위는 폭발할 것 같은 세력 확대로 인해 과부하가 걸렸다. 이들은 제대로 잠을 자지도, 씻지도 못하고 전화기 앞에 매달려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하고 정리해보려 애썼다.

수십, 수백 통의 전화 보고가 쏟아지고, 카라코룸 시가지가 인쇄된 지도는 계속해서 새로운 선이 그어지다 못해 다른 지도로 교체됐다. 각 해방구를 지도하는 동지가 누구인지 당 중앙위는 간신히 파악해 나가면서 지침을 하달했다.

오후에 시작된 일이 심야를 지나 새벽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모두 녹초가 되어 의자에서 곯아떨어졌다.

각 해방구를 묶어서 그 위에 또 책임자를 임명하고, 그들의 연결망이 점차 위로 올라와 당 중앙위로 닿도록 지휘체계를 잡는 작업. 그리고 해방구들 사이로 배치된 자유 공화국군을 어떻게 몰아낼 것인가에 대한 작전 수립.

이 모든 것이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당 중앙위는 동쪽에서 오고 있는 고려 태사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

신호를 받은 미리안 역시 빠르게 준비에 들어갔다.

사회주의자들의 ‘해방구’와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피아 식별부터 행동 방침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명령을 하달한다.

“시가전은 자칫, 뜻하지 않은 출혈을 강요당할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도시에 들어찬 건물들을 요새화할 수 있듯이, 자유 공화국군도 건물마다 복병을 배치할 수 있다.

어디서 날아들지 모를 총탄 때문에 희생이 커지면, 결국 고려-몽골 연합군도 건물의 방 하나하나를 뒤져가며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런 건물에 포격을 가하며 전진하든가.

진격 속도가 느려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러면 내전이 끝난 뒤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몽골을 정상화하기 위해 왔다고 해놓고서는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그 삶의 터전을 망가뜨린 군대가 되어버린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카라코룸 시민들의 감정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감정에 호소하지 못하고 사실만 나열한 말만큼 쓸모없는 말도 없다.

그렇기에 도시민과의 협력은 필수적.

마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방구’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하니, 미리안 휘하의 부대들은 카라코룸 안으로 파고들기만 하면 된다.

그다음은 해방구가 확보한 자유 공화국군과의 대치선을, 연합군의 ‘전선’으로 바꾸는 것뿐이고.

“주민들의 무장해제를 요구해서 쓸데없이 갈등을 빚는다든가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철저히 주의하도록. 당연한 말이지만 주민 살해나 약탈 역시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시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군법회의 없이 대원수의 명령으로 즉결 처형될 것이다.”

사령부 안을 무겁게 울리는 리안의 목소리. 원래 그녀의 목소리에도 그 나이답지 않은 위엄이 깃들어 있었지만, 이젠 상대를 복종하게끔 하는 뭔가가 더 들어 있다.

그것은 생사의 갈림길을 지나온 사람만이 목소리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호의호식하며 나이만 먹어온 사람은 절대 담을 수 없는 것. 리안은 스물을 간신히 넘긴 나이에 압도적인 ‘경험의 밀도’로 그것을 갖추었다.

이번에는 김천열이 앞으로 나서, 작전의 구체적인 방침을 전한다.

“도시 내 시민군과 연결을 목표로 전진한다. 내부에서 시민군의 공격이 집중되는 곳에 우리도 화력을 집중해 안팎에서 뚫는다. 적의 수비망을 돌파하면, 돌파 지점을 확대하되 적을 깊이 추격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시민군의 안내에 협조하며 해방구를 전선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할 것.”

끝으로 리안은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시민군이 자기네 장악 지역을 ‘해방구’라고 이름 붙인 이상, 우리도 철저하게 ‘해방군’이 되어야 한다. 이상.”

***

리안이 몽골에서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의 달성은, 이 카라코룸 전투에 달렸다.

성공한다면 리안은 동아시아에 다시 평화를 가져온 지도자이자, 두 나라의 내전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으로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지금 상황에선 실패의 가능성은 낮고 실패해서도 안 되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리안의 정치 생명에 그만한 타격을 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괜히 타국의 내전에 개입했다가 망신이나 당한 지도자로 기록되겠지.

그래서 그녀는 초조와 흥분을 안고 카라코룸 공략 전선을 시찰했다. 쌍안경을 든 그녀의 머리 위로 폭격기가 지나간다.

“도시 외곽 일부 지역의 폭격은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무혈입성은 군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지만…… 저렇게 저항한다면 어쩔 수 없죠.”

최후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직감했음인지, 저항은 격렬하다.

물론 항복한 자의 수도 상당했지만, 늘 그렇듯 적의 항복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적의 수가 줄어든다는 점.

다른 하나는 ‘항복하지 않고 남은 자’들은 똘똘 뭉쳐 격렬히 저항하리라는 점.

“그래도 민간인 희생자는 최소화해야죠.”

단순히 인도주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향후 ‘정치적 이해관계’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폭음.

그 바람이 리안이 쌍안경을 든 곳까지 불어오는 듯하다. 리안은 흔들림 없이 그 광경을 계속 관찰했다.

이번 도시 외곽 폭격 전에, 공군이 미리 적 비행장에 실컷 폭탄을 때려 박았기 때문에 제공권은 확실히 이쪽으로 넘어온 상황이다.

전차와 기갑사의 합동 작전으로 적의 전선을 뚫는다. 그 사실에 희열을 느끼면서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다른 계산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한 번에 이어나갈 수 있는 게, 리안이 지닌 천재적 소양이다.

이번 카라코룸 전투에서 승리는 확실하다. 이는 리안의 공로로 돌아가겠지만, 동시에 루우의 영향력도 드높일 것이다. 칸발리크 테러 사태 이후 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견하가 리안더러 동부전선을 직접 지휘하라고 제안한 데에는 분명 이런 이유도 있겠지. 리안도 이미 안다.

그러나 루우나 견하가 리안이 만들어준 상황을 활용하려 든다면, 리안 역시 루우나 견하의 의도를 활용할 수 있다. 계략은 양방향으로 작용하니까.

지금 봉기한 사회주의자들을 활용해서 몽골의 개혁에만 성공, 게레센제 정부를 안정시킨다면 이는 손쉽게 동아시아 전체의 안정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

“해방구의 시민군과 접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대로 해방구 외곽으로 병력을 재배치하여 도심 공략에 착수하겠습니다!”

갑작스레 들어온 보고에, 리안은 정신을 카라코룸 공략으로 집중시킨다.

짧게 끄덕여 속행을 명령하고, 리안은 추가로 투입시킬 부대의 목록을 검토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도시의 다른 외곽 지역을 두들길 작전을 의논한다.

어쨌든 목표는 반란군이 장악한 옛 황궁, 시청 청사 등 도시 중앙부다. 이 지역을 공략해서 무에투켄이라는 저들의 통령을 붙잡거나 사살하면 전쟁은 일단락된다.

또 다른 보고가 들어온다.

이번엔 아군으로부터 온 소식이다.

“울제이 칸이 이끄는 남부전선의 군단이 속속 옹긴에 입성. 울제이 칸은 ‘교전 중지’ 요청을 보냈습니다.”

리안이 눈살을 찌푸린다. 교전 중지라니?

“카라코룸 공략이 마무리 단계인데 무슨 말인가? 적이 항복할 기회라도 주자는 건가? 어차피 적은 항복할 의사가 없을 텐데?”

그러니 그 시간에 마구 두들겨대는 게 아군의 희생이 적게 나올 것이다.

“그게…… 반란 정권에서 울제이 칸에게 항복 의사를 밝힌 듯합니다. 적이 이미 항복을 준비하고 있으니 더 이상 교전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하는 장교의 말은 갑자기 끊겼다. 대원수가 펜을 책상 위에 팽개쳤으니까.

누가 봐도 명백한 격노의 표현에, 주변의 장성들이 숨을 삼킨다.

“교활한 늙은이가…… 우리가 카라코룸 입성을 두고 경쟁한다는 걸 눈치챘군.”

***

사회주의자들이 이른바 ‘해방구’라는 걸 만들어가면서, 알타이 자유 공화국 정부는 카라코룸의 통제력을 차츰 잃어갔다.

이제는 어떤 부분이 공화국 정부의 구역이고, 어떤 부분이 적의 장악 구역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저항은 몇 시간 정도 차이를 내는 것 말고는 무의미하다. 그들은 망했다. 어쨌든 고려군과 몽골군이 이 도시를 빼앗을 것이다.

무에투켄은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든 권총을 내려다봤다. 자결만이 이제 자신에게 남은 해답일까…….

“각하! 살았습니다!”

헐레벌떡 들어온 장관의 그 한마디에 무에투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랍을 닫았다.

“울제이 칸이 우리의 항복을 받아들였습니다! 방금 무장 해제하라는 요구가 들어왔습니다!”

“동부전선의 고려군은?”

“공세를 멈췄습니다. 잘만 하면 국외 추방 정도로 끝낼 수 있을 겁니다.”

늙은 정치가의 눈이, 오랜만에 젊은이들 못지않게 반짝였다. 정치가의 필수 소양은 살아남을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채비를 하게. 저들이 무장해제를 감독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 그게 우리의 유일한 희망일세. 처우 결정을 기다리기보다는 일단 국외로 나가서 사면을 기다리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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