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8)
“반란군이 장악한 도시를 폭격하면 확실히 적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 텐데……”
새너두로 옮겨온 카간 게레센제의 첫 고민은 ‘어떻게 적에게 결정타를 입힐 수 있는가’였다.
“상대가 ‘적국’이었다면 부담 없이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겠지.”
이는 고려 내전에서 미리안도 똑같이 했던 고민이다. 내전은 ‘상대방을 절멸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난동’으로 보고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이쪽의 정통성을 내세운 이상 적은 그저 반역자일 뿐이고, 적이 장악한 지역은 그들에게 억류된 불쌍한 ‘우리 국민’의 거주지다.
그런 이데올로기를 내세워야 아군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고, 내전이 끝나고 나서도 적 측에 넘어갔던 국민들을 잘 달래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시킬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통해 잃게 될 것들이 아깝기 때문이기도 했다.
“형님께서 지난 20년간 이룩하신 모든 것들을 잿더미로 만들 순 없어.”
경제적인 타격은 당연히 막대할 것이다. ‘경제야 어차피 내전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회복될 것 아닌가?’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더 이상의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면, 몽골은 완전히 고려에 의존해야만 한다.
안 그래도 지난 몇 달간 멈춰 있던 ‘관세동맹’이 재가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불편한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고려에 손을 벌리고 있다.
몽골의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고려는 마음껏 몽골의 경제에 침투, 장악하려 들 것이 뻔했다.
“적군에 타격을 입히고는 싶지만, 적이 장악한 지역에는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내전도 전쟁이다. ‘적군’만을 쏙 빼내서 타격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근대 이후의 전쟁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군인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민간인이 뒷받침하는 총력전.
과연 민간 경제에 입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적의 군사력에만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힐 방법이 있기는 할까?
이러한 고민은 카간과 함께 새너두로 옮겨온 참모들에게도 전해졌다. 참모들은 일단 공군의 폭격에 발맞춰 포병도 아낌없이 포탄을 쏘아댄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적의 기갑사 상당수는 동부전선으로 이동해 고려군을 상대하는 듯합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새너두 북쪽으로 전선을 밀어내는 동안, 기갑사의 모습은 거의 목격되지 않았다. 그러한 전선의 보고를 토대로 사령부는 그런 판단을 내렸다.
“공군의 폭격과 육군의 포격이 적 육군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습니다. 진지도 상당히 파괴한 듯합니다. 이에 따라 기갑부대의 돌파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뒤따르는 보병의 진출도 무난하게 진행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무의미한 낭비로 보일 정도로 포탄을 쏟아붓는다. 적이 참호에서 감히 고개를 들 생각도 못 하도록 소리와 열기와 흙을 뒤집어엎는다. 위축된 몸이 사기마저 위축시킨다.
그러면 ‘복수’라는 신이 들린 인간들이 돌진, 적의 진을 완전히 헤집어 놓는다.
그런 과정을 위한 포탄 수요를 맞추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 낭키아스와 몽골 정부의 현 장악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량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여기서도 고려에 손을 벌려야 한다.
좀 더 아래쪽의 지휘관들에게 올라가는 보고라면 이보다는 상세하겠지만, 카간에게 필요한 건 전체적인 흐름이다.
“기만전술일 가능성은 없는 건가? 이를테면 아군을 방심케 하고 깊숙이 끌어들였다가, 숨겨둔 기갑사로 뒤를 잘라버릴 생각인 것은 아닌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우려였다. 승승장구할 기미가 보이자마자 흥분해서 모든 걸 그르치는 군인들이 얼마나 많던가.
“갑작스러운 기습에는 충분히 대처하고 있습니다. 패주하는 적을 추격해 전과를 확대하기보다는, 후위를 확실히 다져나가는 작업을 우선합니다. 카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적이 역공을 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게레센제가 머무는 새너두의 측면 방어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게레센제는 ‘새너두의 방어보다는 착실히 적을 타격하는 데 집중하라’고 주문하고 싶지만, 군부의 기분을 생각해보면 그런 명령을 내리기도 곤란하다.
군은 바로 얼마 전에 카간을 잃었다.
단순히 주군을 잃은 게 아니다. 시레문은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노장들의 전우였으며, 전쟁 이후에는 국가의 중흥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는 행복한 천수를 누려야 마땅했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복수심도 복수심이지만, 그 전에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시레문에 이어 게레센제까지 잃을 순 없다. 게레센제의 즉위를 두고 여러 말이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게레센제는 그들의 카간이다.
이번에야말로 카간을 지키고, 역적들을 주살한다.
게레센제는 초조한 가운데서도 군부의 그런 분위기에 안도했다.
이대로 내전 수습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게레센제도 칸발리크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세심하게 전선의 상황을 살피면서, 어떻게 더 나은 상황을 만들까 게레센제가 고심하고 있을 때, 손님이 찾아왔다.
울제이가 마침내 몸을 움직여 형을 찾아온 것이다.
***
내무장관 겸 전쟁장관이라는 막대한 권력.
그 권력을 승인받기 위해 울제이는 카간 게레센제가 머무는 새너두를 찾았다.
어색한 광경이었다.
호랑이는 마땅히 우리에 넣어 옮겨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호랑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풀어주고, 그걸 호위하며 함께 나아간다는 발상은 정신이 어지간히 나가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새너두의 경호원들은 그렇게 해야 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형과 카간 자리를 두고 싸웠던 동생. 극히 위험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자를, 이제는 국가의 요인으로서 경호해야 한다.
스스로를 ‘도구화’해야 간신히 이 변화무쌍한 정치 상황에 싫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저 경호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경호의 대상은 내가 정하지 않는다. 명령받은 대로 누구든 경호한다, 는 식으로.
그래도 ‘위험한 호랑이’ - 울제이 칸 앞에 카간이 나타났을 때, 경호원들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울제이의 경호원이든, 카간의 경호원이든.
“칸발리크에 머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쟁장관이 카간의 사령부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내무장관이기도 하지 않더냐.”
울제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형제의 대화에서 살가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서로가 서로의 야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게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이제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형제간 최소한의 예의 말고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낭만도 남지 않았다. 그런 것은 그들의 맏형, 시레문이 모두 가져가 버렸다.
“짐은 네가 칸발리크에서 자기 기반을 다지고 있을 줄 알았다. 장관 자리를 받자마자 짐을 만나는 게 두렵진 않더냐?”
“형님 카간께선, 위험한 야심을 품은 이 아우를 만나는 게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두려웠지.”
민망한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이 게레센제는 답했다. 비로소 가면을 벗고 솔직한 모습으로 아우와 마주보는 것일까, 아니면 이 역시 ‘솔직함’을 가장한 또 하나의 가면일까.
“그렇기에 너에게 그토록 막대한 권력을 준 것이다.”
울제이는 당당하게 고개를 세우고 형을 올려다봤다.
“막대한 권력을 주신만큼 더 두려워지신 것은 아닙니까?”
“너도 알지 않느냐. 짐이 너에게 그 자리들을 준 게 어떤 의미인지.”
“예. 알지요. ‘너에게 영광을 주마. 그러나 네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그 위는 노리지 말거라’. 저를 달래기 위해 주신 장난감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장난감이더냐.”
“만약 제가 그 자리에 있고 형님이 제 자리에 계셨다면 만족하셨겠습니까?”
게레센제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허세와 승자의 여유, 그 가운데 어딘가에서 나오는 미소였다.
“만족하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저를 이대로 두시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울제이, 창세 이래 지상에는 무수한 군주들이 있었고, 그 군주의 형제들도 무수했다. 쿠빌라이 카간과 아릭부케처럼 군주 자리를 두고 다툰 형제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형제들도 많았지.”
“저도 그런 착한 형제들처럼 착하게 있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울제이. 짐은 그 무수한 형제들의 마음속에 과연 군주의 자리를 탐하는 마음이 없었겠는가 묻는 것이다. 역사에는 평생 군주가 된 형제를 따르고, 작위나 영지에 대한 욕심도 없이 살다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어좌를 향한 욕심이 단 한조각도 없었을까?”
아주 잠깐의 침묵 후, 울제이는 대답했다.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평소에는 권력과 거리가 먼 자라도, 꿈 정도는 꿨겠죠.”
“그렇다. 황족으로 태어난 자에게 야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형제들을 모조리 처단했다면 보르지긴 가문은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야. 역사 속 명문가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을 게다.”
“카간께선 제가 ‘야심은 품었지만 조용히 살다 간 형제’가 되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래. 짐은 네가 언젠가 카간 자리에 대한 야심을 포기하길 바란다. 가슴 속에 품고 살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꿈이라 생각하게 되길 바란다.”
울제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되겠습니까?”
과연 이 아우의 마음에서 야망이 사라지겠습니까, 라는 물음.
“역사 속 많은 군주들도 해왔다. 군주로서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 형제들이 ‘아, 나는 도저히 폐하만큼은 하지 못하겠구나’하고 포기하게끔 해왔다. 짐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더냐.”
“자신 있단 말씀이시군요.”
“없으면 이 자리에 있지 못하겠지. 자신감과 각오 없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카간 자리는 가볍지 않단다.”
울제이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형이 카간 자리의 중압감에 짓눌려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동생의 야심을 달래거나 견제하는 데 급급하기만 한 소인배의 면모를 드러냈다면, 울제이는 형을 경멸했을 것이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쿠데타를 준비했겠지.
“하지만 단순히 저를 달래기 위해, 저에게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내무장관 겸 전쟁장관이라는 자리를 맡기시진 않으셨을 겁니다.”
다른 뜻이 있으시지요? 라고 울제이는 눈으로 물었다.
게레센제 카간은 짧고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가 있다.”
“무엇입니까.”
“하나는 우리 몽골 정계에서 ‘하나의 축’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정계. 모든 게 가능하고, 또 언제든 불가능에 부딪힐 수 있는 수라장.
울제이는 강한 권력이란, 그것을 쥐는 만큼 수라장에 말려들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싸움과 동맹과 배신이 반복되는 이 난장판은, 국가라는 게 존재하고 정치가 펼쳐지며 역사가 이어지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카간을 제외하면 정계의 서열 1위는 타이시겠죠. 볼로드를 견제해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게레센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 견제해서는 의미가 없다. 배후에 있는 자, 볼로드의 미래 구상 속에 들어있는 자를 견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