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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21화 (221/541)

수습(7)

칸발리크와 동명에서 각기 사태 수습을 위해 움직이는 것과는 별개로, 카라코룸에서는 또 다른 사태를 일으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늘어만 가는 희생, 악화일로인 경제 사정에 항의하는 시위.

이 시위는 어느새 내전을 그 모든 고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단순 군 수뇌부 규탄 시위, 생활고를 호소하는 시위가 반전시위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전쟁을 그만두자. 칸발리크 정부와 화해하자. 대체 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세워야 할 만큼 그게 대단한 이상인가?

“물론 공화국이 제국보다는 훨씬 더 나은 정치체이며, 그 공화국을 건설하고 수호한다는 이상은 목숨을 바칠 만큼 훌륭하지.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공화국’을 건국했을 때의 이야기요.”

‘무당’은 오랜만에 ‘깡패’와 만나 그렇게 카라코룸 정부에 대해 평했다.

“알타이 자유 공화국은, 공화국 건국의 이상을 인민에게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했소.”

무당이 그렇게 말하고 술을 들이켜자, 깡패는 비웃음을 섞어 되물었다.

“애초에 그 자유 공화국인지 뭔지 하는 집단이, ‘공화정’에 대해 이해는 하고 있었답니까?”

그저 몽골 제정에 저항하기 위해서, 어디서 주워들은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나라를 만드니 이건 뭐 공화국도 아니고 군주국도 아닌 어정쩡한 뭔가가 되어버렸다.

자기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공화국의 원리나 이상을 인민에게 설명할 수 있을 리 없다.

적절한 기술, 인민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이해가 뒷받침된다면 공화정은 군주정에 비해 월등히 우위에 설 수 있다.

군주정은 잘못된 길을 걷는다 싶어도 군주의 수명이 다하거나 군주의 피를 흘리게 하지 않는 이상 돌이킬 방도가 없다.

반면 공화정은 다른 법적 수단을 동원하거나, 그저 몇 년만 참으면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 그러면 정책의 수정 역시 가능하다.

군주정에 비해 공화정은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대체 불가능한 장점을 지닌다.

명군이 나타나길 바라는 ‘요행’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실력 경쟁을 통해 올라온 정치인이, 혈통 덕분에 군주가 된 자보다 당연히 평균적으로 더 유능하다.

‘비효율적 공화정, 효율적 군주정’이라는 신화는 이미 오래전에 뿌리가 뽑혀버렸다.

폐기된 신화는 몇몇 낭만주의자들의 망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군주들은 타협책으로 ‘입헌군주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저 카라코룸 정부는 공화정이라는 게 카간을 통령으로 대체시키기만 하면 되는 걸로 알고 있지.”

“그런 빈약한 이해도로 인민을 설득하려 했으니 될 리가 있나.”

사람들은 분명 몽골 제국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품었었다. 그들의 대응 방식에 격렬한 시위로 맞섰다. 끝내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 주도하는 봉기에 참여, 알타이 자유 공화국을 건국했다.

“알타이 자유 공화국은 두 가지 문제 중 하나라도 해결했어야 하오.”

“경제 문제를 해결하든지, 아니면 정치적 진보를 보여주든지.”

물론 반쪽짜리 영토만을 든 신생 공화국이, 시레문도 해결 못 한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리 없다. 당연히 공화국은 정치적 진보를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통령 무에투켄을 비롯한 공화국 정부는 여전히 카간이 국민을 다루는 방식으로 인민을 다뤘다.

차라리 카간 일가라면 수백 년의 정통성, 세계대전이라는 위기를 함께 극복했던 과거, 그리고 교회에서 부여받은 신성성으로 인민을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에투켄은 뭔가? 카간인 척하는 늙은이일 뿐 아닌가?

“서부 지역 봉기 상황은?”

무당이 묻자 깡패는 조금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잡담은 끝났고, 이제부터 진짜 ‘일’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므로.

“국경 지대를 장악해서 당장은 물자 보급에 큰 차질이 없소. 단순한 소동이라 생각해 진압하러 왔던 군부대는 궤멸적 타격을 입고 쫓겨났지.”

“그렇다고 본격적인 진압을 위해 대규모 부대를 쪼개서 보낼 순 없을 거요. 칸발리크 사태가 생각보다 빨리 해결되었다더군. 몽골이든 고려든 아주 이를 갈고 전선에 부대를 바짝 접근시킨다던데.”

“……그렇게 됐소?”

깡패는 되물으면서도 속으로는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그 소년, 아니 이제 청년티를 막 내려고 하는 그 주견하라는 남자. 약속했던 대로 밖에서 제대로 호응해 올 모양이다.

“이대로 서부 국경 지역을 장악하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철길만 끊어도 알타이 자유 공화국은 말라 죽을 거요. 얼마나 버틸 수 있겠소?”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소, 동무. 우리가 계속 연락을 취할 수 있으면 버티고 있는 거고, 어느 날 내가 연락이 없으면 끝장난 거지. 희망적인 관측은 버리고 악착같이 카라코룸 정부의 목을 물어뜯는 수밖에.”

이번에는 깡패가 술을 들이켜고, 무당에게 질문했다.

“카라코룸에서의 시위는 이제 어떻게 발전하오?”

“반전시위 단계까지 왔으니까, 점차 현 정부 규탄,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 요구 쪽으로 옮겨 가야지.”

“자유 공화국에서 무력 진압을 할 가능성은? 혁명에는 원래 혁명가의 피가 따르는 법이라지만, 혁명 이후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많은 피가 흐르는 상황은 꺼려야 하오.”

바라트가 그래서 변질되지 않았던가, 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바라트에서는 혁명과 그에 따른 내전을 거치면서, 혁명을 주도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혁명가들이 죽었다. 그들은 고귀하고도 헌신적인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살아남아 이후 당과 국가의 중추가 되었다면 바라트의 역사도, 세계 혁명의 역사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헌신적 정신으로 자신들의 피를 아낌없이 대지에 뿌렸다. 그 결과 혁명도 성공하고 내전에서도 승리했지만, 당과 국가는 인재난에 허덕이게 된다.

바라트 공산당이 혁명에 대해 들어보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운 어중이떠중이들을 마구 받아들인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바라트 공산당은 동네 자경단과 관료 기구와 군대가 적절하게 뒤섞인 혼합물이다. 깡패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가 바라트와의 협력보다는 독자 노선을 지지하기로 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대비는 해두고 있소. 그런 상황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각기 소총 한 자루씩은 무장할 수 있도록 하고, 각 공장 노조별로 하나의 부대 단위가 되도록 했지. 그 외에도 군이나 경찰 내부에서 우리 편을 들어주는 자들도 있소.”

“그럼, 최종적으로는 혁명으로 옮겨갈 거요?”

“아마도.”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 몽골 제국 정부와 황실을 상대로 일으킨 혁명. 그 혁명에 대항해 몽골 사회주의 정파들은 또 다른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

“혁명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방향은 일단 노동자 평의회에 권력의 일부나 전부를 이양하는 걸로 잡고 있소.”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리 목표는 고려 제국의 동지들처럼 제국 정부와 타협한다는 거요. 당 분위기가 ‘이대로 몽골 전체의 사회주의 혁명을 진행하자’는, 그따위 모험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하오.”

알타이 자유 공화국도 몽골과 고려, 두 제국을 이기지 못했다. 하물며 자신들이 이기리라는 상상은 더욱 할 수가 없다.

“그쪽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오. 바라트 공산당 쪽과 관계를 끊다시피 하면서 이미 그런 노선은 확고해졌으니까. 다만 염려되는 건……”

무당은 깡패의 눈을 들여다본다. 깡패는 고려의 감찰국과 접촉해 이 ‘거래’를 성사시켰다. 과연 잘 될까, 하는 질문이 무당의 시선에 녹아 있었다.

“저쪽이 약속을 어기진 않을까 하는 것이지. 아니, 고려의 그 감찰국장이라는 자나 태사, 황제는 지키고 싶어 해도, 새로 카간이 된 게레센제가 우리와 타협하려 들겠소?”

“만일에 대비해 고려의 감찰국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거요. 고려 내 동지들과도 마찬가지고. 그들의 힘을 빌린다면 게레센제를 압박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거라고 보오. 게레센제 카간이 고려와 정면충돌할 부담을 짊어질 것 같지는 않소.”

게레센제는 이제 막 즉위했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파마저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그 유혹의 손짓을 잘 파악해야 한다. 고려, 몽골, 그리고 자신들 사이에 이루어진 세심한 거래 속에서 파멸이 아니라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당에 속한 모든 인간에게 극한의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상황.

두 사람 모두 한번 더 술잔을 들이켠다.

“이제 다시 각자의 전쟁터로 돌아가 봐야겠군.”

여기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혁명가들의 선술집. 아마 앞으로도 알려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역사의 표면에도 떠오르지 못한 채 언젠가는 모래 먼지처럼 사라지겠지.

두 사람이 본명이 아니라 ‘깡패’와 ‘무당’이라는 별명으로만 불리듯.

“또 봅시다.”

“음. 그때는 좀 길게 마셔봅시다.”

아까 깡패 동무가 서부 국경지대의 봉기가 얼마나 버틸지 장담하지 못했던 것처럼, 기약 없는 약속이다.

누군가는 홀로 이곳에 돌아와 쓸쓸히 술잔을 기울이며, 다른 한 명의 명복을 빌어야 할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고.

그래도 내일 만날 것처럼, 두 혁명가는 악수하고 자기가 갈 길로 떠났다.

***

날씨가 좀 맑아지는가 싶더니, 몽골 공군이 북서 방향으로 하늘을 갈랐다.

그들은 ‘붉은 존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분풀이라도 하듯, 맹렬한 기세로 몇 번이고 적지를 휩쓸었다.

전투기가 먼저 적의 상공을 뒤집어엎고, 적 전투기의 반격을 억누른다.

그사이 폭격기가 적 육군을 유린한다. 정석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술이지만, 그 전술의 내용물이 달랐다.

일단은 규모부터가 적을 압도했다. 칸발리크 테러 이후 몽골 제국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가능한 많은 병력을 칸발리크 주변으로 재배치했는데, 이는 공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후에도 이를 갈며 끌어모은 병력이 이제는 모두 북서쪽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조종사들의 마음가짐도 달랐다. 공화국군이 도대체 공화국이란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전투를 벌이는 것과 달리, 제국군 조종사들은 ‘복수’라는 동기를 얻었다.

죽어간 칸발리크 시민들, 전우들, 위대한 카간에 대한 복수.

단순하고, 알기 쉬울 뿐만 아니라 강력하기까지 한 동기다.

기계의 성능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걸 운용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이 어떠한가에 따라 성능의 활용에 차이가 생긴다.

적들이 ‘이쯤 하면 물러나겠지’ 싶은 지점에서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걸레짝을 만들어 놓는다.

숫자와 사기 양쪽에서 모두 우위에 선 군대는 강력하다.

역사에선 기묘한 계책으로 그런 군대를 물리치는 사례가 종종 기록되어 있지만, ‘기록’에 남았다는 건 기록할 만큼 특이한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사기를 더욱 드높이는 일이 하나 있었다.

카간 게레센제가 자신의 통수부를 칸발리크에서 새너두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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