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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19화 (219/541)

수습(5)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리는 리안을 보며, 새로 내무성 장관이 된 안세규가 의견을 말한다.

“여기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어쨌든 최대한 빠르게 몽골과 키타이, 낭키아스 등에 번진 혼란상을 수습하는 겁니다.”

전쟁이 악이라면,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야말로 그 악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던가.

“빨리 이기고 손을 떼자는 거죠.”

“고려가 다른 나라의 문제에 개입한 선례를 남기는 것도, 그리하여 고려가 패권주의, 팽창주의 정책을 펼친다고 주변국의 경계를 사는 것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뿐, 안세규의 말에는 ‘루우가 몽골 카간 자리를 계승하고 통합된 다이온, 즉 대원(大元) 제국을 재건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뜻이 들어 있다.

“진압이 빠를수록, 빠른 안정과 회복을 바랄 수 있습니다. 우리 고려가 빠르게 허동주와 신수덕을 제압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회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키타이, 낭키아스, 몽골이 자력으로 치안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면, 우리 군을 계속 파견해야 할 명분도 사라지겠죠.”

이상론은 그렇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빨리 끝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전을 치른 고려군의 전력이 막강하다 해도, 내전이 끝난 지금은 그때와 같은 병력 규모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국방에 필수적인 병력은 유지해야 하기에, 드넓은 몽골 전선과 낭키아스의 한족 봉기 지역에 파병할 병력 규모를 마구잡이로 뽑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키타이는 울제이 칸이 자력으로 어떻게든 해볼 심산인 듯하지만, 그마저도 불리해진다면 언제든 고려군에 손을 벌릴 수 있습니다. 그때를 위한 예비 병력 정도는 남겨둬야 해요.”

미리안의 말에 류성일이 그렇지요, 라며 덧붙인다.

“우리 고려를 비롯한 4개국의 정세가 어찌 흘러가든, ‘한족의 봉기가 성공하여 독립국가가 건설된다’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방지해야 하니까요.”

부족한 병력. 그 병력의 분산. 따라서 병력을 대규모로 집중해 단숨에 적을 격파한다는 구상은 지금으로선 힘들다.

다시 동원령을 내리고 총력전에 들어갈 수도 없다. 간신히 회복세로 돌아선 고려의 경제가 그걸 뒷받침하지도 못할뿐더러, 국민은 그런 고생을 해가면서까지 제국의 영광을 원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전쟁성 장관 강태훈이 의견을 내놓는다.

“몽골 반군의 남쪽과 동쪽 전선에서 더 이상의 진격이 어려워진 것은, 물론 기후 탓도 있겠습니다만 그 이전에 갑자기 출현한 적의 기갑사 때문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적의 출현. 파견된 고려의 육군은 곤란을 겪고 있다. 압도적 포격으로 접근을 막고는 있지만 그뿐. 백병전이라도 벌어지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공군을 통한 타격은 효과가 있겠지만, 전투기나 폭격기의 항속거리가 문제다. 고려는 오랜 세월 몽골과의 전쟁을 상정하지 않았고, 이는 몽골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몽골 동부와 고려 서부 사이엔 공군기지의 수도 많지 않고, 있는 부대들도 규모가 크지 않다.

몽골 내부의 공군기지 대부분은 칸발리크나 카라코룸 같은 도시들의 방어를 목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지금 같은 내전 상황에 써먹기는 조금 곤란하다.

물론 새로운 공군기지 건설이 추진되었지만, 칸발리크 테러 사태를 겪는 동안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이제 와서 완성시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역시 육군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나…….”

리안이 중얼거리자, 강태훈은 준비된 대안이 있다는 듯이 그에 대한 의견도 내놓았다.

“칸발리크에 나가 있는 배영훈 중령과 기갑사 부대를 복귀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전력을 보강해 동부 전선에든 남부 전선에든 배치하면, 적 기갑사를 상대하면서 빠른 돌파도 가능할 겁니다.”

리안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기갑사 전력은 그녀가 직속으로 뒀을만큼 아끼는 전력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어떻게 칸발리크에서 기갑사들을 빼온단 말인가?

“황제 폐하를 경호하는 목적으로 가 있는 부대라, 폐하께서 그곳에 계신다면 경호 병력만 함부로 감축할 수는 없어요.”

체면, 의전…… 아무것도 아닌 허황된 개념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종종 ‘실질적인 힘’으로 이어짐을 생각하면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폐하께서 기갑사 부대가 필요하다고 하시면, 우리 태사부에서 올린 ‘상소’를 고집스레 밀어붙일 수도 없죠. 또 폐하는 군대 위의 존엄하신 분. 따라서 고려군의 해외주둔제한법의 범위에도 들지 않으시니.”

기갑사를 어떻게 본국으로 귀환시키느냐 하는 물음은, 결국 황제를 어떻게 귀국시킬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리안이 답답한 마음으로 던진 여러 걸림돌에 대한 해답은, 내무장관 안세규에게서 나왔다.

“여론을 움직이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여론이라……”

제3제국 황제의 권력은 제1제국이나 제2제국과는 그 근원이 다르다.

삼한반도를 통일하고 남쪽의 고려와 북쪽의 고려(발해)를 통일한 힘으로 창건된 제1제국.

몽골의 지배를 물리치고 새로이 독립적인 나라가 된 제2제국.

둘 다 황실과 국가가 일체가 되어 이룬 체제지만, 제3제국은 사정이 달랐다.

미승휴의 상경 정부, 허동주 군벌, 고려민국 임시정부와 수많은 고려 민중들이 먼저 태평천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제국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그 민중의 지지를 받는 미리안, 제국입헌당, 제국최고회의가 ‘추대’한 자가 바로 제3제국의 황제, 루우다.

“‘민중이 황제께서 귀국하시기를 원한다’고 하면 폐하께선 이를 가벼이 여기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그런 여론을 조성할 힘도 있지요.”

좋은 수단이다. 리안의 입술이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루우가 국민의 인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진해나갔듯, 우리는 국민의 여론을 황제에 대한 고삐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 사실 너무 오래 몽골에 나가 계시긴 했습니다. 이 점을 부각시키면서, 고려의 황제께선 역시 고려의 수도에 계셔야 한다고 여론을 조성해가면……”

“……언제까지 황제께서 직접 외국 일을 도맡아 하셔야 하는가, 그런 말이 나올 법하죠. 이젠 슬슬 신하들에게 맡겨두고 황성으로 돌아오셔서 국민과 함께 하셔야 하지 않는가……”

말하다 말고, 리안은 진지한 얼굴로 고민에 잠긴다.

작고 귀여운 얼굴이지만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누구도 감히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가 빽빽한 밀도로 사람들을 밀어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제국 정계의 정점에 선, 독재자다.

“황제께서 귀국하신다 해도, 지금까지 해오신 일을 누군가는 맡아야 해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리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새로 외무장관이 된 조유관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조유관은 외무장관으로서 맡는, 첫 중요 임무인가 하고 입을 열려는데……

그 순간, 내무장관 안세규가 리안의 시선과 조유관의 말을 자르듯 의견을 냈다.

“태사 각하께서 이번에 직접 칸발리크로 가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가요?”

“예. 우리 황제 폐하와 몽골의 카간 간 회담은 몇 차례 있었지만, 각하께서 취임하신 이래 몽골 태사와의 회담은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이번 기회에 저쪽 태사 볼로드와 만나보시는 건?”

리안은 세규의 미묘한 눈짓에 담긴 생각을 읽는다.

일단 리안이 직접 칸발리크로 가면 황제를 동명으로 불러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리안이 칸발리크에서 무엇을 해놓았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다.

게다가 세규의 말대로 몽골 쪽 최고 권력자인 볼로드와 대화를 나누며 저쪽의 실력이나 생각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면서 요즘 계속 끌려다니기만 하던 정책 방향을 수정하고, 리안이 다시 주도권을 쥐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도 칸발리크에 머무는 견하와 효윤을 만나서 의견을 듣고, 운이 좋다면 게레센제 카간을 직접 만나볼 수도 있겠지.

상당히 좋은 제안이다. 별다른 손해는 없고, 이익은 훨씬 크다. 그렇게 계산을 마친 리안은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조유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외무장관께선 태사의 칸발리크 방문에 관한 일들을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장군 출신의 외무장관은 시원하게 명을 받들었다.

“곧바로 몽골 외무성 및 태사부와 접촉하겠습니다.”

***

“취임 후 처음으로 맡는 중요한 업무로군요, 조 장군…… 아니, 조 장관.”

국무회의가 끝나고 각료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틈을 타, 세규는 슬쩍 조유관에게 말을 붙였다.

일부러 실수라도 한 듯 ‘장관’이 아니라 먼저 ‘장군’이라 불렀는데, 조유관은 그 의도를 이해할까?

조유관은 안세규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정면을 보며 대답했다.

“예. 아무래도 군무와는 성격이 다르다 보니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군요.”

“초점을 잘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민주공화국’의 건설. 고려민국 임시정부가 꿈꾸던 그 목표를 향해서 말이죠.”

고려제국을 고려민국으로. 고려국민당이 대놓고 강령으로 내세우진 못하지만, 내심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조유관은 그제야 눈만 돌려 세규의 얼굴을 봤다.

“고려민국 임시정부에는 ‘지금의’ 고려국민당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안세규의 표정이 굳는다. 조유관은 지금 예, 그러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대답할 생각이 없다.

안세규에 대한, 반기를 표명하고 있다.

“지금의 사회민주당, 공산당도 고려민국 임시정부의 일원이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호오…… 조 장관께선 정치적 입지를 보다 좌익으로 옮기시겠다는 겁니까?”

“저는 지금 ‘고려국민당 내에 있었던, 당신 파벌이 아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돌려 말하는 듯하다가 단숨에 찌르고 들어온다. 엊그제까지 장군이었던 사람다운 기백에, 그 안세규조차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다.

“현 제국의 체제에 적응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 민주공화국을 이룩해갈 실력도 없는 자들을 당의 지도부에 두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무장관께선 어렸을 때부터 당내 다른 유력 인사들과 경쟁하며 그 위치에 오르셨다 들었습니다. 매번 승승장구해왔다고 앞으로도 그러실 거라 착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각자 차례로 말을 하고는 있지만 전혀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장군께선 고려민국의 이상보다는 제국 체제에 더 협력하시겠다는 듯 보이는군요.”

“굳이 고려민국일 이유는 없잖습니까. ‘대원민국’도 가능할 텐데 말이죠.”

“이상에 대한 배신이 더 큰 배신 아닐까요?”

“민주공화국을 꿈꾼다는 자가 재미있는 친구들을 보냈더군요. 제가 답례로 그 목들을 내무장관께 선물로 보냈는데, 혹여나 포장이 잘 안 되어서 피가 새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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